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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내가 좋아하는 공간 12> 우리나라 사찰건축의 시대별 분류...110625

 

 

우리나라 사찰건축/가람배치의 시대별 분류...

 

1. 삼국시대

 

 

375년> 고구려, 중국 북조를 통해 전래>

     초란사(순도, 초문사라고도 한다), 이불란사(아도)

400년대> 고구려> 3금당1탑(1탑+3금당+1강당), 목탑>

     392년 광개토대왕 9개 사찰 신축, 평양 청암리, 상오리, 원오리, 정릉사터

400년대> 백제>  서울/ 암사(현재 강동구 암사동)와 마곡사, 갑사 등 공주일대 18개소 기록

     대통사, 흥륜사, 수원사, 등라사, 가섭암, 율사, 중심사, 동학사, 상원사, 반룡사, 동혈사, 주미사, 정지사

 

 

500년대>

     백제, 성왕 사비성 천도, 인도 구법승> 1탑1금당(1탑+1금당+1강당), 7당가람제, 대규모 도심 평지가람>

     부여/ 군수리, 동남리, 부소산 서복사터, 용정리, 금강사터, 정림사터, 능사, 왕흥사, 호암사, 오함사,

     성주사, 칠악사, 임강사터(부여 외리) 기타/ 북부수덕사, 보광사

600년대>

     백제, 무왕> 목탑+석탑> 익산/ 미륵사(601), 왕궁리, 제석사, 오금사, 사자사,

600년대>

백제, 일본> 1탑1금당(1문+1탑+1금당+1강당), 목탑, 대규모 도심 평지가람>

     비조사(飛鳥아스카데라,592~596), 사천왕사(四天王시텐노지,593~648),

     법륭사(法隆호류지, 586~607, 670화재, 686중수)

 

600년대>

신라, 고구려 전래+백제기술자+국가왕실주도> 1탑3금당/1탑1금당 등, 목탑, 대규모 도심 평지가람>

     흥륜사(544, 고구려 기술자, 고려척 사용), 분황사(634, 모전석탑), 통도사(646, 금강계단),

     황룡사(553,613원광,645자장/ 백제 기술자, 고려척+당척), 사천왕사지(674), 망덕사지(679)

 

 

 

 

2.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시대

 

 

700년 전후>

삼국통일, 교학 전성기> 1금당2탑(쌍탑1금당), 목탑에서 석탑으로, 교통 군사적 목적의 산지가람 탄생>

     감은사(682), 천군리, 장항리, 간월사, 원원사, 양피사, 갈항사(791), 숭복사(800), 실상사(800년대말)

 

750년대>

경덕왕> 통불교적 다불전 시대>

     불국사(751), 석굴암(751~774), 화엄사(754), 금산사(762), 단속사(763), 법주사(776), 고달사

 

700~800년대>

1금당 1탑식, 석탑> 화엄계 사찰의 득세, 가람의 중심은 탑에서 금당으로>

     나원리, 황복사(691), 술정리, 봉기동, 기성동, 정혜사지, 거돈사, 영암사, 동화사(832),

 

 

 

 

3. 라말려초, 구산선문 시대

 

 

900년 전후>

선종영향 산지가람> 부도탑+부도탑비+금당>

     진전사(821/도의선사), 실상사(828/수철화상 홍척, 1884중), 성주사(847/낭혜화상 무염),

     태안사(847/적인선사 혜철), 쌍봉사(847/철감선사 도윤, 1628중), 무량사/굴산사(858/범일국사),

     송광사/보림사(860/보조국사 체징, 1400중), 쌍계사(840/진감선사 혜소, 1632중), 봉림사(868/현욱),

     흥령사(868/도윤국사 징효), 봉암사(879/지증대사 도헌, 1431/기화, 1674), 선림원(886/홍각선사),

     봉림사(901/진경대사), 광조사(932/진철대사 이엄), 연곡사, 청량사(926), 보원사지,

 

 

 

4. 고려시대

 

 

900년대>  구산선문>5교9산(계율종,법상종,열반종,법성종,원융종+선적종(선종9산)>

종파 영향으로 본당에 고유명칭, 다불전, 불단을 중시한 예불의례> 평지+산지가람> 주심포양식>

도선의 풍수지리에 입각한 밀교적 택지법> 가람 중심은 탑에서 산문으로 변화, 일주문/천왕문/불이문 등>

     무위사/도갑사/천은사/도피안사(875/도선국사), 개태사(936), 관촉사/충주미륵사지/운주사(970/광종)

1100년대>  5교양종(계율종,법상종(남산종),자은종(원융종),화엄종(법성종),중도종(시흥종)+조계종,천태종)>

     대각국사 의천> 선암사(1092), 송림사(1092), 영통사, 영국사, 동화사(1202),

1200년대>

     보조국사 지눌>   거조암, 마곡사(1172), 흥국사(1195), 송광사(1197), 해인사, 은해사(1270),

백련사(1170, 1208,요세/백련결사)

1200년대>

무신정권 시대> 무신정권에 반대한 교종 몰락, 선종 득세> 

     부석사(1016중, 1220중, 1372중), 봉정사(1200중), 수덕사(1308), 해인사(1398~1488),

원나라 침입이후 라마교, 다포계양식> 마곡사, 월정사(1307, 1844중, 1964중), 경천사(1348)

 

 

 

 

 

5. 려말선초, 조선 초기

 

 

1400년대>

선종 퇴조, 교종의 재등장> 부처를 중심으로 보살, 신중의 동심원적 구도로 수평적이며 단순한 배치>

     보림사(1400), 회암사, 장곡사(1350~1450), 정수사(1423), 용문사(1447), 개목사(1457),

     수종사(1459), 건봉사(1464), 도갑사(1473), 무위사(1476중), 환성사(1480), 개심사(1484, 1740),

     신륵사(1379~1469, 1859),

1500년대>

1507년 승려과거제도와 선교양종제 폐지, 무종 무파, 종단부재의 산중불교시대> 도심사찰의 소멸>

야단법석 사라지고 일반 신도가 법당 내부로 들어와 예불하고 설법 강조> 유교건축 영향으로 익공계양식>

     위봉사, 봉은사(1551, 1637중), 청평사(1557),

 

 

 

 

6. 임진왜란 이후 조선 중기

 

 

 

1600년대>

선종중심 무종파적 흐름, 산지중정형 통불교적 가람배치> 정토신앙을 고수한 교학 = 선방+강당+염불방>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인조의 전국적 사찰중창시대> 1623년 인조1년 승려도성출입금지(1897년 해제)>

재원과 부재(목재)고갈로 정제되고 염격한 질서는 사라지고 흩어진 모습>

     화암사(1605), 불갑사(1608), 범어사(1613), 선운사(1619), 전등사(1621), 북지장사(1623),

     내소사(1633), 백흥암(1643), 신흥사(1644), 율곡사(1650), 개암사(1658), 갑사(1654), 미황사(1660),

     대흥사(1665), 예천 용문사(1670), 칠장사(1674), 운문사(1690), 파계사(1695)

중건>  법주사(1624), 흥국사(1624), 쌍봉사(1628), 무량사(1630), 화엄사(1630~1700), 쌍계사(1632),

     금산사(1635), 통도사(1641),마곡사(1651), 봉정사(1650), 봉암사(1674), 은해사(1689)

  

 

 

 

 

7. 조선후기

 

 

1700년대>

소규모 산지중정형> 유교의 보수화와 칠성각, 삼성각, 산신각 민간신앙 수용>

향교서원건축이 절에 유입되어 좌우요사+강당과 접객의 다목적 공간인 누마루, 불전에 마루 정착>

대웅전 위주, 화려해지는 장식(꽃살문, 공포장식, 탱화, 불화), 인구폭발과 온돌보급으로 목재수급 최악>

     직지사(1700), 불영사(1721), 관룡사(1749), 각연사(1668), 정암사(1771), 천은사(1774),

     보광사(1776), 용주사(1790), 능의 원찰(봉은사, 신륵사) 승병사찰(흥국사)

1800년대>

조선말기, 불교쇠락> 세도가들의 개인적 이해로 불교탄압, 차/종이/양초/먹 공납>

     선암사(1823), 고운사(1835), 표충사(1839), 완주송광사(1856), 실상사(1884), 보문사(1893)

     

 

 

* 서언/첨언/사족>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서를 테제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실체가 없는 폐허에서 시작하여,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을 정리해보고,

또 하나씩 풀기가 자신이 없어 먼저 이미 우리것, 내것이 되어버린 불교의 시대적 흐름을 정리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원형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깃든 시대적, 종교적, 사상적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서툰 걸음마 같은 메모들이지만 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정리가 없으면 한걸음도 더 나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객관적 혹은 보편적으로 좋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고,

현재의 모습이 최초의 모습인지 또는 기획자의 의도가 충실히 살아있는 참모습인지도 불확실하며,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과거에도 좋아했는지, 미래에도 좋아할 수 있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대와 사상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원형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내가 좋아한다는 직관은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런 편견과 아집을 벗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언가 설명하려면 조금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다녔던 곳들과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조금 더 자신있게 이야기하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시대적 변천과 변화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격다짐이지만 우리 사찰에 대한 <시대적 변화>에 대해 먼저 정리하고, <사찰별 특징>에 대해 풀어본 다음에 <가람배치의 변화>를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무튼 조금 튀고 서툴고 삐걱거릴지 모르겠지만, 애초의 생각대로 글을 계속 이어가보려 한다.

 

 *

 

우선 용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거 같다.

폐사지 등에서 나는 절집, 절, 사찰, 가람, 가람배치, 불교건축 등 다양한 용어를 혼재해 사용하였다.

나의 불완전한 이해 때문이겠지만, 절/절집(!)이란 표현은 감성적으로는 익숙하지만 실체접근에서는 두루뭉실한 것 같고, 가람/가람배치는 집합적 공간해석에만 한정되는 것 같고, 불교건축은 종교적인 색채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종교 공간을 비종교적으로 해석하거나 건축을 말하면서 구조는 빼먹고 심리적 안정성과 자연 친화성, 그리고 예술적 완성도만 논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해서 <한국의 사찰건축>으로 용어를 통일하여 건축과 공간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

 

 

두 번째 가람배치의 변화를 구성하면서 사찰건축을 분류할 때 생기는 혼돈이다.

우리들이 쉽게 접하는 사찰건축은 종교적 교리, 유물과 유구의 고고학적 문헌적 사실, 고대의 설화와 현대적 의미, 시대적 배경, 그리고 건축적 구조와 배치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종교적 교리와 시대적 배경을 통해, 혹은 시대적 배경과 건축적 구조를 통해, 고대의 설화와 종교적 교리를 묶는 등 그 접근방법은 획일화될 성질이 애초 아니다. 해서 시대적 배경을 우선으로 종교적 교리를 부차적으로, 여기에 건축적 구조를 살짝 곁들인 정도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세 번째는 우리가 답사하는 사찰의 모습을 어느 시대로 분류할 것인가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1886년 공사가 시작된 이래 2010년 일부를 개관하고 2026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는 말에도 깊은 감명을 받은 탓일거라 생각한다. 하나의 단독건축물을 그것도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스페인 같은 경제 강국에서 140년의 시간과 공력을 투입한다는 것이 어찌 경외롭지 않겠냐마는, 사실 이 절대적 시간을 잣대로 사찰의 모습을 분류한다면 현재의 불국사는 750년대의 작품일까? 528년의 작품일까? 무설전이 낙성된 1973년의 작품일까?라는 물음에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화마와 자연재해 등 구조적으로 취약한 목재구조인데다, 몽골의 침입과 임진왜란, 양자호란 등 잦은 전란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왕조의 교체기, 성난 민심, 성리학에 입각한 사대부들의 의도적 훼손 등 파괴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에 극명히 노출된 곳이 불국사 등 명승지의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도 건재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불국사를 1300년 동안 건축된 공간으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이유는 알 필요가 있다. 아무튼 나는 이런 점들을 감안, 오랜 세월동안 창건, 중건, 보수되는 시점을 종합하여 선후를 구분하고, 유구의 완결성과 현재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경중을 나누어 시대를 구분하려고 한다.

  

   

네 번째는 사찰창건 시기에 대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사찰답사여행을 다니다보면 창건주의 2/3은 자장율사와 원효, 의상대사일 것이다.

오늘날까지 사세를 유지하며 많은 이들에게 휴식과 기도, 종교적 공간으로 살아있는 곳을 대충 꼽아보더라도

자장(640년대) - 황룡사, 통도사, 월정사, 정암사, 신흥사, 상원사, 칠장사, 직지사, 법흥사, 봉정암, 화엄사,

원효(650년대) - 분황사, 고선사, 청량사, 낙산사, 표충사, 신륵사, 개암사, 관룡사, 내원사, 율곡사, 무위사,

의상(670년대) - 부석사, 화엄사, 해인사, 봉정사, 범어사, 불영사, 낙산사, 구룡사, 축서사, 고운사, 갑사 등

내가 의도적으로 배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설화적 뒷받침이 기록된 곳들은 셀 수없이 많다.

 

 

얼마전 J목수는 96년에 시작한 사찰건축을 17년만에 낙성했다고 내게 연락했었다. 노가다(건설/건축)밥을 먹은지 20년이 넘지만 내 경험을 잣대로 생각하면, 저렇게 많은 사찰을 완공하고 다니려면 잠도 안자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몇몇 사찰들은 그들에 의해 창건된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의 영역과 가람배치, 건축이 그때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며, 내개인적으로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또한 고승들이 머물렀던 수도와 수양의 공간이 사찰창건으로 둔갑 혹은 비약된 곳들이 많다고 추측하고 있다. 해서 이런 고승들의 인연이 있었던 기록은 참고하지만, 유구의 존재와 기록들을 참조하여 시대를 구분하였다.

 

   

다섯 번째는 개별 건축물과 가람배치의 집합적 통일성에 대한 문제다.

실체는 없이 이름과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황룡사지를 주요한 사찰건축으로 볼 것인가? 아름다운 문살로 유명한 성혈사 나한전을 가람배치에서 다루어야 할까? 제자리인지도 불분명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시대적 대표성을 가진 원각사를 사찰건축에서 분류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다. 또한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이 분명하고, 대흥사, 운문사, 선운사 등과 함께 부정형적 구성의 대표적 가람배치에 우리나라 맛배지붕을 대표하는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는 현재의 수덕사를 요사채가 철거되어 가람배치가 완전히 변형되고, 아직도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가람배치로 인정할 수 있는가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학술자료도 아니고,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한 주제인만큼 내 판단에 주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찰들은 포함시켰다.

 

 

이상 다섯가지 기준을 가지고,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고 건축으로 읽을 수 있는 사찰들의 시대적 구성을 만들어 보았다. 되도록 연대별로 분류하고자 하였고, 큰틀을 가지고 시대적으로 구획해보고자 했다.

(000)은 년도를 표시하며, 창건주 혹은 관련자를 표기했고, 중건, 중창, 중수는 “중”으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