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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내가 좋아하는 공간 3> 4.폐사지...1102

 

 

 

 

4. 빛과 바람이 어우러진 그윽한 향기를 찾아 - 내가 꼽는 최고의 폐사지

     4-1) 원주 부론면 정산리 현계산 거돈사지 - 그곳에 평화가...

     4-2) 양양 서면 황이리 미천골 선림원지 - 경쾌한 리듬이 흐르는...

     4-3) 합천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 영암사지 - 내부로 완성된 응축된 힘...

     4-4) 산청 단성면 운리 지리산 단속사지 - 허공을 꽉 채운 큰 이름...

     4-5) 여주 북내면 상교리 혜목산 고달사지 - 명작들의 무덤...

 

 

 

 

허허로운 공간에 쌓고 부수고, 이름 붙이고 지우고...

바람과 빛을 생각하며 마음껏 시공을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면 <폐사지>가 으뜸일 것이다.

실체가 없으니 막힘이 없고, 형식이 없으니 구속도 없고, 경계가 없으니 자유스러운 공간이다.

 

 

<충주 상모면 미륵리 월악산 미륵리절터... 보물96호 미륵리석불입상(10.6m, 보물95호 미륵리오층석탑, 돌거북, 사각석등, 팔각석등 등이 있고, 인근 하늘재 입구에 삼층석탑이 있다... 고려시대 조성된 충북지방을 대표하는 폐사지로 석굴법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사로운 햇살과 꽉찬 돌무더기 속에 앳된 얼굴에 순박함을 갖춘 보살상이 놓여있는 충주 미륵사지,

 

 

<보원사터 오층석탑>

<서산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터... 보물 104호 오층석탑(9m), 보물103호 당간지주(4.2m), 보물105호 법인국사(978년) 부도탑(4.7m), 보물106호 부도비(4.3m), 석조와, 중앙박물관에 철불좌상(광종대949년 고려시대-2.8m크기 철불과 8세기 신라시대-1.5m크기) 두구 등이 있다... 500년대 중반 조성된 금동여래입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부터 존재했던 가람으로 보이며, 용현계곡 서산 마애삼존불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멋진 당간지주와 늠름한 라말려초의 오층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

 

 

 

<보령 마산면 성주리 성주산 성주사터... 국보8호 낭혜화상 부도비(890년, 4.6m), 보물19호 오층석탑(6.6m), 보물20호 서탑(4m), 보물47호 중앙탑(3.7m), 동탑(4.6m)등 삼층석탑 3기가 있다...>

 

오층탑과 세기의 삼층탑에 그림자 하나없이 온화한 바람만 불것 같은 보령의 성주사지,

 

 

 

<양주 회천면 회암리 천보산 회암사터... 지공화상(1374년)/나옹선사(1379년)/무학대사(1407년)의 부도/석등/부도비(보물387호)와 보우대사의 것으로 보이는 부도가 있다... 조선초 궁궐과 비슷한 체계의 보광전, 설법전, 사리전, 정청 등등의 전각이 있었다...>

왕실의 위계와 권력이 종교화 된 구중궁궐 같은 양주 회암사지 등 적지않은 폐사지들이 있지만

내게 다섯곳을 꼽으라면 거돈사지, 선림원지, 영암사지, 단속사지, 고달사지를 추천하고 싶다.

 

 

 

4-1. 원주 부론면 정산리 현계산 거돈사지 - 그곳에 평화가...

 

<거돈사지 전경... 폐사지하면, 황룡사 구층탑이란 이름만으로 허허로운 공간을 꽉채운 곳이 있는가하면, 고달사지처럼 뛰어난 석물들로 채워진 공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폐사지를 고르는 기준은 내가 그 공간에서 가졌던 "느낌"을 중시했고, 그런 느낌을 준 風-水-地-理의 총화로서의 "공간"이다...>

<매우 완만하고 평탄한 곳으로 보이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의 층급과 위계를 갖추고 있다...>

 

그럴 수없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말그대로의 평화를 느끼고 싶다면 단연 거돈사지가 으뜸이다.

 

 

초연한 모습에 정갈한 분위기, 게다가 현모양처처럼 우아함까지 갖춘 9세기 삼층석탑과

둥굴둥굴 부드러운 분위기에 정성스러운 조각이 조심스럽게 새겨진 원공국사 부도탑,

탄탄한 체구에도 거칠지 않고, 의연한 기품에 차분함까지 갖춘 원공국사(1014년) 부도,

 

<거돈사지 삼층석탑... 보물750호/5.4m... 나는 이 탑을 볼 때마다 신사임당을 생각한다...^^>

 

<원공국사 부도탑비... 보물78호/1025년... 추상과 구상이 어우러진 정중동...>

<원공국사 승묘탑... 보물190호/1025년/중앙박물관 소장... 거돈사터 맨 윗자리에 2000년대 중반 실물크기의 모본을 조성하였다... 부드러운 조각, 간지러운 바람? ^^>

 

이런 뛰어난 석물들이 있어 거돈사터가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깊이 있게 다가오는 건

깊고 조용한, 그리고 여유롭고 따사로운 바람, 정말 평화로운 바람 때문일 것이다.

 

 

 

4-2. 양양 서면 황이리 미천골 선림원지 - 경쾌한 리듬이 흐르는...

 

<한겨울 선림원지... 왼쪽편에 부도탑 기단부와 가운데 백색의 삼층석탑을 찾을 수 있을까?>

 

두 번째로 꼽고 싶은 곳은 잔잔한 리듬으로 마음을 경쾌하게 충동하는 양양 선림원지다.

 

<그리 넓지 않은, 조금은 좁고 긴 가람배치였을 것 같다... 좁지만 답답하지 않고, 깊지만 틔인 느낌의 바람과 물과 인심을 얻으려고, 땅을 높이 돋아 올렸는지 모르겠다... 화엄종 승려들이 대거 선종으로 이거한 최초의 사찰... 아무리 생각해도 선림원터를 감도는 경쾌한 리듬은, 책을 외우고 격식을 갖춰야하는 교종 승려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바람이었을 것 같다...^^>

 

조금은 작아지고 여려졌지만, 안정된 비례에 맑은 리듬을 살린 9세기 삼층석탑 한기와,

남아있는 기단부만으로 황홀한 상상이 가능한 아름다운 조각을 갖춘 부도탑비,

적절한 비례와 장식으로 앙증맞은 모습이지만 화사한 기품을 살려낸 석등,

정성스러운 손놀림과 차분한 분위기로 조심스럽게 터전을 지키고 있는 홍각선사(886년) 탑비,

 

<선림원터 삼층석탑... 보물444호/5m... 기단부에 팔부중상이 조각되어 있고, 삼층 지붕돌의 부드러운 반전은 바라보는 마음을 참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선림원터 부도탑 기단부... 보물447호/1.2m... 이런 기단부를 만들어낸 석공의 손에서 빚어졌을 완성태는 어땠을까? 한없이 즐거울 수 있는 상상...>

 

<선림원터 석등... 보물445호/2.9m... 화려한 기단부와 아기자기한 간주석, 그리고 담백한 화사석에 소담스러운 지붕돌... 그 어울릴 수 없는 미감들의 기막힌 조화...>

 

<홍각선사 부도탑비... 보물446호/886년...>

 

이곳의 석물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주위 풍광과 어우러지면 그럴 수 없이 발랄하다.

쫄쫄쫄 시냇물 소리와 낮지 않은 주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들 마음을 묘하게 들뜨게 한다.

 

 

 

 

4-3. 합천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 영암사지 - 내부로 완성된 응축된 힘...

 

<영암사터 쌍사자 석등... 보물353호/2.3m... 이 쌍사자 석등이 유명해진 것은 양식의 희귀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법주사, 중흥사 쌍사자 석등에 비해 격식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작아진 지붕돌 때문에 비례도 빼어난 건 아니다... 다만 두단의 우람한 석축과 앙증맞은 무지개 다리위에, 울퉁불퉁 황매산 정기를 부드럽게 갈무리하는 석등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공간경영의 귀재를 위한 칭송때문에 유명해진 게 아닐지... 석물이 빛을 발하는 건, 그것이 점하고 있는 위치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교한 석축과 앙증맞은 쌍사자 석등이 영기로운 황매산과 어우러져 많은 사랑을 받는 영암사지.

답사객들 사이에서는 불국사 석축, 부석사 석축과 함께 신라인들이 만든 석축의 대표작으로

이곳 영암사지를 꼽는다. 그만큼 정연하고 품위 있으며, 과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암사지 삼층석탑... 보물480호/3.8m...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데다, 석질과 석감의 통일성을 살려낼 수 있어 삼층석탑은 튀어나지도 않지만, 없어서도 안될 꼭 그만한 크기로 존재하고 있다...>

 

황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앙증맞은 무지개 다리와 쌍사자 석등은 일품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당당하진 않지만 떨어지지도 않은 잘짜여진 비례와 체감률을 갖춘 9세기 삼층석탑 한기와

흡사 AH 금강역사처럼 입모양을 달리한 금당 좌우 두기의 귀부가 지키고 있는 영암사지는

 

<금당터 석단... 중문 아래의 튼실한 석축과 쌍사자 석등이 자리한 낮은 석축, 그리고 이 금당터의 석단이 위계와 층급을 살리면서 조화를 이루기에 영암사지는 변화와 통일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꼭 이만한 공간이 통일신라인들이 생각하는 가람의 최소 단위가 아니었을까?>

 

시원한 풍광과 뛰어난 배경을 갖추면서 허허로움을 깊이 갈무리한 힘을 갖춘 곳이다.

 

 

 

4-4. 산청 단성면 운리 지리산 단속사지 - 허공을 꽉 채운 큰 이름...

 

<단속사터 삼층쌍탑... 보물72,73호/5.3m... 지리산! 그리고 단속사터... 그 이름만으로도 충만한 공간...>

 

 

늘 마음속으로만 고대하다 비교적 최근에 인연이 닿은 단속사지도 내게는 무척 인상깊은 곳이다.

 

 

여느 폐사지들과 달리 폐사지 자체가 지금은 하나의 마을로 바뀌어 존속되는 곳이 이곳이다.

 

 

민가로 전환된 모습 때문에 허허로움도 공허함도 느끼기 어려운데다 원형을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어쩌면 지리산이란 그 한마디로 가슴 벅찬 광대함과 장중함을 느낄 수 있는 허공이 있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여기에 정말 잘 만들어진 풍요로우면서도 경쾌하고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삼층쌍탑은

채워져 있지만 비울 수 있고, 아무 것도 없지만 꽉 채울 수 있는 무형의 언어를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다.

 

 

감은사, 장항리, 왕궁리 등 주변 풍광을 압도하는 유물이 아닌 공간으로 기억되기 충분한 곳이다.

 

 

 

 

4-5. 여주 북내면 상교리 혜목산 고달사지 - 명작들의 무덤(?)...

 

<구산선문 중 봉림산파의 선찰이며, 고달선원으로 불리었다는 고달사(高達寺)의 석물들은 고달이라는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봉림선문은 원감국사 현욱(868년 입적)-진경대사 심희(923년)-원종대사 찬유(975년)로 법통이 이어지기에 이름을 알 수없는 부도탑을 원감국사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 경덕왕 764년 창건설이 있으나, 당대의 어지간한 가람치고 경덕왕의 손과 이름을 빌리지 않은 사찰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고, 가람배치가 전성기를 맞이한 때는 원종대사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원종대사 부도비가 가람의 중심에 배치되어 있어, 쌍계사를 생각하면 이채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특이한 구조임은 분명하다... 그래선지 가람배치가 한 눈에 쏙 들어오지 않아 아쉽다...> 

 

전 원감국사 부도탑, 원공국사 부도, 방형의 석대좌와 우락부락한 귀부와 이수를 갖춘 고달사지.

또 하나의 공간으로서 폐사지로 꼽을 만한 곳이 여주 북내면 혜목산 고달사터다.

 

<전 원감국사 부도탑... 국보4호/3.4m/868년... 부드러움과 장중함, 화려함과 세련된 미감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정면에서 올려 보는 느낌과  후면에서 내려다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육중한 지붕돌을 볼때마다 화엄사 석등을 떠올려본다...>

<원종대사 부도탑... 보물7호/3.3m/975년... 원감국사 부도탑과 비교하면서 보면 재밌는데, 기단부가 사각방형이고, 상대석 앙련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특히 지붕돌의 크기와 볼륨에서 절대적 미감에 차이가 생기는데, 지붕돌이 좁고 가벼워졌을 때 전체적인 미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금방 비교된다... 원감국사 부도탑과 100여년의 시차에서 무엇이 변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려는 석공에게는 어떤 의지가 있었는지 읽어보는 것도 즐거운 상상이다...>

 

물론 워낙 뛰어난 석물들이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을 다섯 번째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내게는 그런 이유로, 공간으로서의 고달사터가 어딘지 아쉽고 부족하게 느껴짐을 숨길 수 없다.

 

<고달사 석등부재...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했으므로 부언하지 않겠지만, 실상사-용암사-청량사-화엄사 석등 간주석과 비교해보면 양식의 변화와 화려함을 짐작할 수 있다...>

 

<고달사 쌍사자 석등... 보물282호/3m... 국립중앙박물관 복도에 있다가 지금은 야외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걸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참 많은 생각이 절로 난다...>

 

그 아쉽고 미진한 느낌이 바로 고달사터가 석물들의 전시장이 아닌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되지만

막힘은 없어도 조금은 답답하고, 알려진 만큼 가깝지만 왠지 멀게 느껴지는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고달사 석불대좌... 보물8호/1.6m...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

<원종대사 혜진탑비... 보물6호... 화려하면서 당당하고, 우락부락하면서도 세련된 우리나라 귀부와 이수중 최고의 걸작 중 하나...>

 

어쩌면 담백함과 화려함, 장중함과 차분함이란 상반된 미감의 석물들로 일통된 기운이나,

단순한 느낌으로 정리되기 어려워서 고달사터는 아직 충분히 내 것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