17. 원원사터 삼층석탑
황룡사터, 굴불사터, 백률사를 거쳐 봉서산 기슭의 원원사터로 간다.
김유신의 주도로 창건된 호국사찰이다.
석축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두기의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높이는 7m
<정면으로는 꼬여있는 소나무가 있고... 뒤편에는 금당자리에 묘지가 한기가 있다...>
동서 쌍탑 모두 옥개석들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고
한쪽은 몸돌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있다.
2단 기단부에는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1층몸돌의 사천왕상...>
<기단부에 있는 12지신상...>
<가장 크고 완숙한 12지신상은 김유신묘의 12지신상이 아닐까... 원원사지도 김유신과...>
생각이상의 수작(?)을 본다.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
장항리 오층석탑의 인왕상과 충분히 대비가 된다.
화엄사 오층석탑을 비롯, 여느 탑의 조각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빼어난 조각이다.
<장항사지탑중 파손된 탑신의 인왕상... 사천왕상 사진은 장항사지 편에서...>
<화엄사 서오층탑의 사천왕상 ; 가시나무새님의 블로그에서 빌려왔음...>
깊은 부조를 만들기 위해 몸돌이 작아진 듯 하나,
또한 밖으로 튀어나온 사천왕상으로 인해 불안정해짐을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
<너무 좋지 않은가? 우아하면서도 거만하지 않은...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너무 좋다...>
그러나 원원사 쌍탑의 맛은
단순히 세부조각들의 화려함과 빼어남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전체적인 볼륨에 보태진 세부조각의 풍성함은
탑의 이미지를 매우 활달하게 바꾸어 놓았다.
<석등의 부재인지... 아니면 봉루대의 잔재일지...>
과장이 전혀없이 철저히 절제된 추녀의 반전
석가탑과 비슷한 체감률...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1층 옥개석의 두께가 더 두툼할까?
단지 너무나 화려하고 빼어난 부조들로 인해 절대미감을 포기하게 되지만
활달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석가탑과는 다른 대중성을 갖게 하는건 아닐까?
치밀하지 못한 과장으로 자칫 속되 보이는 화엄사 오층탑와 달리, 우아함도 갖추고...
너무 좋지?
만약 이 탑이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다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이 상태만으로도 너무나 좋고, 즐겁고, 사랑스러워지는 탑이다.
우아하면서도 도도하지 않는...
튼실한 교양에 참신한 유머까지 갖춘? 아리따운 지성을 만난 것 같은 즐거움...
너무 좋다 그치!
18. 괘릉
이제 괘릉을 거쳐 토함산을 넘어 장항리, 감은사지를 거쳐 동해로 향한다.
숱한 조선시대 왕릉에서처럼 석물들의 잔치를 기대하고 들어간 원성왕릉(?)...
에게... 사자상, 문무인석(?)과 서역인상, 그리고 화표석 총 10개가 전부?! ^^
단지, 그 하나 하나의 석물들이 가진 특징과 활달한 조각수법으로 인해
사랑 받는 유적지가 된 듯 싶다.
괘릉이란 ; 시신을 넣은 관을 매달아 놓은 왕릉이란 뜻이며,
당나라 식의 능묘제도가 가장 완벽하고 화려하게 적용 된 사례라고 한다.
그러나 사자상과 십이지신상은 통일신라의 독창성을 증거 한다고 하며,
서역인상은 등 쪽의 산낭을 단서로 무역에 종사한 상인으로
문인석은 소매자락 밑의 칼날과 갑옷으로 인해 관검석인으로도 불린다.
귀엽고 정겨운 사자들과
날카로운 눈매의 무인석과 관검석인,
그리고 석굴암 금강역사보다 더 두툼한 팔뚝을 소유한 서역인...
아무런 연결성도 없고, 잡다한 석물들이 모인 괘릉이 가진 매력은 뭘까?
괘릉의 석물들이 자극하는 향기는 미적, 예술사적 측면보다는 역시
역사적, 문화적 측면이 강하다.
고구려, 백제와 지배계층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신라의 지배계층에 대해 궁금점이 많은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기원전후의 고대인들에게 지배층은 토착민보다 도래인들이 많았고...
초기 박혁거세의 난생설화
약 200년 후 신라의 왕족은 석씨로 바뀐다.
철기문화를 도입한 듯한 석탈해의 설화,
그리고 그로부터 150년 후 왕위에 오른 내물왕은 김알지의 대략 7대손...
여기에서 왕족은 김씨로 바뀌고 해양문화의 유입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그러나 황님대총, 천마총 등 4~5세기 왕릉에서 출토된 가지모양의 왕관 등은
바이칼호 근처 북방계의 문화적 흔적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씨족간의 세력대결이나
신지배계층에 대한 권위의 포장도 있지만
기존 토착민 혹은 기존 지배계층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며 신라의 왕계는 변천한다.
<왕릉에 조성된 십이지신상...>
19. 원성왕릉
신라 맨파워의 다양성은 단지 왕계의 변화에만 있는게 아니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3개 성씨 왕족의 탄생 설화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재상 호공은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원성왕릉으로 불리는 괘릉에서는 서역인상이...
한편으론 신라의 확장된 네트워크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지만
무엇을 의미할까?
모든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응용하고
정치적 통치와 일상의 삶을 종교와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문화적인 건강성과 역동성이 힘이었을까?
아님 활짝 열린 재기발랄한 포용력의 우연일까?
도대체 2~30년 전에 석굴암 같은 치밀함과 의도된 연출을 만들줄 알았던 신라인이
이렇게 허술하고 잡다하게 왕릉을 꾸민 이유가 뭘까?
억지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볼까?
<낮은 코 ; 북방계와 남방계에 대한 나의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한족의 이미지가 강하다...>
남방계 사람들에 비해 북방계 사람들의 코는 길다.
찬공기를 충분히 데워서 폐까지 보내기 위한 자연적응의 결과다.
서역인상에 비해 길고 낮은 코를 가진 무인석 등을
중국인이라고 (혹은 그런 느낌이라고) 강요하면...
쾌릉은 모두가 왕릉을 수호하는 석물들이지만
남방의 서역인(경제)과 북방의 중국인(무력)의 호위에
사자(불교)가 무덤의 입구를 지킨다(스핑크스처럼?)
신라의 왕을!!!
나머지의 방위는 호석의 십이지신상(도교적)이 지키고...
너무 억진가?~~~
(혹시 중간 중간에 있던 또 다른 석조물들이 파손되거나 손실됐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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