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의 다양한 표정 1... 문살
<성혈사>에 다녀왔답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제게 여행이란 늘 <자극>을 찾는 과정이지요...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대화의 수단이기도 하고,
혹은 확인의 과정이기도 하고...
<성혈사를 찾았던 것은 문살의 아기자기한 화려함도 보고 싶었지만, 저 귀여운 석등이 탐나서이기도 했다...^^ 정말 어디서도 본적이 없는 거북받침에 용간주석에 올라앉은 귀여운 석등이다...>
성혈사는 문살의 아름다움으로 제법 알려진 절집이지만
늘 큰 것과 전체만을 찾았던 제게는 가깝지 않은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공간적 거리보다는 <조금 더>를 고집하는 저의 욕심이
쉬이 만족시킬만한 꺼리가 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성혈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성혈사 문살의 하이라이트... 불행히 날씨와 빛이 도와주지 않았다... 그 비속에 찾아간 내가 잘못이지만...^^ 더블 클릭해 보실레요? 화면을 꽉채워서 크게 보니 더 좋은 느낌이 드는데...^^>
비는 쏟아지고 폭풍은 밀려온다고 하는데도
고집스럽게 삼각대하나 둘러매고 영주 땅으로 들어갑니다...
치악산에서 단양까지 이어지는 소백준령을 넘어서면
천지를 아우르던 산세가 사라지면서 안온하고 평화로운 기운을 느낍니다...
<산속의 변화는 이리도 천변만화한다... 정말 순식간에 운무에 잠겼다가 또 흩어지고...>
대구, 경주와 함께 경상도를 크게 양분했던 안동, 영주의 느낌이지요...
부석사도 있고, 소수서원도 있고, 고구려의 흔적이 묻은 벽화고분도 있는 땅...
동고서저, 북고남저라는 지형적 특징이 거꾸로 흐르는 땅...
그 초입에 영주가 있고, 풍기가 있고, 성혈사가 있답니다.
<성혈사 들어가는 초입의 평화로운(?) 마을 전경...>
<햇볕이 좋은 영주땅은 사과로도 유명하지요? 탐스럽다 싶은 사과...>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했나요? 수확을 위해서는 아직 충분한 볕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최근 들어선 두세채 건물들 한켠에 <나한전> 작은 건물이 있고,
정면 3칸을 빼곡히 채운 문살들이 정겹게 눈웃음을 보내네요...
화려함과 정성스러움이라면 빠지지 않는 구성이지만
제게는 여전히 뭔가 아쉬움 구석이 적지 않았답니다.
여전히 전체의 흐름이 요구하는 흡입력과 긴장감이
현재의 제가 가지고 있는 잣대인지 모르지요...
산세와의 어울어짐, 건물의 배치, 그리고 색과 빛이 만든 조화를
저는 먼저 찾고 저울질하고 뜯어보는 습관...^^
한편으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도 생각납니다 ;
보이지 않는 것, 형상화 되지 않은 역사의 향기를 재구성한다는...
나한전의 문살 조각들을 보면서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움을 남기려했던
사람들을 찾는 이유는 제게 답사여행이 주는 묘미중 하나이지요...
물론 저는 절집의 문살조각으로 유명한 <내소사>나 정수사만을 최고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문살조각도 하나의 분위기이고, 장식일 수밖에 없다면
그 작은 하나하나의 정성과 기획과 작품의 깊이는
하나의 공간, 한때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것은 문살을 조각한 목수만이 아닌 절집을 만들고 가꾼,
그리고 그곳을 찾는 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품위와 관련되겠지요.
<내소사 문살... 소슬살문의 변형이지요? 참으로 정성스러운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혈사와 내소사, <정수사>의 문살은
자유로운 의지와 간단치 않은 내공, 그리고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지요...
우리가 흔히 보는 <우물살>이나 <빗살문>을 비껴가는 것에서부터
장인과 주지와 시주한 사람들의 고민은 시작되었겠지요...
<화병 네개에 각각 한폭의 그림으로 마무리한 정수사 대웅보전의 문살... 문살이라기 보다 그림일지도...>
또 그러한 변화가 있어 우리는 가장 단순한 것의 힘과
화려하고 유려한 장식의 다양함을 함께 맛보는 것 일거고...
만약 모든 절집의 문살이 성혈사, 불갑사, 운문사처럼 <소슬살> 무늬의 변형이었다면
우리는 느껴야할 것과 즐겨야할 것을 구분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불갑사 대웅전 문살은 색깔까지 더해져 화려함을 뽐내지요... 또 그렇게 절집의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
결국 절집을 대표하는 7가지 정도의 다양한 건물을 장식하는 여러가지 문양들은
기본적인 흐름이 무엇이고, 작은 변화를 수용한 의도는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성혈사가 참신함을 넘어선 뛰어난 작가적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덕사 대웅전 문살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는 건 <혼자>라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빗살문의 수덕사 대웅전... 맛배지붕에 퇴색한 단청으로 자연의 색깔을 그대로 지닌... 문살이 만들어주는 분위기는 여느 절집의 문살보다 힘이 있고 짜임새 있고 꽉차게 보이지 않는지... 단순한 것에 힘이 있는지도...^^>
어쩌면 과거의 성혈사는 <우물살>이나 <빗살문>을 가진 대웅전 등이 존재하고
<날살문>을 갖춘 조사당이나 <띠살문>을 갖춘 요사채도 있었겠지요...
그런 다양한 구성 속에 <소슬살>의 변형인 꽃살무늬와 조각들이 어울렸을지도 모릅니다...
성혈사가 보다 의미 있고 비중 있는 절집으로 기억되기에 어쩔 수 없는 파손의 흔적은
부분과 작은 구성이 갖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많지요...
생각해보면 절집답사가 역사와 사람, 그리고 건축과 자연의 진지함에서 벗어나면
소소한 즐거움들을 충분히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어쩔 때는 색으로, 혹은 느낌으로, 그리고 작은 소품들의 조합으로...
때때로 나무와 바람과 햇살과 작은 야생화와 새들의 노래와 달빛의 추억으로도...^^
<불영사는 이 사진으로 내게 따사롭고 평화로운 곳으로 기억된답니다...>
대흥사(대둔사)나 범어사 소맷돌을 대신한 도깨비 형상도 그런 맛이고
보광사나 관룡사 벽에 그려진 민화풍 그림이나, 산수벽화도 참신하고
삼천사나 보광사 등에 안치된 작은 얼굴들은 작은 변화이며 파격이기도 하지요...
벽송사의 장승, 실상사의 석장승, 낙산사의 담장, 불영사의 연못들까지도...
<대흥사의 소맷돌...>
물론 기본과 원칙이 있기에 변화와 다양함도 힘을 갖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보편성이 배제된 특수성은 차이만을 강조하게 되고
개별성이 무시된 보편성은 획일성과 전체주의로 빠지게 된다고 본답니다...
결국은 전체와 부분이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통일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장미꽃 한장의 사진이 또 그렇게 한 절집의 분위기로 남기도 하지요... 은해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것 중 하나는
여전히 제가 전체와 통일을 우선시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랍니다.
<거대담론과 유일론적 시각>이 한창일 때 대학을 다니고 세상문물을 접했던
어쩌면 익숙해진 습관이고 관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군요...
<성혈사 나한전... ㅎㅎ 참 즐거운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만든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자연 답사여행을 떠나면서도 웅장한 탑과 장엄한 건축물,
그리고 호방한 지세와 거침없는 격류들만을 우선으로 꼽았던 저의 편린은
어쩌면 채우고자 하는 미래와 비우고자 하는 현재의 갈등이 만들어낸
작은 위안이었고, 자극이었고, 주문이었겠지요...
<성혈사 나한전... 깨어지고 벗겨지고... 그래서 더욱 자연스러울지도...>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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