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보거나 세익스피어류의 소설을 읽으면서, 난파될지 모를 배에서 제일 먼저 피신하는 것은 쥐라는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이걸 생존 본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 현상을 받아들이는 나에게도 인식의 차이는 있었던 거 같다.
10대 때는 이 말을 들으면서, 위험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대처하는 동물과, 감지능력이 퇴화된 인간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안전만 우선 도모하는 약사 빠른 인간을 경멸할 때 이 말을 사용하면서 나는, 난파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30대 때 이 말은, 한 공간이나 사회에 공존하는 다양한 구성원이 보내는 위험 신호나 징후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 같은 것으로 재해석했다.
40대 때 이 말은 한동안 뇌리에서 지워져 있었다. 변화의 조짐에 민감한 대상을 읽을 수 있는 안목에 만족했고, 나는 쥐새끼(?)처럼 행동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충만했던 거 같다.
이제 한 살 더 먹어가면서 다시 자문한다. 쥐가 배를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배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내가 그 배의 주인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론 나는 충실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배의 주인이 따로 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또 선장이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의 위난을 극복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며, 미래의 변화를 제시하지 못한체, 자기자신과 배을 동일시하면서 선택의 타이밍을 자꾸 놓치고 있을 때 말이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는 혹은 진짜 주인의 책임방기로 원하지 않았고 우려했던 주인행세가 더 큰 혼란을 부추킬 수도 있는 거 같다. 아직 여지를 가지고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환상을 주고,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에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파를 지연시키는 것은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함이지만, 파산할 때 파산하지 못하면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고, 이건 보이지 않는 피해를 양산할 뿐이다. 쥐들이 떠난 배는 이미 생명을 다했음을 충분히 인정해야 현명한 선택이 가능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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