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 극락전과 오층석탑 - 장중함과 유려함의 조화...
천왕문을 들어서자마자 두 눈에 꽉 차게 들어오는 게 극락전과 오층석탑이다.
느티나무와 소나무에 살짝 가려진 장중한 스케일은 무량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만수산자락을 떠난 이 순간까지 오롯이 두 개의 건축만으로 무량사를 기억하게 만든다.
이미 깨져버린 건축배치의 아쉬움이 적지 않으나, 어쩌면 무량사는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무량사 극락전(보물 356호)과 오층석탑(보물 185호), 석등(보물 233호)... 아무리봐도 극락전의 자태가 가장 수려하고 화사하게 보이는 방향은 천왕문을 막 들어서면서가 아닐까 싶다... 건물아래 2~3m의 기단부만 있었어도 훨씬 더 살아났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참 멋진 건물이다...>
먼저, 무량사 극락전은 참 잘생긴 건축물이다.
크고 높은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위압감이 없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안정된 비례도 뛰어나고, 경쾌하고 날렵한 느낌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일층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이층처마의 날렵한 반전은 거슬림없이 시원시원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맵시와 극적인 곡선을 가진 고건축물일지도 모른다.
무량사 극락전이 화려하고 경쾌하면서도 장중하다면
그 앞에 서있는 오층석탑은 진중하고 두툼하면서도 넉넉함을 잃지 않았다.
목조건축의 가벼움은 묵직한 석탑의 무거움으로 상쇄하고,
이층전각의 장중한 스케일에 오층석탑의 높이가 받쳐주니
무량사 극락전은 오층석탑을 거느리고 있어 한편으론 나눠지고, 또 한편으론 집중되는 효과를 얻는다.
주존인 극락전을 위해 오층석탑은 그 존재만으로 만족할 뿐, 아무런 장식도 없고 화려함도 배제했다.
<무량사 오층석탑과 석등... 이 탑이 만들어진 시기가 범일국사의 사후, 신라말 고려초라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구산선문이 자리하던 시점부터 가람배치, 절집을 만드는 중심에는 주법당에 비로자나불이 조성되고, 석탑의 비중은 약해지거나 없어지고, 부도탑과 부도비가 가람의 중심에 배치되는 시기이다(고달사가 대표적이겠지?) 그런데 무량사에는 부도가 없고, 석등과 석탑이 가람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무량사 오층석탑은 결코 작지 않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제 대접을 못 받고 있는지 모른다.
넓고 낮은 지붕돌과 퇴화된 층급받침, 그리고 넓어진 기단부 판석과 두드러진 안정감은 이 탑이,
정림사탑-왕궁리탑의 계보를 살린 백제탑의 외형과 신라탑의 격식을 갖춘 고려초기 탑임을 설명한다.
<오층탑 일이층 몸돌과 지붕돌의 비례... 지붕돌 전각부분과 이층 몸돌을 자세히 보면 작은 구멍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저 구멍마다 청동제 장식품이나 풍경들이 달려 있었다면 무량사 오층탑의 느낌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무량사 오층탑 기단부... 상주 화달리 삼층탑의 기단부 판석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돌출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기단부의 안정감은 훼손됐지만 탑 전체적으로는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일층 탑신의 지붕돌이 기단부보다 넓은 정림사탑이나 왕궁리탑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며, 고려식 탑의 특징이 되기도 하는 체감률이다...>
그러나 백제계 오층탑의 절제된 직선이 사라지고, 신라계 삼층탑의 정제된 비례가 깨졌고,
지붕돌은 부드러운 곡선을 차용하고, 넓어진 기단부 판석으로 인해 변화된 미감은 어딘지 가볍다.
역시 나는 긴장된 직선과 정연한 비례, 그리고 충분히 숙성되고 다듬어진 이전 시기의 탑에 눈이 가나?
<여러각도에서 바라본 오층탑... 탑의 높이가 극락전과의 비례만이 아니라, 주변 산세의 능선과 잘 조화되게 보인다... 그러나 탑의 전체적 느낌이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차분하여 생동감과 활력을 갖지 못한게 많이~ 많이 아쉽다...>
그래서 그런지, 무량사 오층탑에는 긴장감이 없다.
얍상하거나 날렵하진 않지만 어딘지 가볍고, 편안함은 있지만 정제된 맛이 없다.
넉넉하고 느긋한 마음은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담기에는 너무 풀어져 보이고,
웅장하고 높다란 크기로 주변을 호령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깊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오층탑은 홀로 군림하는 게 아니라 극락전에 의지하고 극락전을 호위하는 느낌이 드는 걸까?
무량사 오층탑이 온전하게 보일 때는 역시 극락전의 화려한 맵시와 어울릴 때이다.
어쩌면 몸돌들에 남아있는 작은 구멍들에 장식했을 또다른 장치가 잊혀져 드러난 아쉬움일지도 모르지.
각층 몸돌과 지붕돌마다 남아있는 네다섯개씩의 구멍들에 청동풍경이나 장식들이 있었다면
오늘날 내가 느끼는 무량사 오층탑의 허허로움은 화려함이나 근사함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잠시의 상상만으로 그 온전한 형태를 추적하지만, 나의 빈약한 상상의 한계는 꼭 이만큼...
무량사의 중심은 극락전이니만큼 오늘은 건축쪽으로 말을 옮겨본다.
<자세히보면, 노반에 3개, 오층몸돌에 4개, 사층몸돌에 5개, 삼층몸돌에 6개, 이층몸돌에 7개의 구멍이 나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멍수를 맞추기 위해 이층 몸돌 부재는 각각 1/2의 넓이가 아니라, 한쪽에 3개, 다른쪽에는 4개의 구멍을 뚫을 수 있도록 부재의 넓이가 다르게 가공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지붕돌의 전각부분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없이 뚫려있는 구멍을 보면, 처음부터 무량사 오층탑은 풍경 등의 장식이 설계단계부터 기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 극락전을 중심으로, 무량사의 가람배치와 건축적 미감, 그리고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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