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대웅전에서 고건축을 생각하다.
- 맛배지붕 건축을 중심으로... 071210
1. 수덕사 대웅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이 순간이 진실인지,
혹은 지금 내가 본 것이 전부인지,
그리고 지금의 내 느낌은 변하지 않을 것인지...
침향님 블로그에 올라온 <수덕사 대웅전>을 보면서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뒤적여 본다.
그때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나는 조금씩 채우거나 혹은 비워왔을까?
<수덕사 대웅전...>
처음 수덕사 대웅전을 본 것이 20대 후반이었나 보다.
건축과 역사와 예술을 생각하며 접근했던...
건물 귀퉁이를 돌아 좁은 공간에 근엄하면서도 장엄하게 나래를 폈던 대웅전...
나는 꿈을 보았을까?
균질한 비례에도 소소한 장난기가 숨어있는 장인의 여유로움도 느끼고
묵직하면서도 거슬리지 않고, 단호하면서도 한없이 넓은 포용력에 감탄하고
내 언젠가 무엇을 그릴 수 있다면 당신을 흉내 내 보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수덕사 대웅전 측면...>
정면 세 칸에 측면 네 칸...
숫자만으로 생각하면 약간 언발란스한 게 수덕사 대웅전의 구조다.
그러나 넓은 세 칸과 좁은 네 칸...
조삼모사처럼 좁고 넓음을 숨기면 자칫 역비례가 상상 될지도 모르나
수덕사 대웅전은 여느 건물들처럼 전면이 넓고 측면이 좁다.
단지, 직사각형 보다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5:4 정도의 비례라는 점이 차이...
수덕사 대웅전의 맛은 이 비례에서 다 찾아 볼 수도 있다?
5:4의 비례는 긴장감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아주 밋밋한 구조다.
그러나 지나치게 안정적이어서 극적인 효과가 없을 것 같지만
맛배지붕의 엄정함, 기둥과 처마의 비례, 그리고 포작의 간결함으로
이를 상쇄시키는 강한 매력을 수덕사 대웅전은 갖추고 있다.
단정함과 엄숙함이 무기인 맛배지붕의 맛은
건축물 길이와 지붕 처마 길이의 비례(정면과 측면 모두),
그리고 용마루의 공굴림, 그리고 주심포 공포의 높이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은 수덕사 대웅전을 핑계 삼아 맛배지붕 건축물들을 모아보려 한다.
2. 맛배지붕과 포작 - 일주문을 바라보며...
대부분 맛배지붕과 조화를 이룬 주심포는 최소한의 포작으로 지붕 속에 숨어있다.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고 필요와 기능에만 충실한 의도다.
물론 포작을 높이 올리지 못한 기술적 한계일 수도 있으나
백제계 건축의 영향으로 깊은 처마와 낮은 지붕의 주문을 먼저 생각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간결함과 단순함을 추구하면서도
곡선으로 뾰족하게 갈무리한 첨자를 보면 미감까지 거세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석사 일주문 / 담이 없어도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간다... 문짝이 없어도 우리는 굳이 문이라 부른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마음의 경계를 넘어야하고, 닫혀 있는 마음도 열어야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부와 외부의 공간은 그렇게 이름으로 구획된다...>
맛배지붕의 포작과 주심포 양식을 거스르는 건축물들이 있으니 이가 바로 일주문이다.
속세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엄숙함을 요구하는 절집의 경계에 일주문이 서있다.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소박하게, 때로는 단촐하게...
권위와 화려함이 등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주문들은
맛배지붕이든, 팔작지붕이든 다포작으로 장엄되었다.
<개암사 일주문 / 지금은 화려한 단청으로 꽉차고 커다란 현판으로 가려졌다... 주춧돌과 기둥과 포작과 지붕이 그렇게 따로따로, 혹은 하나가 되어 모여있는 모습...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직지사... 개암사 일주문에 단청이 된 모습은 직지사와 비슷해졌다...>
맛배지붕과 다포작이 가장 어지럽게 조화된 곳 중 하나가 개암사 일주문이다.
기둥 같은 주춧돌에, 다포작에, 맛배지붕...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구조가 나름 역할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비슷한 소재와 의도로 조성되었지만 훌륭한 건축미를 갖춘 곳들도 있다.
범어사 일주문이나 금산사 금강문은 그런 건축을 대표하지 않을까?
<범어사 일주문 / 커다란 중량감을 이겨내야 하는 일주문의 구조가 이렇게 예쁘고 조화롭게 변형될 수도 있다...>
다포작의 화려함이 강조되면서도, 들뜨지 않고
뻣뻣하지 않는 엄숙함과 적절한 크기의 단정함을 주는 맛들이다.
대부분의 문들은 사람이 지나치는 곳이지 머물러 안정을 취하는 곳이 아니다.
머무르지 않는 잠시의 시간에 옷가짐을 추스르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기능...
<금산사 금강문 / 일주문, 불이문, 해탈문, 천왕문...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여전히 담장이 없는 공간을, 항상 열려 있는 문을 지나 들어간다... 그 이름만큼의 상징이 주는 안도와 내 마음을 수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건축일지도 모른다...>
<정림사지 전각의 맛배지붕... 첨자와 각종 결구, 그리고 이중의 내림처마는 일본 법륭사의 금당이나 오중탑의 구조를 차용한 듯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담백하거나 강건한 힘을 느끼지 못한 건 높은 지붕과 조화롭지 못한 치미 때문인듯 하다... 오히려 최근에 지어진 정림사지 박물관 건축은 일본 법륭사의 각종 결구와 하앙식 구조까지 고증하여 차용한 백제계 건축의 맛을 느낄만 하다는 생각...>
건물에 맛이 남아있으면 공간은 살아나고 기억은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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