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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건축> 완주 화암사 극락전 - 하앙구조를 보다...1108

 

 

 

 

처음에 절에 왜 갔지?

그때의 내 마음 때문이겠지.

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에 갈무리하고 싶었던 그 무엇 때문에.

 

 

<화암사 가는 길... 오늘 내가 화암사에 오르는 이유가 뭘까?>

 

<안도현님의 시를 읽어 본다... 화암사, 내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기 싫다는 말을 생각하며...^^>

 

 

 

차츰 익숙해지면서는,

아마도 가는 그 길에서 만난 자연 때문이었겠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이 만들어주는 하모니를 아름답게 갖고 싶어서.

 

 

<영월 주천강 사자암... 이런 멋진 풍광을 걷는 길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곤 역사와 사상과 예술에 대해 눈을 떴을 때,

나는 건축을 보고, 얼굴을 보고, 탑을 보고, 공간을 쪼개면서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그러면서 내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서...

 

<불국사 전경... 이렇게 풍부한 공간을 찾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작은 구조가 보였다.

여유와 학습과 욕망 때문이었을까?

기둥이 보이고, 공포구조가 보이고, 주춧돌이 보이고...

선으로 보이던 건축이, 공간으로 보이던 건축이, 볼륨으로 보이던 건축에서 작은 구조가 보였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분(1376년 중수된 무량수전은 최소 150년 전에 창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배흘림 기둥을 본 게 처음이었을까? 수덕사 대웅전(1308년 창건)을 먼저 보았을까?> 

<강릉 객사문(936년 창건되었고 1336년 중건 되었다. 객사문이 만들어진 시기는 그 중간 어디쯤일터)... 기둥의 아름다운 곡선과 건강하면서도 간결한 구조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객사문... 몇 번을 보고서야 이 건축물의 깊은 맛을 알았지?> 

<강진 무위사 극락전(1430년)... 조선 초까지 고려시대 건축의 미감과 구조는 계승됐다...> 

<종묘 정전 부분(1600년대 초)... 임진왜란을 통해 파괴된 우리나라 건축물은 기능과 목적, 그리고 사상에 걸맞는 구조와 미감으로 재탄생된다...> 

 

 

저 목재를 다듬은 손에 어린 긴장과 웃음과 해학과 눈물과 염원이...

오늘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생각했던 화암사의 하앙구조를 본다.

 

 

<화암사 극락전 하앙구조... 극락전의 하앙구조는 전면(↑)과 후면(↓)이 다른 모양으로 마감된다... 똑같은 기능과 목적을 가진 구조도 그들은 다른 마음으로 보고 표현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앙구조를 갖춘 화암사 극락전 단면 및 부재 설명도... 그러면 왜 하앙구조가 발생했을까?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북쪽과 남쪽의 기후가 다르다. 그리고 남쪽은 북쪽에 비해 해가 깊이 들어오고, 비가 많이오며, 태풍 등 비바람에 노출될 때가 많다... 건축기능과 목적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차양, 혹은 처마가 상대적으로 낮고 길어지는 것뿐... 그 목적에 조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하앙구조다... 그래서 중국의 남쪽, 한반도의 백제지역, 그리고 일본에서 하앙구조가 정착되었는데, 그 역사가 중국 남북조 시대였음이 통설이다... 한반도에서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지만, 일본에서 백제인들에 의해 건축물이 만들어진 아스카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 그 구조는 잊혀지지 않고 전승되었다...>

 

 

생각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없다.

느낄만큼 넉넉한 공간감도 없다.

그리고 내 마음을 꾸욱 눌러줄 중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화암사 극락전 전면... 한반도에 하앙구조 건축물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당시 일본 건축물에 대한 연원을 중국 남조에서 곧바로 넘어갔다는 정설(법륭사 등등 아스카시대부터 헤이안시대까지 백제건축인들의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을 뒤집는 중대한 발견으로 학계에서는 떠들썩하게 소개된 시점이 1976년이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와 다시 십여년에 걸쳐 보수하였다고...> 

 

<화암사 극락전 전면과 후면의 공포구조...> 

 

 

우리에게도 있다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리 쉽지 않은 길을 나섰을까?

아니다.

이제 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이겠지.

하앙구조가 갖춰야 할 그 무엇을 나는 이미 보고 듣고 알고 있었기에 이리 비교하는 것이겠지.

 

 

<일본 헤이안 신궁 부분... 간무덴노의 헤이안 천궁 1100주년을 기념하여 1895년, 헤이안 시대의 건축구조를 그대로 재현하여 신축하였다... 하앙구조를 충실히 재현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일본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삼중탑 부분... 780년 창건되었고, 17세기 에도시대에 중건된 25m 높이의 목탑이다... 법륭사 오중탑 사진을 올리고 싶었지만, 하앙구조가 확연히 드러난 부분 사진이 없어 이걸로 대체한다... 아래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능사 오층탑의 하앙구조와 비교해보면 재밌다...>

 

 

 

1000년의 세월이 흘러 앙상하게나마 남은 구조와 결계와 형식을 보며 못내 아쉬워한다.

미감을, 기능을, 그리고 그것이 담아야 할 역사의 혼을...

그러면서 또 만족한다. 이제 보았노라고...

세월이 벗겨버린 긴장감과 공간감과 중압감이 어떻게 흐트러지는지...

 

 

<부여 백제 문화단지에 복원된 능사 오층탑의 모형과 재현물... 모형에서 보이듯이, 능사탑은 화암사 극락전 후면에 보이는 삼각형으로 마감처리 하였고, 모서리 부재는 법륭사 오중탑과 같은 형식으로 다듬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한 차이는 처마의 곡선과 낙수면의 경사... 이걸로 두탑의 미감은 크게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워한다.

이렇게라도 남아있음을?

아니 !

이렇게라도 남아있어야만 했던 끈끈한 집념을...

 

 

<1376년 중수된 부석사 무량수전의 공포구조... 처음 화암사에 대한 메모를 정리하면서 현존 건축물들의 공포구조를 시대순으로 정리/비교해보려 했으나 너무 장황할 것 같아 몇 장의 사진으로 대체한다...^^> 

 

 

<봉정사 대웅전 공포구조... 극락전이 1200년대 창건되었고, 대웅전이 1435년 중수되었음을 근거로 이 공포구조는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또 그 이유로 이 건축물은 최근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고... 시대별로 변화되는 양상을 추적해보는 것도 재밌는 일...> 

 

<1375년 창건된 거조암 영산전 공포구조... 정확한 비교를 위해 같은 화암사 극락전과 같은 맛배지붕 형식의 공포구조를 비교하면 좋을텐데 부분 사진이 없다...ㅠㅠ 나의 답사여행이 아직은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다는 확인쯤으로 이해해주시길...쩝 뾰족뾰족 튀어나온 부재를 쇠서라고 한다...>

 

 

 

<1605년 창건된 화암사 극락전 공포구조... 하앙구조를 가진 극락전과 수덕사 대웅전, 거조암 영산전은 완전히 다르다...>

<1611년 창건된 화암사 우화루 공포구조... 불과 5년의 차이지만 마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1718년 창건된 운문사 대웅전 내부 공포구조... 같은 팔작지붕이지만 공포구조의 내부와 외부 마감처리는 완전히 다르다...>

<근래에 건축된 축서사 공포구조... 현재 우리들이 보는 가장 일반적인, 그렇지만 매우 정성스럽고 정교하게 치장된 건축물...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하여 놓치기 쉽지만, 시대별로 나열해 놓고 비교하면 그 맛과 분위기가 어떻게 틀려지는지 분명하게 차이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꿈을 찬양하고 싶지는 않다.

집념일지 모르지만 우연일지도 모르고, 전승일지 모르지만 모방일지도 모르고...

꼭 그것 때문은 아니다.

그가 만든 것은 편리한, 필요한, 혹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변형과 변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725년 중수된 통도사 대광명전의 공포구조... 공포구조의 다양함과 화려함이 건축물의 분위기를 어떻게 좌우하는지 알고 싶다면 통도사가 제격이다... 10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답고 다양한 공포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이 바로 통도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1725년 창건된 통도사 용화전의 공포구조... 일반적인 앙서, 쇠서, 운공의 구조를 벗어나 만들 수 있는 모든 모양을 종합세트처럼 갖춘 곳이 통도사다... 얼마나 화려해지고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

<1801년 창건된 통도사 약사전의 공포구조... 많이 단순해졌지만 조각과 문양을 충분히 사용하였다... 그리고 통도사의 각 건축물 공포구조는 전면과 후면이 화암사 극락전처럼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한짐 한짐, 짊어졌을 그 무거운 고뇌를 읽어본다.

한걸음 한걸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 그 무서운 집념을 느껴본다.

땀방울 하나하나, 샘솟는 열정과 무념의 손짓에서 텅 빈 마음을 만져본다.

그 무엇이 그를, 그들을, 우리를,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화암사 올라가는 길... 길인지 계곡인지, 인공과 자연의 경계도 불분명한... 예전의 먼 길을 짧게 조성하면서 철제계단도 생기고, 급한 경사도 생기고... 좋타 나쁘다의 기준을 말하기는 어려운 거 같다...>

<마지막 올라가는 길에서 보이는 우화루...>

 

<이제 다 올라왔다. 불명산 화암사(佛明山 花巖寺)... 밝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날씨 때문인지 침침했던 분위기... 이런 분위기를 어디서 보았지?>

<익숙했던 구조... 어디서 보았을까 생각해봤더니 팔공산 은해사 백흥암 보화루였다... 우화루 보화루... 모두 꽃화(花)자가 들어간 누각이고, 보화루는 문으로, 우화루는 돌무더기로 막아져 있다...>

<화암사 우화루의 전면과 후면...>

 

 

 

 

깊은 산, 먼 골짜기...

쫄쫄, 계곡을 적시는 습습한 기운이 감도는 가파른 등산길...

아직 하늘이 보이지 않고,

아직 바람이 불지 않는 낮지 않은 불명산.

오늘 그곳이 머금은 화암산 극락전과 우화루를 보고 있다.

 

<우화루 내부의 벽화... 침침했던 날씨만큼 촛점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ㅠㅠ>

 

<극락전 내부의 화암사 동종... 이건 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일까?>

 

 

 

<화암사 산신각... 그래도 불명산에 올랐는데 산신각을 빼먹으면 산신령님이 서운해하시겠지?^^ 같이 머문 분들 덕분에 보살님의 안내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저 바위 위에서 매일 명상과 기체조를 하신다는 설명까지 들으며... 이곳에 오면 예전에 났던 길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공사가 가능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딘가로 가겠다는 마음을 잃은 채,

들어가는 길에서 만나야할 자연을 잊은 채,

그곳에서 느껴야 할 건축과 공간과 얼굴과 역사와 사상과 예술을 밀쳐놓고,

그것을 이루는 작은 부분, 그것을 받들고 있는 구조, 그것에 붙여진 이름,

내가 이걸 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되었지? 5년? 10년?

부재 하나하나가 이루고 있는 공학적 질서와 기능과 목적만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셔터만 누른다.

 

 

<현판, 혹은 편액이 공포구조를 가리지 않고 숨어있다... 깜찍하다 해야할지, 소박하다고 해야할지...>

 

<하앙구조로 넓어진 면에는 비천상 등이 그려져 있다... 불전의 장엄을 위해 어느 한 부위도 그냥 놔둔 곳이 없었던 극락전... 하나하나 새겨볼만 하다...>

<우화루 내외부의 공포구조... 극락전과 우화로 모두, 기둥 사이에 두세개의 공포구조를 갖춰 다포작으로 만들어졌음을 볼 수 있다...>

 

 

 

하앙구조로 짜 맞춰진 극락전, 그리고 우화루...

보았다는 거, 그리고 이렇게 내 것으로 느껴보는 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하앙을 받치고 있는 앙서... 어디서 보았지? 아~~~ 봉정사 대웅전(↓)에서 보았지? 앙서 위에 곧바로 쇠서가 있는 봉정사 대웅전과 앙서가 두개가 있는 화암사 극락전... 여기에서 200여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