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 0802
시오노 나나미 지음 / 한성례 옮김 / 부엔리브로
<사진은 마우이에서 찍었던 것들로...>
1.
8일 정도의 여행.
물론 나의 여행은 아니지만 짧지 않은 시간,
꽉 차인 일정이지만 나만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급한 마음에 가벼운 책을 한권 골랐다.
<이런 분위기에서 책을 어떻게 읽겠다고...^^>
틈틈이, 간간이 한두 페이지를 뒤적이지만
역시 독서를 즐길 만큼의 여유를 부리기엔
이번 여행이 나에게 할당해준 시간은 너무 짧다.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 물소리...
자꾸 엉뚱한 생각과 가이드 없이 진행되는 일정들이 너무 어수선하다.
비행기 날개로 채워진 동그란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에메랄드 빛... 태평양을 바라보며 다시 지중해를 떠 올려본다.
잠으로 남은 시간을 보충하기에 11시간의 비행은 너무 길다.
조금은 여유롭게 책장을 넘겨보기로 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2.
작년 9월경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한 게...
당시 신문의 서평과 옮긴이의 말을 빌리면
<지도자들의 성적표>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었다.
참 일본인다운 발상이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로 등수를 매기는 나라는
일본과 영국, 그리고 한국...
분단된 반도국가 한국의 정서는 섬나라와 똑 같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들의 기본도덕 혹은 교양덕목 중
<지적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를 잣대로
지도자들을 모아 성적표까지 매겼으니 정말 그답고, 일본인답고,
그것을 즐거워하고 있는 나도 결국 똑 같은 부류다...^^
참고로 지은이가 생각했건 로마인들이 생각했건, 그들의 기본 도덕은 11가지 ;
영원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경건함>과 인간관계를 중시한 <인간성>,
자신만이 아니라 남의 인격도 지켜주고 존중할 줄 아는 <자유의지>,
다른 종교, 문화와 풍습, 그리고 항복한 적을 안을 수 있는 <포용력>,
긴 세월 속에 축적되고 집적된, 그래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전통으로서의 <도덕>,
지혜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따르는 <권위>와 설명이 필요 없는 <신의>,
사회 제 관계에서 꼭 필요한 <규율>과 자기 자신에게 더 강조되는 <엄격함>,
핵심 고리를 찾아내고 책임감 있게 실천해 나가는 <일관성>과 <위엄>...
물론 이러한 덕목들은 이 책의 본문과 무관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필요한 거겠지...
<모두가 아는 것들... 부분만 잘라내는 것... 그리고 그 속에 그 속에 나...>
3.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독파가 길어진다.
책이 두꺼운가?
질리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느슨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확신을 하게 된다.
번역이 엉망이라는 생각...^^
사실 일본인의 문제의식에, 영어식의 문체,
그리고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인간 심성을 넘나드는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서술은
간단명료하면서도 풍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게다가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 15편의 완결과도 가까운 책이 아닌가?!
근데 왜 이리 재미가 없지?
물론, 옮긴이에게서 지은이만큼의 지적인 깊이와 넓이를 보고픈 것은 아니지만
일단 속도감에서 옮긴이의 글 솜씨는 충분히 능숙하지 못했고,
보다 근본적으로 옮긴이는 이 책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일관된 주제의식이 갈피를 못 잡고, 부각하고자 하는 소재가 겉돌면
읽는 속도나 책장을 덮으며 느끼는 감흥은 반감될 수밖에 없는 법...
이 책이 출간될 즈음의 이슈는 <대선>이었고
<새로운 지도자의 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을 통해 지은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옮긴이의 말처럼 <반할만한 로마의 멋진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에는 <보편적인 지도자의 상>을 깔고 있다.
그녀는 농익은 문학을 지향하며, 문화적인 안목을 강조하지만 대단히 <정치적>이며,
풍부한 작가적 상상력에 창의성을 강조하지만, 그녀는 대단히 <분석적>이다.
전통의 문제의식에 집착하며 역사적 사실을 운운하지만 역시 <현실적>이다.
새로운 개혁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매우 <보수적>이며
현실의 감각과 전통의 가치를 섞어 놓을 때 그녀는 매우 <자유롭다>.
지은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충분히 소화된 글쓰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랬나?
ㅎㅎ 이제는 번역의 수준까지 거론하는 걸 보니,
나도 어지간히 <핑게 찾기>를 즐기는 한국인이군...^^
<잠시 딴 짓을 하는 것도...?>
4.
시오노 나나미는 생각보다 큰 그림을 그린 듯싶다.
<개혁>을 키워드로 자신이 기다리는 <영웅>의 잣대를 들먹이는 지은이는
서양의 기독교식 로마읽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로마제국 흥망사>의 에드워드 기번이나 토인비와 자신의 문제의식을 저울질 한다.
한마디로 <로마제국에 대한 최고의 역사가>로서 새로운 관점을 선언한다.
그녀는 이미 앞선 <로마인 이야기> 등에서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체력에서는 게르만족보다 뒤떨어진 로마인들이,
1,000년 제국의 근간을 만들고 지중해를 제패했던 이유로 ;
연대의식에 근거 한 개방과 포용의 네트워크화와
현실성과 우선순위가 분명한 인프라 구축,
그리고 거듭된 시행착오 속에서 정착된 조직적 시스템...
여기에 지속적인 실천과 일관된 관리를 키워드로 지적했다.
도도한 그녀의 주장은 이 책을 통해 한 걸음은 더 나아간다.
로마제국 이후로 다시는 인류가 <보편제국>을 만들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그 근본적 이유로 로마인은 인간 행동 원리의 규범을 ;
유대인처럼 <종교>에서 찾지 않았고,
그리스인처럼 <철학>에서도 찾지 않았고,
<절대 혹은 유일>과 친숙하지 않은 현실적 <법률>에서 찾았다고 강조한다.
그 보편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시련과 부침의 700여년 동안 진행된 개혁은
기존의 오래 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자신들보다 앞선 에트루리아, 그리스, 카르타고 인들을 답습한 게 아니라,
로마란 도시와 농경민족으로 출발한 로마인들에게 적합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질이나 특징 중에서 살리고 버릴 것을 결정하는
<재구축>이었음을 강조한다.
옮긴이와 이 책의 서평을 다룬 신문의 <지도자 상>은 사실 부차적인 주제로
그 재구축 과정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지도자의 자질이 언급 된다 ;
공동체에 대한 철저한 공공심과 자기비판의 정신을 갖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진정한 의미의 귀족정신을 갖춰야하며,
지옥에 떨어지기를 각오하고 고독과 친숙한,
창조적이며 현실적이며 풍부하고 힘 있는 전문적인 직업 정치인을 그렸다.
카이사르는 이런 유형을 대표하는 <창조적 개혁가>였다.
이제 그녀는 500년 전의 르네상스人 <마키아벨리>와
2,100여년 전의 그리스人 <폴리비우스>를 끌어들여와 새로운 선언을 한다.
근대의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까지 포함하여,
과연 종교와 철학이 <인간성을 향상 시켰는가?> 하고 묻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녀는 <2000년 전 로마제국 이후 인류는 진보했는가?> 묻는다.
이정도면 대단한 도전이 아닌가?!!
종교적 혹은 철학적 시야와 민주주의의 가치, 그리고 세계화...
아무튼 그녀는 끊임없이 인간성에 대한 환상을 경계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기개를 거론하며
최상의 품격을 갖춘 영웅들을 주문한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고래는 죽어서 뼈를??? 헉~~~>
5.
<개혁과 개방>이 시대의 화두가 돼 버린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가치와 개념으로 강제되는 많은 문구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진정 우리들은 우리의 전통과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을까?
진정한 지도자의 상, 혹은 닮고 싶은, 추천하고 싶은 인간의 상을 가지고 있을까?
게임의 규칙을 만든 이는 그 규칙으로부터 자유롭다.
풍부한 이해가 있어 자유롭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이유가 있어 자유롭다.
우리들은 대부분, 우리가 만들지 않은 규칙과 가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개혁과 개방, 우리가 만들지 않은 규칙과 가치가 절대선으로 둔갑한지 오래다.
우리는 변화를 말하면서 과거의 개념을 거부한다.
우리는 개혁을 말하면서 미래의 이상을 부정한다.
과거를 거부하는 것은 호불호의 선별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의 문제인데...
이상을 부정하는 것은 선후경중이 없는 사상누각을 견제하기 때문인데...
완급도 시비도 없는 방향을 상실한 혼동이 우리의 모습일까?
우리가 답답해하는 것은 <개혁의 피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부적절한 동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지 않은 규칙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에 대한 진실한 이해와 미래를 향한 재구축>이 아닐까?
하긴, 선후완급을 조절할만한 지도층을 선택하지 못한 우리의 자업자득이고
호불호와 시비, 경중을 분별하지 못한 우리 수준의 지도층이 우리 자화상이겠지...
<보편적 인간>과 <휴머니즘>을 꿈꿨던 대학시절이 있다.
<농경으로 정착한 유목민>을 한국인의 원형으로 생각하던 때도 있다.
<천년의 세월을 한 장의 메모지>로 요약하려던 객기도 없지 않았다.
<역사에 예술과 경제>를 섞어 놓으면 참 풍부하겠다는 생각도...
이제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서 재미있다고 덧 붙여 말하고...
우리가 만드는(?) 역사는 무엇일까? ^^
역사가 즐거운 건 사실인데, 우리의 역사도 재미있을까? ^^
갑자기 이천년의 세월에 지구 반 바퀴 밖의 이야기와 접목시키려니 멀죽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로 돌아오는 여정이 꽤 길었다.
게다가 로마도 생각해보랴, 우리의 역사도 생각해보랴,
나의 머릿속도 가끔씩 들춰보랴, 애꿎은 옮긴이만 탓하고...^^
<이제, 혹은 아직은 이륙? 내내 날개만 보다가 왔다...>
실제 시간은 5시간의 차이이지만
현실적 시차는 19시간(24-5=19^^)...
일본 열도가 보일까 싶은데 벌써 인천공항이다...
8일 오전 10시 40분에 출발해서 9일 오후 4시 50분경 도착(30-19=11).
끊임없이 지속되는 오후의 햇빛을 바라보며 날아온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기발한 착상이다.
내가 움직인 절대적 시간과 시계의 시침이 이처럼 다르다니...
날짜 변경선이란 묘한 <철학도 종교도 아닌 법률>이 나의 사고와 행위를 제한한다?
나는 나의 선택을 <사상적 신념>에 의지하는가?
아니면 <경제적 득실>에 의지하는가?
또는 <역사적 미학>에 의지하는가?
시오노 나나미가 책마다 인용하는 카이사르의 어록이 하나 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못한다. ”
나는 충분히 현실적이며,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을까?
나는 충분히 열린 자세로 이 책을 덮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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