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다...^^
만남은 질곡을 가중시키고,
말은 공허하며
유일한 안식은 잠시 떠나는 것이다... 아주 잠시...
실은 땡땡이치러 잠수하는 나자신의 변명이다...ㅎㅎㅎ
어디로 떠날까?
오후부터 폭우가 시작될거라는 데 오늘도 가지 않으면 시간이 없을듯...
일단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그리고 비두리는 가봐야지...
가장 최근에 가본게 2000년인가 보다.
원주에서 사업이 완전히 실패하고 감당하기 힘든 빚만 잔뜩지고 도대체 앞을 볼 수 없을때였다.
오늘은 또다른 답답함이 법천사지로 나를 떼민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비... 여기에서 비를 논하기는 힘들고 다음 기회에...>
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있고
아침이 기다려지는 일도 있고
결과가 궁금해지는 일도 있다.
또는 정반대의 일들도 있다.
새로운 뭔가를 배우는 일들은 내게 늘 즐거움이다.
이전의 경험들이 현재에 적용되고 새롭게 해석될 때 경험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준비했던 그 무엇인가를 실험해보고 성과를 얻을 때 공허했던 시간들이 알차게 바뀐다.
지금은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미래가 있을 때 우리는 참을 수 있다.
지금은 재미없고 지겨워도 웃을 수 있는 미래가 있을 때 우리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일들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내 자신의 영혼이 채워짐을 뿌듯해하고
내 자신의 경륜이 쌓여갈 때
업무는 내 것이 되고, 일은 삶이 되고, 삶은 미래가 된다.
내가 커감을 느낄 때 나는 나다워진다.
내가 넓어지고 깊어질 때 나는 행복해진다.
멀리 보는 안목이 생기고,
넓게 보는 여유가 생기고,
깊게 숨겨진 잠재력을 끌어낼 때 나의 영혼은 충만해진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근데 요즘의 일이라는 게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다.
영혼이 황폐해짐을 느끼고
어쩔 수없는 현실을 답답해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만약 일이 성사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것이다.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또다른 많은 고통이 있을 것이다.
회사와 직원들, 그리고 이일을 책임지는 나까지...
물론 지금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일의 성과를 내가 갖는 것은 아니지만
설혹 이 일의 실패가 나의 모든 실패는 아니지만
진퇴를 선택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답답하다...
<어느 하나에서도 빠짐이 없는 부조들...>
법천사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탑비로 꼽히는 지광국가현묘탑비이 있다.
귀부와 이수, 그리고 비석까지 그 어느것도 빠지는 것이 없다.
또 경복궁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비로 꼽히는 지광국사현묘탑도 있다.
어떤 분이었을까...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나는
유물에 투입된 공력과 예술적 사상적 수준으로 가늠하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비와 탑으로 상상하고 가늠해보는 지광국사란 삶의 크기...
그러나 오늘은 아름다움이란 잣대는 사라지고 오로지 사람과 관계만이 머리속을 빙빙거린다.
기억에 없는 당산나무가 보인다.
유달리 나무가 많이 눈에 들어온다.
나와 같은 생물이면서도 움직이질 못해 동물이 아니고
나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아 인간이 아니다...
<나무는 걷지 않는다... 오로지 씨앗이 되어 한번 선택한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수백년동안...>
주어진 조건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환경을 버텨온 생물...
10년, 100년, 1000년을 그들은 살아왔다...
나는 자유로운가?
구불구불... 생각보다 깊은, 그러나 잘 포장된 산속을 헤메이며 거돈사지를 찾는다...
한강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비도 내린다...
사람들의 관계가 돈으로 계량될 때
돈으로 사람들의 삶과 미래를 사고팔 때
만남의 모든 관계가 이익과 손해로 판단될 때
그 극한의 지점에 나의 영혼은 황폐해지고
한편의 분노와 또 한편의 배신감에 스스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합리가 사라지고 억지가 통용되는 것이 시장이며
상식이 조롱당하며 이익만이 기준이 되는 것이 시장이며
인격이 거세되고 거래의 득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시장이다.
그 시장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무엇을 따지고 있나...
시작과 끝...
득과 실...
그리고 성과 패...
득과 실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끝을 보는 것이 유일한 선택...
조합되지 않은 몇 가지의 기준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1000년의 세월을 당당하고 기품있게 버텨온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의 삶이었을까?>
사뭇 당당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원공국사 승묘탑비를 본다.
꽉차여 있고, 단호한 귀부를 본다.
너른 들판을 꽉채운 들꽃들과 초록을 본다.
경주 나원리탑보다도 하얀 백색의 삼층석탑을 본다...
왜 미감이 깨질까?
1층 탑신이 길어지면서 삼층탑이 가지는 많은 미사여구를 포기해야 한다.
차분하고, 정연하며, 꼼꼼하게 마무리 된 탑의 구석구석이
하나의 부재로 인해 완벽함을 갖추지 못했다...
우리의 기억과 단상들은 역시 통일성을 지향하는가?
<어쩌면 하나의 선택이 그의 전체를 규정하기도 한다... 길어진 1층 탑신은 전체의 미감을 결정한다>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부도비는 사진으로만 보면서
탑비에 남아있는 원공국사의 삶의 행적을 읽어 본다...
태어나서... 누구 누구에게 배우고... 오월에서 수학하고...
왕으로부터 칭호를 받고... 어디어디에 있다가... 89세에 입적하였다...
원공국사와 나는 어떤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나는 그분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시커먼 구름에 꽉찬 언덕길에서는 비가 쏟아질것이다...
억수로 세찬 빗줄기속에서 망상은 떠나질 않는다...
<점점이 초록을 수놓은 야생화... 하나의 부족함을 전체로 채우고, 들판을 채우고, 마음을 채운다...>
자립심, 협동심, 책임감, 인내심, 근면, 성실, 이타심, 배려, 매너, 양심, 자비, 사랑...
어렸을적 나는 바른생활을 배우고 도덕을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서 종교와 철학과 사상도 배웠다...
서양철학, 동양철학, 한국철학...
책속의 한단어 한단어에 충실했고, 개념하나의 어원과 역사적 배경을 고집했다.
어느 한순간 나는 내가 배웠던 많은 교양에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느꼈고,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그리고 농업사회와 상업사회의 차이를 느꼈다.
그 느낌은 살면서, 경험하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만들어 진것일까?
실패와 성취, 득과 실, 시작과 끝에서 배웠을까?
배웠던 많은 것들에서 느끼는 오해와, 배우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주는 편협함...
구비 구비흐르는 흙탕의 한강물을 보면서 초록의 너른 들판의 이름모를 꽃과 잡초들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 만난 지광국사와 원공국사를 생각하면서 잠시 돌아본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경제적 타산...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시비의 문제도 아니다. 고저의 문제도 아니다. 절제와 선택. 그리고 절충, 타협, 혹은 합의의 문제다... 합리와 상식과 품격의 문제가 결코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게 강제된 가치관을 넓혀 볼 필요가 있다. 규격화된 기준이 나를 어렵게 한다고 원칙과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정하고 거세하고 허물어 뜨리는 것이 아니라면 유연함과 현실성, 그리고 합의된 선택에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지 못할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에서 나는 나의 지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조각나고 흐트러진 유적들을 마음속으로 모아보면서 조금은 여유를 찾아 본다...
점점 속물이 되어가나?
이제서야 현실에 적응하나?
조금씩 나이먹은 태를 내나?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지표...
여전히 만들고 싶은 나의 상...
여전히 변하고 싶지 않는 나의 그림...
무수한 철학책 속에서 건져냈던 완숙하고 아름다운 선택...
무수한 사람들과 만남에서 느꼈던 절제되고 어울리는 삶...
무수한 공상에서 선택했던 자유롭고 충만한 인간...
여전한 나의 가치관이며 신념이다...
<숨겨지고 잊혀진 거돈사... 1000년이 되었다는 느티나무... 그 숫자앞에서 한동안 떠나질 못했다...>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보이지 않는 것과의 대화... 오늘도 여행을 떠나는 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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