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제 원종대사 부도탑으로 알려진 보물(7호) 원종대사 혜진탑으로 가 볼까?
전체적인 양식에서 국보부도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보물부도는 전체적인 미감이 많이 느슨하다.
물론 유려한 기단부의 조각들과 부드러운 구름무늬, 귀꽃에 스민 정성은 부족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많이 부드러워지고 유약해지고, 세부적인 장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슷한 형태를 갖췄으면서도 호방한 기상은 사라지고, 생동감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모방과 재현의 한계일까?
나는 결코 모방과 재현을 창작과 원형의 하위개념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조와 독창성이란 모방과 추종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창작과 창조란 대부분 모방의 차원을 바꿨거나 변화의 격을 높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방과 카피는 하위개념도 저급한 개념도 아닌 창조의 어머니가 되고, 잣대가 되는
말 그대로 창조를 위한 토양이 되고 자양분이 되는 그런 긍정성과 적극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고달사 국보부도... 원감국사 부도로 추정할 수 있다...>
<고달사 보물부도... 원종대사 혜진탑이다... 두기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금방 느껴질 거 같다... 사진을 찍은 거리의 문제가 있겠지만 실제 크기는 국보부도가 혜진탑보다 크고 우람하다... 두드러진 차이는 옥개석의 크기와 넓이 / 이 차이로 인해 하나는 진중함과 장중함을 함께 갖출 수 있었고, 또 하나는 유약하고 부드럽게 보인다 / 게다가 보물부도는 애매한 크기로 줄어든 옥개석 때문에 상승감과 날렵함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또 하나는 기단부의 차이 / 하나는 굵고 꽉 짜인 조각으로 유려한 곡선에도 힘을 갖췄지만, 보물부도는 화려하지만 힘을 갖지는 못했다... 그리고 기단부 상대석이라 할 수 있는 앙련의 형식은 같지만, 하나는 적절한 비례를 갖춘 반면, 보물부도는 불필요하게 커지면서 기단부의 안정감을 저해하고 있다... 기단부 하대석에 하나는 복련으로 치장했는데, 보물부도는 사각의 판석을 끼워넣어 장식미를 강조했지만 기단부의 일체감이 많이 흐트러졌다... 하나씩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다...^^>
사실, 우리가 말하려는 창작이 모방에 우월하다는 선입견은 <최초>에 대한 선망과 욕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창작은 모방에 우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게다가 1등과 금메달 이외에는 기억하지 않는 우리들의 풍토와 사회적 분위기는 그걸 부채질 한다.
그러나 최초와 모방, 혹 변형은 선진과 후진, 1등과 2등처럼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개념들은 서로를 서로에게 의지하는 동전의 양면처럼 일방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최초가 유의미하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잣대가 되고, 기준이 되며, 비전과 가능성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초가 힘을 가지는 경우는 선도성과 주도성을 함께 갖출 때만이 진정한 힘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최초는 무수히 많지만, 세상을 주도하는 최초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있다는 자체가 힘이 있는 게 아니라, 변할 수 있는 가능성과 성장할 수 있는 개연성으로 가시화될 때,
최초는 진정한 의미의 <선도성>을 갖추는 것이고, 외부와 주변을 <주도>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원종대사 혜진탑 부분...>
그런면에서 나는 최초에도 선악이 있으며,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최초와 이끌어 주고 함께 공생하는 선도는 분명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역사와 세상은 최초의 선도성과 주도성만 강조한체 최초에 의해 너무 많은 질곡과 억압을 받고 있다.
최초가 긍정적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유할 <포용력과 가능성>을 함께 갖출 때이다.
물론 이점은 최초를 만든 이의 너그러움보다, 최초를 추종하는 이들의 노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만.
아무튼 창조, 혹은 최초와 모방에 접근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열등과 우월의 고저가 아니라 <차이>의 인정이다.
최초는 어차피 다방면의 모방과 차용과 변형의 총합이며, 분절이며, 성숙의 결과이다.
때문에 차이에 대한 우리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포용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선도성과 주도성이 갖는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대한 <영향력과 가능성>에 대한 넓은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점들이 배제된 창조, 혹 최초와 모방의 강조는 해체와 고립과 아집을 위한 변명과 과장에 불과하다.
3D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영화 <아바타>는 결코 최초의 시도이거나 유일무이한 창작이 아니었다.
터치폰으로 디지털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아이폰>의 방식은 수년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방식이며,
아바타에 밀려 흥행성적 2위를 기록한 영화 <타이타닉>은 무수한 재현과 반복의 결과에 불과하다.
컴퓨터도 워크맨도 핸드폰도 라디오도 모두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이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관심의 정점에 서있는 것은 <선도성>과 <주도성>의 문제이지,
창작과 창조와 독창성 등은 시장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과장일 뿐, 모방의 저급함을 증명하는 단초는 아니다.
또 다른 예로 쇼트트랙의 강국으로 군림하는 우리들의 가장 보편적인 전략은 <따라잡기>였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원종대사 혜진탑의 가치를 모방이란 이유로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고,
변형이란 이름으로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고 싶지 않다.
모방이란 형식에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적극성이 있는 것이고
변형과 추종, 재현이란 실천에는 전통을 중시하고 보존하려는 방어심리가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연출에서 주요한 테마인 <오마쥬>는 원형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인정하는 기법이 아닌가.
내가 모방과 차용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는 이유는 시대의 흐름과 사상의 변화에도 보존되는 가치와
각인되고 학습된 익숙한 양식에 대한 해석이 없이는 어떤 창조와 창작도 무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옥개석-지붕돌 처마 밑의 비천상이 없어지고 구름무늬-바람무늬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모방과 재현은 무게에서 떨어지고, 매너리즘의 지루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분명 국보부도에 비해 이 보물부도는 미감에서 가벼워지고, 유약해지고, 수려함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가 모방과 재현을 아쉬워하는 이유는 더 이상의 선도성과 주도성을 발견할 수 없으며,
장식적으로 후퇴하거나, 전체적인 균형과 비례가 참신하지 못하고, 나태하거나 노쇠해짐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모방이, 기존 양식의 고집스러운 전통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로 만족해야지
好不好를 잣대로 답습과 모방의 재현을 정성의 부족이나 열정의 나약함으로 그림자만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원종대사를 위한 존양에는 역동적인 힘으로 넘쳐나는 귀부와 이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종대사를 기리는 마음에는 긴장감 넘치면서도 거만하리만치 당당한 부도비와
조심스러우면서도 유연한 부도탑이란 상반된 미감의 훌륭한 경로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 조각 하나만으로도 원종대사 혜진탑비는 변형과 모방과 재현과 차용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충분히 살렸다... 정면을 응시하던 거북이 얼굴을 돌리고, 운룡문은 장식적으로 대체되고... 후대에 이것을 조각한 석공과 기획자에게도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 조금 다르게, 그러나 비슷하게...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그러면서 그도 새로운 창조와 참신한 혁신에 대해 많은 상상을 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을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지침일테니까...>
최초로 만들어진 국보부도가 그만큼 좋은 게 사실이지만,
이 원종대사 혜진탑도 그리 소홀히 대할 부도탑은 아니라는 생각에 불필요한 말들이 너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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