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서평>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20090111

* 오늘은 글 올릴 기분은 아닌데...ㅠㅠ(울고 있어서...)

* 그래도 오늘쯤 올린다고 맘 먹었으니, 그대로 행하는 수밖에...

* 어제부터 시작한 일이 어수선하다...(눈도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 년말에 선배가 책 한권을 건네줬다... 

* 두터운 책, 읽는 건 3일이 체 걸리지 않았지만, 고민은 일주일도 넘게 했다...(글이 너무 투박하고 무거울 것 같아서...)

* 저자와 책 내용이 내 맘을 사로잡지는 못했나 보다... 하지만 최대한 책과 저자를 존중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 처음에는 제국의 몰락이란 주제로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다뤄볼까 싶었는데 책과 너무 동털어진듯 싶어, 책에 충실(?)했다.

* 다 완성하지 못한체로 올린다... 내가 쓰고 싶은 주제는 다음으로 미뤄야할 듯 싶다.

* 길다...^^*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       20090111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문명은 왜 야만에 압도 당하였는가

피터 히더 지음/이순호 옮김/뿌리와이파리/2008년11월


1. 로마제국의 몰락

2. 서로마 제국 붕괴의 원인 - 책의 요약(이 부분은 안 읽어도 된다...^^)

3. 반성을 반성하자?

4. 에드워드 기번과 시오노 나나미...

5. 피터 히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1. 로마제국의 몰락


2세기에 활동한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티데스>는 말했다.

<호메로스는 노래했다. 지상은 만인의 것이다. 로마는 시인의 이 꿈을 구현했다>

아리스티데스의 꿈처럼 100여년이 채 지나지 않아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했고(313년 밀라노 칙령),

다시 100여년을 미처 채우지 못한체, 로마제국은 동서로 양분되었으며(400년 전후),

그리고 역시 100여년이 안 된 시점에서 서로마제국은 해체된다(476년 오도아케르 이탈리아 왕 등극).

그것도 문명인이 아닌 야만인에 의해, 스스로 붕괴한 게 아니라 이민족의 침입 때문에...


문명은 왜 야만에 압도당하였는가란 부제를 단,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을 통해 저자 <피터 히더>는

<에드워드 기번> 이후, 숱한 역사가와 문명사가들에 의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던

토지 생산력 고갈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군비 증강에 따른 세수부담의 증가와 내홍,

황제권의 불안정에 따른 중앙관료들의 부패와 궁정 음모로 점철된 군부의 득세,

시민적 덕목의 상실을 막지 못한 기독교의 확산,

이민족과의 혼혈 등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 부패 등으로 일반화 된 <내부 붕괴설>에 시비를 걸며,

방대한 국경선을 통제하지 못하고 수많은 이민족의 잔펀치에 KO 당했다는 <외적 요인설>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매우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관점에서 기존의 학설을 부인하려는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관점은 저돌적이었지만, 문체는 충분히 세련되지 못했고,

저자의 문제의식은 확고했지만, 그의 분석과 종합은 결코 여유롭거나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모든 게 중요해서 사실과 결론의 느슨한 연결로 긴장감이 떨어졌고,

학술성과 대중성을 넘나드는 지나친 욕심은 결국 동어반복의 나열식 서술이란 한계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의미와 의도가 퇴색될 필요가 없는 이유는 ;

로마제국 붕괴의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여전히 진지해야할 이유가 충분하고,

서로마제국 붕괴를 전후한 100년의 시점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우리들에게 문제가 없었는가를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서로마 제국 붕괴의 원인 - 책의 요약(이 부분은 안 읽어도 된다...^^)


<모든 고대사는 로마의 역사로 흘러들고, 모든 근대사는 다시 로마로부터 흘러나온다>는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랑케>의 말처럼,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476년은

유럽의 고대와 중세를 가름하는 중대한 시점이며, 역사적 사건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먼저, 서로마제국 붕괴의 원인과 당시 상황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볼까?


로마시민권을 획득한 자유민들로 구성된 중장보병이 중기병과 직업군인으로 대체되고,

제국의 확장과 함께 발달한 라티푼디움이 노예수급의 감소로 콜로나투스라는 소작제도로 정착하고,

원로원에 의한 민주집정제가 신의 권위를 가진 황제와 환관, 관료가 통치하는 전제군주제로 바뀌었지만,

4세기 로마는 반짝이는 은식기에 풍요로운 만찬과 포도주, 그리고 고상한 라틴문학과 철학적 대화로,

그리스의 우아함과 갈리아의 풍요로움, 그리고 이탈리아의 활기참을 노래하는,

가정의 섬세함과 왕실의 법도가 적당히 어우러진 충분히 문명화된 세계였다.


로마의 기독교화로 로마의 시민정신이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완벽히 합리적이고 궁극적으로 우월한 인간인 황제가 통치하고,

소작인들의 지속적인 저항에 관료들의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피로현상을 보였지만,

교양 있고 유유자적한 토지소유자들의 로마제국과 황제권위에 대한 충성도에는 변함이 없었고,

국경방어를 위한 병참시설이 이민족에 의해 채워지고 동맹과 용병 등으로 군사외교 전략이 바뀌었어도,

피지배 민족들이 로마의 가치를 수용하고 군대와 징세를 통한 지방의 견제와 균형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한 로마가 서서히 내분에 골머리를 앓고 통일성을 잃어가는 이유를 저자는 이민족의 침입에서 찾는다.

3세기 이후 등장한 사산조 페르시아와 4세기 훈족의 이동에 따른 고트족, 반달족, 게르만족 등의 득세다.

사실 로마는 <지주들에 의한, 지주들을 위한> 정치 경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고대제국이다.

때문에 로마는 정복을 필요로 했고, 황제는 월계관과 개선식을 위해 전쟁에서 승리해야 했으며,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지주들의 토지였고, 힘은 군대에서 나왔으며, 그 결과가 바로 로마법이다.

결국 로마는 황제와 관료 + 조세기구 + 직업군대 + 법률제도에 의해 이루어진 문명에 불과했다.


영토만 넓었지 관료체제는 한계를 드러냈고, 무력과 정치담합으로 얼킨 지방자치 조합은 무기력했으며,

원시적인 통신체계와 무질서한 법집행, 일당독재에 비해 과도한 지방의 자율성과 힘,

그리고 라틴어 구사능력이 교양인의 기준이며 출세의 수단이라는 로마 이데올로기의 환상 등은

정복자가 아닌 떼강도와 다를바 없는 야만족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균열을 맞게 된다.

황제와 로마군대의 패배는 바로 인간과 신의 전쟁에서 신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리적 개념을 넘어선 문화적 개념인 로마제국에서 황제권위 실추는 로마적 삶의 이완으로 이어지고,

로마성의 상실은 제국의 몰락을, 그리고 다시 시스템의 붕괴는 로마식 법률제도의 해체를 의미한 것이다.

저자는 속주와 황제의 공생, 예전의 신을 대체한 황제는 신이라는 로마화된 기독교,

지주재산 보호를 위한 관료와 군인 법률 등, 로마는 애초부터 위태로운 구조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토지에서 사회적 부와 권력을 창출했던 로마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또한, 로마제국을 해체하고 서로마제국을 붕괴시키며 고대 유럽사회를 변화시킨 훈족은

독자적 문명을 갖추고 영토적 근거에 뿌리를 둔 개념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지배욕과 군인들에 대한 공포에 의해 결과적으로 형성된 혼합 민족으로 설명한다.

그들에 의해 세워진 개별왕조/민족국가의 등장에 결정적 계기가 된 로마제국 지주들의 변절은,

도덕적 해이 또는 제국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자신들의 토지를 지키기 위한 타협의 결과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로마제국의 해체와 붕괴는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패배로 누적된 내적 위기가 증폭되었으며,

그 위기의 실체는 지주들에 의한 지주들을 위한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야만족들의 통합과 반격은 그들 내부의 정치 문화적 성숙과 정복의지가 아닌 피지배민족의 역반응의 결과이며

토지정복에 근거한 경제기반의 붕괴에서 보여준 중앙정부의 정치적 외교적인 미숙과 내적 허약함보다

본질적으로 야만족들의 지속적인 침입에 군사적으로 패배했다는 게 가장 주요했다는 주장이다.


 


3. 반성을 반성하자?


저자는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근거로 <군사행동과 전쟁에서 패배>를 통해 <외부 요인설>을 주장하지만,

엄밀하게 서로마 제국 붕괴의 원인은, 정치적 대응 실패와 제국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내적 붕괴설에 대한 논리의 시비와 허실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증을 설파하지도 않았으며,

로마제국의 문명에 맞선 야만인들에게 제국에 대항할 충분한 문화와 그 뿌리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해 이 책을 접한 많은 독자들이 지적할만한 이 책의 무미건조함과 느슨함은

야만에도 문명이 존재했다고 설득당하기에 제시된 자료들이 너무 빈약하다는 점과,

기존이론에 대한 비판의 대척점을 분명하고 예리하게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학술적 논문이 아닌 대중 교양서에서 그런 긴장감과 흡입력을 바란다면 한계가 많겠지만,

사료적 가치를 지닌 1차 텍스트로 이 책을 접한다면, 저자의 의도와 구상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내 방식으로 이 책의 전개를 곰곰 되씹어보면,

저자는 이미 자신이 완성한 체계와 구상으로 로마제국 최후 100년의 사건들을 기술했다.

저자는 가치중심적인 확신에서 벗어나 현실에 가까운 미묘하고 유기적인 관점을 유지하자고,

내러티브한 역사에 너무 주관적이고 시대적인 관점을 개입시키지 말자는 관점을 유지했다.

그것이 그의 주장이고, 원칙이고, 이 책의 내용이다.


개개인의 미덕과 악덕, 혹은 변절과 배반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기존의 접근은 잘못된 것 아니냐,

지도자의 자제력, 권위와 능력을 사회 시스템의 한계에 인위적으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게 아니냐,

어떤 절대적 가치나, 사회적 혹은 역사적 필요에 의해 교훈과 반성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 ...

어린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궤도와 패턴이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저자는,

한마디로 로마제국을 너무 의인화 하지말자,

선입감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자,

역사에서 반성을 찾으려는 환상을 깨자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4. 에드워드 기번과 시오노 나나미...


사실 우리에게 로마역사는 무수히 많은 역사가와 문명사가들에 의해 접근되었고,

특히 <에드워드 기번>과 <시오노 나나미>를 통해 너무나 친숙하게 말할 수 있는 교양의 만찬이 되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접근하면, 그들은 로마역사의 해부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했음을 이해한다.

이제 그들의 주장과 저자의 반성을 살피면서 이 글을 정리해본다.


로마의 역사는 그 오랜 세월과 영향력만큼 진지하게 때론 가볍게 평가되고 분석되었다.

로마제국 당대의 철학자(그리스) 웅변가(로마) 시인과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지도자의 안목과 합리성, 개개인의 정의와 배반, 사회가치의 선과 악으로 재단되던 역사이야기를

비교적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국가적 시스템을 동원해 문명사로 끌어 올린 게 <에드워드 기번>이다.

우연한 사건과 개개인의 도덕에 일희일비하던 신화화된 서정적 역사가, 서사와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신의 찬양에서 인간화된 사회를 꿈꾸며 공업화된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경영이 꽃 피우기 시작한 18세기,

영국에 필요한 것은 과학적이며 세련된, 영구적인 제국주의의 모델이 아니었을까?

종교개혁을 공고하게 만들어줄 로마 카톨릭에 대한 충분한 비판과,

영국의 입헌군주제의 정착과 민주적 법치주의 완성의 필요,

그리고 식민지 전쟁과 왕위계승 전쟁으로 혼란한 유럽을 상대로 한 항구적 외교 시스템의 확립...

그래서 기번의 관심사는 해가 지지 않는 영국 제국주의의 완성을 겨냥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나폴레옹의 등장에 지대한 역할로 결실을 맺는다.


이에 반해 수백년 동안의 문학적 역사적 로마역사의 정리와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대중적으로 어필하며 등장한 이가 있으니, 그가 <시오노 나나미>다.

그녀의 주관심사는 분명, 로마는 왜 멸망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 때문에 번영하였는가에 모아졌다.

그리스와 고대 철학자들이 강조한 지도자 개개인의 리더쉽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사회적 인프라와 개방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끊임없는 개선과 개혁으로 유지되고 관리되는 로마...


어쩌면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이르고 세계화가 시대의 화두를 다투던 전후 두 번째 고도성장기,

그녀는 현실비판보다는 긍정적이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가치로 무장한 건전한 보수의 도덕적 완성을 주장했다.

팍스 아메리카 시대, 교양과 품격을 갖추고 안목이 넘치는 지도자들을 통해 팍스 로마의 재현을 노래했다.

인위적 토대가 허물어져 비대한 구조물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았다는 기번의 충고를 경계하며,

개방성과 합리성 그리고 보편성에 근거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관리하여, <재구축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는, 15권의 <로마인 이야기>와 관련 서적을 통해 <로마인들에 대해 이야기>한 게 아니라,

신화화된 (로마의)영웅들을 (오늘날에 필요로 하는 새로운)인간(상)으로 재구축하였다.




5. 피터 히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피터 히더라는 저자는 새롭게 주장한다.

흥망의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후세의 사람들이 보고자하는 역사와

당시의 격정을 감내해야하는 동시대인들의 고고학적 진실과 사료들의 고백, 감상은 분명하게 다르며,

1500년도 넘은 옛날의 허구와 한계를 벗고, 신화화된 로마역사의 실체를 인정하자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5세기의 로마는 불안정하고 필연적으로 붕괴할 뇌관들의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 멸망한 게 아니라

고트족, 반달족, 훈족, 게르만족 등 야만족들의 <물리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서로마 제국 몰락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은 절대 새롭지 않다.

제국의 성장과 번영의 동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제국이 몰락할 태생적 한계의 증폭과정임을 부정하지 않았고,

제국의 몰락은 경제적 시스템의 한계노정과 정치외교적 네트워크의 실패, 그리고 이에 따른 피로누적이라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다소 폭력적이었지만 장기적인 과정이었음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로마문명이 야만민족들에게 압도당했던 이유는 ;

야만족에게는 또 다른 고도의 문화수준과 보다 강력한 군사적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군사적 패배로 인한 결과일 뿐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오히려 저자는 기존의 역사관을 통해 재단됐던 역사를 다시 객관화 시키고 그 관점을 반성하자고 주장한다.

두터운 책장을 넘기는 내내, 저자의 무덤덤하고 무거운 고백이 깔려 있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를 로마제국의 수명으로 볼 수 없겠지만(기번에 대한 반발),

서로마 제국만 붕괴한걸 보면 로마 시스템과 내적 한계로 누적된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골목 대장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한 놈이 코피가 터졌는데,

거기에 무슨 원인과 내적요인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인격화되고 신격화 되어버린 로마제국의 신화를 해체하자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역사가 그런 사실의 나열만으로 읽히고 기억되어야 한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제국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등은

끊임없이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연구하며 현실을 반추하고 미래를 기획했다.

그들이 로마에 집착하는 이유는 <로마의 멸망을 아쉬워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


대제국을 꿈꾸는 자, 제국의 영광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자에게 로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자신들의 방식으로 힘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도 로마는 나침반이 된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야만인들에게도 존재했다는 문명의 진실과 그 실체를 강조한 게 아니라,

로마는 지배욕 위에 건설된 제국이고, 그 지배욕은 모든 인류에게 원한과 피폐함만 안겨 주었고,

결국 파괴의 원인은 정복의 크기만큼 증대되었으며,

몰락의 원인은 끝없는 공격성을 지닌 제국주의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2차대전 이후 정착한 <팍스 아메리카>와 2000년대부터 정착하기 시작한 <차이메리카> 시대...

미제국에 의해 주도되던 세계질서가 새로운 제국들의 등장으로 긴장과 진로를 모색하는 시기,

로마 제국의 번영과 몰락에서 우리들은 새로운 교훈과 지침을 갈구하고 있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애초, 다른 범주의 이야기...

170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1900년대 초까지 세계질서를 주도했지만

이제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하고 모색하고자 하는 영국에서 저자는 이책을 썼다.

저자에게서, 유럽통합에 미적지근한 영국의 정서가 깔린 게 아닌가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