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색시가 넵킨 공예를 배운단다.
그려~~~ 일단 배운다는 말만하면 나는 무조건 OK다.
복지 프로그램의 개발이든 사회교육의 일환이든
요즘보면 구청, 복지관, 대학교, 박물관, 도서관, 백화점 등
다양한 기관에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는 거 같다.
<오느날... 그녀가 배운 넵킨 공예를 우리 가족들은 평가해야만 했다... 교육은 그로부터 시작됐고...>
물론 그녀가 찾는 프로그램의 기준은 간단하다.
초등학교 1학년인 똘똘이의 케어에 간섭이 없는, 비교적 단기간인 거(일주일에 두어번씩 길면 3개월이다),
비용이 적게 드는 거
(우리집 기준은 1달 혹은 3달 1~2만원이나 무료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재료비 등은 별도...),
그리고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지막, 생활에 도움이 되고, 가족과 공유할 수 있으며, 늙어서도 같이 할 수 있는 것 등이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가정주부 입장에서 이 기준에서 벗어날 게 별로 없네...^^)
그런데 막상 모아 놓고 보면 또 그리 많지도 않다.
수지침, 정리정돈하기 등 호기심이 있거나 배워두면 요긴하다 생각되는 거 몇가지...
떡/양갱 만들기 등 요리와 관련된 몇가지...
시 쓰기, 문학 공부,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등 자기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관련된 거 몇가지...
1~2개월에 끝나는 프로그램도 있고, 1~2년 지속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요즘은 이런 인연들이 모여 어르신들이나 독거가정 봉사활동까지 연결됐으니 당연히 좋아 보이고,
또 똘똘이도 다 큰데다 나이도 들만큼 들었으니 스스로를 찾아가는 모습도 다행이다 싶고,
그리고 이런 것들이 늘 새로운 대화를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장려하는 입장이다.
물론 충분한 뒷받침을 못해주는 게 늘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식탁위에 잡다한 물건이 싹 치워진 어느날... 이걸 작업대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그녀의 의견... 처제네에서 쓰다 남은 씨트가 있어 하얗게 발라줬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그런 것 뿐이니까...>
2.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의 복습 대상은 항상 우리 가족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지침에 열성일 때, 배우는 비용보다 구비할 준비물 등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지만,
그것보다 쉽지 않은 건, 임상 대상인 아이들과 내가 얼마동안 피를 흘려야만 했다는 거...
뭐 1~2년이 지난 지금은 필요에 의한 연구(?)들만 간간이 지속되기도 하지만,
처음 한두달은 인체실험의 현장과 마루타의 공포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해야만 했다.
물론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그녀가 희생과 봉사를 하겠다는데, 고마움은 모를망정 왠 호들갑이냐는 주장이다.
임상실험이 시작될 때면 항상 말보다 번뜩이는 눈빛과 함께 손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한동안 햇살이와 똘똘이는 배 아프다, 머리 아프다는 말을 자제했었다.
물론 색시는 수지침에 들어간 돈보다, 아이들이 병원에 안 간 기회비용이 더 많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녀가 만든 휴지통... 종이 4장 붙이면 딱이네... 그런데 이렇게 만들지 말란다... 재미없다고?? 좋기만 하구만...>
그래도 가끔은 복습의 행위들이 가족의 기쁨조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요리 강습...
결혼한 그해 겨울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왔었지.
신랑~ 배추가 숨이 안 죽네?
소금 넣었어?
아 그~~~래??!!!
그 이후로 김치를 담가 먹어 본적이 없는 세월이 15년은 훌쩍 넘은 몇년전,
요리 강습에 몇 번 나가더니 요즘은 곧잘 다양한 색깔의 김치가 올라온다.
생김치, 물김치(우린 ‘반지’라고 했는데), 겉조리, 동치미, 볶은 김치, 데친 김치 등등등...^^
그 외 다양한 실험들이 있어 매주 식단이 달라졌지만, 불만보다 즐거움이 많았다.
왜냐하면 음식이란 모르면 즐거움과 고역의 경계와 모호해지지만,
검증된 레시피는 항상 평작을 보장하기 마련이고, 다행히 우리 입들은 그리 까탈스럽지 않았다.
물론 배움이 끝나면, 변화도 끝나기 마련이지만...
<내가 만든 연필꽂이... 안쪽까지 그림을 붙이지 말고 잘라내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나는 강행한다... 왜? 이전에 만든 것과 뭔가 틀려야 하기 때문에...^^ 결국 기존에 만든 모든 연필꽂이 안쪽에도 그림이 붙여졌다...>
<내가 자랑하는 도안... 여백의 미와 포인트로 준 나비에서 생동감이 일지 않아?? 나는 늘 꿈 보다 해몽이 좋타...ㅋㅋ >
3.
아무튼 그녀의 배움에 문제가 있다면, 아는 만큼 나눠야하며, 배운만큼 실천한다는 것인데,
그녀에게는 시가와 처가, 그리고 시동생과 동생들이란 다양한 반복학습의 대상이 충분히 널려 있어,
앞서 말한 가족 구성원과 실험 대상이 우리집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번은 정리정돈을 배우고 와서 시작된 장롱을 뒤지기 때문에 삼주 동안 먼저가 풀풀 날려야 했었다.
그런데 우리집에서 학습된 경험의 파장이 확산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잊어먹기 전에 반복되어야 하고, 할 때 뽕을 빼야하며, 시작하면 갈 때까지 가야 한다는 게 그녀의 신조다.
봉사활동 다녀와 입술이 부르떠진 지난 늦여름, 추석연휴와 함께 시가와 처가의 장롱이 죄다 뒤집혔다.
그래도 시가에서는 색시가 손댈 수 있는 한계가 많았는지, 그 분풀이에 가까운 다짐은 처가에서 집행됐다.
아야~ 그 물건은 니 아버지가...
야야~ 그 물건은 누구누구 결혼식 때...
아니 이건 아직 쓰지도 않은 물건인데...
이건 니 아버지 밭에 나갈 때 둘루고 갈 바지랑 수건이여...
온갖 눈치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번 손댄 장롱의 반이 쓰레기 봉투로 직행하는 광경은,
625때 피난 갈 때와 이삿짐 쌀 때 이후로 이런 난리통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니 언니밖에 없을 거다...에서도 확인되듯,
야물딱지게 달라들고, 주위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는 색시의 의연함은 존경스러울 정도였지.
(물론 처갓집에서는 장모와 나의 타협으로 버려진 수건을 다시 모았 숨겼는데, 그 양만 서랍장 4칸이었다)
그렇게 휩쓸고간 광풍은 장롱 4개와 창고처럼 쓰이던 쪽방 하나가 홀라당 뒤집어 비워버렸다.
요즘 아파트 한평에 얼만데... 비워진만큼 넓어진 공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스레기 봉투 값으로 들어간 몇만원의 수천배라는 계산이다.
<그 전에 만들어 본 휴지통... 정해진 소재와 규격, 그리고 시간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처럼 항상 한정적이다... 각자의 꿈들은 다양한 그림이지만, 그것이 구현된 현실은 약간씩 다른 차이일 뿐...>
4.
그래도 늘 스스로 위안을 삼고, 감사한 마음에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내 몫이다.
수지침 ; 아픈 것은 남 주지 못하지만, 고치고 베풀기 위해 남에게 다가선다는 건 성스러운 거 아니냐...
공자의 가르침에 첫 번째 구절은 배우는 것이고, 복습하는 것이니 엄마를 호의로 이해하거라...
정리정돈 ; 엄마에겐 이벤트지만, 너희들에겐 습관임을 강조하는 것이니 엄마말 잘 들어야지...
복수 ; 너희들도 배우고 복습하는 대상으로 가족에게 베푼다면(?) 엄마와 셈셈이 되는 거 아니냐...
킬링타임으로 짧게 느끼고 길게 잊어 먹는 거 보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너희도 배워라...
아는 것을 나눌 줄 알고, 익힌 것을 쓸 줄 알며, 모든 걸 공유하려는 엄마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항상 맘에 드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당장에 그녀의 호령이 떨어진다... 다시 베껴내라는...^^>
<물론 이 작업공정에는 모든 가족들이 참여한다... 각자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건 똘똘이 작품이다... 색시, 감은사탑이랑 나원리탑이 저런 판석으로 일층몸돌을 만들었는데, 미탄사지탑도 그런 거 같아...ㅎㅎ 역시 원시적인 것의 힘이 무엇인지 느껴지는...^^>
뭐 요즘은 하도 들어서 씨도 먹히지 않을 공자왈, 자기개발, 인생교육의 개념을 들먹이지만
그래도 뭔가 기억으로 쌓이는 것만큼 나눌 수 있는 게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된다.
요즘 넵킨 공예가 막바지에 다다른 거 같다.
다음달쯤에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할지, 기대반 걱정반...
물론 새로운 학습이 어떤 경로를 거쳐 반복과 복습과정을 거쳐 확산될지 눈에 선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음주 그녀의 친구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휴지통과 연필통을 대상으로 넵킨공예를 계속해야 한다.
덕분에 17년전 산 아크릴 물감과 유화 붓들, 그리고 나이프까지 찾아낸 게 지난 주다.
또 어떤 그림을 그려야할까?
하나의 작품에 온 우주를 다 담고 싶은 이넘의 욕심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밑칠만 하게 될텐데...
지독해 말 안 듣는 학생이 되어, 오늘도 작업대에 올라 휴지를 뜯으며 그녀의 변화를 기대한다.
도전~~~
<지난부에 만든 나무쟁반 구상... 결국 모토를 천지창조에 두면서 변경했다...>
<완성품... 그럴싸 한가? 또 다시 설명과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거 상하좌우로 다 돌려봐도 균형감이 있어 !!... 단면적의 비례를 맞춘 건 아니지만, 비대칭의 조화랄까, 극단의 통일이랄까...ㅋㅋ 테두리는 17년전 쓰다 남은 물감으로 덧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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