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햇살에게...
새해... 벌써 햇살이가 열 다섯이구나.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햇살이에겐 일년 일년이 더딘 시간이겠지만,
아빠에게는 벌써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구나.
아빠 엄마의 나이와 무관하게 똘똘이 성장속도에 우리들의 정신연령이 맞춰져 있다 보니,
한편으로는 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햇살이는 어느덧 다 컸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늘 어리게만 생각했던 햇살이가 벌써 열다섯이라니 갑자기 아빠 마음이 바빠지는구나.
해서, 늦었을지 빠를지 모르겠지만 2012년을 맞이하는 햇살이에게
아빠가 몇가지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다.
엄마한테 잔소리 들으랴, 올라가지 않는 성적 신경쓰랴, 여덟살이나 어린 똘똘이와 놀아주면서 티격태격 싸우랴, 학교생활, 친구들 관계에 나서기도 좋아하고 오만데 참견 다하면서 마음에 상처도 많았을텐데
아프지 않고, 밝고 구김없이 예쁘게 자라고 있는 햇살이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막상 말을 시작하려니, 정작 해야할 일은 아빠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햇살이의 주변을 충분히 알고, 햇살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듬에도, 그렇지 못함을 먼저 느끼니 우려스럽기도 하고 지루해할지 모르겠지만,
쑥쑥 커나가는 햇살이도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다운 모습을 갖춰야할 나이라 생각하기에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니 부족함이 많더라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한다.
새해 일출을 보면서, 고향 다녀오면서 햇살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다섯을 준비해봤다.
하나는 햇살이의 일상이 조금 더 계획적으로 구성되면 좋겠다는 거,
둘은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거고,
셋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앞당기고, 아침밥은 꼭 먹고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거,
넷은 책을 많이 깊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거,
그리고 마지막 다섯은 햇살이에게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것들이다.
1.
이미 학교생활이란 짜여진 틀에서 생활하는 햇살이에게
또 다른 계획과 시간표를 만든다는 게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학교 갔다오랴, 틈틈이 학원도 다니랴, 집에 오면 보고 싶은 프로그램, 듣고 싶은 노래, 알고 싶은 이야기도 많을 거고, 친구들과도 놀고 싶고, 똘똘이와도 놀아줘야하고, 게다가 햇살이 방 정리도 스스로 해야 하고... 여기에 또 다시 무슨 계획이 필요하고 시간표가 필요할까?
아빠가 생각하는 것은, 주어진 계획들을 조정하고 재구성해서 햇살이가 주도했으면 하는 거란다.
햇살이의 지금 학교생활은 햇살이가 의도하고 준비해서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의무와 해야 할 일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로만 꽉 차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일들을 햇살이가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만 있는가, 아니면 그 일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하기 싫음에도 어쩔 수 없이 하는가, 아니면 해야만 하지만 그 속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일들을 통해 스스로 성장의 기쁨을 느끼는가, 아니면 끌려가는 괴로움만 있는가와 연결된다.
햇살이와 엄마, 햇살이와 선생님 등 학교생활과의 갈등은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는데서 시작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사람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만 하는 동물, 혹은 의지의 인격이기 때문이겠지.
그것이 자유로 표현되든, 의무와 책임으로 규정되는 우리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만 즐겁다는 건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는 절제와 규칙을 준수하는 훈련도 중요하고, 포기와 희생과 지혜와 양보의 넉넉함도 필요 하겠지만, 이런 문제해결의 출발은 해야만 할 일들을 빨리 받아들이고, 하고 싶은 일을 조율하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그러려면 자신의 의지로 만든 계획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 계획이라는 게 워낙 추상적이어서 꿈일 수도 있고, 현재의 목표일 수도, 시간표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햇살이만의 계획이 있는가 없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할 거 같다.
계획이 있어야 반성이 있고, 반성이 있어야 발전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스스로의 만족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만족이 쌓인 자존감이 있어야 엄마 아빠나, 친구들, 선생님으로부터 받고 싶은 인정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칭찬 받고 인정받는 거보다 중요한 자산은 없을 거 같다.
그렇게 형성되는 자존감만이 진짜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구별해 줄 수 있고, 그걸 알아야만 우리는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빠 생각이란다.
햇살이가 보는 혹은 봤던 영화나 드라마에 주인공은 늘 한사람에 불과하고, 1등만 기억하는게 우리사회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세상은 모두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란다.
모두가 주인공이었으면 하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1등이 아니라, 자기 삶에 주인인가 아닌가이지. 때문에 엄마 아빠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는가가 아닐까?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 칭찬하고 믿어야겠지. 자기 자신을 믿고 인정하고 칭찬하여 주인이 되기 위한 맨 첫걸음이 바로 <계획>이 있는가 없는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햇살이의 마음가짐과 현재의 목표, 그리고 시간표에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방청소, 텔레비전, 친구들과 노는 거... 작은 거 하나부터 햇살이의 시간표에 집어넣고 스스로 조율해보렴. 기계와 달리 어차피 평생을 통해 배워야하는 인간들에게 중요한 것은 계획에도 연습과 단련이 필요한 거니까.
2.
두 번째로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상처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분노고, 결국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게 성숙해지는 건데, 그러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란다.
얼마 전 아빠는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나 염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빠가 만큼 무기력해졌거나 마음이 너무 좁아지고 옹졸해진 게 아닌가 반성되더구나.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까지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떤 문제도 다 풀 수 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지금은 그만큼 아빠가 조급해지고 마음속에 분노와 울분이 쌓여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햇살이도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엄마와 아빠, 심지어 똘똘이에게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
이것은 오핸데, 이건 내 마음이 아닌데, 이건 올바르지 못한데, 그리고 왜 나만 가지고 그러나 하는 생각들... 선생님이니까 함부로 대들 수 없어 당해야만 하는 오해와 편견 등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을거고, 엄마 아빠니까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이해해주지 않아 섭섭하고, 나이어린 똘똘이에게도 당해야만 하고... 진실이 아닌, 정당하지 못한, 게다가 실수까지 겹쳐져 발생하는 많은 갈등들에 휩 쌓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우리들은 분노하기도 하고, 소외감에 허탈해하고, 나만 몰라준다고 몸부림치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런데 햇살아, 그런 게 세상살이고 인간들의 관계란다.
생각해보면 사람들마다 분노하는 이유도 다른 만큼,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고,
소외당하고 있다는 강도가 다른 만큼, 소외를 풀어가는 방식도 사람마다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이 세상에는 나만 몰라준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햇살이 생각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아빠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모든 것을 웃어넘기는 여유나, 무관심, 초탈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다. 분노하고 소외감을 느낄 때, 한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훈련을 해보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나와 똑 같은 사람이 없듯이, 사람들은 개개인의 성장과 환경이 다른 만큼 살아가는 이유도 다르다. 만약 이것이 똑 같았다면 우리들은 공중도덕도, 정의도, 진리와 가치에 대해서도 교육받을 필요가 없겠지. 어쩌면 그런 것들, 심지어 나를 충분히 알아주고 이해할 수 있는 진실과 진심이란 말이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건 진실어린 소통, 내 모든 마음을 열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들은 가족에 의지하고 친구를 찾고,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만들지도 모르지.
햇살이가 생각하는 올바른 거, 햇살이가 생각하는 진실, 햇살이가 생각하는 공평과 합리성이 틀린 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정의와 진실과 공평하고 합리적인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해야겠지. 또 아직까지 정의와 진리와 합리적 판단을 상대방이 할 수 없는 조건이거나 자격이 없는 경우도 있을 거고. 이제는 그것을 구분하는 힘을 기를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게 아빠 생각이란다. 내가 맞는가 틀린가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기준이 나와 같은가 다른가를 먼저 생각해야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틀린 것은 고치면 되지만, 서로 다른 것을 맞추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임은 햇살이도 알지?
엄마의 입장에서, 선생님의 입장에서, 친구들의 입장에서, 똘똘이의 입장에서, 혹은 모르는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처신할 수 있는 여유가 햇살이가 길러야할 힘일 거 같다.
분노는 자신을 태우는 불꽃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때로는 열정으로 때로는 파멸로 이끄는 게 분노지. 게다가 대한민국 사람만큼 싸움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지.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파이팅이라 외치지? 그만큼 이기고 싶은 열망에 빠져 있거나,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지켜줄 사람이 없거나, 모든 문제를 싸움으로 보면서 내편과 니편을 갈라야만 속시원한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성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들은 모든 데 열정과 최선을 다한다는 긍정적인 힘도 내포한다는 의미도 되겠지. 결국 그들에게도 햇살이만큼의 울분과 의욕이 넘쳐 있다는 걸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빠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정당함과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상대방도 자신의 정당함과 자신을 왜 이해해주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음을 알아라는 말이다. 어떤 문제든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정당함은 공평하고 합리적이었는지 먼저 생각해보고,
상대방은 나의 가치와 같은가 다른가 따져보고, 또 그 상대방의 수준은 나와 같은가를 다시 생각해보렴. 똘똘이는 햇살이만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엄마의 목표가, 선생님은 선생님의 의도가 있겠지. 그러고 나서 물러설 때와 굽히지 않아야 할 때를 햇살이가 선택해야만 되지 않을까?
그것이 햇살이 마음에 독으로 남을지 약으로 보태질지 모를 분노를 다스리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3.
세 번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아침밥을 꼭 먹고 학교 가라는 말이다.
느닷없이 어려운 이야기하다가 왠 소리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햇살이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상대방에 대한 건전한 이해도 건강한 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어 더 강조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이건 정말 중요하단다.
늦게 일어나도 학교에 데려다주는 엄마 때문에 길들여진 습관일지 모르지만 햇살이는 너무 늦게 일어난다. 물론 아침잠 많은 아빠를 닮아 설 수도 있고, 스스로 책임지게 하지 않는 엄마의 여린 마음 때문일 수도 있지만, 햇살이가 늦게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햇살이도 알다시피 숙제한다고 늦게 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늦게 자는 가장 큰 이유는 집에 와서의 생활이 규칙적이거나 계획적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제는 이 악순환이 햇살이의 하루와 햇살이의 일상에 상당히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지?!
늦게 일어나서 엄마에게 아침부터 욕먹어야 하고, 또 허둥대니까 불필요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하루를 계획해야 할 시간에 햇살이는 결코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루를 시작해야만 한다.
자연, 계획도 생각도 여유도 없이 하루를 피곤하게 시작했으니 하루를 또 피곤하게 끝내야만 한다.
게다가 엄마가 학교까지 보내줘야 하니 아침 운동은 없고 수업준비는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아침밤이 부실하니 축적된 에너지가 없는 뇌는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없을테니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늦은 시간까지 혼자서 유유자적 공부하는 순간만 뺀다면 소위 키 클 시간도 없이 햇살이는 하루를 보낸다. 아빠는 그런 모습이 싫다.
햇살이와 같은 또래의 미국, 유럽 아이들은 아침수업 시간 전에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최소 3~4시간 이상 체육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학생활까지 구기체육을 해야만 한다. 이유가 뭘까?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만들어진다는 그리스의 교육철학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단체 체육활동을 통해서 리더쉽과 소통의 연습, 조직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는 서구의 교육패턴, 철학과 수학만큼 체육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교육방침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전통 교육방식에도 체육은 가장 기초적이며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런데 햇살이가 다니는 학교에 그런 방침은 없는데 햇살이는 그럴 기회까지 없어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아침에 빨리(지금보다 조금만 더) 일어나서 밥먹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거.
춥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책가방도 무겁겠지만 그렇게라도 햇살이는 아침에 운동을 해야만 한다.
교육이라는 게 자식과 학생의 처지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외울 것은 외워야하고, 거칠 것은 거쳐야하고, 할 것은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왜냐하면 햇살이 나이에 하지 않으면 그것은 평생 할 수 없는 것이고, 지금 시기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계획을 세우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것은 햇살이 마음의 크기와 노력 여하에 따라 시기가 조절될 수 있지만, 지금, 아침에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고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영원히 만들 수 없는 시간이고 기회다. 이것은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햇살이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다. 올해 꼭 바꿨으면 좋겠다.
4.
네 번째는 책을 많이, 그리고 깊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햇살이 독서량은 최고였다. 남들보다 최소 서너배는 되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햇살이가 책읽는 모습을 아빠는 볼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학교에서 체크하는 독서량은 책을 읽은 권수였고, 햇살이는 책을 양으로만 읽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자만, 그것은 더 이상 햇살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다.
책을 양으로만 보니 일단 시작하면 끝을 내야만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그러니 학교가랴, 학원가랴, 양쪽 숙제하랴...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방법도 바꾸고, 접하는 마음도 바꿔야 할 거 같다.
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용을 모른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게다가 책을 통해 얻어야 하는 많은 것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아빠도 그랬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책 읽은 권수를 따지다가 학교에 1000권이라고 써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하하 가소롭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년에 읽는 책이 평균 16권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리고 아빠도 그랬다. 아빠도 독서를 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었지.
무슨 책을 읽었는가, 그 책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리고 다 읽었는가 아닌가만이 유일한 기준이었다.
대학을 떠난 한참 후에서야 아빠가 독서방법을 바꾸게 되었듯이 햇살이도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말이 지금 햇살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고, 아빠처럼 나이먹고 느낄 수도 있지만, 햇살이는 그런 것을 알고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게 아빠 생각이란다.
먼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
수면욕, 식욕, 성욕, 쇼핑욕(소비?), 과시욕(?)...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수많은 욕심이 있지만
아빠는 여전히 어른들 말씀, 특히 공자말씀은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배우고 익혀 내것으로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가 첫 번째 즐거움이라는 말...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새로운 배움과 지식의 확인이 책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TV나 영화, 신문을 통해서, 그리고 다양한 매체와 정보와 대화 등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접할 수 있지만, 보면서 생각하는데 문자와 활자만큼 위력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을 아빠는 하고 있다.
또 넓게 봐야 높게, 혹은 깊게 만들 수 있다는 말도 옳다고 생각한다.
땅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기 시작해야하고, 건물을 높이 올리려면 역시 넓게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생각도 마음도 꿈도 마찬가지다. 책을 많이, 즉 넓게 읽는다는 건 생각하는 힘을 크게 만들어 준다.
물론 햇살이도 충분히 알고 있는 이런 말들은 무의미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강조한다. 문제는 방법이고, 지금 햇살이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느냐 못가지느냐 하는 것일 거 같다.
아빠의 예를 든다면, 지금 아빠는 아빠가 보고 싶은 책만 본다.
물론 가끔 봐야만 하는 책들도 있지만, 이젠 읽어야 할 책과 그럴 필요가 없는 책을 고를 수 있단 말이다. 또한 책을 샀더라도 머리말과 책의 뒷면에 나오는 후기만 읽기도 하고, 부분부분 챕터만 골라서도 본다. 그리고 햇살이도 알겠지만, 아빠 주변에는 사무실, 숙소, 화장실, 책상, 집, 식탁, 심지어 방바닥에도 책이 굴러다닌다. 이제는 몇 권을 읽는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심지어 제목을 모르고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예전처럼 책을 읽으며 줄도 치고(몇 페이지를 몽땅 줄친 경우도 있다), 빈공간에 내 생각도 써보고, 메모도 하고, 요즘엔 핸드폰 사진으로 찍기도 한다.
물론 늘 그런 것도 아니고 항상 맘 편히 책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려하고, 자유스럽게 책을 읽는 이유는, 한권을 읽었다는 성취감보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는, 혹은 내가 아는 걸 확인했다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란다.
햇살이는 아빠와 달라야 되겠지. 고를 수 있는 자유보다는 읽어야 하는 의무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없는 시간에 읽어야 하는 책이 시험에 나오는가 안 나오는가가 중요할 것이고, 왜 읽어야 하나 자꾸 의구심만 생길 것이고. 그렇지만 햇살이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건 분명하다. 굳이 도서관엘 자주 가지 않아도 읽을 책이 많고,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라는 충분한 조력자도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습관을 만들건가 말건가지.
작년부터 해보려고 했던 주제를 가진 토론이나, 신문을 읽는 습관 등도 햇살이에게 짧지만 깊게, 또는 다양하면서도 넓게 햇살이가 활자와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는데 우리는 충분히 실천하지 못했다. 개략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햇살이 나름대로 6하원칙으로 재구성해보고, 햇살이 마음에 드는 구절은 외워도 보고... 그러면서 가볍게 때로는 깊게,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두께의 책을 읽으면서 정리했으면 좋겠다. 바쁘고 힘들겠지만, 햇살이가 책을 편하게 접한다는 것은 키 크는 것만큼 중요하니 노력했으면 좋겠구나.
5.
길었지? 어렵기도 하고... 도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이글이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고
한때의 각오로 묻혀지더라도 교육과 학습이란 끊임없는 반복이라 생각하며 마지막 말을 이어가본다.
아빠가 올 한해, 2012년 열 다섯 살 되는 햇살이에게 주고 싶은 숙제는 ;
햇살이에게 <고귀한 것>은 무엇인지, 무슨 의민지 답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거란다.
당장에 대답했던 돈, 사랑, 힘일 수도 있을 것이고, 성적도 있고, 품위, 교양, 정의,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인정받는 것, 기쁜 것, 충만감 등등도 있겠지만 조금 더 넓게 봤으면 한다.
내게 고귀한 것은 상대방에게도 고귀한 것이 될 것이고,
내가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꼭 갖춰야 한다는 목표도 될 것이고,
그 내용이 무엇이든 형식이 무엇이든, 진정으로 자신에게 고귀함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커다란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아빠는 햇살이에게 숙제를 주고 싶구나.
햇살이가 생각하는 고귀한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고귀한 것은 무엇인지...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그 고귀한 것을 갖추고 채우기 위해서 햇살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것에 대해 차분히 그리고 넓게 깊고 멀리 생각했으면 좋겠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햇살이는 그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햇살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엄마 아빠처럼 눈치와 염치와 체면이라는 걸 먼저 배울 수도 있고,
권위와 불합리와 공평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반발과 저항을 통해 인격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되고 싶은 꿈과 희망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인내와 절제를 통해 세상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햇살이 스스로 세상을 읽고 스스로 세상과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와 달리 햇살이는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존감을 갖춘 모습에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지만 아프지 않고, 구김없이 밝게 자라주는데 엄마 아빠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단다. 이제는 조금 더 깊고, 넓고, 밝게 자신과 친해지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것이 햇살이 자신을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고, 울고 웃으면서 自我(자아)를 만들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늘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햇살이 주변에는 항상 햇살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잊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열 다섯 햇살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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