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며칠이다.
이사를 했다.
안정감이 없다.
그리고 잠을 자고 싶다...
적당한 날씨다...
시원한 바람에 높은 하늘...
그리고 투명한 구름까지...
무엇을 하기에 좋은지는 몰라도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날씨...
오늘은 비교적 여유로운 날이다.
느긋한 오후...
물론 마음은 바쁘다.
갈현동에서 노량진으로 이사를 한 이후
사실 정신이 없다.
게다가 원주에서 하루 이틀,
분당에서 하루 이틀,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에서 하루 이틀...
도대체 안정감이 없다.
분당의 숙소를 없애기도 그렇고
집으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고민중...
그래도 이사에 대한 생각은 잠깐...
집에 대한, 살림살이에 대한,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생각들의 정리가 필요하다.
97년 갈현동에 집을 사고
9년만에 이사니 얼마나 짐이 많았겠는가...
게다가 홀아비처럼 혼자서 이사를 했으니...
몸은 고달프고 짐정리는 안 되고
마음은 바쁘고, 시간은 없고...
먼저 짐정리를 잘해야 하고
갈현동 집은 빨리 팔아야 하고
노량진과 분당을 적절히 배분하고
생활의 리듬을 찾아야하고...
사진들을 정리한다.
몇 년 전까지는 거의 앨범에 정리를 했는데
지금은 컴퓨터에 스캔하고,
그도 게을러 디카로 찍기도 한다.
앨범의 1/10은 스캔을 해서인지 들추기 어렵고
슬라이드 필름을 며칠동안 골랐다...
96년부터 3년 정도를 찍었던 기록...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떠돌던 시기의 기록이다.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기도 하고
길거리, 사람들, 꽃, 문, 탑, 절, 길, 산, 폭포, 바다, 하늘...
무작정 찍던 시절...
비취빛 하늘을 필름에 담겠다고 남원 국도에 차를 세우고
빨간 석양을 찍으려 철원으로 나가고
새들의 군무를 담겠다고 서해안으로 가고
일산에서 꽃을, 그리고 박물관들...
동해의 파도와 남해의 섬...
산동네의 사람들...
서울의 야경, 한강의 낙조,
못 가본 절집기행...
기억에 흐릿한 얼굴도 있고
사진을 지도해준 오종은 선생도 있다...
나의 표정을 빼곤 모든게 담겨있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버려졌는지...
무엇을 키우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무엇이 약이 되고, 무엇이 독이 되었는지...
1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많이 웃었다...
문득 너무 와버렸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해놓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자꾸 부족한 것들만 떠올라 바빠진다...
어쩌면 지금의 마음이 바쁜건 지난 세월을 생각해서일까?
일과 사람과 나의 꿈...
세월의 흔적을 쫓기엔 너무 젊은 나이고
세월의 흔적을 무시하기에는 적지 않은 경험이다.
웃음과 씁쓸함과 무거움과 잊었던 자극을 바라본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갈무리하는가는 나의 몫...
약으로 만들 수도 있고, 독으로 만들 수도 있다...
붙들어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구별할 나이도 되었다.
그때를 벗어나 지금으로 해석할 나이도 되었고...
남은 시간과 미래를 향할 토양으로 다지는 것도 내 일이다...
때가 때인지 자꾸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는 나이다.
함축되는 것만큼 멀어지는 과거...
다가오는 시간에 채이지 않을 무게와 방향이 중요하다...
그래도 많이 가벼워지는 느낌...
슬라이드 필름통의 먼지를 털어내며
형광등에 눈을 비비는 마음이 자꾸 빨라진다...
빨라지는 만큼 없어지지도 않는 과거가 그렇게 쉬익 지나간다...
또 다른 언젠가...
그때도 나는 5년전, 10년전을 이야기하겠지...
그때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아닌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
홀가분한만큼 허허로워지는 마음...
비어있는 가슴을 채워야지...
시간과 공간의 한가운데서 우왕좌왕하는 발걸음을 추스려야지...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
시원한 바람, 상큼한 바람...
그리고 모두에게 즐거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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