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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천대교> 바다가 보고싶다...091112

 

 

내일, 모레...

회사 행사가 있다.

왠지 자신이 없다.

몸이 힘들어서겠지?


하루의 동선이 너무 짧다.

본사도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모텔(motel)에서 모델(model house)로...

기껏 움직여봐야 시청주변의 타사 모델하우스들...

그나마 그것도 귀찮아한다.

아니, 모델 3층 사무실에서 1층 내려가기도 귀찮다.


힘들다는 건 핑계를 만들고,

핑계는 게으름을 합리화시킨다.

합리화된 귀차니즘은 이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렇게 무기력해진 나는 나의 육신을 흐트러놓고,

그리곤 이제, 정신을 좀 먹고 있다.

악순환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싫어하는 운전이 내겐 휴식의 시간이었던듯 싶다.

혼자만의 시간...

전화가 오지 않으면 라디오가 가공한 세상 속 정보와

누적된 시간이 만든 계절의 변화를 늦게나마 추적할 여유가 있다.

늦으면 늦은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대로...


굳이 하루를 계획하고, 남은 시간을 돌이켜 보지 않더라도

운전하는 시간만큼은 간섭이 없고,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만큼은 리듬을 끊을, 계획되지 않은 손님이 없다.

그냥 온전히 내 시간이다.


단지, 시간이 휘발유와 함께 증발하고

운전대에 사로잡힌 손에 또 다른 무언가를 끄적거릴 수 없다는 한계가 있을 뿐.

그럼에도 공간은 이동하고

내 맘도 움직이고

내 시선은 고정되지 않고 지나치는 많은 것들과 시담(示 혹은 詩談)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가 만들어낸 짧은 동선이 운전하는 시간을 포기시켰다.

그래서 편해졌을까?

훨씬 여유로워졌을까?

자유로운가?

아니다 !

더 빨리 지치고, 몹시 피곤하다...




나는 돌아다니는 것과 앉아 있는 것에 균형이 필요한(?) 사람이다.

적당히 앉아 있고, 적당히 돌아다녀야 발란스가 맞다는 걸 경험적으로 느낀다.

근데, 요즘은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혹은 시간을 아낀다는 핑계로 앉아만 있다.

의욕이 없어지고, 손은 무뎌지고, 머리는 텅 비고, 가슴은 차갑다.

사랑, 열정, 공상이 폐쇄되어 버렸다.


이건 혼자라는 이유,

대화의 부재,

업무의 과중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결핍이 아니다.

내 스스로 손발, 가슴과 머리를 묶어버린 데 연유한다.

그래서 오늘...

바다로 나간다.


자유구역청에서 회의가 있고,

곧바로 늦은, 그래서 차가워진 바람과 무거워진 하늘이 나를 거부하고 있지만

차는 인천대교로 향한다.

물~~~ 결을 보고 싶어서리라.




참 맘에 드는 다리다.

똑 같은 목적의 영종대교가 있고,

비슷한 기능의 서해대교가 있고,

섬을 잇는, 강을 건너는 많은 다리들이 있지만

인천대교는 남다르다.


영종대교는 다리만 있고,

서해대교는 길일 뿐이다.

망망대해를 꿈꾸는 바다 위 다리들이지만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주어진 목적과 기능에 충실할 뿐, 대화가 없다.


다른 다리와 길들?

양수리와 한강변 도로들은 강을 보듬고 있다.

강이 감싸 안은 나무와 바람과 하늘이 산으로 향한다.

편하고 부드럽지만 장중한 트임은 없다.


한강을 건너는 많은 다리와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물론 물 옆으로, 물을 가로지른 길이고 다리다.

충분히 길거나 넓지 않지만 마음에 위안을 주는 길들...

그러나 애초 물을 막아 편이를 위해 만든 길들이니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인천대교는 역시 다르다.

직선이 아니어서 좋고, 수평으로 밋밋하지 않아서 좋다.

배가 드나들 높이와 해류가 지나갈 속도만큼 높아지고 구부러져 있다.

목적과 구조가 외형과 통일된 건축은 불필요하게 인위적이지 않고,

무식하게 장대하지 않다.

자연스러운 속에 변화가 있고, 단순함을 빗나간 부드러움이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

송도에서 영종도로 들어가는 길,

맨 높은 주탑에서 평편한 균형을 잡기 이전의 곡선부위 내리막길이다.

그 곳에서는 바다의 물결이 보이고,

물결이 붙잡은 바다 바람이 일렁인다.

야릇하게 굽어진 내리막길은 짧은 순간이나마 내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생각보다 인천대교는 짧다.

세계 일곱 번째, 22km 하지만, 지나는 길은 순간이고,

머무는 공간은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라의 물결은 오랫동안 내 머릿결을 흔든다.

인천대교를 좋아하는 이유다.

 



코뿔소 코처럼 생긴 인천대교 기념관은 아직도 용접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잘 아는 이가 만들고 있는 철제 구조물이다.

좋은지 나쁜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곳에서 바라본 인천대교가 훌륭한 전망을 가지지 못하리란 것은 애초부터의 우려다.


오히려 인천대교를 인천대교처럼 보려면 다리의 초입이나,

앞으로는 폐쇄될 해안도로의 한 지점을 찾는 게 낫다.

움직이지 않은 시선으로, 흔들렸던 물결을 추억하는 게 좋다.

바람이 있고, 물결이 있고, 바다가 보였으므로...


망망대해의 시원한 풍광에 거친 파도소리, 그리고 잡히지 않을 바람을 잡으려면 동해로 가야한다.

아기자기한 상큼함에 포근한 옥빛, 그리고 꿈꾸는 호젓함을 느끼려면 남해로 가야한다.

먹먹한 뻘밭에 황금빛 낙조, 그리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면 서해가 좋다.

물론, 인천대교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조그만 바다와

조각난 물결,

그리고 바닷물로 끌려들어가는 짧은 설레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천대교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립거나 마음을 의지하고픈 이들이 생각나는 순간...

나를 봐주거나,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들이 그리운 순간,

인천대교에서 날아간 내 마음은 서해와 남해와 동해를 돌아

아직은 무겁지 않은, 아직은 아리지 않은 바람으로 돌아온다.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이 곳...

그 마음을 받아주는 인천대교로 갔다.

운전이 가끔 필요한 이유다.

역시 나는 돌아다녀야 생기를 찾는다.

사람이 그리워져야함을 절절히 느낄 때...

바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