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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골프> 나도 드디어 이글을???...^^ 100813

1.

파(Par) 5, 내리막 440m, 좌측 도그렉(Dog-leg) 10번 홀이다.

곧바로 내지른다면 캐리 240m는 날아가야 페어웨이(fairway)에 안착하고,

정면에 보이는 페어웨이를 겨냥하면 220m 정도만 보내도 된다.

그러면 남는 거리는 220m 안쪽... 투온(2 on)이 충분한 홀...

 

전반 5번째 홀까지 9개 오바.

그때부터 긴장하여 친다고 마음먹었고, 남은 홀에서 1개 더 오바해서 결국 전반에 10개를 더 쳤으니

내 핸디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반엔 잘 쳐야 한다.

어제 정면을 바라봤던 티샷(Tee-shot)으로 핀까지 210~220m가 남았으니

드로(draw)를 걸거나 조금만 훅(hook)이 걸린다면 200m 안쪽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

 

어떻게 쳐야 잘쳤다는 소리를 듣지?

드로를 걸려면 어깨 힘을 빼고, 그립은 꽉 잡고, 그리고 1시방향으로 밀어줘야 한다.

힐쪽에 맞거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 당겨지면 훅이 걸릴거고,

너무 느슨한 스윙에 왼쪽 어깨가 먼저 열리면 슬라이스가 날게 분명하고...

훅이 걸리면 헤저드(hazard), 슬라이스(slice)가 나면 오비(OB).

 

그립을 잡는 순간엔 생각이 적을수록 좋은 샷이 나온다는데

어떻게 나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그냥 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보내고 싶은대로 치는 거...

아니면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내게는 즐거움이기에

운동하면서 이런 <상상>의 즐거움을 포기할 만큼의 나는 무미건조함을 싫어하기에 생각을 많이 한다.

그렇다고 간단없는 연습으로 스윙이 몸에 익어 나오는 노련함과 무심의 경지엔 오르지 못했고...^^

 

 

2.

티샷~~~ 잘 맞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왼쪽, 페어웨이 한 중앙에 떨어졌다.

내리막을 봐서 190m가 남았단다. 게다가 오늘은 중간핀.

후후~~~ 우드로 힘 빼고 잘 만 맞으면 충분히 올릴 거리...

 

찰싹~~~ 굿샷~~~ 손맛이 경쾌한데?

기분 좋게 맞았다.

드라이버가 좋으면 세컨샷이 무너진다는데,

뒤땅도 없었고, 탑핑도 없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핀을 향해 곧바로 날아가는 하얀 볼...

야~~~ 붙겠다야~~~

어제도 잘 맞았다는데 그린에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완벽해요~ 완벽해~~~

크하하하~~~ 멀리서 본 걸로는 완전 오케이(OK) 거리다.

 

우하하하~~~ 나도 드디어 이글(eagle)을 잡겠네?

야, 쬐끔만 힘 더 줬으면 알바트로스(albatross) 나올뻔 했다야...

나도, 드디어? 드디어 !!!...크크크~~~

이글도 한번 못해본 주제에, 쬐끔만 힘줬으면 알바트로스란다...ㅎㅎㅎ

 

쬐끔만 힘 더 줬으면 헤저드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잘 치려 할수록 실수가 많아지고, 몸이 뻣뻣해지고, 마음의 부담이 커져서 실수를 하기 쉽다는 걸 알면서

우리들은 최악이 아닌 최상의 예견만으로 경험할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한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3.

그린에 올라가보니 세발자국이 조금 넘는 거리... 대략 1.5m 전후다.

이곳이 고지대에 있는데다 제주도보다 지형적인 착시가 심하다지만,

퍼터 감도 좋고, 오르막이고 훅라이니 어느 정도만 감안한다면 완벽한 이글 챤스...

  

경험이 적은 캐디는 훅라이라는 거 외에는 아무 말이 없다.

한 컵을 볼 건가, 반 컵을 볼 것인가.

대부분 퍼팅을 끝내고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

조용하다...^^

 

이런 침묵이 나는 좋다.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들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온갖 상상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다.

물론 내 머릿속도 이글을 하면?이란 온갖 상상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요즘 내가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게 퍼터 아닌가.

모든 골프채중에 가장 짧은 게 퍼터다.

짧다는 건 내 가슴에서 가장 가깝다는 말이고, 내 몸이 통제하기에 가장 쉬운 것이다.

물론 가장 쉬운 것이면서도 가장 많이 사용해야하지만, 우리들이 제일 못하는 것이 퍼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퍼터는 변수가 가장 짧은 샷이기도 하다.

공중에 떠다니지 않아 바람의 변수가 없고, 땅으로 굴러가기에 지형의 변수도 적다.

단지, 내가 보내고 싶은 거리만큼, 바라본대로 칠 수 있는 숙달과 흔들림만 없으면 되는 것이니까.

아무튼 퍼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요즘, 퍼터지만 나도 드디어 이글을 잡게 되었다???

 

 

4.

넌다. 넣을 수 있는 거리고, 모든 게 완벽하다.

이제 땡강 소리만 들으면 된다.

짧으면 안 된다. 충분한 힘으로 지나가게만 치면 된다.

소심하고 대범하고,,,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가 않은 게 아니라, 지나가야 기회란 게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글을 실패한 버디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툭~~~

빽이 흔들리지 않았고, 내가 정해 놓은 스팟부위에 볼도 잘 맞았다.

퍼터를 떠난 볼이 힘차게 올라간다~~~

이제 남은 것은 라이를 타는 것만 남았다.

아직 아무도 들어간다, 틀렸다고 단정하지 안했는데,

볼이~ 라이를 타지 않고, 홀컵을~ 그냥~ 지나갔다...ㅠㅠ

 

안 들어갔다...우우우우우우우우우

뭐가 문제지? 뭐가 문제였지?

버디로 끝났지만,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연습 퍼팅...

그래도 안 들어갔다!!!

  

이글을 못했다 !

드라이브도, 우드도 다 좋았는데, 퍼터도 잘 쳤는데 이글을 놓쳤다.

그 완벽한 찬스에서...

생애 최초의 이글을, 그것도 퍼터 이글기회가 무산되고 말았다.

 

 

5.

흔히 짧은 거리, 2m가 안 되는 거리의 퍼터는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우리들은 생각한다.

들어간 경우보다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만, 짧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긴 200m도 넘는 거리를 칠 수 있는 우리들이니 2m는 얼마나 짧은 거리인가.

내 눈에 내 맘에 가깝게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들어가지 않음을 안타까워한다.

 

이번에는 너무나 짧았던 거리...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다만 후유증은 덜 한 거 같다.

이유는, 내가 잘 못 친 게 아니라, 내가 라이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짧지도 않았고, 볼은 내가 본대로, 친대로, 원하는 거리만큼 굴러 갔다.

나의 선택이 잘 못된 것이지, 기술적인 혹은 심리적인 이유에 의한 실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첫번째 놓친 이 기회는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첫 버디 기회를 놓쳤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첫 버디를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모두가 이것도 못 넣으면 바보라는 거리에서 나는 무수히 실패했었지.

50cm가 안 되는 내리막 버디기회를 짧게(40cm밖에 안 굴러 갔다...^^) 쳐서 놓친 게 첫번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첫 버디를 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 것은

버디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버디를 많이 했거나, 버디는 흔할 수 있어서의 이유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이유도 있는거 같다.

그것은 첫 버디를 했을 때, 그때는 이미 수많은 버디 기회를 놓친 다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6.

나는 아직 이글을 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글을 해 봐야만 한다는 생각도 강하고, 이글에 대한 환상도 크다.

홀컵에 땡강하고 들어가는 것은 똑 같지만, 그것이 파펕인지, 버디펕인지, 이글펕인지는 다르다.

10cm도 한타고, 10m도, 100m도 한타로 치기에 얼마나 멀리, 적게 치는가로 판가름하는 것이 골프지만,

그것이 몇 번째로 들어갔는가를 즐기는 것 또한 골프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고, 그 결과가 어땠는가가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 우리들이 무엇을 했고, 하지 못했는가 또한 흥미진진하다.

결과의 목표가 80대인가, 싱글인가, 아니면 고수들 처럼 이븐인가, 언더인가도 있지만,

그 과정에 이글을 해 봤는가, 홀인원을 해 봤는가도 중요하며 충분한 비중을 둔다.

 

그런 성취를 이룰 수 있음과 이루어 봤음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글의 행운을 맛보기에 나는 아직 충분히 실패와 실수의 경험을 쌓치는 못한 거 같고,

아무리 심리적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글에 대한 환상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완벽한 이글 기회를 놓쳤다.

치고 나서 봤더니 두바퀴만 더 굴렀어도, 왼쪽으로 굴러만 갔어도 이글할 뻔 했다는 것과

눈으로 빤히 보면서 제대로 - 잘 치지 못해서 들어가지 못한 기회는 다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 기회를 내가 잊어먹을만큼 겪어봐야 이글맛을 볼지 모르겠다.

 

물론 이글은 버디나 다른 것과 달라 첫 번째 이글은 항상 기억될 것이다.

첫 싱글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번의 기회를 놓친 것 또한 영원히 기억할 거 같다.

마음이 소심해서 짧았던 것도 아니고, 손이 떨려서 잘 못 친것도 아니고,

내가 본 라이가 틀렸기에 더 아쉽고 안타깝지만, 또 그래서 후회가 없지만 늘 기억될 거 같다.

이글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까지는 말이다...

 

 

7.

파를 목표로 골프를 친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이글을 위해서 드라이브와 우드와 아이언을 휘두를 것 같다.

오비도 훨씬 많이 나고, 볼도 훨씬 많이 잊어 먹을 것 같다.

과욕의 결과는 항상 그런 것임을 알면서,

만들어 치는 것일수록 실수가 많음을 익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글을 노릴 것 같다.

 

인생이란 살아갈수록 빤한 것이고,

무던히, 성실하게, 실수를 줄이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충분히 느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붙잡았던 행운이 무수한 실패의 결실임을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것들은 내가 살아가면서 모두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이글을 노릴 것이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말이다.

 

남들이 해 봤던 것들은 한번쯤 해봐야 한다는 근거 없는 객기를 부리며,

골프를 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혹은 두세번의 기회가 온다는 확률을 믿고,

이글을 했을 때의 환호와 축하의 화려함을 기대하며 볼을 칠 것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그런 환상이 가끔씩 있어야 삶이 활력을 얻을 것처럼 말이다.

 

욕심을 버릴수록 스코어는 좋아진다는데,

나는 이제서야 이글이라는 또다른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욕심을 채우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녹을 수밖에 없는 이카루스의 날개를 가지고 불나방처럼 날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