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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잡생각> 촌놈, W호텔 화장실을 가다... 071229

 

 

 

촌놈, W 호텔 화장실 가다...071229


망년회다 송년회다 바쁠 것 같았던 년말...

실상 맘만 바쁘지 몸이 고생할 일은 별로 없었다.

지방에 있으니 동창회다, 모임이다 딱히 찾아갈만한 곳도 없고

술을 고파하지 않으니 몸이 부대 낄 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 위문공연 한답시고 멀리 원주까지 오는 분들도 없고... ^^


원주에 지인 자제 결혼식이 있어 협력업체들이 몰려오고

의도하지 않은 약속이 통지된다.

W호텔에서 술 한잔할테니 10시까지 올라오라는...

술 마신다면 안 갈 것이라 통보했는데 온갖 채널로 유혹과 협박이 쏟아진다.


일부러 찾아가기는 뭐하고,

그래도 6등급 호텔인데 인테리어 공사나 한번 보자는 말에 귀가 솔깃...

게다가 동행이 있어, 내가 빠지면 분위기가 묘해진다는 말에 부리나케 준비하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사실 한눈만 돌려보면 여기저기 호텔이 적지 않지만

부러 호텔에서 숙식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해외나 장기여행이 아니면 우리들이 호텔에 머물 기회도 적고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 모텔이나 여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니...

그리고 요즘은 사우나와 불가마 시설을 이용하는 게 차라리 낮기도 하고.


기껏 국내 호텔을 이용한다는 것도 뷔페나

약간의 격식이 필요한 조찬 회동이나, 커피한잔이 고작일 뿐...

가끔씩 회사행사로 룸을 빌리기도 하지만

호텔에서 잔잔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리 익숙한 것 아니다.


호텔로 제일 인상적인 곳들을 뽑아보면 어디가 있을까?

비지니스 호텔로 제일 좋았던 기억은 도쿄돔 호텔이었던 것 같다.

도쿄돔 야구 경기장과 놀이시설 등이 어우러진 강남 고속터미널 같은 곳으로

깔끔하면서도 규모 있는 시설에, 아기자기한 건축적 장치들이 모여

머무는 동안 각종 디자인과 여러 가지 모토의 이야기들을 뜯어볼만 한 곳이었다.

 

<도쿄돔 호텔...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카다로그를 스캔한 것이다...> 

<이 건물에서 보았던 여러가지 디자인과 장치들을 분당에서 공사할 때 차용했었다...>

<철쭉과 연필이 주요한 소재... 철쭉을 다양한 형상에 담아 색깔별로 조성해 놓은 화단이 아기자기했던 기억...>

 

 

 


내부시설이 자국의 이미지와 가장 맞아떨어졌던 곳은 소주의 인터내셔널 호텔이었다.

도쿄돔 호텔처럼 급하게 잡힌 별관이었는데 아주 근사했던 곳이다.

접견실에 킹사이즈 침대, 그리고 내부 홀이 중국 전통의 디자인과 가구가 배치된

고급스럽고, 격조도 있고, 한마디로 품위 있게 만들어졌던 호텔이었다.

 

<소주 인터내셔널 호텔... 본 건물보다 별관이 뛰어났는데 별관 로비와 룸 주변을 담지 못해 아쉬움...> 


우리의 건축에서 클래식과 실용,

혹은 전통과 첨단의 디자인이 어떻게 융화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국인들에게 그 나라의 문화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게 건축이고

직접 체험하고 접할 수 있는 게 호텔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고,

인테리어에서 가구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곳이 호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다.

 

<중국 곤명의 한 호텔... 가구와 더불어 조명도 주요한 인테리어 소재다... 중국의 홍등을 연상시키는 디자인...> 




그리고 시설을 이용하면서 여유롭게 머물렀던 곳은 태국의 푸켓이었던 것 같다.

콘도식의 저층구조에 병렬식 배치로 높이와 짜임새보다는 넉넉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곳...

물론 호텔 이용이라는 것이 여행의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의 접근이 요구되지만

중국이나 필리핀, 태국 등의 호텔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쉴만한 곳이란 생각이 많다.

 

<태국 푸켓의 한 호텔... 풀장에서 길 하나 건너면 해수욕장이 있었다...> 


왜냐하면 가끔씩 우리들은 말만 호텔이지, 침대이외의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고, 밤늦게 들어와 짐 풀고 씻고, 새벽같이 짐 싸고...

호텔식사도 그 나라 음식의 향이 무엇인지, 고유의 색은 무엇인지 미쳐 궁금해 하지 않는다.

목욕문화가 어떻고, 풀장 이용이나, 놀음판을 비롯한 놀이시설은 사실 관심 밖이기도 하고...

 

<이태리 밀라노에서 묵었던... 건축박람회를 겨냥했는지 외관도 세련되게 설계된 모습...> 


이렇게 접근하면 호텔만 볼게 아니라 콘도나 일반 숙박시설까지 들먹이게 되는데?

내친 김에 조금 더 나가보면 산책하고 책 좀 보면서 쉴만한 곳은

내 경험으로는 문막 오크밸리나 용평이 편했다는 생각이 들고,

제일 심했다 싶은 곳은 오래전에 머물렀던 이태리와 중국 황산의 호텔이다.

 

<가끔은 로비에서 시원한 전망에 마음을 풀만하기도 하다...> 


사실 이 두 곳은 말만 호텔이지, 하룻밤 유했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추억이 있다.

이태리에서는 천장구멍으로 별이 보일 것 같았고,

합판으로 막힌 벽으로 옆방의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들어야했었고,

난방이라는 개념이 없는 중국의 황산에서는 입던 옷에 머풀러, 마스크까지 써야했고,

결국은 이불을 포개고 전등을 침대 속에 넣어서 난방을 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워커힐 쇼도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와본지 꽤 된 것 같다.

최순우 선생이 말씀하신 <점지의 묘>처럼 워커힐은 참 기분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흔히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입수의 위치에 바람이 잘 드나들고, 특히 전망이 좋다.

내가 워커힐을 처음 찾은 이유는 故 김수근 선생의 작품인 <피자힐> 때문이기도 하다.


63년에 지어졌으니 나보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노출 콘크리트, W형 구조를 노출시킨 아기자기한 규모에 재밌는 건축물이다.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 에게게~~~ 이렇게 작아??? ”였지만

건축이 규모와 볼륨으로 승부한 게 아니라

작은 크기로 자연의 넓은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호방한 역발상이 오히려 좋았고,

노출된 구조와 마감에 건강함과 정직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발상의 전환이 주는 상큼한 미감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던 곳이다.


밤 10시 약속이 8시 저녁식사로 당겨지고, 나의 악셀도 가속된다.

밥 먹고 사람 만나는 일도 주요했지만 역시 건축이 우선이다.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한번쯤 볼만한 곳이라는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연말에 호텔에서 술자리를 벌이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만난 분들이 멤버쉽 회원들이어선지 이것저것 설명을 듣지만 눈은 한강 조망으로 향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 보는 것은 항상 편안하다.

사람의 주거공간에서 보이는 강과 바다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지만

휴식과 망각의 시간에 점유되는 강과 산은 사람에게 활기와 낭만을 보장해준다.

 

<호텔 방에서 밖을 보거나, 이날처럼 비가 오는 날에 바다를 보면???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휴식의 공간은 가끔 의도하지 않은 낭만속으로 마음을 인도하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호텔 로비에 자리 잡은 <바>로 옮겼다.

여느 호텔들처럼 피아노 소리도 클래식한 유럽식 가구들도 보이지 않는다.

호텔로비 자체가 <바>로 설계되었고, 시끄러운 락음악이 로비를 꽉 채웠다.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기획되었고, 단지 밤이어선지 화사한 조명만 출렁인다.

 

 


말이 호텔이지 이건 <규모 있게 만든 모텔>이네?

^^ 내 첫마디가 W호텔에 대한 나의 이미지다.

꿍짝거리는 음악은 로비를 이용하는 층들이 30대 전후의 젊은 취향임을 직감하게 만들었고,

내부의 인테리어와 조명은 세련된 도회지의 전문직 종사자를 겨냥한 듯 느껴졌고...

 

<쉐라톤 훠커힐 호텔 입구... 바로 옆에 붙어있다... 겨울이라 열선이 모두 켜져 있고,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곳으로 유도한다...> 


쉐라톤 워커힐 입구가 밝고 고급스럽게 유도되었다면

W호텔 입구는 많이 가려지고 최소의 조명으로 화사한 분위기만 강조되었다.

호텔로비를 칵테일바 혹은 콜라텍 같은 분위기로 조성해 젊음을 유도하고

객실로 진입하는 동선을 한쪽으로 몰아 다른 호텔과 차별성을 드러냈다.

 

<바 내부... 계단으로 층이 져있고, 의자와 탁자는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렇지만 다양하게,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기획된 듯... 이 계단 밑이 공개된 화장실이다...> 


한번쯤~~~ 올만은 하겠네...

그래~~~ 시끄러운 음악에 머리 식히고 싶을 때... 딱 그만큼...

어쩌면 W호텔에서의 저녁식사 음주는 그게 전부다...^^

크흐~~~ 디카라도 가지고 내려올 껄...

화장실 찾아 나선 길에 부족한 기억을 보충하려 할 수 없이 디카를 찾았다.




일행중 일부는 호텔방으로 올라가고 이제 술을 깰 수 없는 두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

사부작 내리는 함박눈에 눈은 즐겁지만 내게 고민은 어떻게 둘을 떼어 내는가다.

그냥 헤어질 수 없다는 협박에 결국 역삼동 룸 사롱에, 또 다른 호텔에...

한동안 끌려다니다 음주+가무+기타 등등은 다음으로 미루자며 간신히 헤어진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날아온 색시의 문자 덕분에 ; <멀었어?> ^^)


새벽 3시가 다돼 집으로 돌아가 색시에게 디카로 찍은 화장실을 보여준다.

바 밑에 화장실이 있다 해서 내려갔더니, 사람들이 멀뚱멀뚱 줄을 서있대?!

빨간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나오고, 줄서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고...

그게 화장실이었어... 변기에 세면대가 하나의 캡슐처럼 노출되어 있는 게...ㅋㅋ

한강고수부지에 줄지어 서 있는 <이동식 화장실이 호텔로 간거네...>

크하하하~~~ 그래 그 표현이 맞다 맞어...

 

<화장실 내부... 화장실에 디카를 들이대는 사람도 드물지만, 내 뒤에 서있는 전모씨처럼 이것저것 두드려 보는 사람도 있다...^^> 


너무 오래 기다릴 것 같지도 해서 또 다른 화장실을 찾아갔는데,

정작 들어가서 쉬를 못하고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지...

할 수 없이 옆 사람에게 물어봤어... 쉬해도 되냐고...ㅎㅎㅎ

색시는 이게 남자 화장실처럼 보여?

양탄자 깔아놓은 <노상방뇨 구간>이구만...ㅎㅎㅎ

 

<쉬하고 있는 모습을 찍으면 안 되는데... 안모씨다... 유리벽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유리 뒷면에 프린트를 해서 재밌게 만들어졌다...> 


크흐~~~

촌놈, W호텔 화장실 갔다가 한동안 쉬도 못하고 서성거렸다...

지리산 꼭대기, 열목어 서식지, 태평양을 가리지 않았던 나의 고추가

누군가에게 여기에 쉬해도 되냐고 물어본 건 생전 처음인 것 같다...ㅎㅎ

 

<호텔로비...> 


W호텔 화장실...

주차장도 무료고, 구경도 무료다...

일 년에 한번 정도...

만원 들고 들어가 <바>에서 차한잔 마실만 하다...

과감하게 뒤집어 보는 역발상... 재밌는 건축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