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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段想...

개콘과 조커의 편가르기와 베드로의 선택?...1401

 

 

 

 

 

 

 

짜장면을 대하는 우리나라사람을, 남기는 사람과 다 먹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개그콘서트>의 맹랑하거나 허망한 질문은 가끔씩 우리를 멍 때리게 만들기도 한다.

<다크나이트>에 출연해 기존의 가치관을 뿌리부터 흔드는 조커의 계산할 수 없는 행동과는 급과 격이 다르겠지만,

관행을 벗어나 세상을 얼마나 많은 잣대로 구분할 수 있는가의 반전이 이런 질문의 핵심이고 재미겠지.

물론 쉽고 단순하며, 일상적이면서 명쾌한가가 이 코너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생명력일 것이고...

 

 

 

생각해보면 세상 혹은 세상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리 다양하거나 자유스럽지 않은 거 같다.

경제적인 이해득실, 정치적인 시시비비, 문화적 기호를 앞세운 호불호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짜장면을 좋아 하는가 혹은 맛있는가 없는가로만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는 천차만별이며 상황이란 천변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너무나 단순한 현상을 위주로, 습관적이며 주관적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살아가다보면 자신 주변의 관계가 아주 간결하게 정돈 되어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

내 편과 네 편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고차원적인 편가르기 같은 거 말이다.

물론 선택하는 이들은 득실과 시비, 호불호를 기준으로 이합집산 할 것이고,

실제의 속마음과 결정의 계기는 함부로 단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내가 중심을 제대로 잡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지 반문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습관적으로 유지하던 가치관이나 입장, 도덕이나 양심, 또는 예의나 격식,

그리고 자신보다 우선시했던 관계나 일에 중심을 두면서 습득된  객관성이나 합리성, 혹은 원칙 등이

현재의 상황에서는 역으로 자신의 입지와 행동을 주저케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거 같다.

게다가 선택의 살얼음판 위에 서면 칼을 뽑을 기회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칼날을 쥐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칼을 뽑을 것인가 말 것인가, 언제 휘두를 것인가만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후회하기 일쑤다. 

 

 

 

편가르기에서 이제는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문이 위안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관성적으로 세상을 대하고,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통을 겪으며 태생적으로 허물을 벗고 탈바꿈을 하는 다른 생물들과 달리,

관계속에서 성장하는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관점과 태도와 입장을 바꿔야할 때도 있는 거 같다.

때로는 베드로처럼 자신의 과거를 통째로 부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개콘의 지극히 자의적인 잣대가 우리들을 성숙시키지 못하고,

조커의 감상적인 선택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설혹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우려했던 추한 모습들로 귀결될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읽는 연습을 이제부터라도, 한 번이라도 경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용기있는 선택일지, 또 하나의 개그나 조크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