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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趣,美,香...

탑3-3> 가을, 거돈사지에서...1110

 

 

 

 

 

계절은 가을인데, 날씨는 여름이라.

쏟아지는 비바람도 싫치않은 훈풍인데

비그친 하늘엔 운무만 자욱하다.

 

이미 꽉 찬 마음, 방향도 목적도 없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지만

숨질 수 없는 즐거움이라지만 만질 수는 없는구나.

 

시시묘묘 변하지만 목적은 과정이라.

나는 변하고 싶은데 방향이 따로 없고,

변하지 않음을 추구하는데 족쇄가 없다.

 

 

<거돈사지를 지키고 있는 천년 고목...>

<누가 저 예쁜 석축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휘갈겼을까? ㅎㅎㅎ 내 맘까지 버리라는 말일까?^^>

<거돈사지 삼층석탑... 빛이 없다고 자태까지 무뎌지지는 않는다...>

 

 

 

뉘라서 이 깊은 곳 자신의 이름을 묻었을까?

탑하나 비하나 부도하나 남아있어 이름으로 답한다.

그가 채운 걸 나는 보았는지 아직 걷히지 않는 안개는 여전히 묵묵부답.

 

세상에 이름을 남겼으나 막다른 길에 묻혔구나.

무엇이 아쉬워 글로 정성으로 공간으로 남겼을까?

그는 비웠지만 그를 기리는 이들은 그 이름이 필요했을지도.

 

산천과 인걸의 무상을 그리는 게 무에 그리 어렵겠냐만

채움이 없는 유상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목적없는 소요의 적막은 그렇게 빈 공간을 거닐게 만든다.

 

 

<뒤편 제방이 없었다면 거돈사지는 훨씬 깊은 공간감을 살려냈을지도 모른다... 물소리도 들리고...>

 

<부석사 석축과 비슷할까?>

 

 

 

 

왜 왔지? 무엇을 보려고, 어떻게 시간을 채우려고.

쫓는 이 없지만 세류에선 자유롭지 못하고,

다그치는 이들에게서도 나는 여전히 충분히 가벼울 뿐인데...

 

10월 늦가을 서리내린 날짜에도 철 잃은 잡초들은 푸르름 잃지 못하고

만산홍엽 기대한 가슴속엔 물들지 않은 낙엽들만 뒹굴고

그렇게 거니는 마음, 비움도 채움도 잃어버렸다.

 

마음은 정처없고, 느끼지 못하는 공허함이 탈속의 공간을 거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 무엇도 필요없어 이렇게 비웠을까?

나누고 싶은 그리움만은 처연히 운무를 채운다.

 

 

 

 

<거돈사지 삼층석탑... 정말 참하게 생긴 미인~~~>

 

 

 

 

몇 개의 기물로 채워진 공간도 숨결이 없으면 허전해지는데,

내게는 빈 공간이 그 시절엔 웃음소리로 채워졌었을까?

탄식도 온기도 없는 곳에 가만히 서서 부는 바람에 마음을 열뿐.

 

향기는 들리는지, 땀내음은 느껴지는지, 유형의 그림자를 보며 허상을 쫓는다.

차가운 돌덩이에서 온기를 찾아내고, 텅빈 공간에서 건축을 재현한다.

무엇을 위해, 누굴 그리며, 꺼져가는 등불에 바람막이를 자처하는지...

 

깨어지고 부서져도 남아있는 하나가 모든 걸 말해준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얼마나 절실했는지, 얼마나 깊었는지...

그걸 만지고 보듬으면 천년의 세월이 나를 충동할 수 있을까?

 

 

 

<텅빈 공간... 탑이 지키는지, 사람들의 숨결이 지키는지...>

 

 

 

 

 

정답 없는 세상에서 현명함을 구하고,

정처 없는 바람에게 올바른 길을 묻고 있다.

평범함이 자유인지 모르고, 성실함이 지혜인지도 모른체.

 

치열함에 감동하고, 진솔함에 가슴 벅차하고, 나누어짐에 눈물 흘리면서,

마음을 놓아버리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된다.

지금 이때를 또 다시 추억할 훗날의 나를 생각하며...

 

 

 

<깨어지고 부서졌어도 그 정성만은 오롯이 남아있다...>

 

 

 

   

 

그냥 그리움이라하자.

바람을 좋아해서, 자극을 좋아해서, 혼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의 나를 보둠을 최고의 위안은 나눌 수 있음이니까.

 

 

 

 

 

그냥 게으름이라 말하자.

가진 게 없어도 쫓기지 않고, 재촉도 외면하고, 강요도 혼자 만든 것이니,

그냥 지금의 내 모습을 성실하지 못하고 치열하지 못한 느림이라 달래주자.

 

 

 

 

 

그냥 이 시간이 필요했다고 변명하자.

비움도 채움도 잃어버린체, 방향도 목적도 욕구도 잊어버린체,

그냥 계절을 놓쳐버린 가을비와 안개가 만든 초연한 공간의 은밀한 초대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거돈사에 이르는 길은 문막에서 들어가는 길과, 충주쪽에서 넘어오는 길... 두 갈래다... 그 경계의 막다른 길을 향해 거돈사는 자리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가와 무관하게 저 나무는 또 그렇게 자신의 세월을 감당하고 있고...>

 

 

그럼에도 남기려하고,

그럼에도 담으려하고,

그럼에도 나누려하는 이유는

그냥 그리움이라고 말하자.

치우침 없고, 목적도 없고, 구속도 없는 게으른 그리움이라고...

그냥 이 순간, 이 공간에 홀로 서고 싶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