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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내가 좋아하는 공간 5> 6. 허허로운 공간(2)...110320

 

 

    6-1) 영양 입암면 산해리 봉감오층탑 - 적막의 공간

    6-2) 창녕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 그리움과 기다림의 크기...

    6-3) 충주 가금면 탑평리 중원칠층탑 - 열린공간에 세워진 이정표

    6-4) 경주 남산 용장골 용장사지삼층탑과 석불좌상 - 호연지기를 느끼고 싶거든...

    6-5) 강릉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지 당간지주 - 풍요속에 자만을 경계하는 긴장감

 

 

 

6-2) 창녕 옥천리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 - 그리움과 기다림의 그릇

 

 

사람이 만든 무엇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이야기가 되고 꿈이 되는 공간이 있다.

그것이 탑이든, 건축이든, 불상이든 형상이 역사가 되고, 공간이 살아 숨 쉰다면,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심성과 관심과 노력이 보태진다면,

만드는 이의 염원과 향유하는 이의 추억은 아름다운 소망이 되고 사상과 예술은 향기가 된다.

여기 작고 단아한 돌부처 하나의 존재로, 텅 빈 자연을 꽉 채운 곳이 있다.

(이 글도 2008년 3월에 쓴 글을 그대로 참조, 인용한다)

 

 

 

 

 

 

 

 

텅 비어서 꽉 찬 공간...

너무 꽉 차서 텅 빈 모습...

일년, 십년, 백년, 천년을 제자리에 머물며

늘 한 곳만 응시하며 영겁의 풍파를 감내하는 표정을 읽다보면,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을 기다리는 얼굴이 보인다.

 

 

 

자유스럽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주어진 공간과 하나가 되어버린...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 사계가 변하고,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곳...

기다림과 그리움이 가져야할 그릇은 얼만큼 커야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 이 곳이다.

 

 

 

창녕에 가면 관룡산에 의지한 觀龍寺가 있다.

관룡사에서 몇방울 땀을 여비삼아 화왕산(火旺山)쪽으로 오르면 용선대가 있고,

시원한 바위 끝에 작은 석조여래좌상이 하나 있다.

작지만 거침없고, 존엄하지만 단아한 돌부처 하나...

 

 

 

 

천년을 지켜온 돌부처를 바라보면,

묻지도 않고 답하지도 않는데, 기다림보다 소중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하고,

천년을 지켜온 얼굴을 바라보면,

변한 것도 없고 변하지 않은 것도 없다면서, 기다림보다 아름다운 어떤 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하다.

무엇을 바라보며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왜 채우지도 비우지도 못한 그리움이 생각나는지...

 

외로움이라 말하기엔 너무 당당하고,

시원함이라 말하기엔 너무 간절하고,

호방함이라 말하기엔 너무 쓸쓸하고,

기다림이라 말하기엔 너무 의연하고...

간결한 선과 경직된 몸매에서 나는 그윽한 관조(觀照)를 생각한다.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땅을 내려보지 않고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햇빛을 마다하지 않고...

그윽한 눈매와 단단한 입술에서 나는 끝없는 기다림만 생각한다.

 

살가운 웃음소리,

간절한 소망,

허허로운 세월,

그리고 온화한 평온...

잃어버린 시간과 멈추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막연한 그리움만 생각한다.

 

 

 

 

채울 수도 없고

비울 수도 없는,

멈춰버린 시간,

기묘한 자리에 앉아 있는 돌부처...

그냥 그렇게 관조의 기다림이 무엇인지, 막연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한참을 지켜본다.

 

 

천년동안 변하지 않은 얼굴,

머무르지 않는 자연,

그리고 묻어 버릴 수 없는 꿈과 소망,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잃었는지 묻지도 답하지도 않고 굳어버린 돌부처 하나.

그 곳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돌부처를 바라보며, 넓은 공간을 꽉 채운 그리움과 기다림을 생각해 본다.

그리움과 기다림은 얼마만큼의 그릇이 필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공간을 바라본다.

 

 

 

 

 

 

6-3) 충주 가금면 탑평리 중원칠층탑 - 열린공간에 세워진 이정표

(이 글 역시 2006년 7월 쓴 느낌을 참조한다)

 

시원한 강변에 상큼한 바람,

흐르는 강물에 영원한 시간,

탁틔인 전망에 편안한 공간,

충주 가금면 탑평리 중원칠층탑을 바라보며,

이 곳에 이 탑을 세웠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늘씬하지만 여리지 않고

충분한 상승감을 가지면서도 가볍지 않은...

중후하지만 무겁지 않고

든든하지만 거만하지 않는...

 

거대함이 불편하지 않고

안정감이 세련됨을 숨기지도 않는다.

높음은 상승감으로 강조되고

커다람이 의연함으로 승화됐다.

 

 

 

아직 자동차가 없고, 철도도 없고, 우마의 수레바퀴와 힘겨운 노를 저어야만 움직이던 때,

불쑥 솟은 저 탑은 이정표가 되고, 쉼터가 되고, 충전의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술자리를 벌려도 좋고, 흥겨운 노래소리가 울려도 좋고, 두툼한 돈다발이 거래되어도 좋다.

그들은 이 자리에 둘러 앉아 향락을 즐기고, 안녕을 기원하고, 꿈같은 미래를 노래 했을테니.

이 곳 충주는 군마가 이동하는 요충지였고, 수로를 통해 물류가 이동하는 집산지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백제의, 다음엔 고구려의, 그리고 신라의 땅, 그렇게 일제강점기까지 물류의 이합집산지였다.

 

 

 

 

그래서 그곳에 하늘로 오르는 계단처럼 높다랗게 이 탑을 쌓았을지도 모른다.

꿈 꿀만큼 욕심을 부려도 무너지지 않을만큼 단단하게 이 탑을 다졌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군마와 상선들이 떠다녔을 물길 한가운데, 한번은 숨 고를 휴식의 공간에 이정표를 쌓았다.

멀리서도 보일만큼 높게, 위로받을 만큼 당당하게, 동경할 만큼 중후하게, 그리고 쉴 만큼 넓게...

그때, 그 자리에 그 탑을 세운 신라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때가 있다.

 

 

 

해상왕국 백제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동북아 패자 고구려를 정복한 신라는 갈림길에 섰었다.

금과 철을 다루던 북방 기마족의 후예인 신라인들이 이제는 한반도에 만족하며 농경민이 되어야 했다.

백제의 온화하고 유려하면서 발랄한 상업적 기질과 고구려의 장중하고 거칠면서 중후한 대륙의 기질,

여기에 신라만의 고유한 색깔인 화려하면서 정제되고 엄격하면서 진중한 기질을 통일 시켜야할 과제.

통일된 신라의 군사적 요충지와 물류의 중심에 세울 이정표는 그 모든 미감을 충족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전쟁의 경계에서 이합집산의 경계에서 물류의 중심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 하나를 세웠다.

깊은 산 외딴 섬에 세운 신앙의 공간이 아니라,

맑은 물 향기로운 풀밭에 만든 위락의 공간이 아니라,

멋스러운 운치에 시원한 계곡을 탐하는 수양의 공간이 아니라,

긴장되지만 넉넉한 공간, 부산하게 이해타산이 난무하는, 흐르는 공간에 하나의 이정표처럼 탑을 세웠다.

때로는 중후한, 때로는 정연한, 때로는 세련된, 그런 탑을 그 곳에 세워 새로운 변화를 선언해야만 했다.

절충이 아닌 통일, 조합이 아닌 완성을 선언하기 위한 새로운 이정표... 그래서 이름도 중앙탑이 아닐까?

 

 

 

 

 

나는 하부 기단 판석의 절묘한 돌출에 숨겨진 환상적인 감각을 볼때마다 감탄한다.

구조와 양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격식과 전통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조금 더 넓혀놓은 그 장치로 인해 장대한 크기 칠층탑의 중후함은 상승감을 가지게 되었고,

훤출한 높이의 칠층탑은 단단한 기반위에 늘씬한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차분하고 경쾌한, 정연하면서 아름다운 체감을 만든 신라인들은 얼만큼 스스로에게 엄격했을까?

 

 

이 탑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준수한 청년을 생각해봤고

또 어느 때는 아름다운 중년을 그려보기도 했다.

청년이라 칭하기에는 그 의연함이 예사롭지 않고

중년이라 단정하기에는 그 세련됨이 너무 좋다.

노년의 관조를 말하기에는 아직 웅혼한 기상과 도도함이 녹쓸지 않았다.

 

 

 

 

만약 이 탑이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느낄 수 있었을까?

넉넉한 공간에 시원한 바람, 군림하듯 높이 솟아 있으면서 위협적이지 않은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시간을 초월한 다양한 느낌과 상반된 미감을 자연스럽게 군더더기없이 모두 살리는 게 쉬웠을까?

연륜은 성숙을 낳고, 패기는 변화를 잉태하며, 완성은 궁극을 향한 첫 걸음이 된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세월의 연륜을 모두 아우른 패기와 성숙과 완성의 기운을 갖추고 있다.

백제의 상승감과 고구려의 중후함, 신라의 엄격함과 세련됨을 하나로 묶은 이정표가 중원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