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8월 꽤 많이 돌아다닌 것 같은데
정작 정리된 것은 없고
머리는 빈 것 같고, 몸은 무겁고, 마음은 맹맹하고...
모처럼 보는 잘 생긴 탑과 생동스러운 기운이 담긴 <선림원지>.
한여름의 따가운 볕과 모난 마음을 씻어주는 <미천골>의 맑은 물...
여유로운 마음은 하늘을 바라보지만,
왠지 떨구어진 고개는 흐르는 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림원터 삼층석탑... 참 잘생긴 탑이다... 다시 보지 않았다면 예전의 느낌으로 나의 기억을 묶어두었지도 모른다...>
시원한 물소리와 바람소리...
뒤죽박죽 엉킨 마음은 흘러가는 물줄기를 향해 시선이 고정된다.
지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평온했다면 흐르는 물을 등졌을텐데...
그리운 이의 가슴에 안겨 잠시라도 위안을 찾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바로 앞 개울물... 그리운 님과 함께 탁족을 즐기며...^^ 메마른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이제 어딘가로 움직여야 한다.
잠시라도 여유를 찾을 때 시간은 왜 이리 헤프고,
하지 못한 일, 해야 할 일들은 왜 그렇게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선림원터 바로 앞, 미천골 계곡물에 발을 담근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2. 오대산 구룡령...
막히지도 않는 고속도로를 피해 <오대산>을 빙 돌기로 마음먹었다.
혹여 구불구불 넘고 틀어지는 길에 무겁고 어수선한 마음을 덜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목적지만을 향해가는 가픈 발걸음이 지금은 무겁고 지루할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가끔 접하고 싶은 한적한 길의 변화무쌍한 생동감이 마음을 위로해 줄지도 모르고...
<나비... 지는 별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나만 쫓아 다닌다...^^>
우리나라에 구불거리기로 유명한 고개가 많지만 <구룡령>도 결코 녹녹하지 않다.
오대산 북쪽을 넘어오는 구룡령은 높이로만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개다.
하지만 높다고 모든 걸 갖추는 건 아닌가 보다.
깊이는 있는데 웅장한 맛이 적고, 상큼하고 시원한 조망을 갖추지도 못했다.
자전거, 도보 여행하는 사람들이 제일 지루한 고개라고 말했다지만 여전히 두리번거린다.
어디선가 밥을 먹기는 해야 하는데?
어제 아침 서울로 출발하면서 여기까지 이틀 곡기를 대하지 못했다.
뭐 그리 바쁘고,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끼 식사의 여유도 못 부렸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어디를 다니면서 즐겁고 맛있는 食思 (^?^)를 즐기지 않는다.
오늘은 바람을 밑받찬으로, 햇빛을 양념삼아, 시원한 물에 버무려 먹어야지...^^
한적하다고 변변한 식당도 하나 없군.
정상에 몸을 내려놓은 차들이 많지는 않지만, 구룡령 꼭대기 휴게소는 문을 닫았다.
이럴 땐 차 많이 세워진 가정집 같이 생긴 음식점이 나타나면 좋을텐데...
구룡령을 완전히 내려와 샘터인가 하는 휴게소에 결국 차를 세웠다.
<휴게소에서 點心을 먹으며...^^>
감자전 하나하고, 막국수 하나 주세요. 혼자 먹을꺼니 감자전은 조금만...
휴게소 뒤켠, 바람도 있고, 보이는 빛도 좋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다리 쭉 피고 흐르는 물소리 양념삼아 참 여유롭다 싶은 느긋한 마음으로 늦은 點心을 든다.
그래~~~ 그리운 사람도 옆자리에 초대하니 완벽한 구색이다...^^
감자전에 감자가 별로 없나? 고추 빼달라는 이야기를 못했군...
3. 계방산 운두령
또 다시 고개로 들어섰다.
이럴 때 <나비>도 참 재밌다. 해발이 꼬박 꼬박 찍혀 나오니...
해발 2m 동해에서 출발한 오늘, 1013m 구룡령을 넘어 이곳은 5~600m 지점.
이 깊은 골속 골속에도 터전을 마련하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 삶의 연속성과 부침은 어떤 표정과 어떤 주름살을 만들어낼까?
낯익은 이정표가 <운두령>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한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다음으로 높은
계방산(1577m)을 넘는 고개다.
혹시 이 고개(1089m)가 우리나라에서(포장된 고개 중에) 제일 높지 않을까?
음~~~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의 만항재(1330m)가 제일 높다고 하네?
오늘은 고개들만 다 다녀볼까? ^^
높기만 하지 시원한 조망을 갖추지 못한 운두령을 내려오니 <이승복 기념관> 가는 길.
저 주차장 공사한지가 7년쯤 되었네?
한참 어렵던 때 몸 추스르고 부족한 것들 채워본다고 대관령에 2년여 머무르면서 했던 공사.
작은 공사였지만 토목으로는 수해복구 공사 이후 세번째 현장이였던 것 같다.
물이 많아 작은 연못을 살리기로 하고, 완만한 S자 경사면에 대해 고민했던 현장...
결국 서울로 올라오고 아래쪽 주차장은 다시 걷어내고 보완 공사를 했다지?
<주차장... 결국 이렇게 한번 와 보네...>
몇 년이 지나서도, 혹은 이십여년이 지나서도 내가 몸담았던 현장들은 그대로 서있다.
사람들이 살고, 혹은 물이 지나가고, 이렇게 차들이 세워지는 공공의 형식으로...
조금 더 나아지고 발전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결과물들은 지금의 시선으로 평가되지.
나의 의도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고 구현되는 결정체들...
부족함, 아쉬움, 부끄러움이 항상 긍지와 자부심을 앞서는 건
나의 이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평가 때문이다.
이 현장을 거쳐가며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결과물에 대해 관심이 있을까?
스스로 구하는 이해와 관심, 애착은 사용하고 점유하는 이의 목적과 필요에 따라 달리 해석되겠지.
나의 주장이나 추억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평가는 여전히 내게 겸손함을 강요한다.
또 다시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여전히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하겠는가?
공사판을 벌리고 마감하면서 늘 자문하는 반성이다.
변하지 않는 구조와 퇴색한 시간의 무게는 늘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고,
약간의 변화를 담고서 스쳐지나가듯 회상하는 이 순간은 묵직한 잣대가 되어 나를 평가한다.
서둘렀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현실과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할 이유를 담아본다.
4. 평창에서 영월로...
장평을 지나, 고추로 유명하길 바라는 대화도 지나고 평창을 거쳐 멋진 길로 들어선다.
늘 이 길을 갈 때마다 언젠가 한번은 이 시원한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했던 길...
가파른 절벽에 기대어 적절한 강물이 푸르름을 더해주며 평화로운 광경을 선사하는 길.
<적당히 넓고, 적당히 멀고, 적당히 구불어지고... 참 평화롭다는 생각이...>
비슷한 풍광이지만 홍천은 물 건너편이어서 동화됨이 적고, 정선은 물이 좁아 약간은 급하고,
영월은 조망은 높지만, 도도한 넓은 강물에 긴장감이 적어 한아름에 담기가 벅차지만,
이 길은 짧다는 아쉬움만 뺀다면 생동감도 있고, 여유로우며 지극히 평화롭고 시원하다.
애써 추월한 차들이 다 지나칠 때까지 카메라를 둘러메고 끽연을 즐겨 본다...
머무르고 싶은 공간은 아니지만 지나치는 것만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늘은 길을 거닐며 풍광과 희롱하고, 세월을 늘려보는 그런 시간으로 족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찾는 일도 결국은 관계와 신뢰와 희망을 전제로 한다.
너무 지치고 의지할 곳 없다싶은 마음이 자꾸 자연으로, 시간으로, 물로 시선을 향하게 만든다.
아쉽지만 맑고 투명한 하늘을 눈에 담아보며 <영월>로 향한다.
평창도 영월도 깊은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곳이 아니다.
300m의 평창과 180m 전후의 영월이면 우리들에게 깊고 먼 곳은 높이가 아니라 거리 때문이겠지.
구불구불 넓혀지고 좁아지는 <원통재>를 따라 한참을 내달린다.
부분부분 공사 중... 길이 넓어지는 만큼 우리들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질까?
밋밋한 강원도 고갯길을 넘어서니 <스트로마톨라이트>란 이정표가 보인다.
어라??? 눈에 확 띠는 것은 어려운 지질학 용어가 아니라 <5억년>이란 이정표다.
5억년, 5억년...
나의 시침과 분침에 수억년이라는 나이테가 남아있을까?
반짝반짝 주유 경고등이 켜졌지만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영월 북면의 건열구조와 스트로마톨라이트... 이정표는 5억년인데 가까이보니 4억 4천만년전에서 4억 9천만년전 사이라고...^^ 백두대간은 융기라고 하는데 적도지역이 어떻고...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아쉬웠다...>
<건열구조>란 바다에서 조수 간만의 차이로 퇴적된 땅이 대기에 노출되면서 갈라지는 형태고,
스트로마톨라이트란 박테리아에 의해 형성된 퇴적구조를 지칭한 말로
이 곳 영월에서 발견된 이 암석은 우리나라 서해안의 퇴적구조와 다른 얕은 바다,
그리고 적도에서나 발견되는 구조와 비슷한 퇴적구조를 가진 4억9천만년전 퇴적층이란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밟고 있는 이 흙이 얼마나 오랜 세월을 담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바 없다.
저 풀들과 꽃과 나무의 수령과 생사와 쓰임새는 이해하면서 돌과 땅에 시간을 투과한바 없다.
다듬어진 돌, 인위로 만든 자연의 소재에서는 시간의 연원과 세월의 무게를 찾으면서,
정작 내가 밟고 숨쉬는 이 대지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시간의 깊이를 탐해본 바가 없었다.
웃기지 않나? 가공의 흔적과 미적 노력의 경주여부로 생동과 공간의 향기를 재단한다는 게?
이름이 없고, 내가 부르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세월과 시간의 연륜이 없지는 않을텐데,
무심코 지나치고 관심의 영역에서 자연스레 제외된 무생물과 자연은 훨씬 깊은 변화를 담고 있는데.
필요로 재단되고, 목적으로 거세되고, 관심으로 좁아진 나의 시야는 이렇게 빈약하다.
45억년, 지구의 한 먼지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나의 작은 마음은 정말 관념에 불과할까?
존재하고, 머무르고, 기억하고, 기억되는 거...
이름이 있어 소중하고, 인연이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애정이 있어 더더욱 절실할지도 모르겠다.
5. 영월 소나기재
새로 포장된 38번 국도를 외면하고 돌아선 옛길에서 <소나기재>를 만난다.
처음 이 길을 다녔을 때는 여느 고개의 구불거림을 비웃었었지...
이제는 많이 넓어졌지만 차는 적어졌고, 많이 펴졌지만 여전히 재밌는 길이다.
<선돌> 이정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고...
<영월 소나기재 선돌...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딱 한번...^^>
주차장의 많은 차들과 관광버스를 보니 이제는 많이 알려지고 다듬어졌다.
올라가는 길에도 목재 계단이 만들어졌고, 전망대도 세워지고...
와~~~ 소리가 절로 나는 선돌의 전망은 역시 한번으로 족하다.
좀 더 큰 스케일과 무리 짓지 못한 독불의 감흥은 역시 짧다.
물론 그렇다고 부족하지는 않다.
짧을뿐이지...^^
<10여년전인가 선돌의 전체 모습을 담고 싶어서 멀리 돌았다... 여전히 하나뿐이어서 아쉽다...>
높이가 70m 라는데(이것밖에 안 되나?) 먼 조망과 유유한 강물이 잘 어울어진 큰 돌...
내가 좋아하는 풍광이란 어쩌면 부분이고 순간인데
나는 늘 그런 감흥을 꽉 채우고 확대재생산 하기를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저 돌을 보기위해 꽁꽁 언 길을 넘어 강 건너를 찾아 본 적도 있었지...^^
3시간 반이면 도착했을 길을 7시간 넘게 돌아다녔다.
아마도 지금처럼 황폐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2시간 반만에 왔을지도 모를 거리...
오늘은 그렇게 고개를 찾아 좁은 길만 찾아 시간을 최대로 늘려봤다.
나의 늦음이 시간의 느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무거움을 길바닥에 조금씩 내려놓았는지 모르겠다.
<영월 동강... 참 좋은 곳...>
하루건너 한번씩 기름을 채우며 돌아다녔지만 마음은 자꾸 번잡해지고 몸은 작아지고.
별도 보고, 달도 보고, 바다도 보고, 시원한 바람도 맞았지만 마음은 휑하고...
어쩌면 이럴 때 거의 유일한 위안은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사람도 생각해내고, 없는 사람 곁에 불러서 또 그렇게 생각하고...
오르고 내림...
뜨고 짐...
변하는 하늘에 덧없는 시간들...
해결된 일은 하나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많이 가벼워진 느낌...
더 넓은 마음이 일의 무게를 작고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닐까?
길고 느린 시간...
흔적들은 변함이 없지만, 조금은 변화된 나를 찾는 여유가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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