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전면과 측면의 비례 - 종묘, 대장경판전, 거조암 영산전
맛배지붕 건축물들 중 먼저 규모와 전,측면의 비례를 먼저 생각해 볼까?
전면과 측면의 비례가 가장 극적인, 전면만 강조된 건축물은
종묘와 해인사 대장경판전, 거조암 영산전이 있다.
인위적인 공간이며 기능이 강조된 건축물들이다.
<종묘... 국보 227호>
좌청룡 낙가산과 남주작 남산 사이 넓게 터를 잡은 종묘에서는 외부와의 차단이 중시된다.
그리고 죽은 자의 공간, 신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종묘는
속세의 화려함과 가벼움을 용납할 수 없는 권위의 공간이다.
모든 것을 낮추도록 강제하며, 주변 시선을 차단해 땅과 하늘만 남겨 놓았다.
최소의 내부공간과 길고 긴 회랑, 그리고 충분히 높은 담장만 구획하였다.
<종묘...>
건축이 있으되 공간으로 기억되고
공간에 머물지만 하늘과 땅만 남겨 놓았다.
인위도 사라지고 목적도 사라진다.
그럼으로 마음을 낮추고 자신으로 돌아가는 공간으로 종묘는 존재한다.
죽은 자와 대화하기 위해 존재를 버리고 땅으로 하늘로 사라지는 공간이다...
<종묘...>
이에 반해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이 해인사 대장경판전(장경각이 더 익숙하지?)이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려는 목적에 걸맞는 넓이와 오랫동안 변질되지 않아야 하는 기능을 위해
주변 지세에 순응하지만, 장경각이 중심을 둔 것은 바람의 흐름이었다.
넓이와 부피만 생각했다면 높고 큰 단일 건축물을 지었겠지만
조선인들은 그 건물을 쪼개고 나누어 바람이 쉬어갈 공간을 만들었다.
<해인사 대장경판전 - 서간고... 국보 52호>
건물만 쪼갠 것이 아니라 벽도 쪼개고, 창문도 나누고...
햇빛도 쪼개고, 바람도 나누고...
법보전과 수다라장 사이, 그리고 그 좌우를 막은 동,서간고에 서있는 공간은
사람이 서 있을 자리가 아니라 바람이 머무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법보전과 수다라장은 주변과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사모지붕으로 마무리 되었다.
<해인사 대장경판전 - 법보장...>
단일 건물로 맛배지붕 건축물중 규모에서 뒤지지 않는 곳이 거조암 영산전이다.
팔공산 고갯길 골속 골속을 지나 멀리서 영산전을 보며 나는 한탄했었다.
누가 이 조용한 산속에 저렇게 무식하게 큰 건물을 지었는가 하고...^^
영산전과 오백나한을 보며 고려인의 스케일과 조선인의 천연덕스러움에 또다시 놀랐지만
아무튼 그 시원시원하고 담백한 구조에 절로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곳이 영산전이다.
<거조암 영산전... 국보 14호>
거조암은 원효의 맥을 잇는 보조국사 지눌이 있어 행복하고
탱화가 있어 호사스러우며, 오백나한이 있어 자유스럽지만
무엇보다 백제계 고려건축물인 영산전이 있어 즐거운 곳이다.
단순 무식은 호방 당당함으로 바뀌고, 소박하고 간결함은 건강함과 자신만만함으로 바뀐다.
거조암 영산전에 서면 그럴 수없이 느긋하고 시원한 감상을 잊지 못한다.
<거조암 영산전 02... 지금은 진입루각과 좌우에 건축물들이 신축되었다... 맛배지붕으로...^^>
크기와 규모에서 우리들의 시선과 마음을 압도하는 건축물들의 특징 중 하나는
단순함과 반복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반복이 지루하지 않고, 단순함이 조잡하지 않는 것은
자연과 철학과 기능의 총체적인 조화일 때만 가능한 일...
종묘와 대장경판전, 그리고 영산전은 그 모든 것을 갖춘 아름다운 건축이며 공간이다.
3-2. 아담한 맛배지붕 건축물 - 부석사 조사당, 관룡사 약사전
전화번호는 7이 기준이고, 탑은 3과 5가 보편적이듯이
우리들 시선과 마음에 적당한 규모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적 수치가 있다.
이보다 작으면 장난감처럼 생각하고, 이보다 크면 기념비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묘, 장경각, 영산전은 기념비적 볼륨과 규모를 갖춘 건축물이다.
그러면 이와 또 다른 의미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부석사 조사당... 국보 19호... 철망만 보인다...ㅠㅠ>
전면 한칸, 측면 한칸에 인간적 스케일이라 이름하기에도 작은 관룡사 약사전이 있다.
물론 측면 한칸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아무래도 부석사 조사당이다.
전면 세칸에 적절한 전측면의 비례를 갖춘 부석사 조사당이 그 위치만큼 조용하다면
관룡사 약사전은 최대의 과장과 가분수로 자기존재를 과시하는 건축물이다.
<관룡사 약사전...보물 146호(조선전기)>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된 관룡사 약사전은 기능과 목적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작은 불상, 그러나 지나치게 크게 조성된 지붕의 크기로 야기된 문제다.
물론 산수벽화가 그려져 있고, 작지만 당당한 아기자기한 맛을 부정하지 않으나
높고 넓게 설계된 지붕의 크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화롭지는 못하다.
다행히 건물이 크지 않아 애교스럽고, 기술이 조잡하지 않아 초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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