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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무량사4> 미륵전, 각황전, 팔상전, 대웅보전과 극락전의 맵시 비교...1007

 

 

무량사 극락전 3 - 미륵전, 각황전, 팔상전, 대웅보전과 맵시 비교...

 

아무튼 불상의 크기와 종류를 떠나 동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의 배치와 구조를 조금씩만 살펴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주제로 삼고자 하는 지붕의 처마선과 건축물의 맵시를 중심으로,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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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팔상전...>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 끝나는 시점에 만들어진 법주사 팔상전과 대웅보전은 규모의 건축이다.

팔상전이 세로의 건축이라면, 대웅보전은 가로의 건축이며, 상호미감도 이질적일만큼 상반된다.

 

<법주사 대웅보전... 이 건물은 보면 볼수록 편안해지고, 기분 좋은 미감을 갖췄다... 정림사탑, 석가탑에서 볼 수 있는 직선에 최소의 반전만을 허용하여,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눈 맛을 느끼게 만든다... 아쉽다면 너무나 차분하고 정연하여 극적인 생동감이 없어졌다는 점이고... 이런 건축물은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없는 반면, 두고 두고봐도 지루하고 않고 새록새록 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사람이나 모든 게 그렇지만, 첫눈에 반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늘 그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를 느끼게 만드는 그런 깊이가 중요한 게 아닐까??^^  > 

 

 

팔상전이 적극적이고 화려한 곡선을 사용했다면 대웅보전은 단정한 직전에 최소의 반전만 인정한다.

그래서 팔상전은 지나치게 들떠있어 화려하다면, 대웅보전은 지나치게 차분하고 담백한 맛이다.

 

 

그런 이유로 팔상전은 높이만큼의 상승감이 없고, 대웅보전은 크기만큼의 당당함이 없다.

 

 

 

비슷한 건축대비를 이룬 곳이 금산사의 미륵전과 대적광전이다.(무량사도 이런 배치가 아니었을까?)

 

<금산사 미륵전...>

 

삼층전각 미륵전이 세로-높이의 건축이라면, 단층전각 대적광전은 가로-길이의 건축이라 할만하다.

여기서도 미륵전은 팔상전보다는 덜하지만 유려한 곡선을 살리고 있고, 대적광전은 정연한 맛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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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대적광전... 본래 보물 476호로, 1635년 미륵전과 함께 준공된 것으로 보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건축물 중 하나였으나 1986년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되었다... 또한 내부에 안치된 5불 6여래는 민간에서 믿은 부처의 모든 형상을 담고 있다할 정도로 꽉 차있다... 사진은 97년 찍은 것이어서 많이 흐리다...>  

 

 

그 이후 만들어지는 것이 무량사 극락보전인데, 규모는 작아지고, 곡선도 많이 절제되기 시작한다.

이층 몸체가 훨씬 안정적으로 줄어들면서 극락보전은 법주사나 금산사와 전혀 다른 미감을 드러낸다.

 

 

법주사 대웅보전에 비해 날렵하고 화사해졌지만, 팔상전처럼 가볍지 않아 당당함을 잃지 않았고,

금산사 미륵전의 웅장함과 생동감은 사라지지만, 마곡사 대웅보전보다 산뜻한 비례를 갖추고 있다.

 

<금산사 미륵전...> 

 

 

 

또 하나의 이층전각인 마곡사 대웅보전은 자체적인 완결성보다 대광보전과의 조화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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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대광보전과 대웅보전... 이 시기에 만들어진 가람들은 넉넉한 마당에 굵고 크고 높은 건축으로 구성 되었다...

 

 

수많은 가람에서 특이한 배치중 하나로 꼽히는 마곡사는 대웅보전이 대광보전 뒤에 자리잡고 있는데,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유도를 위해 인위적으로 직선을 비튼 折線(절선)축 배치를 갖췄다.

 

 

그러나 마곡사에 들어서는 순간 보이는 모습에 집중하다보니 이층전각으로서의 완성도가 깨졌다.

안정감과 당당함에서 이 마곡사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층전각이 화엄사 각황전이다.

 

 

 

사실 화엄사는 부석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처럼 몇줄의 설명으로 단순하게 이야기할 절은 아니다.

금강문-천왕문-보제루-대웅전의 직선축을 갖추면서 각황전-원통전/영전/대웅전의 직교축도 있고,

중정구조의 앞마당도 있지만 이중 기단으로 변화를 두었고, 거기다 사사자탑이 있는 승화공간도 있다.

직선축에 간결한 중정구조이면서 다양한 변화로 주변과 어울리는 한국적 가람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화엄사는 대웅전과 각황전이란 주요한 축을 가진 가람배치다... 그런만큼 그 공간과 건축을 즐기려면 다양한 변화를 느껼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한 곳이다... 건물을 바라보고, 또 건물이 바라보는 곳을 느껴보고... 극히 단순한 것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는 풍부한 시선을 갖췄다는 반증이 아닐지... 화엄사 정도의 가람배치라면 최초의 기획자가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포인트를 주었는지 찾아보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지겹지 않은 그런 공간이다...>

 

 

여기서 직교축으로만 이야기하면, 각황전은 높이의 건축이 되고, 원통전/영전/대웅전은 길이의 건축이 된다.

그래서 각황전은 직교축 가람배치에서 중심건축이면서 대웅전을 보좌하는 부속건축물이란 양면성을 갖는다.

 

<각황전 왼편의 원통보전, 영전, 대웅전 등... 크고 높고 웅장한 각황전 직교축으로 높고 낮은 건축물들이 리듬을 가지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각황전을 살리고, 또한 배경이 되는 주변 산세의 리듬속에서 각각의 건출물의 규모와 높이를 조절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눈썰미에 대단한 안목을 갖춘 기획자였음을 생각할 수 있다?... 지어진 결과가 그랬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을 했을까?>   

 

 

 

화엄사 각황전을 바라보는 위치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들어서자마자, 또 하나는 대웅전 앞마당에서...

대웅전 마당에서 보이는 각황전은 당당하고 웅장하지만, 근엄하고 엄숙한 맛이다. 맛배지붕 건축처럼.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각황전...>

 

그러나 팔작지붕을 선택한 각황전의 제맛은 아무래도 보제루와 적조당 사이를 통해 들어갈 때가 아닐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하부석축 기단부와 계단을, 각황전과 하나로 묶어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석재의 색감이 가볍기는 하지만, 돌이라는 그 질감으로 인해 안정적인 높이와 체계를 갖추게 되고,

또 계단이라는 장치가 있어 각황전은 그 크기에 비해 둔중하지 않으면서, 웅장한 맛을 잃지 않는다.

애초 건축은, 구조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단과 뒷 배경, 그리고 좌우배치와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화엄사 중심마당에 진입하면서 바라본 각황전...>

 

아무튼 50년의 시차가 있지만 각황전은 궁궐건축의 근엄함과 규모의 당당함을 맘껏 뽐내는 건축으로,

길이와 넓이만큼 차분하고 엄숙한 압박감이 있지만, 작은 반전으로 인해 답답함과 둔중함을 거세했다.

 

 

 

이미 법주사 팔상전이나 대웅보전, 금산사 미륵전, 마곡사 대웅보전, 화엄사 각황전과 비교했지만,

나의 주관심은 처마선에 있고, 여기서 빼먹기 싫은 것이 있으니 보림사 대웅보전이 그것이다.

사실 보림사 대웅보전은 해방후까지 국보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고, 1984년 원형 복구되었다.

내가 보림사 대웅보전을 강조한 것은 이 건축물이 조선초기의 거의 유일한 이층전각이었다는 점과,

삼층쌍탑과 석등뒤의 대적광전과 직교축으로 형성된 가람배치는 금산사 등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점,

그리고 조선초기 건축물로서 법주사나 금산사보다 과장되지 않은 처마곡선을 가졌다는 점 때문이다.

 

 

<보림사 대웅보전... 이 건물도 국보 204호,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초기 건축물이었으나 625전쟁중 소실되어 문화재지정이 취소되었지만, 원형 그대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일/이층 처마선을 팔상전이나 미륵전/각황전 그리고 극락전과 비교해보라... 팔상전은 처마의 처짐이 아주 적극적이다... 이에 반해 미륵전/각황전은 훨씬 덜해졌지만, 자세히보면 처마의 중간부분이 처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극락전은 법주사 대웅보전과 팔상전의 중간정도의 곡선을 갖췄고... 각각의 건물의 처마를 원으로 생각한다면 반지름의 길이도 다르지만, 곡선이 시작되는 위치도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각황전 처마가 중간에 처지지 않았다면, 중국 북경의 자금성 같은 뻣뻣함에 근엄한 압박감은 배가 되었을 것이고, 극락전 처마 중간부분이 직선이 되었다면, 건물의 규모가 급격히 쫄아든 느낌이 될 것 같다... 만약 이층몸체가 조금더 작은 상태에서 지붕처마가 직선이 되고, 지붕이 높아졌다면 일본 나라의 법륭사 금당처럼 전혀 다른 미감을 나타낼 것이다...

지붕처마의 선은 그렇게 한 지역 혹은 역사문화를 공감하는 이들의 심성을 대변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이렇게 곡선의 형과 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 

 

 

어느 공간이나 건축물에서 하나의 부분만을 떼내어 시대를 대표하는 미감으로 특화시킬 수는 없으나,

동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건축물들 속에서 비슷한 경향성을 찾아내고 여기에 원형과 변화를 추적한다면,

우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미감과 당대의 내재적인 욕구, 혹은 지양과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비슷한 시기에 건축되어 무수한 환란 속에서도 본연의 자태를 잃지않는 건축물들과

전쟁으로 소실되었지만 다행히 사진과 실측도 등이 남아있어 원형고증이 가능한 보림사를 살펴보았다.

이제 각각의 건축물들과 무량사 극락보전을 비교해볼까?

 

 

 

 

법주사 팔상전은 넓은 치마폭에 진한 화장을 한 아줌마(?)처럼 화사하지만, 긴장감이 없어 보이고,

 

 

법주사 대웅보전은 온실 속에서 자라난 샌님(?)처럼 차분하지만, 너무 담백해서 생동감이 없어 보이고,

 

 

금산사 미륵전은 천하를 호령하는 위풍당당한 장군처럼 웅혼한 기백을 갖춘 동적이고 남성적인 건축이고,

 

 

마곡사 대웅보전은 담장 너머 내민 고개는 웃고 있지만, 드러내지 못한 아래쪽은 유연하지 못하고,

 

 

화엄사 각황전은 근엄한 위압감과 장중한 울림으로 세상을 누르고 있지만, 너무 엄숙하고 정적이며,

 

 

 

 

보림사 대웅보전은 규모에 비해 수수하고 안정된 맛이 일품이지만, 웅축된 맛이 없어 활력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무량사 극락전은 일층몸체에 비해 알맞게 좁아진 이층몸체에서 경쾌한 비례를 찾을 수 있고,

땅에 면하는 일층 처마의 부드러움과 하늘로 향하는 이층처마의 날렵한 대비에서 시원한 상승감을 느끼며,

극단을 거부하는 차분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에서 화려한 자태와 함께 근사한 미감을 느낄 수 있다.

 

 

미륵전이 남성적이라면 극락보전은 여성적이며, 각황전이 근엄하다면 극락전은 산뜻한 미감을 갖췄다.

보림사 대웅보전처럼 과장되지 않은 곡선을 이어받아, 극락전은 화려함과 장중함을 동시에 살려냈다.

이를 근거로 나는 무량사 극락전이 가장 조선적인 곡선과 빼어난 맵시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