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080522
/ 이순희 옮김 / 부키 출간 / 2007년 12월 10쇄
1. 장하준에 대한 호기심?
2.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경제학
3. 나쁜 사마리아인들 요약
4. 요약2 - 장난
5. 한계 - 몇가지 메모
5-1) 자본주의 경제학 - 성장주의와 이데올로그
5-2) 경제와 정치 -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5-3) 국가의 역할 - 엘리트주의와 애국자
6. 프리즘 - 팜플렛에 대한 추억
1.
최근에 본 책들 중 재밌었던 책을 고르라면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아닐까?
하나는 석가모니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 이제 3권으로 넘어가니 신라가 배경이고,
또 하나는 신자유주의, 한국경제를 도마에 올렸으니 2000년대가 배경이고...
음~~~ 일과 생각이 따로 노는데 읽는 책까지도 제멋대로다.
<최근 읽고 있거나 손대고 있는 책들... 물론 숙소 화장실에 꽂혀있는 만화책이나 꽃의 향기등은 별개로 치기로 하고...^^ 맨 밑에 있는 책은 장하준씩 때문에 할 수 없이 샀다... 선배가 일독을 권하기도 했지만...^^>
한권은 읽으면서 목걸이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고,
또 한권은 생각하고 읽어볼 것들이 늘어나는 괴로움(?)이 있다.
한권은 이 길로 쭈욱 가면 부족한 것들에 살이 붙는 느낌이 있고,
또 한권은 자꾸 뼈다귀를 파고들어야만 할 것 같은 결핍을 느끼게 되어 즐겁고...^^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글쓴이를 떠 올려보는 게 재밌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쓰고자 하는 말에 대해 집요하리만치 많은 준비를 했다는 점이고,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과격하게 혹은 부드럽게 결론을 말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필자들의 자존도 만만치 않아 자신들의 개념에 애착이 강하다보니 동어반복도 많고
결론을 미리서 알고 읽어야 한다는 불편이 깔린 점까지 비슷하다.
음~~~
물론 여기에서까지 이 책들에 대한 서평이나 요약식의 메모는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이나 주장은 다양한 형식과 매체를 통해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요즘,
그런 이유로 책을 읽는 이들이 많을까?
답은 모르겠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아니더라도 재미중 하나는
책을 기술한 글쓴이를 떠 올려보며 시공간이 분절된, 가능하지 않은 대화도 나눠보고
내 생각과 비견하면서 많은 것을 추론할 계기를 얻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극을 받고 싶은 거지.
그리고 즐거웠거나, 즐겁다면 더 좋은 것이고...^^
그런 면에서 오늘 메모하고자 하는 장하준씨의 글들은 충분히 흥미롭고 자극적이다.
물론 나는 그의 저서를 다 읽지 않았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다만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책을 보았고
앞으로 <국가의 역할>이란 책 정도만 읽는다면
그가 그리는 그림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깐돌아 <쾌도난마 한국경제> 읽어봤니?
몇 년전인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던 선배가 책을 권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과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미FTA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재밌던데? 한번 읽어 볼만하고...
꽤 즐거웠던 기억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장하준>이란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비약이 있었는가? 혹은 비판을 넘어선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밑그림을 살짝 엿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충분히 자극적이었던 것 같다.
아담 스미스류의 고전파에서 시작해 마르크스로 전환점을 맞는 정치경제학류의 흐름을
추종하면서도 충분히 비판적이고, 현재적 분석에 초점을 맞춘 참신함이 돋보였다는 점과,
한국경제나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해 정리하면서 한번쯤은 거쳐야하는 문제들에 대한
도구로서의 비판과, 비판으로서의 이성의 줄타기를 실용이란 이름으로 정면돌파 하는 용기...
아마 그런 것들에 대한 강렬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엊그제 끝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줄치기(내 책읽기는 줄긋는 속도와 비슷하다)도
그의 주장에 대한 나의 편견과 더불어 내식으로 만드는 경제학에 많은 자극이 되고 있다.
자극이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사회를 포괄하는 경제학>이 있는가?
1980년대에 본격화 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경제학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와 결부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그의 책들은 더 많은 결핍을 내게 강요하는 듯싶다.
<메이데이... 내게는 반틈만 휴일인 날... 스케치북하고 이 책들고 요선정엘 갔었다... 따땃한 바위를 뒹굴면서 몇장 읽다가 혼자서 궁시렁 거리기도 하고... 얼마 읽지도 않을거면서 괜히 " 이런 곳에서 책도 읽는다 "는 기억을 만들러 갔는지도 모르겠다...^^>
3.
일단 이 책에 대해 간략히 메모하는 게 순서, 혹은 예의겠지?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개별 국가의 경제정책과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작용에 관한 규칙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싶어(p318)> 시작한 이 책은
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충분한 자료로 보충하고 있다.
1장에서는,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각국의 소득 불평등은 증대하고 전 세계적으로 성장은 크게 둔화되었고,
특히 개발도상국은 더 큰 규모의 금융위기를 빈번히 겪어
성장, 평등, 안정에서 실패한 것이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임을 지적하고,
2장에서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무관하거나 정반대의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들은
자신들이 사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는> 횡포와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폭로한다.
여기에 지적소유권에 집착하는 부자나라들의 입장과 유용성(6장)을 보완하고
소위 문명 충돌론이나 문화, 민족성에 대한 편견(9장)을 첨부하면서,
“ 무역의 자유화(3장), 외국인 투자와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4장), 외환 자유화,
국영기업의 민영화(5장),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연금의 민영화, 재정 균형의 달성(7장),
안정된 물가수준 유지, 부정부패의 감소와 규제철폐(8장)(p43) ”를 강제하는 신자유주의는
역사를 이론에 맞추어 왜곡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론이 나쁘면 결과도 나쁠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급속하고, 무계획적이며, 포괄적인 무역 자유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니
“범세계적 경제통합에 대해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만 하며, 그 실례로
“시장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한국의 경제기적”은
바로 오늘날 부자나라들이 1500년대부터 지금까지 애용했던 방법임을 설득한다.
물론 이렇게 몇 줄로 이 책을 요약한다는 게 과욕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는 ;
“(자유)무역은 늘리고,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줄이면서, 잘 하는 것에 충실할 것을”
신자유주의자와 부자나라들은 권고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바른 일과 쉬운 일중 쉬운 일을 택하지만”
“개발도상국은 계획적으로 제조업을 장려하는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에필로그)로 <시장에 대항하라>가 자본주의 경제학자 장하준의 주장이다.
4.
이렇게 끝내면 너무 싱겁지?
사실 이 책은 내가 혹은 우리들이 흔히 즐기는 말에 대한 풍부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그의 폭넓은 독서와 집요한 열의가 제공하는 따끈한 통계와 정보는 팁이지만, 일단
보너스로 제공된 기억할만한 혹은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말들도 책의 주제를 엮어보면 ;
먼저, 경제적 역동성을 파괴하고 엄청난 비용을 초래한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5장)을 지적하고,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보다 나쁜 딱 한 가지는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는 것(4장)이
신자유주의 시대로 만연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숙명이지만,
(내적 성장동력과 자본축적 없는)외국인 직접투자(혹은 의존적 차입)는 악마와의 거래이며,
단기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발전에 불리할 수 있고(4장),
무역이 경제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무역이 경제발전에 좋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3장)고 그는 지적한다.
즉, 자유무역주의는 주어진 자원을 단기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의 이론이지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통해 가용자원을 늘려가는 것과 관련된 이론은 아니라는 점...
경제발전을 위해 국제무역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최선의 길은 자유무역이 아니라는 점(3장)을 강조한다.
실제로 자유무역과 작은정부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전도사들인 부자나라와 미국경제 체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면 자유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7장)로 볼 수도 있고,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엄격하고 지나치게 집중화된 그리고 부정직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사회보다 더 나쁜 사회가
엄격하고 지나치게 집중화된 그리고 정직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사회임을 알고 있고(8장),
개별 경제주체에게 합리적인 것이 전체 경제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자신들은 케인즈 주의를 선택하면서 가난한 나라에는 통화주의를 적용(7장)한다고 말한다.
결국, 무역 자유화는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결과이며(3장),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수많은 행동특성(가치체계 혹은 문화 등)들은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따라오는 것들이고(9장),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자립한 것이지, 자립했기에 성공한 것은 아니며(3장),
어른처럼 행동한다고 그가 정말 어른은 아니니까 개발도상국은 미래에 투자해야 하고(7장),
투자지향적이며 성장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훨씬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서 쓰여 지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프롤로그)
500여년에 걸친 역사적 인물과 사실, 그리고 세계적 통계지표들을 들이대면서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프롤로그)는 신자유주의를 따를지,
케인즈처럼 사실이 바뀌면 나는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에필로그) 하고 묻는다.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혹은 따르거나 방관하는 당신은 혹 바보가 아니냐고...^^
<요선정 건너편... 심심하면 사진도 찍고...^^>
5.
에구~~~ 장난이 길었다.
이젠 정리를 해야겠지?
이제 하는 말들은 나의 메모이니 이 책의 내용들과 무관해질지도 모른다.
살짝만 삐딱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나의 논점에서 텍스트를 재단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시작했던 메모는 요약이 아니었다.
흐름과 주장은 이해해야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질문꺼리는 없나를 찾고 있었다.
그의 출발은 무엇이고, 즐겨 사용하는 비판의 도구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인지...
그의 말처럼 어려운 일은 그가 하고 나는 쉬운 방법(읽기만 하는 것)을 찾았다.
나는 통쾌한 야유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탁견을 원했는지 모른다.
5-1.
먼저 그의 말처럼 독선주의가 이기주의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현실에서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이데올로그라는 말은 유효하다.
그러나 그 역시 <이데올로그>이며, 그에게는 분명하고 확실한 출발점이 있다.
즉, 그의 경제학은 “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이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 현실을 분석하고 걸림돌을 비판>하기 위해 주장을 만들었다.
물론 나는 성장을 전제로 한 이론을 생태주의적 관점을 통해 비판하는 게 아니다.
공존이라는 의미에서의 성장론 비판과 생태학적 접근은 충분히 유용하지만
우리들이 나눌 수 있는 부가 지구상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기에
나는 여전히 <근대의 기획으로서 성장>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문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성장론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를 넘어선 현대에 걸맞는 옷을 가졌는가와
또 하나는 개발도상국에 맞는 성장론이 채택될 수 있는 현실적 경로와 대안이 있는가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수많은 논조들에 의해 신자유주의의 허구가 폭로되었다고 해서
부자나라들의 도덕적 각성으로 신자유주의 전략이 폐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부자나라들은 자신들의 <성장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채택 하는 것>이고,
개발도상국의 성장전략에 맞는 이론은 신자유주의와 배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등 고전파 경제학의 출발은 사실
영국왕실의 재정확충을 위한 정책적 논리였지 자본주의를 예견하고 기술한 경제학이 아니다.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통제와 교섭이 가능한 일국적 단위를 상정한 것이지
도덕적으로 각성된 전 세계의 통합된 경제단위를 전제로 기술된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고전파와 오스트리아 학파의 정략결혼으로 탄생한 신자유주의나,
수입대체산업으로 시작된 라틴아메리카의 제3세계이론과 세계체제론,
그리고 사회구성체 논쟁의 완결로 제시된 정치경제학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아직 지구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 이론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야비할지 몰라도, 부자와 가난한 나라가 공생할 이론은 아직 없다.
5-2.
두 번째, 과연 그가 원하는 체격과 수준을 갖춘 국가권력이 등장할 현실성은 있는가다.
이 문제는 경제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영역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논점을 흐릴 수 있으므로 간략하게 메모만 남긴다면,
무수한 문구들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 <엘리트주의>의 폐해는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한 레닌식 <독재로서의 전위정당론>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그리고 위 두 번째 문제는 현대 사회를 규정짓는 근본적 대립까지 이어진다.
즉 1인 1표의 민주주의와, 1원(달러) 1표라는 자본주의의 상호관계의 문제다.
전자가 강조되면 흔히 진보와 개혁, 혹은 평등과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하게 되고
후자가 강조되면 자연 자유와 경쟁, 혹은 보수와 안정을 지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1989년 소위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래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탈까지 얻어 쓰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자유와 민주는 자본주의까지 덧붙여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기묘한 병립을 설정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 문제도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복잡한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연결 네트워크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아담과 이브가 파라다이스를 떠난 歷史 가능한 9천년 기간에서
인간의 자의식과 주체성을 정립한 기간은 이제 200년을 채우지 못했고(자유의지),
신분과 교양을 넘어선 인격으로 차이를 인정하기 시작한 시간은 100년이 안됐고(민주제도),
자본의 구매력과 생산력에 사회적 책임과 도덕, 교양을 요구한지는 50년도 채우지 못했다.
헤겔식의 가정과 사회의 두 기둥이, 국가와 시장으로 대체된 것도 충분하지 못하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세 기둥이 공존하는 메카니즘에 대해
우리들은 충분히 합의된 그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못한체
해체와 질주, 실존의 영역으로 고립되는 원심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제기한 경제학에 정치와 철학이 대답해야할 지점이 여기가 아닐지...
5-3.
세 번째는 그가 자세로 전제하는 <현실에서의 실용>이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다.
앞에서도 반복하여 지적했지만,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처럼 비판을 전제하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그는 경제학자로서 경제학을 말하는 게 아니라
<민족적, 혹은 국가단위의 애국자와 엘리트>를 찾는 것 같다.
세계적 흐름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장기적 안목을 갖춘 애국자의 양성...
어째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 것 같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자로서 이론을 전개하는 것도 주요한 역할임을 포기하지 않지만,
애국자로서 현명한 선택을 바라는 그의 주장들은 앞의 두가지를 다시 제어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글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편견들, 혹은 의심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선험적 이해에 대한 시비의 문제(진보냐 보수냐)
당면 현안에 대한 타협과 절충의 입장과 관점에 대한 양날의 칼 문제(대안은 있는가)
그리고 과학적 사유가 과거의 통계에만 의지할 수 있는가까지를 포함하는 문제다.
<목적론적인 대안>을 애초부터 비판하고 부정하는 그의 출발점에 시비를 거는게 아니라,
그의 선택과 주장에서 <경로와 대안의 부재>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를 나는 묻는 것이다.
시장에 대항하라는 선언이지만, 깃발을 꽂다와 정치적 힘을 획득하는 것은 여전히 별개다.
결국 나는 <국가의 역할, 혹은 국가론으로 완결되는 정치경제학>이란 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비단 이 문제는 나의 고민이 아니라, 그의 이론이 다듬어야 할 핵심의제일 듯싶다.
막상 찾아보니 이미 <국가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책도 출판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내가 읽은 두 권의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의 한계를 운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경제학자로서 그가 제시한 <국가의 역할과 선택가능한 성장전략>은
경제학의 영역을 벗어난 정치와 철학적 영역을 포괄해야만 하는 것이고(다시 강조했다)
그 대답을 장하준이란 사람에게 묻는 게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그 날 누워서 바라본 하늘... 괜히 점하나 찍어보고 싶어서...ㅎㅎ 그러다가 눈을 감았는데, 잤는지 안 잤는지는 모르겠다...^^>
6.
이제 나도 에필로그를 써야하나? ^^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즐겨 사용한 <전도된 원인과 결과의 복구> <비교에서의 카테고리 구별>
그리고 <시비에서의 선험적 이데올로기의 해체>라는 논쟁의 도구들은
80년대 학교 다닐 때 무차별하게 진행된 논쟁의 주요한 무기이자 접근 잣대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 당시의 <팜플렛으로 주고받던 논쟁>들을 상기시켜주어서 재밌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 당시에 고민하던 모든 <팜플렛과 논쟁>을 답습하지는 않았다.
이 책은 (그의 표현대로) 낙관적 분위기(p38)로 시작하여 도덕적 의무(p355)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결국, <경중의 구별>과 <비약의 문제>, 그리고 <양날의 칼>이 빠져있다.
어쩌면 <조합된 구체적 현실>을 근거로 시작한 그의 글은
<경로와 대안>에 대한 주장보다, <도구로서의 비판>을 위해 유효할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혹은 그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그 한계가 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나돌던 <논쟁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는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다.
파노라마를 보기 위해 그가 제시한 새로운 안경, 혹 <원도우>는
내게 <프리즘> 같이 느껴진다...
일곱색깔 무지개로 하나하나씩 빛을 쪼개는 프리즘...
누구처럼 그 프리즘을 거꾸로 세우면 쪼개진 빛이 모아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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