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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공간 7> 폐허를 재구성하는 건축의지...1104

 

 

* 급하게 올렸던 글이라 사진설명도 없었다... 다시 건축공간을 들추면서 설명을 보완한다...110621

 

 

 

나는 지금까지 빛과 바람이 어우러진 그윽한 향기란 이름으로 폐사지 다섯곳과

허허로운 공간속으로 흩어지는 그리움이란 테제로 또 다른 유형의 가람건축 다섯곳을 추천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공간과 건축을 말하면서, 실체가 남아있지 않은 폐허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랬냐고? 실체가 없어 자유롭고, 정답이 없어 다양하며, 만들고 부수는 게 쉽기 때문이다.

어쩌면 텅 비어 있어서 나의 시간과 상념과 의지만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꽃이 있어 향기로운 공간이 있고, 색이 없어도 향기로운 공간이 있다. 물론 꽃이 함께 있어 더더욱 향기로운 공간도 있지만... 말장난 같은 이 말을 사족처럼 붙이는 이유는, 가끔 보이는 꽃만으로 향기의 모든 것을 말하려는 가벼움과, 꽃이 없다고 은은한 향기를 외면할지 모르는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내가 폐사지에서 향기를 찾는 것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지만 폐사지에서 원형의 공간과 건축을 상상속에서나마 자유롭게 복원하는데도 한계가 있으니

유물에 남아있는 격식과 품위가 있어 조심스러워야 하고, 주변 자연환경에 충분히 조응해야 하며,

역사적 배경과 사상적 성취, 그리고 건축적 이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종합이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서? 완성태에 대한 이해와 중개축 과정의 변화, 원형에 대한 추적을 위해서다.

그런 건축=구축 과정이 공간과 나를 풍요롭고 밀접하게 소통시키는 과정이 아닐까?

 

<대원사 조감도... 저런 자연지형-공간-이 있어 건축이 필요했는지, 절집을 짓기위해 공간을 찾았는지 모르겠고,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했는지, 짓다보니 자꾸 넓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건축하려는 의지와 만들어진 건축이 주변과 충분히 어울리는가가 아닐런지... 아무튼 우리가 새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볼 수 없는 view지만 우리는 늘 새가 되어 상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구축해보려는 의지겠지.

공간을 경영했던 이들의 심성과 목적과 문화적 수준, 즉 만들었던 이들이 가졌던 건축의지의 이해와

실체가 없는 무형의 공간을 상상속에서 복원해보려는, 즉 해석하려는 나의 건축의지가 필요하다.

무엇 때문이냐고? 건축을 통해, 공간경영을 통해, 불교 교리의 집합체를 통해

공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흥을 학습하고, 사상을 구현하는 방법과 실체를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Daum 이미지에서 스크랩... 가람배치에 대한 가장 간략한 그림이어서 골라봤다...부도밭과 요사채의 위치가 많이 다르지만...>

 

 

 

<법천사지 석축... 건축이 인위적인 공력을 투입하여 쌓아 올리고 깎아 내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 대한 변형임은 분명하다... 다만 정교함, 섬세함, 치밀함 등을 필요로 하는 건축과정에도 건축을 통해 발현되는 심성의 자연스러움, 자유로움, 다양한 변화는 그대로 살아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왜 하고많은 종교나 주거, 궁궐, 신전을 놔두고 불교건축에 집착하는가와

사상을 구현했던 방식을 책이나 사서가 아닌 건축과 가람배치에서 찾는가,

그리고 그런 방식에 내재된 관념적 한계와 연역적 방법의 일면성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 글과 또 다른 문제이므로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장곡사 설선당... 절집이 기도와 예배와 수양의 공간임이 분명하지만,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우리들이 즐기지 못한다면 그 공간은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결국 공간은 휴식과 충전을 동시에 만족해야되는 거 아닐까?>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폐사지에서 기독교나 이슬람교, 그리고 도교, 힌두교 등을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 역시 다양한 종교의 한 형태이니 기도의 도량이라 총칭해도 틀리지는 않다.

자연과 함께 역사와 문화향을 가지면서 휴식의 공간이 되고, 충전의 계기가 된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게다가 1000년 이상 이 땅에 정착한 이래 우리의 문화적 예술적 사상적 DNA에 근간을 이룬데다

공동체의 변화와 발전 잠재력까지 갖췄는데도 애써 무시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편협 할지 모르겠다.

 

<대원사 전경... 건축은 자신을 디자인하는 종교적 상징과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영위하는 우리들에게 종교적 상징이 조건이 되고 구속의 잣대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또 하나, 불교는 기독교나 이슬람의 유일신 지향성과 목적의식적 성격에 비해 훨씬 열린 포용력이 있고,

고행을 통해 내제된 신성을 끌어올리려는 힌두교에 비해 조금 더 현실에 유연하게 타협하고 있으며,

자연에의 동화와 개체적 완성으로 귀결되는 도교에 비해 훨씬 현실 참여적이고 인위적 노력을 인정한다.

물론 이런 단순비교가 종교의 호불호와 고저경중을 논하는 기준이 될 수 없지만 차이점은 분명하다.

집착과 해탈이라는 대립항을 테제로 완성되어가는 불교는 그래서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게 아닌지.

 

 

<봉선사 큰법당... 대웅전을 큰법당이라는 한글간판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불교의 생명력이 현대에도 이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필요도 중요하지만, 주체의 변화와 노력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상을 구현했던 방식을 건축구조에서 찾는다면 엄밀히 관념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마디로 맑스가 그렇게 비판했던 헤겔의 행태를 내가 반복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사상은 실체와 다양한 변화의 반영이며 결과물이지, 사상에 의해 세상이 조합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건축적으로 완성된 실체를 통해 사상을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다.

헤겔이 말한 정반합과 공자가 말한 학습은 그렇게 통일되는 것이며, 그것은 객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폐사지와 가람건축에서 사상을 찾는 이유는 그런 연습과 훈련의 한 방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봉선사 선방... 저 방을 채웠을 사람들에게 이 건축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또 그 의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건축공간은 바라보는 위엄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영위하고 전용하는 이들의 행동과 사상을 규격화 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기는 했지만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폐사지의 복원을 상상해 본다.

답사여행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가능하시겠지만, 탑의 규모를 보면 건축물들의 볼륨을 가늠할 수 있고,

(절집의 주요공간에 들어서서 바라보면 탑의 노반의 끝부분이 주불전 용마루 높이와 비슷하다)

주변 산세와 진입로, 그리고 중심 동선을 살펴보면 가람의 규모와 구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일주문/천왕문/불이문, 보제루/종루/경루, 탑, 금당, 승당/강당/조사당, 산신각/장경각, 나한전/천불전 등)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안영배/보진제/1996년 2판에서 스캔... 건축공간은 생각보다 많은 수학적 규칙과 과학적 장치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지 않은 그 규칙들을 조합하면 무형의 공간은 유형의 이미지로 환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겨진 유물에 깃든 격식과 수준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이나 시대의 흐름도 재구성할 수 있으며,

여기에 역사적 상식을 가미하면 우리는 주불전의 이름과 그 절집의 존재이유도 찾을 수 있다.

(대웅전/보광전/영산전/팔상전-석가모니불, 극락전/무량수전-아미타불,

대적광전/비로전/화엄전-비로자나불, 약사전/유리광전-약사여래,

미륵전/용화전-미륵보살, 관음전/원통전-관세음보살, 명부전/지장전-지장보살)

하나 더, 건축적 상식과 식견이 있다면 처마나 공포의 구조 등까지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통도사 대광명전... 그러면 이 대광명전에는 어떤 불상이 모셔져 있을까?^^  대광명전(大光明殿)은 대광보전(大光寶殿), 대적광전(大寂光殿)과 같은 의미다... 백과사전을 통해 조금 더 풀어보면, " 맑고 깨끗한 법신(法身)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두루 비치는 빛, 즉 광명이니 적광이니 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비로자나 부처님이 봉안된 집이라는 뜻이고,,, 큰 법당일 경우 비로자나와 석가모니, 노사나등 삼신불(三身佛; 法身법신, 化身화신, 應身응신)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화엄경의 주불로 화엄종 사찰의 주불전일 경우 이 이름을 붙이고 있으며, 주불전이 아닐 경우에는 비로전(毘盧殿)이라고 한다.">

<통도사 영산전... 통도사는 여느 절집과 달리 세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천왕문으로 시작되어 영산전이 주불전인 하로전, 불이문으로 시작하여 대광명전이 있는 중로전,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구축된 상로전 영역 등이 그것이다... 수직적 위계를 갖추면서도 병렬적이며 독립적 공간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변화와 조화는 우리나라 가람배치 뿐만 아니라 건축공간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폐사지들 속에서도 이런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내가 앞서 추천했던 열곳중 상상속에서 복원하는데 가장 재미있는 곳은 거돈사지, 굴산사지, 단속사지다.

굴산사지와 단속사지는 가장 완벽하게 파괴되어 건축공간의 영역만 남아있을 뿐이어서 간섭이 없고

익산 미륵사지, 성주사지, 보원사지, 충주 미륵리절터, 회암사지처럼 금방 상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거돈사지는 출입구와 탑을 중심으로 각각의 영역을 읽을 수 있어 가장 편한 곳이고,

어쩌면 폐사지에서의 상상속 건축은 황룡사지나 왕궁리처럼 완벽한 파괴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부분... 유형의 건축 없이, 그곳에 깃든 공력과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는 유물과 유구만으로도 우리는 건축공간의 깊이와 성취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운문사... 또한 운문사처럼 전각과 당, 탑과 유구들이 모두 남아있다고해서, 지금의 모습이 원형의 모습인지도 불분명하다... 물론 원형이 곧 최선과 최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변형이 평가와 품격절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없는 가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남아있는 유물들의 품격과 가늠할 수 있는 가람공간을 재구성하더라도

그 당시 가람 배치와 공간 구성에 대한 원형은 여전히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답사처에서 우리는 가람배치의 원형을 찾을 수 있을까?

영역도 불분명한 체 몇가지의 기물들(탑, 부도탑, 부도비 등)만으로 원형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현존하는 절집들 대부분이 숱한 전쟁과 화마, 그리고 부적절한 중창으로 인해

가람배치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하는 과정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 생각된다.

 

<청량사...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는 평가와 체험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우리들이 접하는 가람건축공간은 최초의 요구에 의해, 시대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천하는 생물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 곳에 머물렀던 청량감과 호방함이 지금의 나에게도 동질의 의미로 다가올런지... 공간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미있는 게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간직하기 때문에 유의미한 게 아닐까?> 

 

 

아무튼 공간경영과 건축공간, 가람배치를 통해 나는 많은 말을 하려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하필 공간인가? 신라는 무엇으로 남았을까? 우리들의 정서에 적당한 공간 스케일은? 등등등...

그중에 이번 기회를 통해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가람배치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은 무엇이었을까이다.

탑이었을까? 금당(불상을 모시는)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었을까?

최초의 가람이 조성되었던 인도와 중국을 통한 변화와 일본의 가람배치까지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의 불교가 완성하고자 했던 가람배치의 최고 형태는 무엇이었는가를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