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문공부

短상段상> 허허실실...081117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공격으로 이 싸움은 시작됐다.


同歸於盡


꽤 오래전 무협만화를 즐겨본 적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살수(殺手)는 늘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했지 ; 동귀어진(同歸於盡)

좀 천박하게 말하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막무가내 공격이다.

아주 단순하고 지저분하게 말하면 자포자기(自暴自棄) + 물귀신 작전의 그럴듯한 포장이다.


문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살수의 의도는 ; 나는 모르겠고, 너 죽는 꼴 구경 좀 하자는 거다.

지금은 살수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살수의 대리인과의 신경전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내줄 것인가만 고민해야 되는

고약한 덫에 걸린 불쌍한(?) 처지다.



投瓜得瓊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은, 지는 게 정상인 주인공은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내 반전에 성공한다.

죽어가는 살수에게 주인공의 극적인 한 마디 ; 내 팔을 주고, 너의 심장을 취했지...

(이쯤해서 죽지 않은 주인공은 정신을 잃고, 기묘한 인연이 그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것을 비교적 고상한 사자성어로 옮기면 “오이를 주고 구슬을 얻는다”는 투과득경이 된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이것은 항상 무협지에서만 존재하는 happy ending 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 얻겠다고 하는 거, 얻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

조금이라도 적게 잃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일 뿐,

애초 대리인과의 신경전은 얼만큼 포기할 것을 인정하는 가에 한정된 일방적 게임이라는 점이다.



進退兩難


철저히 오픈된 아군과, 끝을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의도.

이 얼마나 두려운가...

애초에 이 게임은 공격이 허용되지 않은 일방적인 방어, 얼만큼 적게 다칠 것이냐가 유일한 전략이다.

이 얼마나 불행한가...

정신 똑 바로 차린다고 별로 상황이 나아질 게 없다면 ; 이건 진퇴양난...


이 일이 아니어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설상가상(雪上加霜) 이런 출혈을 감내해야 하다니...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지만,

기다린다고 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새벽이 와봐야 상황이 나아질 것도 별로 없는 게 세상사다.



虛虛實實


별로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은 저울질이 끊이질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이 정도 내어주면 이쯤에서 끝날까? 그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게 될까?

내게 말 하는 것들이 엄포용일까? 아니면 선전포고일까?


진퇴양난의 시점에도 불구하고 자포자기할 거 아니라면, 여전히 유효한 방법은 투과득경이다.

전체를 바라보되,

원하는 것으로 한정시키고,

불필요한 확산은 사전에 차단하고,

상대방은 만족시키되, 피해는 최소화 하는 거...


똑똑하게 보일 필요도 없고, 불필요하게 멍청해 보여서도 안 되고,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즉답과 단정을 피하면서, 숨길 것과 드러낼 것을 구별하고...

결국 살수의 대리인과 싸움에서 내가 택할 것은? 허허실실...



문제는 이런 나의 심리를 그들은 정확히 궤 뚫고 있겠지.

내 머리 꼭대기에서...

이번 일이라는 게 내게는 일회성 경험에 불과하겠지만,

그들에게 이런 일은 직업이고 일상이고 자신들의 생이니까...


음~~~

결론은 하나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내 스스로에게는 한번쯤 혹은 되새기며 주문하지만, 남들에게 권할 말은 아닌 것 같군.


그리고...

누구를 원망할지,

피해를 감당할 만한지,

그런만큼 마음을 비울 수 있는지,

결국 사람들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돌아서고, (철저히) 결론만 보겠지만,

타협과 절충과 조정까지 가는 답답한 시간이 이런 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현재 나의 역할은 타협과 조정의 테이블에 앉는데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