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080123
(사진은 최근 한달 가량 돌아다녔던 곳들을 중심으로 모아봤다... 두세장 빼고...^^)
1.
휴가 다녀온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다시 여행(?)을 다녀왔다.
보는 것도 없고, 느끼는 것도 없고, 즐기는 것도 없는
회사 행사였을 뿐인 그런 여행...
<여행이 항상 나의 계획과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다...>
결코 즐겁지 못한 여행이어선지
<떠남과는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을 찾고자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책 한권을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여행의 기술이 더 세련될 수 있을까 싶어서...^^
책 한권으로 지은이의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성급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지난번 읽었던 <동물원 가기>에서의 느낌은 여전하다.
별로 깊지 않고, 우아하지 못하며, 그렇다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근데 왜 읽었냐고?
책이 옆에 놓여 있어서...???
<지은이는 비행기를 보면서, 나는 기차나 배를 보면서 여행을 꿈꾸곤 한다... 물론 항상 자동차에 의지하지만...>
실은 여행을 다녀와 진짜 즐거운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지옥에서 천당을 그리는 것처럼,
혹은 외로운 마음이 함께함의 즐거움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겁지 못한 여행에서 내게 조금은 유익한 여행이란 무엇인지를 찾으며
일요일을 책과 함께 지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건만
하루종일 이불속을 벗어나지 못한 체 리모콘과 씨름만 벌였다...
(지금 아픈 허리와 약간의 몸살기는
순전히 침대시트의 부실함 때문이거나 내 게으름의 소산이다...)
결국 어제서야 몇시간 틈틈이 간간히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는데,
큰 기대도 없는데다 지은이에 대한 애착이 부족했는지 한참 궁시렁 거리게 되고...
그래도 이 책을 번역한 선배는 어떤 희열을 느낄까 고민하니 중간에 덮기는 뭐하고...
해서 거꾸로 갔다가, 중간을 찾았다가,
온갖 궁상을 떨다보니 반나절이 뚝딱 지나가 버렸다.
<중국 심천의 한 공원에서... 때로는 보고 싶은 부분만, 그나마도 모형을 보며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물론 몇 개의 주제만 골라본다면 그리 실망할 책은 아닐지 모른다.
그가 안내자라 지칭했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대한 <호기심에 대하여>
에드먼드 버크 욥과 관련된 <숭고함에 대하여>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를 안내한 빈센트 반 고흐 부분,
그리고 존 러스킨이 등장하는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는 읽어볼 만하다...
2.
먼저 지은이와 책 내용에 대해 몇 마디 피할 수는 없겠지?
지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닮기를 원하는 듯한데,
“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인류를 구분 ”
하려는 유혹에 빠진 <니체>를 빌린다면
<알랭 드 보통>은 하나의 결론을 위해 수많은 자료와 정보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료와 지표에서 수많은 일상의 단상을 끌어내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같다.
<홍콩에서... 이렇게 보고 싶은 부분만 뚝 떼어내 이것저것과 비교하길 좋아한다...^^>
하나의 결론을 위해 많은 정보를 동원하는 논문 스타일 글쓰기가 빡빡한데 반해
지은이의 글쓰기 방식은 독자와 형성된 공감대의 폭과 혹은 영혼의 깊이와 전제되지?
그런 면에서 나의 글쓰기 방식도 고민할 게 많다는 생각이 불현듯...???
진지함과 다양함에 무게(혹은 품위의 깊이)까지 욕심을 내고 있으니... 재미없겠군... ㅠㅠ
(그런 의미에서 내 블로그에 놀러 오신 분들의 인내심에 찬사를...^^)
거기에 지은이는 <훔볼트>란 타고난 여행꾼의 말을 빌려 자신을 변호한다.
“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일에 동시에 호기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알고 끌어안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그 말을 한 훔볼트란 사람, 그 말을 인용한 지은이, 그리고 또다시 그 문구를 서술하는 나...
(물론 단순비교는 마시라... 보편적 인간 훔볼트와 인기작가를 나와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또 다시 작가는 <반 고흐>를 매개로 <니체>를 끌어 들인다.
“ 자연에 완전히 진실하라 -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는가... ... ...
화가는 자연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화가는 무엇을 좋아 하는가 - 자기가 그릴 수 있는 것을 좋아 한다 ”
지은이도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고, 인용하고, 또 기술한다.
“ 다른 사람의 관심을 생각하며 기운을 얻어 ” 그는 여행에 대해 기술(art, 記述)했다.
<며칠전 경복궁 지광국사현묘탑 부분...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이렇게 다양한 맛을 느낄 수도 있는데...>
물론 지은이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단지 나의 느낌일 뿐이며, 유추에 불과한 인용들이다.
“ 반 고흐가 독특했던 것은 그가 중요하다고 느껴서 선택했던 것이 독특했기 때문이며
그림 속에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고마움, 나의 사랑을 집어놓기 위해
즉 현실의 어떤 요소를 위해 다른 요소들에 대한 집착을 버린 ” <반 고흐>에 대한
지은이의 평가처럼, 나는 그런 부분만을 선택하여 기술했을 뿐이다.
3.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잡화들 속에서 자신의 여행에 대한 단상들도 놓치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현실 사이의 관계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여행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미 익숙해 있으며,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널려 있어도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방법은 개인의 몫임도 지적한다.
여행은 우리에게 아무런 기억이 없는 장소, 아무도 우리 이름을 모르는 장소에서 시작하여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기대심(前)과 기억(後)에 의존할 뿐이며,
당혹스러운 신체적, 심리적 요구들 때문에 미학적 요소들의 감상은 방해를 받을 것이고
결국 자신이 보는 것을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일치시키려는 확인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홍콩 낭만의 거리...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과 사람들... 그러나 나는 사진으로 그것을 찾아내고 기억하려 한다... 목적도 의도도 혹은 느낌도 모두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에 묶어서...>
고정관념을 버리고 시작하는 여행 심리의 특징은 수용성이며
이방인은 항상 내부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서는 여행자들은
공동체의 관행이 아니라 방랑자의 위치에서 동료의식을 찾는다는 점도 살짝 끼워 넣었다.
그러나 여행의 위험은 적절하지 않은 시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 있으며,
피상적인 인문/지리적 혹은 역사적 논리에 따라 우리의 호기심이 왜곡되기도 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생기는 수많은 감수성은, 우리가 찾는 기능에 맞추어 줄어들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충주 빈신사지 사사자석탑... 천년의 세월... 그걸 느낀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던 곳...>
4.
질문이 없으면 흥분이 없다는 <훔볼트>의 말을 빌려,
지은이는 세상을 향한 올바른 질문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론 하면서,
사회와 정체성에 적응한 우리들의 연속성과 소속감을 여행을 통해 확인하고
나의 발견이 나에게 생기를 주어야 한다는 <니체>의 말로 글을 이어간다.
“ 그 발견들이 어떤 면에서는 삶을 고양한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
다른 사람들이 설정한 위계를 따르거나 의도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의 범주를 자신의 관심으로 만들 수 있다는 훔볼트를 빌려
이 책에서 필자는 여행의 기술로 두 가지를 말하고 싶은 듯하다.
풍경에서 느끼는 <숭고함>과, 예술을 통한 <아름다움의 소유>다.
<자연을 찾다보니 할 수 없이 중국 황산을 뺄 수가 없어서... 다음에는 산행을 계획해야겠다... 사진을 위해서???^^>
“ 풍경의 가치는 단지 형식적인 미학적 기준이나 경제적 실용적 관심에서만이 아니라
그 장소가 인간정신을 숭고하게 고양시키는 힘을 가지느냐에 따라서도 평가 된다. ”
<워즈워스>를 빌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는 내부의 선을 찾을 수 있으며,
우주의 힘, 나이, 크기 앞에서 인간의 약함과 만나는 것은
유쾌하고 심지어 사람을 도취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힘보다 크고 위협이 될 만한 힘을 보여줄 때만 숭고하다는 감정을 불러오지만
숭고한 풍경의 매력은, 우리를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단다.
인간의지에 도전을 보여주는 숭고한 풍경을 접하는 것, 여행에 대한 지은이의 제안이다.
<충주 각연사 가는 길... 자작나무와 낙엽송과 활엽수와 소나무가 보이는 풍경...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있을 것은 호기심이 셔터를 누르게도 만든다...^^>
또한 <러스킨과 반 고흐>를 매개로 시작한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
예술은 단지 열광에 기여하고, 우리가 이전에는 모호하게만
또는 성급하게만 경험한 감정들을 좀 더 의식하도록 안내할 뿐이지만,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 보는 예술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데서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어 확고한 기억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재창조하는 과정으로서 사진과 그림, 그리고 글그림(조각도 포함?)의 깊이는
무능력의 아니라 게으름이 문제이며, 예술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고...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삶속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려라,
글이든, 그림이든, 글그림이든, 사진이든, 조각이든... 여행에 대한 두 번째 제안이다.
<길위를 달리다가 가끔씩 셔터를 누르는 호기를 부린다... 이렇게 길게, 그리고 함께 감상하고 싶은 욕심에...^^>
그리고 여기에서 강조하는 혹은 나의 의견과 일치하는 것 중 하나는 ;
“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 전에 좀 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말...
<一切唯心造>의 동어반복일까?
아니면 충분한 동화, 동조, 교감, 체감... 예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5.
우리는 자신의 우주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에 빠져있고,
실제로 그들의 우주는 그들의 기대에 적당히 맞추어져 있단다.
세상이 너한테는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며
우리 삶이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홍콩 리펄스베이에서... 건축은 수직과 수평이 중요하다... 모든 건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운데 크게 뚫린 공간은 바다에서 산으로 용이 드나드는 구멍(?)이란다...>
우리들 불행의 시작은 한 가지 입장만 가지고 사는 것이며,
인간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파스칼>을 인용하며
지은이는 따분한 일상생활에서 경이로운 세계로 옮겨가고자 하는 불확실한 갈망에 자극으로
세상이 단조롭고 작아 보일 때면, 떠나기 위해서 떠났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 영혼에 유익한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 풍경 속을 돌아다녀보라고 말하고,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생각도 쉬워진다고 말한다.
희망과 절망사이, 유치한 이상주의와 냉소주의 사이에서 진자운동 하는 시인에게
그 영원한 이동성은 정체와 제한이라는 느낌에 평형추를 제공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횡성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아무런 생각없이 가끔은 하늘을 본다...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을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며,
여행자의 영역인 휴게소나 모텔 같은 고립된 장소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은연중 기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며,
자신의 여러 가지 불평들의 공통점은 이기심과 맹목성임을 고백한 지은이는,
부드러운, 심지어 유쾌하다고 할 만한 외로움을 가지고
숭고한 풍경으로 기쁨을 느끼는 고요와 놀라움을 얻기 위해 떠난다고 말한다.
그에게 <여행의 기술>을 서술하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한 예술의 재창조다.
<불상을 조성하는 이유도 많겠지만, 그 모습도 균질하지만은 않다... 동남아는 또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기억은 단순화와 선택을 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기대와 흡사하단다.
여행의 후기를 통해 나는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한 게으르지 않는(?) 무능력을 감수한다.
그러나 “ 원래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서 감탄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라는 <파스칼>의 역설에서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 우리는 자연의 작품이 예술 작품을 닮을수록 더욱 더 기쁨을 느낀다 ”는 <애디슨>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관심을 생각하며 기운을 차린다는 말은 내게도 유효하다.
이 책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그의 여행에 대한 유의미한 결론은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 있었노라>가 아닐까?
아무튼 지은이의 독특한 글쓰기 혹은 글그림은 가볍기도 하지만 때론 지루하기도 하다.
욕망은 이해하고 싶은 욕구를 만든다는 지은이의 우회적인 고백에도 불구하고...
<우리 똘똘이... 이 놈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가장 단순한 언어와 지각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채울 수 있는(?) 그 경이로운 미소...ㅎㅎ>
옮긴이의 말을 더듬어 보면서 다시 물어 본다.
책도 읽었는데 앞으로 여행은 조금 더 세련되거나, 즐거워질 수 있을까?
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고... 마음을 어떻게 먹을까의 문젠가?
아무튼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고,
나의 여행은 여전히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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