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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 心,想,和...

석불좌상 5> 우리나라 불상 광배의 시대적 흐름과 종류(2)...1112

 

 

 

 

 

4. 백제, 고구려, 신라의 불상 광배에 대하여...

 

 

 

 

 

먼저 500년대에서 600년대 초반까지 확인할 수 있는 불상의 광배는 백제와 고구려에 의해서 확인된다.

가장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게 <예산사면석불>과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의 광배다.

하나는 527년경 백제작, 또 하나는 539년 고구려작인데 둘다 화염문이지만 양식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예산석불은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쉽지만 두광이 매우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고,

연가7년입상 광배는 촛불모양과 배모양(주형)의 중간 형태로 우리가 최근까지 접할 수 있는 모형이다.

 

 

<예산사면석불... 나는 아직도 이 불상이 개인 소장 차원을 넘어선 일정한 크기를 갖춘 석불좌상의 효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두광부분의 연화문과 주위의 화염문... 좋타...^^>

<지난번 백제에 대해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수나라에 통일되기 이전까지 중국의 남북조와 폭넓게 교류했던 백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광배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박물관에서 산 재현품이란 이야기는 이미 했고... 고구려불로 추정되는 이 불상의 광배는 다양한 광배의 유형 중 가장 기본적이고, 그런만큼 가장 오랜 생명력을 가진 모양이다... 그리고 화염문은 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신묘명 금동삼존불... 여러가지 기법상 연가7년명에 비해 후대의 것으로 보여 고구려 평원왕때 57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 이런 유형의 광배를 가진 불상이 부여박물관(보물196호)에도 있는 걸보면 이런 유형도 한때 유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 두가지가 정형화 되거나 고구려와 백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광배가 있는데

하나는 580년 경의 <서산마애불>이고, 또 하나는 600년대 <법륭사 금당벽화>의 광배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먼저 담징이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법륭사 금당벽화는 빠르면 610년, 늦으면 69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원형광배와 함께 배모양 혹은 타원형의 신광이 함께 그려진 모습으로, 고려시대 제작된 <삼천사 마애불>을 비롯해, 조선시대 금당사, 직지사, 흥국사, 통도사 등의 괘불과 유사한데, 600년대 담징의 그림이 1700년대 조선시대 유행했던 광배의 원형쯤으로 생각해도 될 거 같다.

 

 

<법륭사 금당의 석가정토상... 일산을 쓰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의 광배는 가장 기본적인 원형이다...> 

<법륭사 금당의 십일면관음보살상... 석굴암, 운강석굴과 함께 3대 동양무비의 불교미술로 꼽히는 법륭사 금당의 담징그림... 아무튼, 이 관음보살의 광배 역시 가장 보편적이고 오랬동안 사랑받는 유형이다...> 

<서울 북한산 삼천사 마애불... 이 마애불의 광배나 아래 통도사 괘불의 광배나 똑같은 유형이다...> 

<만복사지 석불입상 광배 뒤쪽에 새겨진 여래입상... 고려불화를 보는 듯한 불상이 선각으로 그려져 있다... 두광을 원형으로 만들고 신광을 길게 내린 이 유형도 조선시대까지 끊임없이 재현된다...>

<화엄사 괘불... 이럴줄 알았으면 크게 찍을 걸(사실 크게 찍은 게 있는데 많이 흔들렸다)...^^ 1792년작으로 1682년 그려진 금당사나 비슷한 시기 흥국사, 직지사의 괘불 광배유형이 비슷하다... 괘불이 유행한 시대적 흐름도 있지만, 그리는 사람들의 유파에 따라 광배의 모습뿐만 아니라 괘불의 구도도 전승되었다...>

 

 

 

그리고 가운데 연화문을 새기고, 주위로 원이 선으로 새겨지고, 원밖으로는 화염문이 촛불처럼 가운데 끝부분을 솟아오르게 580년경 만든 <서산마애불>은 백제 광배의 기준이라 생각되는데,

 

 

<서산마애불... 본존불뿐만 아니라 좌우 협시불의 광배도 촛불모양이다... 이 광배는 백제 불상 광배의 특징이면서 역시 가장 기본적이고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기본형 광배중 하나다...> 

 

<태안 마애삼존불... 580년경 만들어진 서산 마애삼존불과 527년경 만들어진 예산사면석불의 중간인 5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예산사면석불 광배가 가장 단순화된 모습이고, 서산마애불 광배에 장식이 없는 촛불형 모양만 새겨져있다... 부여박물관 사진...>

<1900년대 초 법륭사 금당 내부 북쪽... 이때까지 백제관음은 금당삼존불의 협시불로 배치되어 있었다... 아무튼 백제관음의 광배 역시 서산마애불 광배와 같은 유형이다... 그리고 사진 우측을 보면 거신광이 촛불형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측해 볼 수도 있다...^^ * 일본여행, 법륭사/동대사편에서 이미 출처를 표현했으므로 생략...> 

<법륭사 금당 삼존불중 본존불... 광배의 화불편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좌우 협시불과 일체형이 아니라 이렇게 따로따로 조각되어 삼존불이 된다... 법륭사 창건시기가 590년대 이므로 제작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부여 신리출토 청동불입상... 백제의 이러한 광배유형은 비단 석불만이 아니라 청동불, 동판에 새겨진 불상 등에도 기본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라 생각된다... 부여박물관...>

 

<김제 대목리 동판 반가사유상... 역시 부여박물관 사진으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가장 왕성하게 만들어지던 600년 전후에도 이런 광배 유형은 꾸준히 답습 정착되었다고 보인다...>

 

 

비슷한 시기부터 600년대를 넘어 조성된 법륭사 금당 삼존불과 백제관음을 보면 그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또한 백제의 기와와 전돌 등에 새겨진 연화문과 법륭사 금당 불상들을 보면, 당시 백제인들이 만든 불상 광배가 얼마나 다양하고 화려하며 장식적인지 알 수 있다.

 

 

<법륭사 금당 내부... 여기 불상들의 광배를 보면 삼존불을 세 광배를 제외하면 어느 광배도 똑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광배는 그만큼 다양했고, 백제인들은 그만큼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얼만큼 다양했냐고? 그들이 만들어낸 기와와 전돌에 새겨진 연화문 종류만큼 다양한 광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여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그들이 만든 것은 바닥에 깔린 전돌만 있는게 아니라 요즘으로 따지면 블럭같은 전돌도 대량 생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박물관...> 

 

<그리고 연화문은 단엽뿐만 아니라, 이처럼 쌍엽으로도 이미 제작되고 있었다... 너무 사진을 많이 올린 거 같아 자제(?)했지만 다른 와당의 쌍엽은 석가탑의 팔방대좌와 느낌이 같다...^^>

 

 

673년 만들어진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나 <계유명삼존불비상>까지 그 양식은 그대로 답습됨을 알 수 있다.

 

 

<계유명삼존천불비상... 동년에 만들어진 아미타불비상은 앞서 올렸으니 이번에 이 불상을...^^ 중앙 본존불의 광배 유형이 충분히 관찰된다...> 

<익산 연동리 석불 광배 탁본... 요즘 박물관들이 많이 변해 가는데, 이렇게 실물은 없지만 탁본이라도 걸려 있는 건 기분 좋타... 나같이 게으른 사람을 위한 배려니까...^^ 그래도 서산마애불 재현품은 조금 아쉬웠다... 아무튼 백제광배의 다양하고 화려한 모습이 모두 담겨져 있다... 부여박물관...> 

 

<부여 궁북리 출토 청동광배... 이 광배에는 화불이 없지만, 광배의 두광과 신광부분은 익산 연동리 광배와 유사한 유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어떤 유물이든 지속성과 변화는 하나의 유물만으로 추적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석불이든 청동불이든 그림(법륭사 금당 벽화외엔 남은 게 없지만...) 등 다양한 소재로 답습 재현되었기에 유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런 유물들이 있어 익산 연동리는 백제의 석불이란 근거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600년대 본격적으로 불상을 제작하기 시작한 신라의 광배는 원형에 백제의 문양을 그대로 담았다고 생각된다.

644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생의사 미륵삼존불상(삼화령 애기부처, 경주박물관)>과 660년대 만들어진 <영주 가흥동 마애삼존불>이 그것인데, 백제의 연화문은 후대 불상, 석등, 부도 등에서 보이는 복련의 문양처럼 단순해지고 광배는 원형을 유지한다.

 

 

<분황사 모전석탑의 인왕상... 634년, 선덕여왕 시절에 만든 이 탑을 보면 인왕상에도 광배가 만들어졌고, 그리고 주변과 어울어진 문양들이 새겨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의사 미륵삼존불 중 본존불... 644년이면 선덕여왕시절, 김춘추와 김유신과 원효와 의상이 함께 살았던 시대...ㅎㅎ 신라 초기 불상의 광배와 복련을 잘 관찰할 수 있다... 경주박물관...>

<영주 가흥동 마애삼존불... 생의사에 비해 1세대 정도가 지난 660년 경, 백제가 멸망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이 막바지에 다랐을 때 작품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해갔을까? 100년도 못사는 나는 1세대 30년을 1초도 안 되어 비교하며 지나간다...ㅎㅎㅎ 아무튼, 이 사진은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다... 다시 가봐야할텐데...^^>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 신라는 백제의 광배를 발전시켜 완성된 형태의 광배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69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구황동)>에서 발견된 <순금여래입상과 좌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광배다. 원형과 촛불형이 융합된 모양인 호리병형 광배는 법륭사 불상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신라만의 독특한 모양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하고 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에 발굴된 금동여래입상과 좌상... 입상의 광배는 서산마애불과 비슷한 유형이지만, 좌상의 광배는 이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유형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신라광배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고있다... 불상 조성 양식은 상현좌(포수좌)를 취하고 있어 백제불상의 오랜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나라는 망해도 사람들이 모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장인과 최고의 미감, 최고의 감식안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이 흔들렸지만, 내 사진이 있어 따로 인용하지는 않았다...^^>

 

 

 

이런 변화와 발전된 모습들이 다양하게 연출되는 게 700년대 신라불상의 광배다. 원형과 호리병형 외에 배모양과 촛불형에 연화문, 화염문, 초(덩쿨)문, 운(구름)무늬 들이 섞이면서 불상과 보살상, 인왕상 등에 다양하게 연출되고 실험되다가 그 정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석굴암>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삼존불... 740년경이면 이제 성덕왕의 뒤를 이어 경덕왕이 등극하던 시기다... 이 불상들의 광배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형태는 서산마애불의 촛불형이다... 단, 백제제작 불상들과 100여년이 지난 시차와 백제와 신라의 문화적 차이가 있어서 그런건지, 칠불암 광배에는 원형에서 주형으로 변화 조짐이 보여진다..> 

 <칠불암중 사방불중 하나... 이 광배도 마찬가지...^^ 상호와 포복, 연화좌의 앙련과 복련은 기억해둘만 하다...>

 

<칠불암 위, 신선암 마애불... 저 자세를 유희좌라고 했지? 아무튼 칠불암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걸로 보이는 이 마애불의 광배는 황복사지에서 보았던 그 광배와 똑같지?? 이렇게 정착되어 가다가 나중에 동화사 등 비로자나불좌상이 만들어질 때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걸까?>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부분... 탑신에 새겨진 인왕상 광배는 분황사의 광배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나?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굴불암 사방석불 중 약사여래좌상... 여기 새겨진 광배도 신선암과 비슷하지 않나? 751년 경이면 경덕왕이 김대성에 의뢰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던 바로 그때다...>

 

 

그래서 석굴암은 최후이자 최고의 정수가 되었을까? 가장 단순한 원형과 그 원형에 새겨진 절제된 연화문은 다양함과 화려함이 따를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으니 석굴암은 광배만이 아니라 불상, 좌대, 조각장식 등 모든 면에서 불교미술, 그리고 대승불교의 모든 것이 총화된 완성이자 후대의 기준이 되며,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불교미술의 정수로 불리울 무비의 작품이 된다.

 

 

 <석굴암 본존불... 석굴암에 갈때마다 나는 불만이 하나씩 는다... "사진촬영금지"... 나는 이렇게 쓰고 지금도 유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제안한다 ; "주위에 방해되지 않도록 사진을 찍으시오! 후레쉬는 터뜨리지 말고!!"라고 바꾸길...ㅎㅎㅎ 아무튼 이 사진 하나 찍으려고 한시간 넘게 석굴암에서 부동자세를 취하며 기회를 노리던 내가 생각나는 사진... 잠시 자리를 비워주신 그분게 감사를...()> 

<그래서 이런 사진을 찾아야만 했다...ㅠㅠ 광배와 본존불, 그리고 좌대가 한눈에 보이는...^^ 우리들이 흔히 보는 석불좌상은 바로 저 좌대를 답습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력을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은 이후 1300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광배의 연화문과 앙련과 복련, 그리고 중대석을 한참 뜯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