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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여행> 0607 법천사지...지광국사 현묘탑...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조건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그 의미도 달라진다...

일을 끝내고 비교적 차분하게 맘을 먹고 떠날 때와

무작정 잠깐의 짬을 내서 떠날 때

내가 얻고자 혹은 비우고자 하는 것도 달라진다...


최근 2년은 차분하게 여유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게다가 여행을 목표로 사전에 어떠한 준비를 해보지도 못했다.

단지 답답함을 잊기 위해

혹은 조금은 여유로운 내일을 맞아보기 위해

또는 이순간을 놓치면 안될것 같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다닌게 전부다...


그러다보니 서울에 있을때는 박물관이나 경복궁 주변...

분당 언저리에서는 딱히 갈만한 곳을 찾지못해 호암미술관 한두번...

그나마 원주일이 있을때 아무도 모르게 일박의 땡땡이를 친다...^^

자연히 가보았더라도 기억에 남는 곳을 다시 찾게 되고

새로운 미지의 자극을 꿈꾸지는 못한다...

부석사, 중원탑, 월정사, 춘궁동, 고달사, 그리고 지나다니는 이곳저곳...

색시 몸이 풀리면 주말이라도 기약해야 하는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고...

 


 

<얼마전 다녀온 춘궁동사지... 그 비중에 비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도 많이 정리된 주변...>

 

 

원주일이 한창인데 풀리지는 않고

진퇴양난의 시점...

무척이나 어렵다...

모두가 판단을 유보하고, 게다가 시비와 선후가 섞여있다...

이럴 때의 최선은 일보 후퇴인데

이보의 전진이 기약이 없다면...

답답한 시점이다...


이럴때 나서지 않으면 언제 시간을 내느냐고 스스로 반문하며

차에 올랐다...

목표는 법천사지, 흥법사지, 거돈사지, 그리고 비두리...


원주에는 치악산 구룡사가 있는데 썩 내키지가 않는다...

치악산의 깊이와 험함을 담아보기에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다고 구룡사만을 보기에는 깊이와 감동이 없다...

원주의 역사가 짧지는 않으나 문화의 향기는 오히려 문막에 깊이가 있다...

 

<흥법사지의 염거화상탑... 현재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짜임새 있는 모습에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


충주까지 배가 오가던 시절...

남한강변에 위치한 문막은 중간 기착지로서 물류가 제법 오갔다.

포, 진, 구, 천으로 끝나는 이름을 갖지 않았지만

최근 60년대까지 배가 드나들던 곳이 문막이다.

그리고 그나마의 역사와 수준을 갖춘 유적을 갖춘 곳이 문막주변의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 등이다.

 

<흥법사 진공대사 부도... 거돈사의 원공국사 부도와 거의 비슷하지만 옥개석의 귀솟음이 다른 맛을...>


잠깐의 외출이지만 행선을 잡기가 어렵다.

흥법사지를 보고 비두리 - 법천사지 - 거돈사지 - 미륵산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흥법사지는 동떨어져 있고 행선지가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해서 법천사지와 거돈사지는 빼면 안될 것 같고

돌아오는 길에 미륵산을 둘러보기로 한다.

 


 

<법천사지... 현묘탑비 옆의 빈 공간이 지광국사현묘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원주에서 출발해 문막에서 법천사지를 들어가는 길도 결코 짧지 않다.

생각보다 깊은 곳...

골속 골속 들어가야 법천사지를 만날 수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결코 트이지 않는 곳에 법천사지는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 발굴이 진행 중이어서 어지럽기도 하고...

 

<발굴한다고 덮어 놓은 이 갑바를 언제난 들춰낼지... 이 마을 전체가 법천사였다고...>


넓은 물을 갖지도 않았고, 높은 산을 갖지도 않았으면서

이러한 명품을 갖기란 쉬운 게 아닌데...

지광국사란 분이 도대체 어떤 경지의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진다...

 

<많은 부재들이 흐트러져 있다... 하나 하나의 부재들이 정성스럽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경복궁내에 위치한 지광국사현묘탑은 서울에 있을 때 늘상 놀러가던 곳이다.

차한잔 마실 가벼운 약속은 이탑 앞에서 할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탑이기도 하다...

내게는 다보탑과 함께 우리나라의 가장 화려함으로 기억되는 탑이다.

다보탑이 결구와 부재의 다양함을 화려함으로 엮었다면

현묘탑은 여백이 없는 부조와 조각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지광국사현묘탑... 이것마져 박물관으로 옮겼으면 경복궁에 남아 있는게 없었을 듯...>


엄밀히 부도에 속하는 현묘탑은 동시기 파격적인 방형의 구조와 그 크기로 인해

그리고 유일무이한 모습으로 충분한 차별성을 갖추고 있으며,

용발톱으로 명명된 기단부의 처리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장치를 갖고 있다.

당당하면서도 화려하고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흡입력을 갖춘 탑을 볼 때마다

그 품위와 품격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온다... 그런 사치의 기회도 요즘은 없다...ㅠ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탑과 나만의 대화가 가능한 곳...

바라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 고고함이 숨겨져 있다.

너무 현란하고 안정되고 당당해서 그 무엇도 거칠 것 없는 완고함이 뿜어진다.

 

 


탑이나 건물, 유적을 보면서 나는 내가 느끼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맛이 나는 나와 유적의 교감이며 대화라 생각한다.

감은사탑은 바라보는 나의 가슴을 두드리며 웅혼한 기상을 느끼게 한다.

석가탑의 자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득의의 미소를 준다. 환한...

그러나 현묘탑은 주는 게 없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을 강요한다...

비교되기 싫은 그 무언가의 장치들은

바라보는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만을 허락한다.

 

 

 

 

 


이와 충분히 쌍벽을 이룬 것이 지광국사현묘탑비다.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는 조각들과 부조들...

부릅뜬 눈과 앙당문 입...

굳이 거슬리는 것을 찾으라면 귀부의 네 발이 당당함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너무 곧고 커버린 머리로 인해 그 무게를 받쳐야 하는 가는 목...

비의 특성상 얇을 수밖에 없는 비신의 두께...

 

 

<점판암에 새겨진 부조 하나 하나를 뜯어 봐야 제맛을 알 수 있다... 수미산의 화려한 치장을...>

 

 


여기서도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귀부와 비신과 이수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 밖에...

5왕의 국사로서 대각국사 의천의 스승으로서

지혜로운 빛... 빛으로 이름된 지광국사 해린...

 

 

 

라말려초(^^)의 혼란을 매듭짓고 선종과 교종을 통합시켜 천태종을 개창한 의천...

지배층과 피지배층, 귀족과 평민,

그리고 화엄종과 법상종, 천태종과 조계종...

많은 얽힘과 갈등과 차별이 있겠지만 지광국사를 통해 의천이 이룩한 성과는

분명 고려의 정신사와 문화사에 충분한 분수령을 만들었다...

 

 

 

 

 

 

법천사지에 앉아서 어지럽게 흐터져 있는 부재들을 보면서

잠시 대각암을 생각해 본다...

 

<선암사의 대각암... 너무 황폐해지고 허허롭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