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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 心,想,和...

석불좌상 4> 광배의 종류와 시대적 변화(1)...1112

 

 

 

3. 광배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광배의 유형은 몇가지를 넘지 않는다.

광배가 빛이라면 우리들이 형상화 할 수 있는 모양은 원형과 빛살 혹은 불꽃모양, 그리고 연꽃문양...

이 세가지를 벗어나는 게 있을까?

 

 

<목우박물관에서... 원형광배... 가장 단순한, 그래서 가장 일반적인...> 

<목우박물관... 연화문에 빛살문양... 빠질 수 없는, 그래서 가장 다양한 문양으로 변할 수 있는...> 

<목우박물관... 촛불모양... 빛은 불에서 나오나? 물방울 같기도 한데 결국 광배의 형상은 이 세가지를 벗어날 수 있을까?>

 

 

 

간단히 정리하면 그렇지만, 원형은 촛불모양(寶珠(보주)형), 이중원형, 배모양(舟(주)형), 호리병형 등으로,

빛살은 직선 혹은 불꽃문양(화염문), 넝쿨문양과 구름문양 등으로 다양해지고,

 

 

<아무리 다양해진다고 해도, 원과 촛불모양, 배모양의 조합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탱화나 괘불을 통해 전통적인(?) 모습의 광배 세가지를 골라본다... 먼저 은해사 아미타불 탱화... 원형이다...> 

<같은 원형이지만, 두광과 신광을 두개의 원으로 겹쳐 표현한 유형으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법주사 원통보전... 이걸 이중원형이라 불러야 하나, 아니면 호리병형이라 불러나하나?^^> 

<그리고 배모양은 윗부분이 넓어지거나 끝부분이 몽땅한 곡선으로 처리되거나 같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부석사 괘불...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에는 두광과 신광이 이중원형으로 그려져 있고, 가운데 비로자나불 광배는 주형으로 그려져 있다... 부석사에는 2기의 괘불탱화가 있는데, 이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684년작이다... 또하나 부석사에 본존되어 있는 1745년작 괘불탱화는, 비로자나불 광배가 타원형이고,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석가모니불의 광배가 거신광 하나로 표현된 차이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길이 10m가 넘는 괘불탱화를 가끔(?) 전시해 운이 좋고 여러번 가면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이 모양과 문양에 연꽃문양까지 조합되고, 머리에서만 빛이 나는 頭光(두광), 몸에서 빛이 나는 身光(신광), 그리고 두광과 신광이 함께 만들어지는 擧身光(거신광)이 차차 보완되고 완성 되어 가면, 사실 광배의 유형분류는 무의미해질지도 모를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관이지?^^ 단순하게 만들어진 이걸보면 광배가 빛이 아니라, 부처의 장엄을 조금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다양한 요소를 삽입 첨가시키기 위한 공간 혹은 도화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국 푸켓 왓찰롱사원... 조금 멀지만 벽화를 보면 보리수에 원형광배도 그려져있고, 아래 불상들을 보면 광배에 날카로운 조각들이 만들어져 있다... 화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광배를 보면 중심되는 불상과 그렇지 않은 불상의 차별을 두기위해 광배를 만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 광배의 유형을 분류하기 전에 광배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주제를 조금 벗어나는 거 같지만, 한번쯤 정리해 두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그러면서 시대적인 변화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시대별 나라별 공통점과 차이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또 그런 과정이 있어야 지금의 주제인 석불좌상 광배를 통해 시대구분을 하기 쉬울 것도 같고,

가장 아름다운 광배는 어떤 모습일지 각자의 취향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장곡사 상대웅전 비로자나불좌상의 목조 광배... 확실히 이 광배는 딱딱하고 단조롭게 보인다...^^> 

<중국 소주 한산사... 물방울처럼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도 조금 단조롭게 보이고...^^> 

<그러면 복잡한 광배들을 찾아볼까?^^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아미타불좌상...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좌상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지만 이 불상은 대략 1100년경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걸로 보인다... 광배는 언제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이중원형 밖으로 화염문이 조각되어 있다... 복잡해서 화려해진 건지, 금칠이어서 화려한건지...> 

<불꽃문양을 조각했다고 해서 꼭 복잡해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이 불좌상은 875년 만들어졌지만, 뒤편 목재 광배는 언제 작품인지 모르겠다... 부석사 무량수전보다는 단조롭고 광배의 형식도 달라졌다...>

 

 

 

 

불교와 불교미술의 역사에 대해 앞서 이야기했지만, 최초의 불교 조각에 불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었을까? 아니다. 불상은 없지만 부처가 앉았던 사각의 좌대와 보리수/용화수가 있었다.

(조선시대 화원들의 그림에도 왕은 그려지지 않았다. 빈 의자 혹은 가마, 일산(우산)으로만 표현되었지...)

그리고 산치대탑 조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수백년이 지난 1세기까지 좌대에 부처의 족적, 즉 발바닥과 함께 부처 주위에 공양상과 보살들이 조각되거나, 바퀴 모양의 법륜/전륜의 모양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인도 부다가야 대각사의 족적... 작품의 연원은 잘모르겠지만 불상을 표현하지 않고 족적만 새긴 예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내가 찍은 사진들 외에 인용된 자료는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각종박물관도록*대원사간 빛깔있는 책들*문화재청*Daum 이미지 등등이고 예전에 출처를 밝힌바 있어 따로 명기하지 않았다.^^> 

<인도 산치대탑의 족적과 삼보예배조각... 불상이 놓여야할 자리에 법륜이 조각되어 있고, 그 밑으로 부처님의 발바닥만 새겨져 있다... 광배는 저 법륜 혹은 전륜의 계승이 아닐런지...^^> 

 

 

 

 

알렉산더와 한무제의 침공여파로 인도인들의 세계관과 불교관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쿠샨왕조시절 흉노족의 이동과 함께 더욱 급박해지는 인도의 불교는 대승불교로 변화 발전해 가는데, 그로부터도 수백년이 지난 서기 100년경부터 외부의 문화적 자극과 교류를 흡수하고, 내부적으로는 베다시대부터 있었던 인도 전통의 32대인상호가 융합하면서 범인과 다른 부처상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간다라와 미투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32길상에 근거한 불상이다.

 

 

<사천왕봉발도... 2세기 전기 만들어져 초기 광배와 대좌, 도포 등 간다라미술 형식이 잘 나타난 작품...> 

<사리바롤 출토... 역시 같은 2세기 작품... 그리고 좌대부분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좌대의 우주=기둥은 사자가 변형된 것이라 믿게 만드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의 좌대를 보면 저 위치에 사자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32길상중에 <몸의 사변에는 1장의 빛이 빛나고 부처는 그 빛 속에 있다(丈光相)>는 말이 있는데, 정말 빛이 났을까? 혹은 우리들이 보고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아우라 같은 느낌이 아닐까?^^ 꼭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경험에 의해 사람의 몸 주변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을지 모르고, 그것을 불상에 접목했을지도 모르다. 자연현상이란 늘 신비한 것이어서, 잊지못할 경험은 항상 입소문을 타는 것이고, 그걸 인정하거나 믿음으로 대체한 이들에게는 숭배하는 대상에게 그런 광휘를 덧붙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광배를 검색하다가 **대**과 출신들이 만든 카페에  "북경오리"라는 분의 사진을 올린게 있다... 나도 같은 학교에 다녔고 학번도 같은데다 그쪽 과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으니, 알만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친구가 중국의 소오태산에 올랐다가 이런 광경을 촬영했다는 설명이 있다... 봉오리 끝에 솟아있는 무지개빛 원광... 일출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다...>

<다시보니 사람의 그림자가 건너편 운무에 그대로 투영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지개빛 원광이 생긴 것이다...ㅎㅎ 그것도 혼자만 생긴 게 아니라 같이 산에 올랐던 7분 모두에게 생겼다니 그 친구만 특별한건 아니었던 거 같고, 햇빛의 각도와 운무와 습도와  등등이 적당히 어울려 생긴현상이라니 믿을 수밖에...^^ 이 산 높이가 2882m라니 부처가 고행의 길을 나섰을 때 고산지 어디선가 제자들과 함께 이런 현상을 경험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도 아니면 그의 제자들이나 신도들이 히말라야 주변 어딘가에서 이런 경험을 했을 수도 있고...^^ 자연의 현상이지만 너무 경이롭고 환상적인 경험이었기에 부처이전의 베다시대부터 이런 현상은 특별한 분들을 기억할 때 인용되었을지도 모르다... 광배는 상상력과 창작력이 좋은 누군가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이처럼 이미 자연현상중 하나로 실제 있었던 사람들의 경험 중 특별한 것을 불상에도 적용한 것이 아닐런지...^^ 허락받고 가져온 스크랩이 아니라 얼굴부분은 가렸다... 감사/죄송...^^>

 

 

이렇게 광배도 함께 표현되기 시작하는데, 단순하게 따지면 깨달은 자 - 부처의 몸으로 시방세계를 비추는 빛을 형상화하고, 주위 보살이나 공양상, 대중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서 별도의 상징이 필요했고(후대에는 보살에도 광배가 새겨진다)였고, 또 하나의 도형상 이유는 이전부터 새겨졌던 보리수와 수레바퀴 모양의 법륜(전륜)이 불상 때문에 가려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 형상을 차용한 게 원형 광배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결국 보리수의 윗부분 또는 법륜의 상징성을 살리면서 불상과 함께 만들다보니 초기 광배는 두광에만 표현되고 그 양식은 가장 단순한 원형만으로 만들어진다.

 

 

<2세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성도... 부처는 없고 의자에 발자국만 있다... 위 산치대탑 도판에서는 법륜이 있고, 이 조각에는 이미 원형으로 단순화된 보리수/용화수가 있다... 이 조각에 불상이 그려지면 보리수는 원형광배 모양으로 남게 되는 거 아닐까?^^ 혼자 생각이다...ㅋ> 

<보살명삼존비상... 역시 2세기 전기에 만들어진 미투라 불상이다... 단순한 원형의 광배에 약간의 장식들이 가미되기 시작하고, 좌대를 보면 사자가 사질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연화문을 띠어가는 광배와 기둥이 모각되는 좌대가 만들어지는 변화과정이 아닐런지... 역시 혼자 생각이다...ㅎㅎ>

 

 

 

 

그러면 초기에 만들어진 원형의 광배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발전해 나갈까?

그리고 인도 지역을 벗어나 중국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는 어떻게 정착되어 남게 될까?

 

 

<대통령관저소장 미투라불상... 인도 뉴델리 대통령관저에 있으며 4세기, 즉 300년대 후반 작품으로 광배는 더이상 단순한 원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옷주름의 끝을 보면 춘천박물관의 원주불상이나 비슷한 시기 불좌상에서 보이는 매우 장식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처리가 돋보인다...> 

<일산과 광배를 갖춘 선정불좌상... 5세기 들어오면 중국의 5호16국 시대가 된다...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파했던 전진이나 북위 등등이 중원을 주름잡던 시대로 이불상은 장안파의 특징으로 만들어졌다고 최완수씨는 말한다... 일산이란 우산이고, 좌대는 불상 바로 밑의 사자조각이 있는 부분인데 그 밑으로 탁자같은 다리가 있다... 즉 인도출신 부처가 사각바위에 방석을 깔고 앉은 모습은 중국인들에게는 낯설었을 것이고, 입식생활에 익숙한 그들에게 어떤 것들도 땅바닥에 그냥 만들 수 없어서, 불대좌 밑에 의자같은 것을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복장도 중국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관이었을 거 같은데?? 각나라는 각국의 전통과 문화를 답습하게 되고, 인도의 모습과 전통을, 그들 나름의 저력으로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불상은 광배위에 산치대탑에서 보이는 불탑의 상륜부가 덧붙여져 있다... 사족일까?^^>

<나라 법륭사 백제관음... 내 글에서는 워낙 자주 인용하니까 익숙하겠지만, 저 광배는 낯설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촛불형(물방울형 보다는 훨씬 극적이잖아^^) 광배는 백제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광배유형이다...>

<나라 동대사 법화당(호케도) 내부의 불상들과 광배... 가람배치에서도 말했지만 6~9세기까지 법당은 말 그대로 불상들의 공간이지 신도들이 들어가 예배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불상과 사천왕, 인왕상, 보살들이 법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무튼 저 광배에는 빛살문양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태국 푸켓 왓찰롱 사원... 이 벽화의 광배는 완전히 촛불형, 혹은 물방울 모양이다... 이렇게 광배는 각국이 이해하는 수준과 표현가능한 기술적 한계, 그리고 그들 문화가 선호하는 문양, 모양, 유형을 만들고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된다... 왓찰롱 사원뿐만 아니라 동남아 사원들을 보면 건축도 불상의 육계도 여기 광배처럼 모두 뾰족뾰족하다...아래(↓)^^>

 

 

 

나라와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2000년에 걸쳐 변화된 광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추적해 본다.

 

 

 

 

 

<중국 항주 영은사... 여기 광배의 모양과 선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경주박물관 석불입상... 위 영은사 광배는 이것과도 비슷하고 화엄사 괘불의 광배와도 비슷하다...>

 

 

<화엄사 괘불탱화... 1653년작으로 12m 크기다... 1622년작 죽림사와 가장 유사하고, 비슷한 시기 그려진 보살사, 안심사, 도림사, 영수암, 부석사 탱화들의 광배가 비슷하다... 백호에서 빛이~~~~>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전... 중앙아시아 사막 어디쯤에서 떼어낸 이 벽화의 광배는 아래(↓) 진전사 삼층석탑에 새겨진 불상 광배와 똑같지?>

 

 

 

<모든 게 그렇지만 어떤 예술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는다... 특히 같은 교리를 믿는 불교미술이라면 2000년의 시간과 지구반대편의 공간에 구애받을 수 없겠지...

또한 그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와 공간이 필요로하고 가장 선호했던 모습과 이미지가 있으니, 당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았고, 또 그것을 변화시켰다...

 

불행일지 다행일지 그 무수한 변화와 다양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광배라는 목적과 기능이 갖추어야할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니, 결국은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우리가 따르는 유행이라는 것도, 우리가 믿는 신념 혹은 이념이라는 것도,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라는 것도 한 때일지 모르고, 지금 이순간에 절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건 돌고 돈다, 혹은 똑같은 반복이다, 결국 한계를 넘을 수 없다가 아니라, 이 타이밍에 선택할 것이 무엇인지를 현명하게 찾는 거, 그것이 선인들의 경험에서 지혜를 찾고, 다양한 교류에서 변화를 읽고, 역사와 문화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관통되는 의심/호기심/반성/물음/대화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