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의 일기를 이어간다...
1월에도 어딘가 떠나려는 마음에 살짝 훑어봤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간추리려 둘러 본다...
원주에 들렀다가 잠시 짬을 낸다.
내일의 바쁜일정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만 바쁘다...
애초 의도했던데서 벗어났지만
한바퀴 돌아보다보니 그래도 제자리를 잡은듯 싶다.
지금 부족한게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오늘도 잠자리가 바뀐다.
오늘은 갈현동에서...
이럴 때는 어디가 좋을까?
지금의 내 기분과 가장 어울리는 곳을 찾아 마음속 여행을 떠나 본다...
제일 먼저 어디를 가볼까?
역시 불국사지?...
불국사에 가면 그냥 웃고만 다닌다...
게다가 석굴암까지 생각하다보면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아마 그냥 웃다가 끝날 것 같다...
너무 좋아서...ㅎㅎㅎ
지금 기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부석사는?
호탕한 전망에 시공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
태백산 자락, 소백산에 의지한 봉황산 아래...
넘치지도 부족하지 않은 공간경영...
점유와 차용, 그리고 인공과 자연이 낭비되는 공간이 없이 조화를 이루는 곳...
거들먹거림이 없는 깊고 깊은 안목을 생각하게 하는 곳...
근데? 가슴을 북돋는 생기보다는 자꾸 멀어지는 원경이 지금의 나와 궁합이 맞나?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양루... 원경이 좋은데...^^>
수덕사에 가면?
상큼한 눈 맛의 대웅전...
덕숭산과 평야가 어우러진 내포땅... 바다가 보인다면 금상첨화...
그러나 너무 엄정하고 근엄해서 내가 없다...
게다가 높은 축대가 주는 의도된 클라이막스는 왠지 어설프다...
맛배지붕이 주는 근엄함과 엄정함은 지금의 내 분위기에는 조금 무겁다...
월출산 무위사와 천등산 봉정사...
영호남의 차이일지는 몰라도 공간구성이 전혀 다른 맛...
건물군의 어우러짐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각공간의 독립성이 강조된 영남과
각각의 건물들이 공간을 점유하며 건물의 독립성이 강조된 호남...
봉정사의 좁은 공간이 아늑한 느낌을 준다면
무위사는 허허로운 여백을 준다...
<무위사 극락전... 많이 변했다는데...>
화엄사는 어떨까?
슬라이드 필름만 몽땅 들고서 형광등만 겨냥한다...
지리산이란 큰 이름이지만 정작 화엄사에는 지리산이 없다...
그래서 각황전이란 큰 건물이 어울리는 곳...
뭔가 나아가려는 힘이 감지되는 역동성이 감지되는 곳...
올릴 사진이 없다...ㅎㅎㅎ
기왕 간 김에 송광사까지 내려갈까?
조계산의 넉넉한 자락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송광사...
두텁다... 하나하나의 부족하지 않은 건물들이 무리를 지어있다...
앞마당이 깨져서일까?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
이점은 오대산 월정사도 마찬가지...
공간구성의 치밀함이 떨어진다...
<송광사 국사전...>
아예 조계산을 넘으면 선암사로 간다.
아기자기한 건물들 사이로 다양한 이야기가 생성되는 곳...
차분하고 여유롭다...
그러나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팽창하는 힘이 없다...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기분...
<선암사 관음전... 공간구성을 엿볼 수 있다...>
태화산 마곡사도 비슷한가?
추갑사 춘마곡... 역시 봄에 좋은 곳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계곡물을 적극적으로 껴안은 곳...
오층탑과 대웅보전, 대광보전의 비틀린 축은 섬세한 공간경영의 흔적이 보이는 곳이다.
조금 올라가서 탁족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인지도...
<갑사에서... 역시 단풍?>
오층탑과 이층전각으로 말한다면 무량사도 빼놓기는 뭐하고...
만수산 자락에 계곡물을 살짝 비켜 놓여있었지?
힘 있어야할 구조물에 비해 너무 적막한 느낌...
마곡사에서는 옅은 생기가 느껴졌지만
무량사는 너무 가라앉았다... 기가 없었나?
<무량사 극락전... 환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극락전과 탑이 주는 무게가 충분한데도...>
분위기를 바꿔서 3보사찰중 하나인 통도사로 가본다...
묵은 고목들에 청량한 개울물 소리...
정연한 질서와 밀도 있는 구성에 건물들이 조화롭다...
영축산의 힘찬 기세가 왠지 쉬어가는 느낌...
짐을 풀어놓아야지 뭔가 싸들고 나올 기분은 아니다...
충분한 흡입력이 떨어지나? 당기는 힘이 부족하다...
계속 올라가면 해인사...
충분히 높은 축대위의 대적광전이 당당하지만
앞이 너무 막혀 버렸다... 답답하다...
산지가람의 맛을 잘 살렸는데도 시원함을 주지 못한다...
주변의 번잡함은 계룡산 갑사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가야산의 소나무들은 정말 옹골찬 기세가 있는데...
바로 밑에 청량사...
참 상큼한 눈 맛에 시원한 조망을 보장해 준다...
매화산의 단단한 골기와 산지가람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곳...
틔인 맛은 있으나 나를 부추기기엔 부족한 2%가 남아있다...
규모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원한 조망으로 따지면 수종사도 괜찮은데...
합수머리... 두물머리... 양수리를 바라보는 8부 능선에 위치한...
조금은 밋밋하다...
역동성과 감동이 없다... 너무 서정적이다...
떨어지는 해를 벗 삼아 한잔 술이 어울리는 곳...
<수종사의 석양 빛... 따사롭다...>
떨어지는 해를 생각하면 미황사가 단연 최고다...
붉음이 지나쳐 황금빛으로 만물을 물들이는 곳...
넘실거리는 바다와 아름다운 달마산을 배경으로 금빛 수를 놓는 곳...
문제는 아직 내가 젊다는 점...
석축과 바다, 그리고 악산을 생각하면 변산의 작은 절, 개암사가 있다...
변산반도에 있지만 바다가 없고, 달마산 대신 능가산이 호위하고 있는 곳...
매화산을 배경으로 한 청량사처럼 시원하지도 호탕하지도 않다...
적당한 높이에 너무나 편안해서 졸리운 곳...
참 아담하고 편안한 곳... 이곳은 아니고...
<개암사 대웅전... 불사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데 걱정이다...>
기왕 넘어 온 김에 금산사에도 들러볼까?
미륵전의 위세에 받쳐주는 건물들이 아쉽다...
송광사와 비슷해지네?
마음을 담기에는 너무 넓은가?
모악산의 정기가 미륵전에만 모인 느낌...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도솔산의 선운사는 규모에 비해 파격이 없다...
변화가 없다는 게 맞을지도...
<선운사... 등산을 좋아하는 아가씨에게서 받은 선물...^^>
아예 평지로 내려가면?
내소사, 직지사, 실상사가 있지?
규모 있는 평지가람의 특징들은 차분하다는 점...
하나하나 끄집어 낼 것들은 많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렇다고 아늑한 느낌과는 또 다르고...
용주사도 마찬가지지?
가지산의 보림사는 아직 정돈이 안 된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불영사는 한눈에 들어오는 안정감이 있다.
천축산의 붉은 소나무들이 잔잔한 연못에 잠겨 있었지...
<불영사 전경...>
아예 산속으로 들어가 볼까?
단연 법주사가 떠오른다.
속리산 준령에 묻혀있는 법주사는 두륜산에 갇혀있는 대둔사와 닮았다...
대둔사가 3개의 축으로 공간을 나누었다면
법주사는 당당하고 넓게 자리한다는 점이 다르다.
충분히 높은 산들이 있어 큰 건물들과
넓게 자리한 터가 부담스럽지 않은 가람배치다...
그러나 느낌은 은둔이다...
고인 곳이라는 느낌... 물론 통도사와는 다른 느낌의 안식처...
<대둔사 대웅보전... 크게 3개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다...>
폐사지들은 지금의 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
영암사지, 고달사지, 선림원터...
보원사지나 성주사지가 석조유물들에 의존하는 것에 비해
영암사지 등은 이야기꺼리가 남아 있다...
공간배치가 살아있다는 점...
<선림원터 전경... 적막함이...>
특히나 영암사지는 황매산과 석축의 어우러짐이 좋지...
이렇게 생각하면 악산 혹은 바위산과 석축의 조화는
청량사, 미황사, 개암사에서도 확인되는데...
평지가람과 산지가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산지와 평지... 남는 건 바닷가네...^^
보문사, 낙산사, 보리암이 떠오르지?
보문사에서 바닷바람을 느끼기에는 거리가 있고
낙산사는 안길 바다가 넓으면서도 작다...
높이의 문제겠지? 화재에 많이 상했을텐데...
아기자기한 섬들과 바다를 적당한 높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그래도 보리암인듯 싶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낙산사에서 보는 바다가 더 시원할지도 모르고...
<남해 금산 보리암 전경... 산과 바다가 함께...>
한바퀴를 다 돌았나?
가람이 인위적인 공간구획에서 완성되지 않고
주변의 자연적 조건과 환경에 어울리는 것이
멋있는 배치를 허락한다...
우리네 건축의 보편적인 특징 중의 하나...
그 공간들을 그려보며 또한 그 건축을 경영한 이들을 생각해 본다.
점지에서부터, 얼굴과 조망과, 거주하는 이들까지를 고려한 공간경영...
당대의 수준과 문화와 이상을 담고 있는 시간에 배려...
나는 지금의 내 마음을 담을 공간을 고르고 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운동, 교양, 여행, 취미...
내가 찾는 스승과 자극은 나의 준비와 목표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막연한 준비와 불확실한 목표...
그냥 넓고, 깊고, 길게만 준비되는 안목이나,
맑고, 밝고, 깨끗하게 가다듬는 마음이나,
역사와 철학과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열린 마음, 아름다운 선택, 어울리는 삶이라 잡은 좌우명 겸 가훈이나
정해진 목표를 위한 계획된 준비로 가다듬어져야 한다.
나는 꿈을 꾸는가...
그 꿈을 향해 모든 것을 안배하고 계획하고 집중하는가...
그 꿈을 가다듬고 다스리고 펼치고 있는가...
지금 내게 부족한 나머지는 꿈인지도 모른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벗어나야 될 것 같다...
이제서???...^^
미네르바 부엉이 처럼...ㅎㅎㅎ
'건축 - 風,造,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절집의 다양한 표정 3... 빛과 색... (0) | 2007.10.03 |
---|---|
여행> 절집의 다양한 표정 2... 그림, 불상, 장승... (0) | 2007.10.02 |
여행> 절집의 다양한 표정 1... 성혈사 문살... (0) | 2007.10.02 |
답사> 부석사... 그리운 그곳으로의 건축여행... (0) | 2006.10.28 |
건축> 금산사 미륵전... 건축이 주는 맛...(사진모음) (0) | 2006.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