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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風,造,關...

건축> 밀양 영남루에서 생각하는 누각건축 - 텅 비어서 꽉 채워진 공간...1201

 

 

 

 

 

 

<밀양 영남루...>

 

 

 

 

 

 

1.

 

 

석불좌상에 대해 정리하다보니, 문득 내가 본 게 너무 적었다는 생각이 많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결론이 나버려 흥미가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보지 못했던 불좌상들...

그 속에 아직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은 여전한데다,

시작한 글을 끝내지 못하면 늘 머릿속을 뱅뱅거리는 부채의식 같은 의무감도 남아있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부지런을 떨며 석불좌상들을 찾고 있다.

 

 

<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연화대좌 기단부가 사자좌로 만들어진 유일한 예다... 얼굴과 손은 보수되었지만, 신라의 미감을 잘 살렸다... 내원사 석남암수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700년대 후반 작품이다... 좋은 불좌상이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석불좌상 대부분이 경상도 지방에 밀집되어 있어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점,

그런 공간적 거리감이 부담스럽지만 내가 꼽았던 불좌상들을 보지 못한체 더 이상 글이 만들어지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지방 출장 등의 기회들이 생겼다. 춘천, 원주, 용인, 광주, 부산 등등등...

의성 만장사와 고운사를 비롯, 예천 청룡사, 선산 해평리, 양산 물금리 용화사, 원주 용운사지와

밀양 무봉사와 천황사, 익산의 연동리와 태봉사, 청원 비중리, 세중 돌박물관, 보림사 등등

비교적 최근에 처음 봤거나 다시 본 석불좌상들이 적지 않아 새롭게 배우면서 당초의 호기심을 채우고 있다.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 태봉사 등과 함께 몇 안되는 백제시대 석불좌상이다... 얼굴은 제 짝이 아니지만, 광배에는 백제의 특징이 완벽하게 살아있다... 광배만 3.5m가 되는 거불이다...> 

<청원 비중리 일광삼존불상... 600년대 삼국의 접경지에 위치, 고구려/백제/신라 조성설이 불분명한 삼존불상으로 광배의 변화와 흐름을 읽고 싶어 찾았던 불상이다...>

 

 

 

찬바람 씽씽 불던 어느날,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밀양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잡은 무봉사 여정에

잠시 밀양 영남루에 머물게 되었다. 간만에 재미있는 건축을 본 거 같아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 남는...

어차피 휴게소에서 쉬든, 영남루에서 쉬든 똑같은 휴식이고 일탈인데 가까운 거리를 지나치긴 싫었다.

 

 

<무봉사... 밀양 영남루 바로 옆에 위치, 조망과 전망의 일부를 차지하는 곳이다... 애초 영남루와 무봉사 일대는 신라시대 영남사가 있었다고 하니 하나의 영역으로 봐도 좋을 듯...>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신라하대 고려초기니, 900년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광배와 불상은 신라풍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좌대의 앙련은 고려 느낌이 강하다... 작고 여린 모습...>  

 

 

 

답사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습득한 원칙 중 하나는 ; 생각날 때 도모하고, 아쉬움을 남기지 말라는 거다.

충분한 준비가 없더라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내게 열려진 만큼 담는 거보다 즐거움은 없다는 거...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채울 수 있을테고, 또 그렇게 채워지면 비워지겠지만,

영남루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참 즐거운, 그래서 머무를수록 진가가 더 빛나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2.

 

 

흔히 우리나라 3대 누각건축으로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밀양의 영남루를 꼽는다.

또 누각 진입부에 익랑을 갖춘 조선시대 3대 익랑누각건축으로 청풍 한벽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꼽히며,

삼척 죽서루, 광한루 등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누각으로도 꼽히니 영남루는 어느 기준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물론 부벽루, 한벽루 등은 직접 답사하지 못한데다, 사찰, 서원과 정자, 원림건축에도 누각이 존재하기에

누각건축까지는 포괄하지는 못하겠지만, 영남루가 워낙 재미있는 곳이어서 몇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남원 광한루원... 춘향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지?! 백제식 정원의 특징이 살아있는 루원이다...> 

<영남루가 영남제일루라면, 광한루원은 호남제일루다...^^ 누각 진입부에 익랑이 설치되어 있다...>

<영남루의 익랑... 이렇게 진입계단에 회랑을 붙인 건축을 익랑누각건축이라 하는데, 영남루와 광한루, 그리고 한벽루가 유명하다...>

 

 

 

내게 누각하면 부석사 안양루, 병산서원 만대루, 죽서루와 경회루, 경포대나 부용정 등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자연풍광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즐기는 심신수양이나 휴식, 음주가무에 특별한 의미부여하기를 좋아하는

DNA를 갖춘 우리들인데다, 우리네 공간감이나 건축관이 주변환경에 어울리는 첨삭의 안목으로 규모를 설정,

있어도 태가 나지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공간경영, 조금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

그 건축이 있음으로 인해 자연이 인위적 공간이 되고, 인공적 건축이 자연 속으로 녹아드는 조화를 꿈꿨던

선인들에게, 건축을 완성하면서 자연풍광을 담지 할 수 있는 점지의 묘, 즉 누각의 위치는 매우 중요했다.

 

 

<부석사 안양루... 나는, 누각에 대해 충분히 보려면, 전면에서(↑), 그리고 건너편 원경에서(↓), 마지막 누각건축에 들어가는  진입부 등 세곳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경에서 부석사 안양루를 보아도, 후면의 무량수전과 잘 어울리는 규모와 크기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 안마당에서 안양루를 보면 건축적 완성도는 깨지고, 어딘지 왜소하며 불완전하게 보인다... 그러나 만약 이곳 안양루 자리에 병산서원의 만대루 같은 건축을 조성했다고 상상해보자... 건축적 완결성은 얻을지 몰라도, 우리가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사해를 조망하는 모든 시선은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각건축은 항상 불완전성이라는 한계를 담보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때문에 앞서 말한 안양루나 만대루, 부용정 등은 건축적 장치가 뛰어나 우리들에게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점하는 위치, 즉 자연풍광을 끌어안을 수 있거나,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있어 멋진 건축이 되었고,

경회루나 소쇄원 광풍각은 건축적 완성도보다 건축의 기능과 목적이 공간경영과 어울려 기억되는 건축들이다.

 

<소쇄원 광풍각... 소쇄원의 명성과 다르게 광풍각 자체의 건축적 미감은 뛰어나다 평하기 어렵다... 그러나 소쇄원림의 일부로서 광풍각은 제 역할과 이름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광풍각은 몰라도 소쇄원은 기억하며, 부용정과 부용지는 몰라도 창덕궁 비원을 기억하고,

또 부용정에서 주합루로 이어지는 건축적 밀도에 감탄하며, 안양루보다는 그곳에서 보이는 조망을 즐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밀양 영남루는 최순우 선생이 말했던 점지의 묘도 뛰어나지만 건축적 완성도도 높다.

 

 

<밀양 시내에서 영남루의 위치... 언젠가 최순우 선생은 삼척 죽서루에 대해 말하면서 한걸음 앞도, 한걸음 뒤도 아닌 딱 그 곳에 있어 죽서루는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의 영남루도 광의의 위치뿐만 아니라, 지금의 그 곳에 있어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3.

 

 

물론 누각하면 사회적 제관계에서 한걸음 물러난 한가로운 소요나 사사로운 회고가 우선 떠오르고,

조선시대 관아의 전유물로 탐관오리의 상징이 되거나, 자연풍광에 젖어 이태백처럼 음풍농월을 탐미하고,

무위도식하는 이들의 유락공간이라는 반감 때문에 누각이란 개념을 외면/무관심 한 것이 우리들 세태인데다,

 

<담양 명옥헌... 이 곳도 명옥헌이라는 정자 혹은 누각이 아름다워 유명한 건 아니다... 원림을 점유하는 작은 공간, 그곳에서 소일하고 자적하는 사적이며 폐쇄된 공간으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매 순간 이해득실과 효율, 그리고 경쟁의 탐욕에 쩔어 있는 우리들 일상에서 누각이란 공간도 낯설고,

게다가 누각에 올라서 시구절 하나라도 읊조릴 만한 충만 된 여유나 서정적 낭만이 고갈된 우리들을 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진 건축공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음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어

누각건축에 대해 무얼 평가하고 무엇을 즐겨야할지도 모호한 현대에, 대뜸 점지의 묘와 건축적 완성도까지

말하려니 쉽지가 않다. 물론 지금의 내 기분도 그렇지만...^^

 

<정자 혹은 누각하면 떠오르는 여흥과 탐미와 음풍농월... 구중궁궐 속은 얼마나 더 했을까? 경복궁 경회루에서.>

<경주 임해전지... 역시 궁궐의 일부였지?>

 

 

 

하지만 밀양 영남루는 그런 일상과 세태와 정서를 벗어날 수 있는 잔잔한 여유를 줄 수 있어 더 좋았다.

가슴 시원한 조망에 툭 터진 시야만큼 구김살 없이 장쾌한 산하가 일망무제로 펼쳐진 안양루도 아니고,

구중궁궐, 파도처럼 겹겹이 쌓인 지붕들을 바라보며 구획된 성벽에 갇혀 노심처사하는 경회루도 아니고,

낮은 평야에 인위적으로 연못과 섬과 조경을 차용하며 여가를 짜내야만 했던 광한루나 안압지도 아니고,

나무들에 가려 드러난듯 숨져진듯 아쉬운데다, 넓고, 높지 못해 충분히 극적이지 못한 죽서루도 아니고,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독수정, 취가정처럼 상상속의 자연풍광을 읊조리던 사유화된 작은 공간도 아니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말없이 흐르는 백마강을 바라보며 처연한 서사에 빠질 부소산 낙화암도 아니다.

 

 

<신륵사의 정자... 근대에 들어와 첨가된 정자겠지? 그곳에서 즐기는 맛과 그 건축을 즐기는 것은 다르다...> 

<굳이 신륵사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면과 후면, 주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원경도 차경도 깨뜨리지 않았다... 더 높지도 더 낮지도, 조금 더 앞으로 조금 더 뒤로 건축을 했다면 이 맛은 없었을 듯...>

 

 

또한 청도 운문산과 비슬산에서 시작해 밀양으로 흘러들어온 밀양강의 시원함을 벗하기에 충분한 조망에,

밀양이란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상상해 볼 수 있는 도심의 전망까지 읽을 수 있어 친근하고,

도시를 관통하는 넉넉한 강이 흐르는 것도 복인데, 그 한가운데 누각이 들어설 절벽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시민들에 개방된 공공의 장소에 적당히 트이고 적당히 굽어진 강위로 상큼한 바람이 부는데, 여기에 구성지고

한편으론 감칠맛 나는 밀양아리랑까지 덩실거린다면 세상 근심 덜어내며 한바탕 어울려도 쑥스럽지 않을 곳.

게다가 그런 좋은 자리에 달랑 우람한 건축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좌우로 날개를 펼친 건축구성도 재밌다.

 

 

 

 

4.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보는 단촐한 안양루와 무미건조하게 진입하는 죽서루를 생각해보면 연상 되겠지만,

대개 우리 누각건축물들은 건너편 조망을 바라보기 위해 지어지는 건축물이기에 자체 완성도는 높지 않고,

호텔이나 전망대처럼 깎아지른 절벽에 극적으로 건축되거나, 인위적 조망을 위해 군림하듯 위압적이지 않다.

그래서 누각으로 진입하는 동선에서 바라보면 수평적이지만, 건너편에서 올려다봐야 수직적으로 완성된다.

또한 최근 조망 보장되고 전망 좋은 곳을 점령하고 있는 호텔, 모텔, 펜션들과 비교해보면 더 분명해지지만,

유명한 누각일수록 쉽게 달아올라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네 심성을 다스리는 듯 오히려 차분하고 묵직하다.

역시 이런 이유로 후면에서 바라보는 누각은 낮고 근엄하지만, 누각에서 내려다보면 높고 경쾌하게 된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워커힐 호텔에서... 우리들의 정자나 누각과 서양식 호텔을 비교해보면??^^>

<조망과 전망을 필요로 했던 유럽의 성처럼, 요즘의 펜션들이나 호텔, 모텔 - 소위 공공의 장소(?)는 결코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조화보다, 자연을 독점할 수 있는 건축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산 타워... 그래서 조망권은 늘 수직적으로 구성된다...>

 

 

이런 면에서 영남루는 우리네 누각건축 전통을 완벽하게 살리면서 자체 완성도까지 높인 드문 건축이다.

먼저 영남루는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좌우에 능파당과 침류각의 부속건물을 연결하여 단조로움을 피하고,

건너편에서 볼 때도 주변 산세의 흐름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잔잔함을 살리면서도 입체적 변화도 꾀했다.

또한 북동쪽 모서리 능파당은, 기단높이는 영남루와 맞추면서도 지붕은 낮고 작게하여 확연한 위계를 갖추고,

남서쪽 모서리엔 침류각을 일부러 높이지 않고 층층계단에 익랑을 설치하여 머무는 사람의 미감도 살렸으니

이 건축을 기획한 설계 감독자의 뛰어난 안목을 보는 듯 즐겁기만 하다.

 

 

<영남루 배치도... 이 단순한 구성에도 고저장단이 분명한 음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남루는 벽과 문이 없어 단순해지기 쉬운 누각건축의 공포구조에 매우 세심한 정성을 쏟았다.

도리와 창방을 잇는 화반도 진입부 전면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부재로 나누어 입체적 변화를 살려냈고,

익공구조를 이루는 두 번째 이익공에도 쇠서를 두 개로 나누어 조각, 다포작 주심포 같은 느낌을 살려냈다.

때문에 같은 익공계 양식을 갖춘 호남제일루 광한루원과 비교해 봐도 매우 화려 웅장하고 변화무쌍하다.

 

  

<영남루는 익공계양식이면서도 매우 화려하고 장중한 느낌을 살리고 있다... 쇠서 하나를 더 뽑아 3단으로 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장치들을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미감이 아닐지...> 

<내부도 같은 누각건축과 비교해도 개방감과 시원함이 훨씬 크다는 느낌...> 

<광한루원 내부... 안두리 기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육중한 대들보에 눌려 수직적 개방감은 훨씬 적다...> 

<양산 신흥사 대광전 내부... 우리들이 흔히 보는 내부 구조이지만, 신흥사 대광전은 내부가 높고 시원하다...> 

<선운사 만세루 내부... 다른 누각건축에 비해 위로 불쑥 솟은 선운사 만세루는 들보 위로 하나의 구조를 덧대었다... 자연목을 그대로 살려 재미있게 보이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에는 이만한 부재를 얻을 수 없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육책이었다...>

 

 

 

 

또한 영남루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변두리기둥 안으로 안두리기둥을 한 겹 더 세웠다는 점이라고 생각되는데,

먼저 굵고 두터울 수밖에 없는 기둥과 보 부재를 한층 경량화 시켜 무겁고 육중한 기운을 덜어냈고,

그로인해 더욱 넓은 건축공간을 확보하면서 내부공간도 높여 내부에서도 답답하지 않은 시원한 구조를,

결국 벽과 창, 문과 문살 등 장식적 요소가 없는 누각건축의 단조롭고 밋밋해지기 쉬운 구조와 내부공간에

수직적 개방감과 내부에서의 다양한 시각적 조망, 그리고 외부에서 보이는 건축까지 화려하게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 건축 기획자는 변두리기둥과 안두리기둥을 연결하는 보에 자연스러움을 살리면서 한가지를 숨겼다.

4귀를 수호하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와 천장에 꿈틀거리면 살아있는 10마리의 용이 그것이다.

 

 

 

<옆으로 틀어 놓은 영남루 내부... 동서편 양쪽으로 용이 한마리씩 숨겨져 있다... 그리고 4귀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 

<용금루... 이뜻은 높은 절벽에 우뚝 솟아있는 누각이란 뜻이란다... 아무래도 누각에는 시흥을 주체하지 못한 많은 문인들이 써놓은 현판에 걸리게 마련인데, 개인적으로는 행서나 초서체보다는 예서체가, 한석봉체나 원교 이광사체보다는 추사체가 더어울리지 않을까 생각...^^  아무튼, 우리가 누각에 걸려 있는 현판과 편액들만이라도 즐겁게 음미할 수 있다면, 누각건축은 훨씬 즐거운 답사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진짜 맛일지도...>

 

 

 

 

 

5.

 

 

사실 앞서 고백했던 이유들 때문에 지금까지 누각과 정자 등에 대해 건축적으로 나는 뜯어보질 못했었다.

게다가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을 목적으로 들렀으니 영남루는 스쳐지나간다는 의미에서 머물렀을 뿐이었다.

막상 영남루에 올라 밀양시와 강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걸린 현판들을 바라보다 다양한 장치들을 발견했는데,

뭔가 모를 복잡함과 변화가 눈에 들어오더니 10마리의 용이 하나씩 보이고 천장 4귀에서 사신도가 보였다.

현란함? 화려함? 다양함? 세심함? 정성스러움? 하나하나 건축구조와 장치들이 단지 재미있어지는 게 아니라

이 건축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이의 풍부함과 욕심뿐 아니라, 그가 내게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걸 느꼈다.

 

<영남루의 현판과 편액들... 강좌웅부는 낙동강 좌측의 아름다운 큰 고을(밀양)이라는 뜻이고, 교남명루는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이란 뜻이다... 그리고 첨부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추사체로 쓰여진 강성여화(江城如畵)가 있는데 강과 성이 어울려 그림 같다는 의미다...> 

 

 

 

허허~~~ 이걸 만든 대목장은 이 건축물을 최고의 형태로 남기려는 욕심, 남에게 과시하려는 욕심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하나하나 정교하게 배치했던 게 아니라, 어쩌면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가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 건축에 머무는 사람, 즐기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비어있는 이 공간을 마저 채우고 싶은 더 큰 욕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꾸만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각 속에 그의 은밀한 속삭임에 나는 귀를 열고 마음을 열었다.

 

 

<강성여화 바로 옆에 보이는 용... 하나하나가 세심하다...> 

 

<화반의 단청들도 같으면 연속적이고 다르면 확연하게 구성하여 뜯어보는 재미를 곁들였다...>

 

 

 

영남루 자체는 시원상큼한 완성도를 갖춘 장중하거나 근엄하고 화려하거나 담백한 멋진 건축물은 아니다.

또 구석이 많은 집과 골목이 많은 동네처럼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숨어있는 사연이 많은 건축도 아니다.

무엇으로 가려지지도 막히지도 않고, 또 그 무엇도 거부하거나 막지 않은 채 기둥만으로 세워진 누각이고

바람과 빛, 그리고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텅 비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건축공간이 영남루다.

그러나 그 공간을 꽉 채운, 몰라도 좋고 알면 더 즐거운 정교한 건축적 장치들과 섬세한 배려를 보았다.

그리고 하나를 더 봤다. 이 비어있는 공간마저 꽉 채우고 싶어 했던 이름 모를 선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 사진도 일부러 틀어봤다... 남북쪽으로 줄줄이 4마리씩의 용이 있다...>

 

 

 

머물수록 정감 가는 건축, 바라보는 건축의 완성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고 즐길수록 더 좋은 건축,

그리고 이야기가 숨어있고, 내게 이야기를 걸어오며,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건축을 만났다.

영남루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서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고, 건축을 조금 알아서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간경영으로만 바라보았던 건축물에서, 창작자를 느끼고 그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정말 소중했다.

그 先人(선인)은 내게 그가 느끼고 완성했던 것들을 보여주고 검증하여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이야기로 비어있는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만들 줄 아는 안목과 내공의 깊이를 느꼈다.

 

 

 

 

 

 

이 영남루를 만들었던 이는 <樓虛則能納萬景 心虛則能容衆物>이란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듯 싶다.

“ 누각은 비어 있어야 만경을 담을 수 있고, 마음도 비어 있어야 만물(모든 사물)을 담을 수 있다 ”

그는 충분히 비어 있음으로서 채울 수 있는, 말하지 못하는 건축과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고

영원히 단절되지 않고, 끝없이 샘 솟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그런 고귀하고 완성된 인격을 갖춘 이가 만든

건축이 바로 밀양 영남루라는 생각에, 그곳에 머물렀던 순간이 자꾸자꾸 흐뭇해지고 가슴 설레인다.

어쩌면 그런 작고 은밀한 속삭임이 있어 시원한 조망이 살아나고, 채울 수 있는 비어진 건축공간이 있어

나는 촉박한 일상과 구겨진 심성을 잠시나마 비우고 영남루에 머물렀던 시간을 즐겼는지 모르겠다.

이 걸 만든 선인은 텅빈 영남루를 만들어, 내 마음도 담고, 세상의 모든 사물도 담아내고 싶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