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 석가탑과 술정리탑의 수리적 비례체계 비교와
- 주요석탑의 수학적 질서의 도해...
지금까지 나는 창림사탑을 통해 상하층 기단부의 탱주, 팔부신중과 문비 등 부조, 발굴조사와 가람배치, 동시대 석탑의 비례와 체감의 비교, 그리고 사리갖춤 등 관련자료가 석탑 편년을 결정하는데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검토해봤다. 또 이미 앞선 글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황과 대외관계, 그리고 불교의 흐름이 어떻게 석탑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봤기 때문에 대체적인 큰 흐름은 잡혔다보고, 편년 및 시대별 석탑의 미감과 관련해 몇기의 탑을 조금 더 살펴볼 예정이다. 그중 하나가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이제 석탑의 편년과 관련하여 술정리탑을 통해 석탑의 수학적 비례와 조화, 그리고 기단부의 결구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굳이 기단부 결구방식에 한정하는 이유는, 감은사탑/고선사탑 이후 모든 석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석재로 가공했기 때문에 체감률과 미감, 비례 등의 문제만 남지 굳이 결구방식이 필요없는 가장 단순한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일지 모르지만 술정리탑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탑으로, 석가탑과 우열을 논할만한 독보적인 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삼층 지붕돌까지 높이가 5.8m로 석가탑보다 1m 정도 낮아 700년대 후반 석탑의 규모가 작아지고 경주를 벗어나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 정도로만 부연 설명되고 있어 안타까운데, 우아한 미감의 대명사인만큼 각 부재의 비례와 조화가 석탑의 미감에 미치는 영향과, 통일신라 석탑의 결구방식에서 어떤 영향과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술정리탑... 이리보고 저리봐도 역시 국보탑 같은 완벽한 균형이 살아있지?...>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석탑을 통해 다양한 미감을 접하면서 이를 기념비적 스케일과 편안함 또는 남성적/여성적/중성적이라 구분하기도 하고, 장중함/우아함, 둔중함/경쾌함, 상승감/안정감, 당당함/문아함(단아함) 등 다양한 기준으로 나누어 비교하곤 하는데, 난숙한 기법에 수준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석탑에는 일정한 수학적 비례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앞선 글 - 석가탑편에서 이에 대한 나름의 검토내용을 소개한 적 있는데, 하나의 미감으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술정리탑에 비해 남성적인 석가탑과, 이에 비해 조금 더 여성적이고 경쾌한 느낌에 우아함이 살아있는 술정리탑은 비례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다른 석탑들에서는 그런 조화를 찾을 수 없는지 한 곳에 모아보고 싶었다.
<석가탑... 이제 술정리탑을 석가탑과 비교하면서 그 비례를 살펴볼 참이다...>
왜냐하면 통일신라 석탑의 가장 큰 차이점인 안정감은 상하층으로 이루어진 이층기단부란 구조적 요소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중국의 전탑과 일본의 목탑에서 기단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작다), 기단부와 탑신의 연속적인 비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석탑은 하나의 완결적인 구조체라기 보다,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처럼 이질적 요소의 절충으로 보이거나 중흥산성탑처럼 불탑의 상징성에 만족하는 공예품이나 모형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한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비례에 충실할수록 예술적 완성도까지 높아 보여, 종교적 이유든 문화예술적 관점에서든 오랜 여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확인하기 전에, 그렇지 않은 탑들이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조성의도와 조성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이 역시 시대의 미감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석가탑/술정리탑과 무엇이 비교되는지 한 눈에 확인되는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먼저 석가탑과 술정리탑 중 어느 석탑이 수학적으로 더 완벽하고 안정적으로 보일까? 사실 이 비교는 구체적인 수치가 명기된 도면이 없으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겠지만, 다행히 ‘통일신라 석탑의 비례체계에 관한 연구 -양조암골 절터 탑을 중심으로-/신수영/2003년’ 논문(이화여대 건축학과 석사 논문인데, 석탑에 관해 처음 접하는 이화여대 논문이었다^^)에 내가 찾는 도해들이 있어 이를 인용하려한다. 신수영은 무너진 양조암골 석탑 복원을 위해 석가탑과 술정리탑에서 하나의 규칙을 찾아냈는데, 기단부까지 높이는 지대석 혹은 하층기단부 폭의 1/2로 결정되며(지대석 넓이:기단부 높이 = 2:1), 일층몸돌까지 높이는 상층기단부 갑석 폭의 1/2, 이층몸돌까지 높이는 일층지붕돌 폭의 1/2 등으로 결정되고, 또 지대석의 폭을 한변으로 정삼각형을 그리면 일층몸돌 끝지점에서 일치한다는 점(지대석 넓이:일층몸돌까지 높이 = 2:√3) 등을 설명하는데 석가탑과 술정리탑의 도해를 사용한 것이다.
<술정리탑은 야간에도 탑을 살필 수 있는 조명이 있어, 주위 배경을 무시하고 오롯이 탑만 즐길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도형을 원-세모로 꼽고(그래서 고대 문명의 수준을 판단하는데 바퀴의 발명과 원주율 즉 π, Ø의 사용을 주요한 척도로 삼는다), 그 중 가장 안전한 구조를 삼각형으로 꼽는데(그래서 기원전 500년경 세상을 수의 체계로 파악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첫 번째 성과가 피타고라스 정리(a²+b²=c²)이고, 인류의 가장 오래된 건축구조물인 피라미드와 현재 세계에서 제일 높은 버즈 두바이의 형상이 삼각뿔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원기둥이나 직육면체 형상의 고층건물이 설 수 있는 건 순전히 과학기술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다)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 중 가장 기본적인 구조가 정삼각형과 직각삼각형(여기에서부터 1:2:√3, 1:1:√2, 3:4:5 등의 비례와 각종 수학 공식이 발견, 구조에 사용된다)인데, 신수영도 이에 착안했다면 나와 동일한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라 생각해 인용하는 것이다.
<술정리탑의 노반과 상륜부는 어떤 모습이고, 어느 정도 규모였을까? 물론 이 글의 주관심사는 석탑의 복원이 아니라, 석탑에 숨어있는 수학적 질서를 살피는 것이고, 이 수리체계가 석탑의 미감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석탑은 완전한 자태와 비례를 갖추고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 온전하다는 석탑들의 상륜부가 없음은 대부분이고, 노반 이상 결실된 석탑이 그렇지 않은 석탑보다 많고, 아예 무너지고 쓰러진 폐탑 부재가 더더욱 많은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이들의 원형은 어는 정도의 규모와 높이에 의해 결정됐고, 그랬을 때의 미감을 추정하는 것은 자연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 기준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고, 답사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파손된 현재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규칙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기단부 초석만 발견된 황룡사지에서 황룡사 구층목탑을 복원할 수 있고, 결실된 술정리탑의 노반과 상륜부도 무리없이 추정할 수 있다.
<경주 남산 탑곡의 마애조상군... 여기에 새겨진 칠층과 구층 마애탑은 황룡사 복원에 가장 근접한 단서로 인용되고 있다...>
<아무래도 사진만 보는 것보다 실측도면으로 확인하면 더 선명해서 재인용한다...>
때문에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실상사석탑/봉암사석탑/백장암석탑 등을 비롯,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등에서 칠층과 구층탑의 비례, 송림사전탑/월정사구층석탑/법주사 팔상전 등에서 불탑의 상륜부, 나원리석탑 등 사리갖춤에서 출토된 소탑의 비례, 일본 법륭사 오중탑의 비례와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척도 등 수많은 자료를 취합하여 기준점들을 마련하고, 이를 찰주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감은사탑 등과 비교하며 몇가지를 정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석탑의 상륜부까지 높이는 지대석 넓이의 2배라는 점 등이다(물론 신수영의 도해는 그의 전매특허가 아니라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제시된 일반적인 기준이나, 이를 세부 부위까지 적용하여 전체 복원을 추정한 것은 상기할만 하다고 보인다).
<석가탑 상륜부 복원 근거가 된 실상사탑이다...>
<또 송림사탑의 상륜부는 통일신라 시대의 원형을 추정할 가장 유력한 단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월정사탑은 신라 양식이 계승된 불탑의 상륜부가 고려시대에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규준으로 제시한 척도와 비례가 통일신라 석탑/전탑/목탑 뿐만 아니라 전시대를 통털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준으로 제시한 척도는 어느 시점까지 통용되고 어떤 법칙과 양식을 가지고 변화했는지를 새롭게 밝혀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불탑이 단순한 건축과 공예 혹은 조각이 아닌 이상, 문화미로 구현되는 시대정신과 교리에 적합한 체계를 갖추었는가의 문제는 비례와 척도를 떠나 미감을 결정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의 상관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즉 편년의 적확성과 모듈의 함정, 그리고 특수성의 재현이란 문제가 남게 된다. 때문에 이런면에서보면 석탑을 제조한 시스템이 유지되어 설계도면과 경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700년대는 석탑의 원형을 추정하고 복원하는데 가장 편안했던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석가탑의 45도 수직비례체계/신수영 논문에서... 역시 석가탑인가? 이층지붕돌 폭과 높이의 비례를 제외하면 똑같은 지점에서 대부분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석탑이 이럴 거 같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술정리탑 45도 수직비례체계...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가진 술정리탑부터 균질한 비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튼 내가 도해를 인용하는 것은 복원이 아니라 석탑에 숨어있는 수학적 질서와 규칙을 확인해 전체적인 비례와 조화에서 미감을 느껴보자는 것임을 감안하고, 이제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 신수영의 석가탑과 술정리탑 도해를 살펴본다. 자세히보면 석가탑은 정삼각형이든 45도 직각삼각형이든 모두 일치하는 반면, 술정리탑은 45도 직각삼각형을 적용하면 각 부위의 비례가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정삼각형에서는 상당수 오차가 발생하여 일치하는 경우가 더 적어진다. 그 중 가장 큰 편차를 보이는 지점이 바로 상층기단부 폭을 한변으로 그린 정삼각형으로 석가탑과 달리 이층 지붕돌에 미친지 못한다. 즉 일층몸돌 비례가 석가탑보다 높다는 확인되는데, 이점을 감안하면 술정리탑 일층몸돌이 우리들 육안으로도 높고 좁아 길어 보이는 게 당연하게 되고, 이렇게 깨진 비례는 석가탑에 비해 술정리탑을 보다 날씬하면서도(여성적) 상승감이 있는(가벼운) 반면, 2~3층에서는 급히 줄어든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정삼각형을 적용한 석가탑의 수직비례체계/신수영 논문에서... 역시... 정삼각형을 적용해도 석가탑은 일정한 수학적 질서가 매우 균일한 체계로 조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삼각형을 이용한 술정리탑 수직비례체계/신수영 논문에서... 논문에서는 설명은 있지만, 따로이 도해가 없어 할 수없이 내가 붉은 색으로 표현했다... 정삼각형을 적용하면 술정리탑의 비례체계는 그리 완벽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역으로 45도 직각삼각형과 정삼각형, 어느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각층 부위와 정확히 일치하는 석가탑은 술정리탑 보다 훨씬 수리적이며 정교한 체계에 의해 계산되어 기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결론적으로 석가탑이 술정리탑보다 더 완벽하다는 말이 된다. 즉 석가탑까지는 지대석의 폭과 기단부까지의 높이, 기단부 폭과 일층몸돌까지으 높이, 그리고 각층 높이와 지붕돌의 폭 등이 정확한 수학적 질서에 의해 기획 시공되었는데, 후대로 내려갈수록 이런 비례들이 깨져간다는 말이다.
이런 비례를 다른 석탑들에는 적용할 수 없을까? 도면만 충분하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를 통해 한두가지를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위에서 봤던 도해들은 도면의 수치를 기준으로 분석한 것으로, 실제 우리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도면처럼 수평의 높이에서 다촛점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탑과의 거리나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비례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해서 비교적 사진 왜곡이 적은 100mm 렌즈로 담은 대상들에 정삼각형을 적용하여 살펴보려 한다... 먼저 석가탑의 경우는 도면의 지점과는 다르지만, 일정한 규칙이 살아있어 역시 석가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비해 술정리탑은 조금 더 먼거리에서 확인했지만, 석가탑에 비해 각부위와 조응하는 정삼각형 숫자가 뚝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지만...>
하나는 정삼각형이 많이 확인되는 석탑일수록 정연하면서 수리적으로 완결적으로 보인다는 점과, 또 하나는 정삼각형보다 큰 각도의 이등변삼각형이 사용된 석탑일수록 상승감이 돋보이거나 날씬하게 보이고, 그 보다 작으면 안정감이 강조되거나 둔중하게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이는 석재의 가공상태나 규칙적인 일관성, 그리고 지붕돌의 깊이나 낙수면의 경사나 반전보다 보다 본질적이며 전체적인 이야기다. 각 부재의 직각과 수평유지, 동일한 간격의 층급받침에서 느끼는 정연함과 전체적인 비례와 체감에서 느끼는 정연함은 전혀 다른 관찰과 접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 같은 규모의 석탑이라도 조금 더 무겁고 둔중하게 보이거나, 조금 더 경쾌하고 생기있게 보이는 차이를 만들기도 하는 거 같다.
<이처럼 삼각형을 사용하여 석탑의 균형과 조화, 그리고 변화 과정을 추적하려는 논문들은 이미 상당수 있다/신용철 논문에서...>
<석가탑과 같은 방법으로 신용철의 복원도를 중심으로 염불사탑의 실제 비례를 확인해 볼까?>
<염불사지탑은 다른 석탑과 달리 도면에 의해 도해보다, 실제 육안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더 많은 삼각형이 찾아진다... 그런만큼 리드미컬하고 생동감 있게 보인다는 말이 아닐런지...>
<황복사탑/한민주 논문의 도면에... 둔중하고 뭉뚱한 느낌의 황복사탑도 일정한 비례를 찾을 수 있는데...>
<실제 육안으로도 도면보다 하나 더 많은 정삼각형을 찾을 수 있어, 둔중한 미감과 별개로 매우 정연하고 차분한 구성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석탑을 실제 보는 것과 도면으로 읽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 바라보려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 일률적인 잣대로 비례와 조화를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조형할 당시에도 이런 수리적 체계와 비례를 상정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고, 후대의 우리 기준을 근거로 당대 석탑의 조화와 비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기 좋은 비례에는 보이지 안하게 숨어있는 다양한 연출의지들이 살아있기 마련이고, 동서고금의 공통적이며 보편적인 척도를 근거로 과거의 유물들이 해석 가능하다면, 현재적 의미에서도 예술적 완성도를 가늠할 주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과학기술 수준과 미적 기준을 가늠할 수 있으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 주요 석탑의 비례와 조화 ;
우선 도면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석탑들에서는 몇개의 정삼각형이 찾아질지 시도해봤다.
해당 도면은 이미 앞선 글들에서 출처를 밝혔으므로 따로 표기하지 않기로 한다...
<정림사탑과 법륭사탑의 비례체계... 그래도 석탑의 시원인데 정림사탑 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지... 백제의 우아한 미감에는 어떤 비례와 규칙성이 있을까? 같은 체감률과 비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법륭사탑과 역시 비슷한 비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탑의 완성태라 할 수 있는 왕궁리탑은?... 장중한 기운과 경쾌한 느낌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왕궁리탑에서도 일정한 리듬이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감은사탑...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시원인 감은사탑은 역시 생각대로 매우 정교한 비례와 체계를 갖추었다고 보인다... 특히 각 부분의 정삼각형 비례 외에도, 기단부 끝에서 삼층지붕돌 끝까지는 60도 각도의 직각삼각형이 그려지는 유일한 탑으로 각 부위의 폭과 높이의 비례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균형에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감은사탑의 경우, 낮은 기단부와 넓은 일층몸돌로 인해, 정삼각형이 이뤄지는 부위가 일정하지 않아, 우리 눈에 익숙한 안정감과 경쾌한 미감의 조화를 찾기는 어려웠다... 즉 규칙적인 리듬에서 오는 세련됨과 편안한 느낌 대신 긴장감과 반전이 더 크다는 말로 해석된다...^^>
<또 나원리탑에서도 지붕돌 처마까지의 비례와 지붕돌 상단까지의 비례가 겹쳐져 있어, 한편으로는 정연하면서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감으로 구성됐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감은사탑, 나원리탑과 달리 우아한 미감에 매우 세련된 느낌을 가진 장항리탑은 석가탑만큼 일정한 비례가 규칙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장대한 크기와 높이에도 불구하고 위압감과 긴장감을 많이 완화시켜 준다고 생각된다... 역시 동일한 기준의 정삼각형이 많으면 리듬감이 있고 편안해진다...>
<이제 시대를 내려가 700년대 후반에는 어떤 비례가 유지되고 있는지 살펴볼까? 800년대 전후를 대표하는 남산리탑에서도 석가탑 등 전성기탑에서 만들어진 가장 하단의 정삼각형 비례가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일층몸돌이 높아지면서 탑신의 비례는 이전과 달라짐도 확인되는데, 800년대 석탑에서는 더이상 이런 비례체계들이 유지되지 못하고 깨지고 만다... 기단부가 높아지면서 좁아지고, 일층몸돌도 좁고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700년대 전성기에 유지되던 정삼각형 비례는 2층 이상 탑신 등에서만 일부 확인될 뿐이다...>
<그리고 탑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도면, 즉 설계의 의도와 육안으로 보이는 비례가 크게 다르지 않음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석탑에서 찾아보려는 삼각형 도해(삼각형은 늘 원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적용되는 숫자가 많을수록 수리적인 조화와 안정적인 체계뿐만 아니라, 경쾌한 리듬감으로 살아나며, 또 그런만큼 세련됨과 과학적 완결성을 동시에 갖추어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유력한 척도라 생각된다. 다만, 일반적으로 접근할 도면이 한정적이고, 종교적 신앙의 대상물을 수리적 분석으로만 접근한다는 게 지적될 수 있지만, 국보급이나 시대적 척도가 되는 석탑이나 불상에서는 적극적으로 장려할 분야라 생각 된다.
<그러면 우리가 이형석탑이라 부르는 탑들은 어떨까? 기단부가 높고 넓어 보이는 다보탑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기단부의 정삼각형은 찾을 수 없고, 다만 탑신에서는 동일한 비례체계를 준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형석탑인 남산리동탑의 경우에도 700년대 전성깅 유지되던, 기단부의 정삼각형 비례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당시까지도 일층몸돌의 상단까지의 높이는 하층기단부나 지대석의 폭에 조응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이런 폭과 높이를 결정하는 정삼각형의 비례는 탑을 바라보는 각도가 틀려져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아, 전성기 통일신라 석탑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경쾌함은 고도의 수리적 체계를 균일하게 적용한 결과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의 결과이든, 감은사탑 등 기존 석탑의 충실한 모방을 통한 재현이든 숨어있는 비례를 찾아내고 이를 구현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또 80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런 비례와 원칙이 깨진채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석탑의 수리체계가 결코 석공들의 기술과 숙련도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까지 읽는다는 게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석탑의 미감을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나 교리의 구현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시대정신의 발현과 당대의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수준까지 결부시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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