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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공부

동해바다에서의 헛생각> 공자의 새빨간 거짓말...090112

* 글과 사진은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냥 올리기엔 너무 맹숭해서...^^

* 한 장씩 꽂감 빼먹듯 올리려다가 밀린 사진이 너무 많아서...ㅋㅋ

* 먼 길 나서면(생각해보면 맨날 먼길만 다니지만...) 그냥 돌아오지 못한 버릇도 고치긴 고쳐야 하는데...ㅠㅠ

 

 

<서울 사무실에서 보면 사진이 훨씬 어둡다... 모니터 차이인듯...ㅠ 해서 밝은 사진 하나 더 추가한다...^^>

 

 

 

1.


子曰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인불지이불온)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논어(論語)의 첫장 학이편(學而編)의 첫구절이다.

그리고 이 말을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해석했다 ;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 남이 알아주지 아니해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과연 그럴까?


머리라도 식히고 싶은 어느 날,

도대체 세상 살아가는 재미중에 제일이 무엇일까 고민해봤다.

아니, 괜히 세상일 생각할수록 답답한데 내가 할 일은 특별히 없는 것 같고,

특히나 요즘 들어서는 그럴수록 짜증이 더 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스릴 <주문>을 찾았다.

 

<절대 나 아님...^^ 가끔씩 바다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거친 파도에 잡념을 쓸어내고, 우르릉 굉음에 천지만물을 일깨우며, 때로는 빛나는 포말에 부서지는 부드러움에 취할만한 바다... 바다에서 주문을 찾는다...>

 


게다가 년말년시, 왠지 진진해져야 할 것 같은 시간의 관습은

여러 측면에서 나를 <반성모드>로 전환시켜야 할듯한 강요가 없었던 것도 아닌바,

어차피 세상일에 달관하고 관조할만한 수양이 덜 되었다고 인정하고

최소한, 흔들리지 않아도 좋을 거라는 <낙관을 위한 위로>가 필요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2.


<너 자신을 알라>는 쏘 아저씨의 가르침은 좋은데,

<니가 인생을 알어?>라고 반문하시는 신구아저씨의 씨니컬한 웃음을 생각하면

애초에 알기도 어려운 물음이지만, 특별히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만 믿고 너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마호멧님의 외침은,

<신은 죽었으니 너를 믿어>라는 니체씨의 간절한 호소에 희석되다 보니,

역시 세상은 <니나 나나 믿을 놈 하나도 없는겨>라고 말한 넘버3의 고백이 진솔해 보이고,


<집착하지 말고 베풀어라>는 부처님의 충고도 돌이켜 보고,

<원수를 사랑해도 좋다>는 예수님의 허락도 받아 보았지만,

그보다는 <왔노라, 봤노라, 이겼노라>에 목숨 건 시저의 자신감이 더 매력적이고,

 

 

남들은 마누라 빼고 다 바꿔 좋아졌다는데, 나는 ;
허구한 날 <자신을 경영하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가계부 경영도 빠듯하고,

매일 신발 벗으며 <I can do it>을 외쳐봐야 다람쥐 체바퀴 돌듯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고,

<비전을 가진 낙관과 도전의 열정이 꺼지지 않으면> 다 될 줄 알았더니 그도 신통치 않고,

아무튼 나이는 네자리수 계산이라 뺄셈도 복잡한데 머리와 마음은 단순해지지 않는 시간이다.

 

 


게다가 애시당초 거짓말을 넘어선 어거지 <장미빛 환상>에 취해본적도 없지만,

한치 앞도 못 보면서, 국가 정체성 어떻고,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삽질만 잘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야기도 신물 나는데,

미네르바라는 올빼미 한사람 보다 못한 나라꼴을 보니 정말 왕짜증나는 세상이다.

소잡는다고 살충제 들고 설치더니, 이젠 부엉이 잡는다고 도끼들고 나대는 꼴이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넘어 분노와 허탈만 안겨주는 게 작금의 현실...




3.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웃집 사돈어른의 외사촌 당숙쯤 되어 보이는 <공자> 아저씨를 생각하니

갑자기,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마음이 진정되는데,

그게 학이편의 첫구절 3줄이었다...^^


배우고 익히면, 벗이 찾아오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래~(이 시점에서, 무릎을 한 번 탁! 쳤다...^^)

오이냉채에 된장국 끓여놓고 손주들 웃음이나 바라보는 나이가 아닌지라

추사 아저씨의 깊은 깨달음을 내, 따를 수는 없지만,

공자 아저씨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조금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던 마음이었지.


한번, 두 번...

생각해볼수록 이거 맹랑한 이야기다.

아니~~~

한 열 번쯤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

이거 새빨간 거짓말 아냐???!!!!!

헉~~~

어찌 이런 속보이는 거짓말을 우리 공자 아자씨는 이리 편하게 했을까?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이가 바로 군자 아닌가...~~~???

(지금까지의 해석이 이렇다 치고...)

한번 거꾸로 가볼까?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공자만큼 열심히 보따리 싸들고 돌아다닌 사람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전무할 정도로 발품을 많이 판 사람이 바로 이 양반이다.

때문에 그 양반만큼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도 없었고,

자신의 위대함을 몰라 준 세상을 향해 거리낌은 있었지만 지침없이 왕들을 찾아 다녔다.

결국 그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결론을 느즈막이 내리고서야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은퇴한 유명강사처럼 사설학원 원장으로 평생을 마치게 되었지.

이게 공자님의 첫 번째 거짓말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찬 이 양반에게 멀리서 찾아 온 벗이 있었을까?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알아준 벗이 누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의 사설 학원에 찾아 온 이는 제국의 왕들도 아니요,

자신과 경쟁해야만 했던 제자백가의 걸출한 사상가들도 아니었다.

다만, 그처럼 입신양명을 바라거나 세상에 나갈 뜻을 가진

어쩌면 토플점수 부족으로 MBA에서 탈락하거나 버림받은 젊은이들이 유일했겠지.

그 양반에게는 그럴만한 벗이 없었다는 게 두 번째 거짓말이다.


세상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찼던 이 공자님께서 새로이 배워야할 것들이 또 있었을까?

물론 철제 농기구들로 농업혁명은 일어났는데 이에 마땅히 대처하지 못한 춘추전국 시대,

내용은 바뀌었는데 껍데기는 주나라의 신화를 버리지 못한 그 시대에 확인되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일정한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갖추었을 때, 그 때 지켜야할 도리의 실천이었다.

결국 그 양반은 확인하지 못한, 혹은 알지 못한 즐거움을 논했다는 세 번째 거짓말을 저질렀다.

 

<거짓말과 거품... 그들의 공통점은 달콤함과 부드러움?>

 


음~~~

이렇게 말하면 우리들의 공자아저씨는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분명하다.

오직하면 어떤 이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까지 선동을 했을까?

(그런 선동을 백주대낮에, 인터넷도 아닌 책으로 써 낸 이는 왜 안 잡아갈꼬? ^^ 각설하고...)




4.


깊이를 알 수 없는 동해바다에 파도가 치고,

처량한 진지무재는 매서운 바람에 맘이 춥다.

뽀뽀하는 연인들, 무게 잡은 아저씨, 그리고 팔짝 팔짝 뛰노는 아이들...

바다와 자연의 너른 품은 그렇게 만상의 인간들에게 여유와 낭만을 꿈꾸게 만든다.

 

<추울까? 좋을까? 둘 다? ^^>

 


생각해보면, 공자 아저씨는 참말로 세상사는 맛에 대해 진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평생에 자신이 경험해 보지는 못했으나,

한번쯤이라도 경험해 봤으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도, 그가 쓴 것은 아니지만 <논어>라는 책자의 맨 앞, <첫 구절>에...

(그렇게보면 맹자를 비롯한 그 양반의 제자들은 핵심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건 확실하지?)


낯간지럽게 쉽게 고백할 수는 없지만,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묵묵히 내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말...

참 멋지지 않나?

돈이 생기고, 지위가 올라가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하려고 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임에 분명하다.

 

 


늘 선녀의 강림을 바라듯 낭만적 꿈에 젖은 사춘기 마음이지만,

내 맘을 알아주고, 나를 이해하며, 미래의 나를 믿어줄 친구가 있다면,

이처럼 즐겁고 귀한 인연이 어디에 있겠는가?

뜻이 통하고 마음이 열리면, 남는 것은 웃음이며 사랑이며 쾌락이 아닐까?

그런 벗이 있다면, 만났다면, 함께 거닌다면 그 보다 보기 좋은 일은 분명 없을 것이다.

 

<너무 예쁘지 않는가? 왜 이런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까...>

 


배우고 실천하면, 또는 실천을 통해 배운 것을 확인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習을 복습(復習)이 아니라 실천(實踐)이라고 지적한 신영복 선생의 강론이 옳다고 본다)

배운대로 실천하고, 또 실천을 통해 새롭게 배운다면 그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겠지만, 그걸 실천하고 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 없겠지.

세상의 가르침이 나의 지식과 일치하고, 나의 마음과 선택으로 통할 수 있는 학습(學習)...

살아가는 과정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에게 배움과 실천은 출발이고 결실이 될 수 있겠지.

가끔,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오묘한 즐거움을 주는지, 우리는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5.


부처님, 예수님, 마호멧과 동기동창 반열에 오르신 공구 아저씨의 논어(論語)...

까지껏, 그 두텁고 어려운 한문 다 읽을 필요도 없다.

아니, 하고 싶은 말 책 첫머리에 딱, 세줄로 요약해 놓았는데

굳이 돋보기 쓰고 옥편 찾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일도 없다.

다 때려치우고 세줄만 기억해도 된다.

외워라~ 외우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당신은 나의 네 번째 거짓말에 속는 셈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시련의 세월.

이제 2회전쯤에 접한(무승부 없이 9회전으로 끝난다는 걸 가정한다면) 2009년 정월.

공자님의 새빨간 거짓말을 되새기며 일출을 맞이한다.

 

<너무 뜨거워서, 너무 빨개서 일그러진 태양... 보이는 것과 진실은 다를 때가 많다...>

 


어차피 내가 그 양반의 수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속는 셈치고, 싫어도 다시한번 흉내내 보기로 했다.

올해는 배우다가 가끔씩 실천하며,

좋은 친구와의 짜릿한 만남도 기다려보고,

남이 알아주던 말든, 힘들더라도 어떡하든지 버텨야만 될 듯싶다.

꿋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