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2) 화엄사 석축과 계단이 만드는 공간경영의 미학
나는 이런 공간경영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대웅전과 각황전 앞마당을 ◱모양의 2단으로 구획한 석축과 계단이라고 생각한다. 즉 석축과 계단의 넓이와 높이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비례를 가지면서 조화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화엄사 석축을 불국사 석단이나 부석사의 석축과 자주 비교하는데, 불국사만큼 인공적이지 않고 부석사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적절하게 인위적으로 가공한 방식이 성공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만약 화엄사의 석축이 불국사만큼 건축적 결구를 강조했다면 우리들은 온전하게 윗마당에 병렬적으로 나열된 건축물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고, 부석사처럼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했다면 정연하게 일체화된 공간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석단과 석축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불국사와 부석사가 아닐까 싶다...>
<석단과 석축은 담장이 아니지만 공간을 수직적으로 나누는 벽으로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들과 달리 화엄사 석축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공간과 경계를 구획하기 위한 토목적 요소보다, 내부 공간을 나누면서 건축물의 기단부처럼 인식된다는 점이다... 90년대까지 사찰 안마당에는 일본식 정원문화가 남아있어선지 다양한 수목들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정비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모든 마당에서 조경이 사라진 데에는 유학의 영향이 컸다...>
하나하나가 큼직큼직한 직사각형으로 가공돼 석재가 주는 중량감과 괴체감을 충실히 살린 화엄사 석축은 인위적이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데, 수직적일 수밖에 없는 석축에 수평성을 강조하여 심리적 불편함을 해소하고, 석축을 이루는 층단의 높이를 균일하게 맞춘 퇴물림 바른층 쌓기로 좁지 않은 공간을 더 넓게 확장시키고 있다(불국사의 석단이 더 넓음에도 공간적 확장성은 화엄사에 비해 떨어진다). 석축을 조금 더 살펴보면, 하부와 상부에는 석탑의 지대석과 갑석처럼 돌출시켰고, 우리들의 시선이 마주치는 가운데 부분을 5단으로 나눴는데, 아래쪽 2단보다 위쪽 3개단의 두께가 더 크고 높다. 이는 아래쪽이 두껍고 위로 올라갈수록 얇아지는 일반 성벽이나 건축물 기단과 다른데, 오히려 이 역발상으로 인해 우리는 석단에서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석단을 이루는 석재보다 큰 볼륨의 건축물들과 조응하는데 이질감이 없어졌다. 이 정도면 탁월한 수법이 아닐까?
<3단으로 나뉘는 화엄사 석축은 아래쪽보다 위쪽의 두께를 키워 시각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인식할 수 없게 조성돼있다... 수평성과 연속적 일체성을 살린 결과라 생각된다...>
또 하나 이 석축을 건축적으로 완성한 것이 바로 계단이다. 본래 석축이란 상부와 하부를 구획하기 위해 수직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건축요소이고, 상하로 나뉜 공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계단이다. 때문에 석축의 면체와 계단은 건축적인 기능뿐 아니라 의장적으로 공간의 완성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를 독창적이면서 완벽하게 구현한 게 불국사의 석단과 백운청운교/ 연화칠보교라면, 가장 단순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살려내 것이 화엄사 대웅전 앞마당의 석축과 계단이다. 특히 화엄사 계단은 건축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최소 수식으로 모든 공간적에서 시각적 분절과 단절감을 해소시키며, 건축적 기단부로 승화된 뛰어난 수법으로 배치되었다.
* 석단과 계단의 의장적 기능 - 궁궐건축을 중심으로...
<경복궁 근정전... 석단과 계단은 건축의 기능과 안전의 목적을 살리면서 건축물의 의장적 수식을 강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궁궐건축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경희궁 중화전... 그러나 모든 궁궐의 석단과 계단을 장식했던 것은 아니다...>
<창덕궁 인정전... 조선 후기 대부분의 정사가 이루어진 인정전의 석단과 계단에도 의장적 수식이 없다... 위축된 조선의 현실이었을까?...>
<환구단... 조선초기까지 지속되던 환구단에서의 제천의식은 세조대에 단절되고, 고종대에 부활한다... 당시 남별궁에 위치했던 환구단... 원구단으로도 불리던 이 제천단에도 석단과 계단에 의장적 요소가 적극 도입됐다... 중국문화로부터 독립하고자했던 의지의 소산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계단까지 사찰 장엄의 의장으로 승화시킨 불국사는 궁궐조성에 맞먹는 공력이 투여된 가장 장엄한 건축공간이다...>
계단의 뛰어난 건축성을 이해하기 위해 석축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현재 대웅전 앞의 아래 마당은에는 보제루와 종각이 안쪽에 들여 조성돼있고, 동쪽 요사채라 할 수 있는 적묵당이 10m 정도 들어와 있어 2:3 정도 비례의 직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실제 한변의 길이가 45.75~50m 정도 되는 정사각형이다. 대웅전 방향 북쪽 석축은 높이 약 3.5m 고, 각황전 방향 서쪽은 한단을 더 높여(약 4m) 연결했는데, 다시 종각이 있는 남서방향 32.69m 지점쯤에서 석축을 반으로 낮춘 곳에 영산전이 있는 등 전체적으로 3단 층급으로 변화를 둔 길이 100m 정도의 역기역자(┏) 형이다. 이렇게 구성된 석축은 각황전과 대웅전이 포괄하는 넓은 공간을 대략 1:1, 즉 건축물을 제외한 순수 마당면적으로만 따지면 위쪽과 아래쪽 마당의 넓이가 거의 1/2로 나누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윗마당과 아랫마당은 어느쪽이 좁고 넓다는 생각을 주지 않도록 매우 적절한 비례로 나뉘어져 있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들 눈으로 확인하는 공간 영역은 건축물까지 포괄하지 않아, ①번 영역에 대한 체감을 느끼기 힘들다... 때문에 우리들이 인지하는 화엄사의 내부 공간은 ②번 영역에 국한된다... 또 ③번 공간만도 한변이 45m가 넘는 매우 넓은 공간인데 건물이 내부로 들어와 있어 정사각형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실제 화엄사의 석축을 이루는 마당은 4개로 나뉠 수 있지만, D영역은 거의 무시되어 C영역에 국한되며, B영역 윗마당의 단차도 우리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3단의 석축 중 가장 낮은 영산전 방향도 눈에 거슬리거나 분절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석축의 아래단을 낮게 가공, 면석높이가 수평을 이루며 통일성을 보이는 등 의도적인 연출 때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천왕문을 막 지나서 보이는 종각과 영산전, 각황전 처마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웅전 앞을 각황전보다 50cm 정도 낮춘 이유도 보제루를 비켜 먼저 시선에 닿을 수밖에 없는 석축의 높이를 낮춰 거부감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시선이 가지 않는 각황전쪽 석축을 높임으로써 공간적인 균형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영산전 석축은 옆 범종각 석단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건축물과 나무가 연결돼 보여 석축이 가진 공간구획의 체감이 없다...>
<그러나 보제루에 들어서기 전 각황전 방향을 바라보면, 아랫마당의 범종각과 영산전, 그리고 각황전이 일정한 층급을 가진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영산전의 D영역이 낮춰진 것은 외부에서 보이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한 의도적 연출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그랭이 기법이 사용된 이 석축은 화엄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곡선들이 친근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장중한 무게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불국사 석단에서 차용했겠지만, 제 맛을 살리려면 더 건축적으로 구성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석축 계단을 통해 대웅전으로 향하면 생각보다 넓은 공간을 느낄 수 있어 난간이 없는 높이에서도 안정적이며, 대웅전 쪽보다 더 높아진 각황전 앞 공간은 대웅전 앞보다 두배나 넓은 20m 정도를 띄워 더 높아진 공간에서도 전혀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게 배치되어 있다. 즉 아무런 기물이 없는 대지의 높낮이와 깊이, 넓이를 조율하여 건물간의 간격과 규모 등에 조응시킨 이유는, 건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석축의 높이와 계단의 넓이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건축주의 공간경영 결과라는 말이다.
<대웅전 앞도 상당히 넓은 공간이다... 지금은 매우 낮은 나무난간으로 경계를 명확히 했는데 장단점은 있는 거 같다...>
<각황전 앞 공간만으로도 어지간한 사찰의 중정만큼 넓어 4m 정도를 올라왔다는 느낌이 없다...>
<만약 지금 정도의 공간이 없었다면 석등과 함께 각황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다시 계단으로 돌아가면 이 높고 긴 석축에 대웅전과 각황전 앞쪽 두곳에만 계단을 두어 시선과 동선을 매우 간결하게 유도하고 있는데, 각각의 계단은 대웅전과 각황전 건물 중앙이 아니라 각각 우측으로 비껴 구성되었고, 계단의 폭도 높은 석단에 비례해 넓고 각황전 앞쪽 계단도 상당히 넓은 편에 속하지만 각황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대웅전쪽 계단이 더 넓다(양쪽이 각각 1.8m, 가운데는 각각 1.5m로 총 6.8m 넓이다). 또 각 계단에는 면을 분리하기 위한 2~3줄의 재료분리대가 있는데, 올라가는 방향 1/3지점까지만 내려와 있고, 각각의 출발점에는 다보탑에서나 보이는 난간석 기둥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만한 규모를 갖췄으면서도 위치와 높이, 넓이, 그리고 재료분리대에 이르기까지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가 움직여야 할 동선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계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건축배치까지 아울러 조금 더 살펴본다.
<아랫마당에서 바라보는 각황전은 건축물의 기단과 계단처럼 일체감을 보여, 위쪽에 깊이 20m 정도의 매우 넓은 마당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건축주의 공간경영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먼저 산지에 자리잡은 화엄사는 계속되는 석축과 계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석축의 끝이 아니라 일정한 공간을 두고 마당 안쪽으로 들여서 건물들을 배치했다. 소백산맥 남동 경상도 지역이었다면 화엄사 보제루도 봉정사나 부석사처럼 석축의 끝에 배치해 자연스럽게 누하진입을 유도했을텐데, 과거 백제땅에 자리잡은 화엄사는 보제루를 누각건축 양식을 적용한 건축으로 만들었음에도 누하진입이 아닌 건물을 비껴 돌아들어가는 우각진입을 유도했다.
<이 석축과 마당의 조율은 비단 각황전이나 대웅전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랫마당에서 바라본 영전...>
<영전처럼 건축물이 작고 낮으면 기단도 낮고, 건축물이 크면 기단부도 높이면서 조금 더 앞쪽으로 배치하여 시각적 안정감을 충실히 구현했다...>
그리고 이 공간에 막 진입해 보이는 게 동오층석탑이다. 서오층탑보다 늦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동탑은 서탑보다 석축에 더 가까이 배치해 보제루와 들어서는 사람들의 활동공간을 넓게 보장해 주면서 시선을 대웅전을 향하게 만들었다(만약 동탑을 서탑과 같은 거리를 띄워 세웠다면 도상학적 균형은 맞춰질지 모르지만, 심리적 안정감은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어, 답답하거나 긴장감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 대웅전 앞 계단의 미학...
<처음 보제루 옆으로 들어서 대웅전을 바라보는 공간이 지금보다 좁았다면, 즉 동탑이 서탑과 같은 축선에 있었다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답답했을 것이다...>
<대웅전과 계단의 조화... 실제 대웅전 건물 앞에서 바라보면, 계단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밀려나 있어 정면성이 크게 깨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런 부조화를 전혀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 보제루를 지나 전체를 조망하는 자리에서 인지된 계단은 대웅전과의 정면성에 충실히 조응하기 때문이다... 어느쪽의 인지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지를 고려한 공간경영의 결과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대웅전 정면이 아닌 우측으로 비껴 조성해 시각적으로는 오히려 정면감을 살리고 있다. 또 계단의 폭도 석축높이 보다 넓게 조성해 균형감을 유지하되, 대웅전보다 좁게 만들어 건물의 웅장함을 살리면서, 재료분리대로 면을 분할해 대웅전을 향한 시선에 직진성과 상승감을 강조했다. 사실 사람의 시선은 좌우 180~210도, 상하 135도 정도를 포괄하는 다초점이다. 때문에 좌우 수평선이나 상하 수직선보다 전후의 직진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석축과 석단이 수평적이라면 건물은 수직적이다. 여기에 직진성을 유도하는 장치로 보이는 게 계단인데, 이 계단은 좌우 마감선을 제외한 내부 3줄의 재료분리대를 두어 더욱 강렬하게 우리 시선을 유도했다. 그런데 그걸 올라가는 방향 1/3지점에서 끊어버렸다. 만약 이 재료분리대가 아래까지 내려왔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이 계단의 재료분리대는 아래쪽에서 끊겨 있다... 이것도 이상하지?... 계단 앞에서 놀고 있는 햇살이와 똘똘이...>
화엄사 계단의 이런 장치들은 다른 사찰과 비교하면 금방 눈에 띤다. 먼저 석축 높이보다 좁은 부석사의 계단을 생각해보자. 석축의 높이가 강조되고 계단 끝에 위치한 건축의 규모를 더 장중하게 만들어, 상향공간으로 진입하는 건축적 기능에 충실하게끔 시선을 유도하지만, 긴장감이 제고되고 계단만의 독립적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계단이 건물보다 넓거나 같은 범어사 일주문이나 예전 불국사 천왕문 앞 계단은 계단의 직진성이 사라지고 건축물의 기단처럼 보이는 효과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화엄사 계단처럼 안쪽에 재료분리대를 둔 경우가 범어사 대웅전 진입계단인데, 이 계단은 건물 폭과 비슷할 뿐 아니라 재료분리대가 아래 마당까지 친절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건물 폭에 비해 상당히 높은 구조를 가진 범어사 대웅전은 계단의 넓이로 인해 그 장중함이 사라지고, 아래까지 늘어진 재료분리대로 계단의 긴장감까지 사라져버렸다. 건물과 계단 모두의 완성도와 격을 서로 깎아내리고 있다는 말이다.
<부석사 안양루 계단... 부석사는 모든 계단이 이처럼 좁고 높다... 동선과 시선에서 늘 긴장감을 유지해야한다는 말이다...>
<과거 불국사 천왕문 앞 계단... 이 계단은 건축물과 아무런 조응관계가 없는, 순수한 토목적 목적에만 충실했다...>
<범어사 대웅전 앞 계단... 범어사 대웅전은 마곡사 대광보전보다 폭이 작을 뿐, 높이/깊이는 비슷한 장대한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건축물이 크게 인식되지 않는 것은 계단의 조성이 건축물의 위용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단의 재료분리대까지 처져있어, 계단이 갖춰야할 건축의 의장적 기능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 우리는 화엄사 계단을 낯설게 여기고, 범어사 대웅전 같은 계단을 더 편하게 생각하지만, 실질적인 건축적 효과는 정반대라는 말이다...>
사실 범어사나 불국사 천왕문 앞 계단은 특이한 경우고 대부분은 부석사 계단이나, 금산사 나한전 앞 계단이 일반적이다. 또 석축이나 석단을 잘라 계단을 배치하면서, 범어사 같은 무미함을 피하기 위해 좌우에 계단을 두거나, 해인사 대적광전에서처럼 세갈래로 계단을 두기도 하지만, 이는 단일 건축물을 향한 부속건축으로 동선을 제어할 뿐 자체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즉 우리가 의식하든 무시하든 계단은 건축물의 기단부 역할과 전반적인 공간경영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화엄사 계단처럼 건축적이며 시각적 완성도를 갖추기가 매우 어렵다. 또 그래서 건축의 부속적 요소에 불과한 계단을 화엄사처럼 세심하고 생동감 있게 연출한 건축공간은 극히 드물다는 말이 된다.
* 계단과 건축물의 조화 - 기단부와 의장적 요소로 사찰건축과 가람배치에서 다양한 계단의 형태와 양식을 살펴본다...
<금산사 나한전 계단... 실제 계단은 석축이나 석단에 의해 높이가 결정된다. 남는 것은 넓이와 건축물 및 석단과의 조화다...>
<과거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과 계단... 지금의 고궁박물관 앞 계단은 많은 통행 인구와 낮은 건물에 조응하기 위해 넓힐 수밖에 없었겠지만, 의장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해인사 대적광전 앞 계단은 건축물의 규모와 석축의 높이를 고려해서인지 3갈래로 나뉘어 있다... 역시 의장적 목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봉정사 대웅전 앞 계단은 범어사 대웅전 앞 계단과 정반대로 너무 왜소하다... 대웅전의 장중함을 전혀 살리지 못한채 형식적으로만 조성된 듯한 느낌이다...>
<이에 비해 수덕사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은 건축물 끝을 겨냥해 석단을 완성하는 적극적 요소로 부각된다...>
<그리고 자세히보면 처음부터 대웅전 석단은 앞으로 돌출돼 있어, 계단은 대웅전의 중심성을 더욱 강조하는 건축적 요소로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수덕사처럼 양쪽에 계단을 둔 무위사를 생각할 수 있는데, 낮은 석축에 어울려 매우 넓게 조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석단 상부를 보면 애초부터 가운데 계단이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계단의 건축적 기능에 대한 고려는 없다고 보인다...>
<그 중 범어사 천왕문 앞 계단은 적절한 넓이로 건축물과 조응한 매우 뛰어난 조화를 보이고 있다... 계단도 건축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인만큼 상당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각황전 앞 계단도 그렇다. 보제루를 통해 진입해 앞마당에 들어서면 각황전 앞 계단은 서오층석탑에 가려 좁거나 넓거나 높다는 개념을 주지 않는다. 또 처음 보면 계단이 석축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각황전은 오롯이 석단처럼 보이는 석축에만 의지한듯 더 웅장하게 보이게 된다. 이는 대웅전에서 누리는 효과와 정반대다. 똑같이 건축물의 정면성을 살리면서 시선을 유도하는 장치로서 계단이 하나는 적극적으로 살아있고, 또 하나는 가려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 화엄사에서의 동선은 대웅전으로 올라 각황전 앞으로 내려오게 된다. 탑돌이든 400m 트랙 달리기든 왼쪽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심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래서 화엄사의 동선은 합리적이고 편안하다. 또 대웅전 앞에서 각황전과 함께 바라보면 어느덧 이 계단은 각황전의 정면에 있는듯 조율된다. 계단의 위치와 넓이, 그리고 건물과의 조화에 이르기까지 이정도면 기막힌 연출이며 완벽한 기획에 가까운 거 아닐까?
<대웅전과 달리 각황전 앞 계단은 건축물의 정면성에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상당히 이격된 거리와 공간이 있음에도 어느 방향에서 봐도 계단은 각황전과 조응한다... 장중한 각황전 비례에 맞춘 규모와 넓이를 갖췄기 때문이다...>
화엄사의 이 모든 동선을 소화하고 사사자삼층석탑까지 본 다음 보제루에 앉아 다시 이 공간을 바라보면 한편으론 규칙적이지 않고 분산돼 보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편안하고 안정감을 갖게 된다. 어느 기물 하나도 도식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고, 계단과 석단 하나하나도 무미건조하지 않다. 대칭도 없고 반복도 없으며 일체감도 없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지만 분절감도 없다. 그런데 다시 처음 다녔던 동선에 맞춰 시선을 따라가면 어느덧 화엄사 대웅전과 각황전 앞마당은 하나하나가 리듬감을 가지면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게다가 보제루 뒤의 진입공간은 완전히 잊혀지고 오롯이 이 공간만 기억하게 된다. 비대칭과 파격들이 조화를 이루고 균형감 있게 대비되면서 안정감을 받고 넉넉함과 너그러움으로 편안해진다면, 애초 이 공간을 경영했던 수많은 건축가들과 건축주들의 의도와 고심을 반갑게 이해했다는 말이 되는 게 아닐까?
* 윗마당에서 바라본 앞마당 영역의 전경...
<각황전에서 바라보는 대웅전 방향은 명부전까지 상당한 거리가 있어선지 아랫마당의 단차가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여기에 나열된 건축물들은 주변 산하와 어울려 높고 낮고, 들어가고 나와있음에도 번잡하지 않다...>
<명부전에 이어 적조당, 보제루로 이어지는 시선과 동선도, 대웅전 앞 계단으로인해 그리 불편하지 않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각황전 앞마당에서 아랫마당은 4m의 높은 단차와 5~60m가 넘는 넓고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까워 보인다... 적조당의 기단부가 보이기 때문이다...>
<각황전 앞 계단 끝에 서서야 우리는 아랫마당의 넓음을 인지하게 된다...>
<화엄사 배치분석도/통일신라시대 화엄사에 관한 연구/윤정혜/2005년 영남대학교 석사논문 P75에서... 화엄사 배치에 대한 이런 연구도면이 있다는 게 즐거웠다...>
<석축과 계단으로 구획된 화엄사 앞마당은 넓지만 허하지 않고, 통일성이 없지만 리듬감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분리된 공간임에도 연속성이 살아있고, 주변의 산세나 바람의 흐름에도 순응하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를 뜯어볼 겨를 없이 갖춰진 공간을 즐기면 되는 곳... 화엄사 공간경영의 너그러운 포용력이 아닐까 싶다... 어디에서 스크랩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Daum 이미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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