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 그럼 백암리 석불좌상을 살펴볼까?
공식명칭이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인 이 좌상은 한마디로 ‘빼어난 수작!’이다.
보물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제 얼굴을 확인할 수도 없으며,
광배도 없고, 상대석은 깨지고, 이끼 낀 하대석도 선명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안정된 자세에서 느껴지는 포스는 더할 나위없이 은은하다.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보급물 석등의 지명도에 가려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 백암리에 또 다른 석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혼용한다...>
이런 자태를 어디에서 보았을까?
적지않은 석불좌상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느낌의 불상을 찾기 힘들다.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의 탄탄함도 아니고, 예천 청룡사나 만장사의 풍만함도 아니며,
<의성 만장사 석조여래좌상의 상호...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둥글둥글 하다고 해야할까? 동화사 비로암, 울산 간월사지를 비롯 800년대 초중반까지 만들어진 상당히 많은 석불좌상이 복스럽고 통통하다...>
합천 청량사나 광주 약사암처럼 강건한 불륨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또한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고운사나 각연사, 경북대처럼 도식적이거나 딱딱하지 않다.
<광주 (무등산)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가장 큰 특징은 오른팔과 몸이 완전히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화강암으로 이렇게 조형하려면 상당한 정성과 고강도의 공력이 깃들었음을 읽을 수 있는데, 석불좌상의 효시인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 청량사와 양산 용화사 석불좌상이 그런데, 상대적으로 잘록해진 허리 때문에 이들 3불상은 야성미 넘치는 남성처럼 강건하게 보인다...>
<그 외 작은 규모지만 고운사와 각연사 석불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져 조성되어 있고, 이런 유형 중 최고의 공력은 천황사 석불이겠으나 현재는 복원된 모습이다...>
얇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어깨선은 철원 도피안사나 광주 증심사 비로자나불처럼
철불에서나 보이는 부드러움이요,
안정감 때문에 다소 과장돼 보이는 보림사나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은 물론
적절한 비례를 갖춘 천황사 비로자나불 좌상보다 좁고 단아한 무릎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없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비례를 갖춰 비슷한 느낌의 불좌상을 찾기 힘들다.
<예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 시선보다 높이 좌정해 있는 이유도 있지만, 넓은 무릎을 기반으로 그려지는 정삼각형은 안정성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킨다... 상호에서부터 법의까지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매우 뛰어난 철불이다...>
<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 시선이 팔과 상호에 집중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넓지 않은 하체임에도 안정적으로 보인다...>
<백암리 석불좌상... 이들과 비교하면 매우 긴 이등변 삼각형 구도임에도 눈에 거슬림이 전혀 없다...>
또한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목이 가는 서혈사지와 비교해 정말 딱 알맞은 목선을 갖춰
삼도를 표현할 만큼만 두꺼워져 경직되고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동화사 비로암은 물론
경주 남산 보리사처럼 상호와 상체의 부조화를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관룡사 용선대만큼 두텁고 당당하지 않아도 전혀 유약하거나 위축됨이 없다.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목이 짧다... 석조조각의 일반적인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공주박물관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 뒷모습인데 물론 이렇게 사실적으로 목선을 표현한 석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취약해 극히 드물게 남아있다...>
예산 사면석불과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중간쯤의 어깨선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광주 약사암처럼 앞으로 숙이지도 임실 용암리사지처럼 지나치게 뒤로 젖혀지지도 않은
곧고 단정한 허리에 최대한으로 절제된 상체의 안정감은 자연스러우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여래좌상... 용암리사지가 진구사지로 이름을 바꿨다... 너무 젖혀진 게 배를 내민 거 같이 보인다... 완벽한 좌대까지 뜯어볼 게 많은 석불좌상인데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백암리 석불의 뒷모습... 꼿꼿하지만 경직된 느낌이 하나도 없지? 어느 운동도 그렇지만 골프도 잘 치려면 힘을 빼야 한다지? 이 석불에서 힘을 뺐는지, 석불을 조각한 석공의 손에서 힘을 뺐는지 모르겠다...^^>
2.
어느 누가, 어느 시대의 명장이 이런 예술작품을 조각할 수 있었을까?
습관처럼 버릇처럼 좌대의 상하대석과 중대석을 살펴본다.
<백암리 석불... 석등과 비교해도 참 작지?... 어쩌면 단아하고 소박하게 보이는 손놀림에서도 모든 걸 다 담아냈다는 게 이 불상의 가장 큰 미덕인지도 모르겠다...>
모나지 않은 삼단의 앙련으로 구성된 연화상대석은 홍천 물걸리절터 좌대와 비슷하고,
쌍엽으로 넉넉하게 새겨진 넓고 얇은 복련은 전형적인 양식을 따랐다.
<백암리 석불의 상대석과 하대석...>
오히려 이 석불좌대의 특징은 중대석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합각부위에 모각된 우주는,
내원사 비로자나불좌상과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여래좌상,
그리고 의성의 만장사와 고운사, 공주 서혈사지, 광주 약사암 석불좌상 등과 같고,
<경주박물관의 석조여래좌상... 같은 유형의 석불좌대 중대석을 모아 본다. 2단의 괴임만으로 이루어진 초기 형태로, 이 석불도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져 있다...>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좌대... 이때쯤 내려오면 괴임에도 하나씩 손이 더 간다...>
<의성 만장사 석조여래좌상 좌대... 내부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바뀌다보면 벽과 천정 재료분리대인 몰딩이 화려해지듯, 만장사 괴임은 고운사보다 더 화려해졌다...>
물걸리절터 좌대 2구와 경북대 박물관의 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모각된 우주 안쪽에는 다양한 형태의 보살 혹은 신장 입상이 엷게 새겨진 드문 형태로,
좌상이 양각된 원주박물관(춘천박물관 포함 3구) 및 중앙박물관 등과 차별된다.
<백암리 석불좌상의 중대석... 팔면에 좌상이 새겨진 경우는 많지만, 입상이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홍천 물걸리절터 석불좌대... 물걸리절터에는 4구의 석불좌대가 있는데, 2구는 모각된 우주에 입상이 있고, 나머지 2구는 안상 내부에 좌상이 부조되어 있다...>
<홍천 물걸리절터 석조여래좌상 좌대... 괴임은 조절됐지만, 연화하대석에 귀꽃이 올라와 똑 같은 양식이지만 위쪽 광배만 있는 좌대에 비해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박물관 석조비로자나불... 디테일이 무뎌지고 섬약해진 모습이 앞서 본 좌대보다 조금 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부재들이 모두 제짝인지 재론할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현존 좌대를 그대로 본다면
아직 귀꽃이 치켜 세워지지 않은 연화하대석과 비교적 초기 형태의 모각된 우주가 있는 점,
무엇보다 석불좌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례의 좌대를 고려한다면
백암리 석등과 같이 830년대 전후에 조성된 여래좌상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석불의 뒷모습... 많이 닳았지만 나발도 보이고, 광배가 걸쳐졌을 등 뒤 홈도 보인다...>
<백암리 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게 아닐까?...>
3.
어떤 사물이든 비교를 통해 해석되고, 대화를 통해 기억에 남게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대동사지 석불좌상을 보면서 석불들에 대한 온갖 기억을 되찾으며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다시 느껴보고 다시 새겨본다.
<무엇에 의지하고 있을까?>
이 정도의 석불을 만들려면 어느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석공을 구하고 자금력을 갖췄을까?
꼭 830년대 전후는 아니더라도 한정된 교류만 가능했던 막다른 길목에 위치한 백암리에서
석등에서 느끼던, 중앙정계에서 물러난, 물러날 수밖에 없던 이른 노년 혹은 늦은 중년의
세상에 대한 달관과 관조가 보이는 듯하다.
<어디를 바라보는 것일까?>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세월의 풍파에 닳아 없어졌는지 인위적인 훼손 때문인지 몰라도
대동사지 여래좌상에서 나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읽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할 나위없이 안정되고, 그럴 수없이 편안한 자태에 빨려든다.
이 얼굴을 가졌던 이, 이 불상을 조형한 석공이나 발주자에게도 염원이란 게 있었을까?
<아무런 윤곽도 없지만, 그 표정이 느껴진다면 맞는 말일까?>
보편과 객관을 향한 생각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강요를 만들며, 이는 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대중을 선도하기 위한 진리와 권력의 탐색은 욕심과 독선으로 이어지게 마련.
그렇지만 이 불상에서는 어디에서도 경직된 욕망을 읽어낼 수 없다.
모든 것이 비워지고 절제돼 있으며, 또한 자연스럽다.
욕망이나 염원 같은 게 읽혀지지 않아 경쾌함이나 활달한 지향성이 없어 보임에도
은은히 풍기는 내면의 생기와 향기는 숨겨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나는 그런 걸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두상이 없거나 표정을 잃어 버렸다고 모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아쉽지만 공주박물관의 비로자나불좌상이나 원주박물관의 여래좌상 등이 그런 예인데,
격식을 갖춘 안정된 자세와 정성스럽고 화려한 법의와 매듭을 갖췄음에도
왠지 형식과 치장, 겉모습이 내면의 기운을 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백암리 석불처럼 얼굴은 없지만 기억에 남는 석불들이 있었지?
<공주박물관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제짝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기대석을 제외하면 비교적 이른 시기인 800년대 전반기 작품으로 매우 엄정하고 탄탄하게 구성되었지만 말이 없다...>
<원주박물관의 석조여래좌상... 화려한 광배와 부드럽고 정교한 매듭의 법의를 입고 있음에도 향기가 없다... 둘다 박물관이라는 한정된 전시 공간에 있어서 그럴까?...>
미처 완성되지 못했지만 당당한 얼굴에 근엄함까지 갖췄을 거 같은 영지석불,
<경주 영지석조여래좌상... 이게 완성되었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얼굴을 가질 수 있었을까?...>
너무나 작고 원래의 얼굴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이 다 담길만큼 원만하고 평화로운 표정의 감산사지의 이름없는 석불,
<경주 감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감산사에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뒤쪽 대적광전에 따로 모셔져 있고, 이 불상은 야외에 덩그러이 놓여 있다... 이름도 없지만 내 눈에는 우주를 다 담고 있는 듯하게 보인다...^^>
<이 얼굴에서 석굴암 본존불의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주관적일까?...>
하염없는 기다림과 염원에 돌로 굳어 처연해야할 처지에서도 웃고 있는
서산마애불앞 조그만 불상,
<서산 마애삼존불 가는 길에 있던 불좌상... 일본의 어느 마을 불상들처럼 현재의 옷을 입힌 불상...>
<외진 곳,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볼 수없었던 작은 석불이었는데, 누군가가 가져가서 이제는 볼 수 없지만 늘 기억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막 여고생이 된 앳되고 토실토실 했을 거 같은 비중리의 우협시 보살...
<청원 비중리 일광삼존불상... 나는 본존불의 없어진 상호보다 우협시 보살상에 더 눈이 가는데, 막상 살아 있다면 풋풋한 향내가 날 거 같다...>
아무튼 희미해진 윤곽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없는 불상들처럼 백암리 석불좌상도 표정과 나이가 있을 듯싶다.
부석사 자인당의 가운데, 석조여래좌상(이 얼굴은 비교적 잘 살아있다만...)이 이른 노년의 맏며느리 같은 모습이라면
<부석사 자인당 석조여래좌상으로 3구의 석불좌상 중 광배가 없는 석불좌상이다... 애써 지우지 않은 립스틱 자국이 남은 붉은 입술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져, 세상풍파 다 이겨낸 다음 표정을 잃어버린 종가집 맏며느리 같다...>
웃음기 머금은 표정에 아직은 활달한 물걸리절터의 여래좌상은 푸근한 중년 아줌마 같은 느낌이고,
<홍천 물걸리절터 석조여래좌상... 파마한 머리를 살짝 숙였지만 아직은 팔팔하지?...>
서혈사지 여래좌상은 도도한 기품을 지닌 40대의 귀부인 같다면,
<공주박물관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 가늘지만 꼿꼿한 목이 왠지 예민하면서도 도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원사 비로자나불좌상은 당당하거나 풍만한 30대의 중성적 이미지인 반면,
<내원사 석남암수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풍만하면서도 이지적인, 온실 속에서 곱게 자라 이제 막 30대가 된 여유로운 청년 같다...>
희미한 윤곽도 채 남기지 못한 대동사지 석불은 아직 살아갈 시간은 적지 않지만,
이것저것 안 해본 거 없어 세상도 알만큼 알고, 여기에 나아감과 물러남까지 아는
그래서 지혜로운지 혹은 초연한지도 모를 꼭 50대 후반의 남성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단호하고 또 달리보면 여유롭고... 이미 다 정리를 끝내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거 같은 표정이다...>
물론 그렇다고 습관화된 침묵과 관조 속에 고요하게 정제된 화엄사 보살상과는 다르다.
<너무 절제돼 묵언의 표상 같은 화엄사 사사자석탑의 보살상을 보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원만한 표정임에도 세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4.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자태와 향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거나 미소가 나올 때, 또는 감탄할 때가 있다.
감은사탑이나 미륵전 앞에서처럼 웅혼한 기운에 뜨거워지는 역동적인 감동도 아니고,
석굴암이나 석가탑, 그리고 수덕사 대웅전의 완벽한 밀도에 취해 할말을 잊는 것도 아니고,
원원사지, 염불사지탑이나 무량사 극락전에서처럼 상큼한 눈맛을 즐기는 것도 아닌,
장중함과 우아함을 함께 갖춘 정림사탑에서 느꼈던 짜릿한 전율과는 전혀 다르지만,
숙수사지 당간지주나 무위사 극락전, 혹은 원주 거돈사지,
어쩌면 관덕리 삼층석탑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과 유사한 내면의 향기 같은 거 말이다.
<운문사 석조여래좌상... 단아한 크기에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불상을 볼 때도 절제된 기운이 느껴진다... 다만 흐트러짐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너무 완벽한 비례와 조화가 오히려 생동감을 해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뭔가 부족해야 애착이 더 가는 걸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함도 없고,
더하거나 덜하고 싶다는 생각이 애초 들지 않은 너그럽고 자연스러운 자태...
손에 잡히지 않는 미망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부질없는 과거나 기억에 매몰되지도 않은 거 같은 편안함...
<디테일 없이 볼륨과 실루엣만으로 이만한 포스를 가진 예술 작품들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 시기 어느 누구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내공이 아닐런지...>
의연한 자태에는 굽힘이 없고, 내려보지 않는 시선에선 자애로움도 가득 담긴,
세상풍파를 피하지 않는 올곧은 자세이면서 조급함이란 찾아 볼 수없는 느긋함...
<불필요하게 높게 쳐진 철제 난간이 눈에 거슬리지만, 나아가려는 의지가 없는 석불에게는 그리 불편한 울타리로 보이지 않을까?... 그래도 고쳐졌으면 좋겠다...>
<시선을 달리하면 백암리 석불은 도도하며 당당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배타적이거나 강직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전체적인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욕심을 충분히 버리고, 비울만큼 비워진 상태...
모든 게 정리되어 주변의 시선도 지향할 염원도 모두 초월한채
자신의 생각과 현재의 모습을 가장 건실하게 표현한다면 이처럼 의연할 수 있을까?
불상임에도 참으로 인간적이고, 또 그렇게 친근해서 편안하며,
완전하지 않아서 채워질 게 더 많은 불상이 백암리 호젓한 곳에 앉아있다.
자연스러워 편안하고, 부드러워서 온화하고, 구김이 없어 더 자유로운...
푸근하고 은근해서 볼수록 생각할수록 기분 좋게 다가오는 자태로 말이다.
<더 이상 누군가 비교되지 않은 자신만의 완성... 그런 느낌이었을까?...>
<간만에 참으로 마음에 드는 좋은 불상을 보는 거 같아 지금도 편안해진다...>
'불상 - 心,想,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현좌 불상1> 600년대 이전 상현좌 불상 - 상현좌란 무엇?... 170531 (0) | 2017.06.02 |
---|---|
창원2>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정갈하고 단아한 기품의... 170505 (0) | 2017.05.05 |
서산마애불의 어제와 오늘 ; 불상에서 다시 길을 묻다...140905 (0) | 2014.09.05 |
불상> 의성 만장사 석조여래좌상 - 편안한 미소를 만났다...1112 (0) | 2012.01.06 |
석불좌상 9> 광배와 좌대를 갖춘 석불좌상이 소백산맥을 넘지 못한 이유...1201 (0) | 2012.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