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공부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모 일간지에 나왔던 고사성어들을 몇 개씩 골라 이야기를 나눠보고 2주후에 맞춰보는데
나는 옥편을 찾아 나온 뜻들을 이리저리 섞는데 즐거움을 느끼고,
열이형은 어플을 찾아 그럴 듯한 뜻을 내밀며 다양한 해석을 선보이지만,
아무래도 문법에 강한 빵형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어차피 외국어는 주어진 단어를 가지고 짜맞출 수밖에 없다 강변했던 나는 헤매고,
한문공부의 왕도를 찾기 위해 조언을 구했던 64학번 김선생님은 “우리는 모두 외웠었다”는말만 하시는데,
열이형이나 나나 외우는데는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하다.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문법을 간파하는 빵형의, 글의 길을 찾아 해석(!)하는 위력은 날로 커진다.
좋은 말들도 있고, 간직하고 싶은 성어들도 적지 않지만 도통 양에 차질 않는다.
오늘은 최근 몇 주간 발췌했던 고사성어들 중, 우리 생각이
허성도 서울대교수나 인터넷에 떠도는 해석과 다르거나,
사자성어로만 풀이되지 않는 것들 중 몇 개를 골라 본다.
1. 의로예문 (義路禮門)
정의로운 길과 예의로운 문?
뭔가 당연한 듯하면서도 도통 말이 되질 않는다.
그러면 정의는 길이고 예의는 문이다?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 왠지 말 같지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옥편도 찾아보고, 인터넷에 떠도는 풀이들을 모아본 결과,
우리들이 채택한 텍스트 발원처인 서울대 허교수의 풀이가 대세인 듯 한데 ;
<정의는 사람이 걸어야할 길이지만, 이 길은 예의라는 문을 통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빵형, 열이형, 나는 삼자=만장일치로 “ 말이 안 된다 ”는 결론...^^
길과 문... 왠지 비슷한 뉘앙스를 갖고 있으면서 다른 내용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길은 가는 것이고, 문은 열고 닫는 것...
정의는 걷는 것 또는 걸어야 하는 것이고, 예의에는 관문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일까?
그런데 義路와 禮門이 댓구라면 굳이 격식을 차려 이렇게 조합하지는 않았을텐데...
길은 없어도 만들며 갈 수 있고, 문은 문을 통해서만 넘나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길과 문은 사회적 약속이고 역사적 결과물이니,길과 문은 사람으로서 꼭 지켜야할 도리로 봐야한다는 데 일단 합의를 하고,
길이나 문이나 사람 개개인의 선택과 사회의 허용, 또는 잣대라는 의미도 있으니
<열림>이란 의미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래서 이렇게 바꾸기로 했다 ;
<의가 있어야 길이 열리고, 예가 있어야 문이 열린다> ㅋㅋ
2. 임연선어 (臨淵羨魚)
연못에 임해서 물고기를 부러워한다?
자못 심오한 듯하면서 뭔가 어설프다.
연못에 임한다, 이르다... 이르러야 한다...
왠지 비장한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물고기는 자유를 상징하나??
연못에 이르러서야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ㅎㅎ
혹 연못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니 물고기를 잡고 싶다는 말은 아닐까요?
아니면 싱싱한 물고리를 잡아 회쳐먹으면 끝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ㅎㅎㅎ
그런 의미라면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있는데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말을 만들겠어???
여하튼 상상력이라면 귀신도 울고 갈만한 사람과 앞뒤없이 천방지축 짜맞추는데 도사와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고 고고히 선현들의 말씀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 함께 있으니
임연선어 한마디에 온갖 잡다한 해석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 다음 만남...
뒤에 생략된 말을 보니 해석이 되네...^^
임연선어 (臨淵羨魚) 불여퇴이결망 (不如退而結網) - 한서 동중서전에 있는 말로,
<연못에서 물고기를 부러워하느니 물러나 그물을 짜는 게 좋다>는 말.
때로는 앞뒤를 무시한 체, 억지로 짜 맞추는 게 부질없이 공력을 소모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3. 부자지간불책선 (父子之間不責善)
어떻게 끊을까?
부자지간 / 불책 / 선이 맞지 않겠어?!
그러면 부자지간에는 책망하지 않는 게 선이라는 말인가?
선(善) = 부자지간 불책은 아니겠지만, 부자지간 불책 = 선(善)은 가능한 의미잖아.
그렇다고 선의 해석을 동의할 수 없는 상태에서 ;
부자지간에는 선을 책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풀이로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부자지간의 궁극적 형태는 선(善)이 아니라 효(孝)라고 주장하는 게 유교잖아.
인터넷 상에는 ; 부자지간에는 완전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해석도 있다.
완전 = 선(善)으로 해석할 수 없다면, 이런 풀이는 분명 틀린거라 생각된다.
오히려 이 문구가 있는 맹자 이루 상편에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쳤다는 말도 있듯이,
<부자지간에는 되도록(!) 책망해서는 안 된다>는 풀이가 맞다는 데 한표씩...
그렇다면 여기서 선은 최선(最善)의 의미가 아닐까?
4.
한문을 찾다보면 외우고 싶은 글들도 많다.
역시 익숙해서겠지.
좋은 말들을 간직하고 싶고, 따르고 싶은 것도 우리들 배움의 연장 아니겠어?
불우지예 (不虞之譽) 구전지훼 (求全之毁) ;
생각지도 않았는데 얻어지는 명예가 있고, 완전하고 싶은데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는 말과,
경당문노 (耕當問奴) ;
논밭을 갈려면 마땅히 노비에게 물어야 한다.
그 당시 노비는 인간보다 가축이나 짐승으로 사고 팔 수 있었음에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일을 제대로 하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방면의 전문가에게 물음이 옳다는 뜻으로 음미 할만 했지만,
견풍사타 (見風使舵) ;
바람을 보고 키를 부린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도,
시대의 조류를 파악한다는 예지로 볼 것인가,
시대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기회주의로 볼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집열불탁 (執熱不濯) ;
뜨거운 물건을 쥐고도 물로 씻어 열을 식히지 않는다는 말은,
적은 수고를 아껴 큰일을 이루지 못하거나
방도를 알고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말로 풀이된다는 한번쯤 음미 해 볼만 했고,
이번 한문공부에서 꼭 외워두고 싶었던 말 중 하나는,
애인불친 반기인 (愛人不親 反其仁)
치인불치 반기지 (治人不治 反其智)
예인불답 반기경 (禮人不答 反其敬)이었는데,
사랑하려면 인(仁)해야 하고 (도대체 仁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사람을 다스리려면 지혜(智慧)로워야 하고,
예(禮)를 이루려면 경(敬)해야 한다는 말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과 지, 그리고 경의 보편적 의미는 그렇게 한정되나? 그게 맞을까??도 생각해 볼만 하다.
5.
그렇지만 아무리 다양한 해석이나 통용되는 풀이가 있다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
권형칭물 (權衡稱物) ; 저울추와 저울대로 물건을 저울질하다는 말이었다.
권/형/칭 모두가 저울과 관계된 말이다.
권(權) - 저울추, 저울질하다.
형(衡) - 저울대, 저울질하다.
칭(稱) - 저울, 칭찬하다, 설명하다, 일컫다.
결국 저울과 관계된 말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는 난해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런 연유로 판단의 어려움이나, 저울질 되는 때(!)를 강조하는 풀이가 있지만, 모르겠다.
또 하나, 성어중형어외 (誠於中形於外) 처럼 당연한 말의 반복에서 한참 헤맸다.
정성은 중심이 있고, 형태는 외부에 있다?
흔히 논어/맹자 등 유학에서 中은 中心, 中間, 中庸, 中興, 중추(中樞)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어차피(於此彼-이 말도 한문이다) 중은 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誠은 정성스런 마음으로 이해된다.
말을 조금 꼬아보면, 속마음과 겉모습이라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의미가 아닐까 추론은 했지만,
정성스런 내용이 형식으로 발현되었다는 말인지, 겉모습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大學)을 통해 이 말의 진정한 어원을 찾아보면,
군자에 대비 되는 소인은 혼자 있을 때나 남이 보지 않을 때 나쁜 짓을 할지 모른다는 전제에서,
小人閒居(소인한거) 爲不善(위불선) 無所不至(무소부지) 如見其肺肝然(여견기폐간연-폐와 간까지 볼 수 있다)
誠於中形於外(성어중형어외) 故君子必愼其獨也(고군자필신기독야)
마음이 혹은 속이 성실하면 자연히 밖으로 드러나므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에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말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전체 문장에서 한 문단, 문구만 떨어져 있을 경우 적확한 의미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는 악습거하 (惡濕居下), 진선폐사 (陳善閉邪)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孟子曰仁則榮(맹자왈인칙영) : 맹자가 말하기를, 인하면 영화롭고
不仁則辱(불인칙욕) : 인하지 못하면 욕을 받게 되나니, 今(금) : 이제
惡辱而居不仁(악욕이거불인) : 욕을 받기를 싫어하면서 인하지 못한 데 머물러 있는 것은
是猶惡濕而居下也(시유악습이거하야) : 마치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 낮은 곳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니라와,
曰責難於君(왈책난어군) : 말하기를 임금에게 어려운 일을 간언하는 것을 謂之恭(위지공) : 공이라 이르고
陳善閉邪(진선폐사) : 선한 것을 펼쳐 놓아 사특한 것을 막는 것을 謂之敬(위지경) : 경이라 이르고
吾君不能(오군불능) :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 하는 것을 謂之賊(위지적) : 적이라 이르는 것이다에서 보듯이
한문이나 문장은 자체 해석도 중요하지만, 전반적 흐름에서 뜻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여기에서의 敬과 禮人不答 反其敬에서 말하는 경의 의미 변화를 추적해볼만 한다)
6.
그리고 당연한 말의 반복이지만, 곱씹어 볼만한 문장이 있어 소개하고 싶은 게 ;
무위기소불위(無爲其所不爲) 무욕기소불욕(無欲其所不欲)라는 말.
(이 말은 유학의 예의나 수오지심이 등장하지만, 왠지 도교나 불교의 가르침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도 상당히 논란이 많았지만,
하지 말 것은 하지 말아야하고, 욕심 부리지 말아야 될 것은 욕심 부리지 않는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혹자는 맹자를 말하며 ;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句上) 이씨왈(李氏曰) 전문을 살펴보면 ;
有所不爲不欲 (유소불위불욕) 하지 않고, 하고자 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것은
人皆是心也 (인개시심야)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至於私意一萌 (지어사의일맹) 그러나 사사로운 뜻이 한번 싹틈에 이르러
而不能以禮義制之 (이불능이예의제지) 능히 예의로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則爲所不爲 (즉위소불위) 굳이 하지 않을 것을 하고,
欲所不欲者多矣 (욕소불욕자다의)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하고자 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能反是心 (능반시심) 능히 이런 마음을 돌이키면
則所謂壙充基羞惡之心者 (즉소위광충기수오지심자) 이른바 수오지심을 넓히고 채우는 자도
而義不可勝用矣 (이의불가승용의) 의로움이 이기어 쓰지 못할 것이다.
故曰如此而已矣 (고왈여차이이의) 그런고로 말하기를 이와 같을 따름이라고 한 것이다.
하고자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욕심 부리는 것과 욕심 부려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을 제어하는데 예의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키려면 수오지심을 넓히고 채워 의를 이루고 써야한다는 말이어서 전문을 인용해 봤다.
7. 마지막, 욕입폐문 (欲入閉門)... 무슨 뜻일까?
들어가고 싶은데 문이 닫혔다?
들어간 다음에 문을 닫았다??
닫힌 문을 보고서 들어가고 싶어한다???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과 닫힌 문은 알겠는데 도저히 뜻을 풀 수가 없었다.
얼마전 모 정당 대변인의 회고를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을, 들어오라는 말로 - 주체 또는 話者(화자)를 바꾸면 의외로 쉽게 풀이가 된다?!
欲罷不能(욕파불능) 그만 두려고 해도 그만 둘 수가 없다(끝내고 싶지만 그게 안 돼~~~)의 댓구로
들어오길 바라면서 문을 닫는다는 풀이를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 되는데,
당신은 과연 이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까?
아무튼, 형들과 나는 숱한 공상과 상상과 억지를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뜻을 해석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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