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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趣,美,香...

문경 / 호계 봉서리 삼층석탑> 진지하면서 당당한, 사관학교 생도 같은 느낌의...1504

 

 

 

 

1.

 

가끔 다른 분들이 석탑을 소개한 글과 사진을 보면서 왜 이걸 지금까지 몰랐을까 하는 생각에 메모해 두는 경우가 많다. 정작 그 호기심을 채울 때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됐지만, 맘에 담아두면 언젠가는 꼭 볼 것이고 / 봐왔다는 주문이 비워질 때의 기쁨이 또 다른 탑을 찾는 동인이었던 거 같다. 호기심이라는 것도 선후 경중 완급이 있겠지만, 애초보다 좋은 인상을 받았을 때는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은 거처럼 더 꽉 찬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석탑을 정리하면서 뭔가 부족했다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여정에, 오늘은 문경 호계면 봉서리에 있는 삼층석탑을 찾았다.

 

<호계 봉서리 삼층석탑... 복원하길 잘 했다...^^>

 

 

문경시내에서 문경새재를 향하는 방향에서 동북쪽으로 틀어,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을 건너면 호계면 반곡리와 봉서리가 나오고, 곧바로 산길로 오르다보면 봉서사가 나온다. 봉서리탑은 봉서사에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선입감과 내 네비게이션에 대한 막연한 의존 때문이었겠지만, 그 곳에는 탑이 없었다. 한 2~30분을 찾고, 다시 스마트폰을 켜 사진 주변과 비슷한 지형을 찾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포기하는 마음에 막다른 길로 보이는 산길을 향해 시동을 걸고 4~5백여m쯤 더 들어간 곳에서 결국 찾았다. 급한 경사 끄트머리 암벽 위 삼층탑이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여름이나 가을이었다면, 수목에 가려 다음으로 미뤘을지도 몰랐던 순간이다.

 

<아래쪽에도 안내판이 하나 만 더 있었다면...ㅉ>

 

 

찾았다는 안도도 잠시, 순전히 탑에 대한 열정만으로 이곳까지 찾아 탑에 대한 정보를 남겨 주신 분들의 노고에 늘 고마워하면서도, 답사객 입장에서 제대로 된 안내판(‘봉서사에는 봉서리탑이 없습니다’라는...) 하나 세우지 않은 지자체나 문화재 당국에 대한 원망은 늘 아쉽기만 하다. 물론 내가 이 탑만을 찾으려 인터넷에서 미리 검색을 하고 왔다면 오늘 같은 방황은 없었겠지만 (Naver 지도에는 ‘봉서리 삼층석탑’으로, Daum 지도에 ‘호계 봉서리 삼층석탑’을 검색하면 ‘호계분서리삼층석탑’으로 뜬다), 지방 출장으로 오르내리는 길에 네비게이션만 믿고(이건 진짜 무모하다) 잠시 짬을 내야만 하는 나로서는 잠시의 허비도 무척 당황스러운 일(물론 한 두 번이 아니지만)... 내가 이곳에 이른 이유와 경로를 그나마 길게 풀어 쓴 이유다.

<자연 암반 위에 굳건히...>

 

 

 

 

 

2.

 

이제 다시 석탑으로 돌아가 첫느낌을 되새겨 본다.

어땠냐고? 한마디로 좋았다...^^

사람이나 사물과의 모든 인연이 첫 느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봉서리탑과의 첫대면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짜임새와 굳건한 이미지는 한번 보고 망각될 만큼 가볍지 않았다.

 

<참 좋치? ^^>

 

 

 

일제강점기, 사리기 도굴단에 의해 도괴되어 단층 기단부와 2,3층 몸돌을 새로 끼워 넣어야 할 만큼 크게 훼손됐지만, 지금은 어엿한 자태로 복원되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한 시대와 한 지역을 대변하기에 부족함 없는 자태를 지녔다.

 

<일본으로 반출된 사리장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장연사지탑 사리장엄구 옆에...>

 

 

 

약간이나마 안쏠림이 적용된 일층몸돌은 탑의 상승감과 안정감에 큰 틀을 잡아주고,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단부 갑석의 부연과, 몸돌의 강조를 위해선지 별석으로 다듬은 일층몸돌 밑 괴임돌은 통일신라 석탑의 원시적 힘을 실은 듯 튼실해, 이제부터 화려하거나 문약하게 변화되는 800년대 중반의 석탑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강건하다...>

 

 

 

무엇보다 이 석탑의 힘은 지붕돌에 있지 않나 싶다.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정연하게 다듬어진 처마선과 5단의 층급받침에, 두텁지도 얇지도 않은 오묘한 두께의 지붕돌은, 경주 황복사지나 울산 간월사지탑 지붕돌처럼 좁지 않아 둔중함이 없고, 염불사지나 법수사탑만큼 넓지 않아 경쾌하지도 않다.

 

<잔뜩 웅크린 느낌...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물론 이들 탑만한 중량감이나 상큼한 느낌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5m에 가까운 높이에서 느껴지는 당당함과 어색함이나 어설픔이라곤 찾아 볼 수없는 비례와 조화는, 어디 내놓아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당당하고 꽉 찬 힘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라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함도 없었다...>

 

 

 

복원된 모습에서 굳이 아쉬움을 찾으라면, 기단부는 5cm만 낮았다면, 노반은 5cm만 높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정도? 부재가 남아있지 않고 실측된 자료가 없는 한 복원이란 늘 우리시대의 미감으로 재조율 되기 마련이고, 일층몸돌에 비해 좁은 기단부 판석과 2~3층 몸돌 두께에 조응해야 할 거 같은 노반의 높이 추정이 복잡했겠지만, 그렇다고 눈에 거슬리는 것은 아니니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석탑을 복원하다면... 이렇게(↓) 바꾸고 싶다... 기단부는 조금 더 낮추고, 노반은 조금 더 높이고...^^>

 

 

 

3.

 

이런 느낌의 석탑은 어디서 봤지?

자연암반을 하층기단부로 삼은 경우를 떠올리면 경주 남산 용장골 삼층석탑, 해남 대흥사의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영동 영국사의 망탑봉 삼층석탑 등이 있지만, 어느 하나 비슷한 게 없다. 그 중 용장골탑이 유사한가 싶지만 단정한 용장골탑에 비해 봉서리탑은 너무 근엄하다.

 

<봉서리탑에 비해 용장골탑은 너무 단아하지?...>

 

 

일층몸돌에 비해 낮고 얇은 지붕돌을 떠올리면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이 있지만, 서부리탑은 일층몸돌이 너무 높은데다, 봉서리탑은 서부리탑만큼 장대하지 않다.

 

<지붕돌이 얇은 건 비슷한데, 서부리탑은 너무 장대하다... 물론 복원 과정에서 기단부가 조금 더 낮고, 넓었다면 느낌이 크게 달랐을테지만...>

 

 

 

그나마 비슷한 비례에 정연함을 찾자면 경산 팔공산의 선본사 삼층석탑이 떠오르지만,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의 선본사탑을 따라가기에 봉서리탑은 너무 딱딱하고,

 

<선본사탑은 봉서리탑과 그냥 비교하기엔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탄탄한 느낌에 굳건한 힘을 찾자면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이 떠오르지만, 낙산동탑의 장중한 기운에 봉서리탑이 너무 위축된 듯 생각돼, 역시 비교불가...

 

<느낌과 비례는 비슷할지 몰라도, 낙산동탑에 꽉 찬 기운에 비교될 탑은 그리 많지 않다...>

 

 

규격화된 느낌에도 긴장감이 살아있고, 차분하면서도 당당한 게 사관학교 생도생 같은 느낌의 미감은 이 탑이 유일한 것일까? 싶을 때 떠오르는 탑이 경주의 남산동 서삼층석탑이었다.

 

<봉서리탑은 자신만의 분명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 봉서리탑은 남산동서탑을 닮았다. 얇아진 지붕돌에 정연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층급받침하며, 적절한 비례로 좁아진 각층의 몸돌에서 느끼는 튼실한 안정감, 그리고 교과서적인 진지함 때문에 딱딱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차분함은, 이 탑을 발원하고 가공한 석공들이 남산리서탑을 모본으로 삼았다 싶을 정도로 유사한 느낌이 많다.

 

<어디선가 봤을 봉서리탑의 느낌... 조화와 비례는 남산리서탑을 꼭 빼 닮았다고 생각한다... 역시 혼자만의 느낌이겠지만...>

 

 

물론 너무 화려한 조각과 완벽에 가까운 비례 때문에 카리스마를 잃어버린 남산동서탑에 비해, 어딘지 아쉬운 봉서리탑은 팽팽한 긴장감에 숨겨지지 않는 원시적인 힘까지 담고 있다.

 

 

4.

 

금당이 자리했을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공간이 있었음에도, 부지의 맨 남쪽 끝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연암반 위에 석탑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목에서 조금 비껴난 곳, 소백산맥을 넘나드는 군졸이 상주했다고 보기에는 그리 적절치 않은 곳에 무인 기질을 닮은 석탑을 세운 이유는 또 무엇일까?

 

<탑이 자리한 뒤쪽으로 넉넉한 공간이 없지 않다...>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이 있는 곳처럼 왕래가 빈번한 곳을 피해 낙향한 누군가가 은둔하며 세상을 관조하기에는 충분히 깊지 않고,

 

<관덕리탑이 있는 곳은 호젓하다기보다 처연함이 느껴질만큼 깊다...>

 

 

옹장골탑이나 횡성 중금리 삼층석탑의 위치처럼 혼자만의 세상을 그리기에는 옹색하거나 올망졸망한 조망이 펼쳐진 곳에 봉서리탑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의 위치는 모르겠지만, 중금리탑 주변의 풍광은 너무 시원하다... 아무 것도 머무르지 못할 만큼...>

 

 

 

호계(虎溪)면 봉서(鳳棲)리... 월악산에서부터 대미산 / 중미산을 거쳐 대승사가 있는 공덕산의 끝자락까지 내려오면 월방산 낮은 자락에 봉서리가 있다. 호랑이가 머물고 봉황이 산다?

 

<웅크리고 있다기엔 낮지 않고, 굽어보기엔 높지 않고... 이 규모의 탑이 도약하기에 가장 좋은 높이일까? 어쩌면 이 탑을 저 위치에 세우고자 마음 먹었던 발원자와 석공은, 저 높이에 맞춰 탑의 규모를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봉황과 관련된 지명도 많고, 문경 외에 충남 홍성, 전북 장수, 그리고 전남의 구례와 담양에도 봉서리가 있다. 새로운 세계로 넘나드는 경계이거나, 깊지 않지만 편안한 곳을 상징하는 지명(地名)일지는 몰라도, 이 봉서리탑을 세운 이는 자신만의 세계, 봉황의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친 석질과 갈라진 석결이 꼭 봉황의 발톱같이 힘있게 다가왔다...>

 

 

 

높지도 깊지도 않지만 세상에서 조금은 비켜난 곳, 누군가의 염원을 담아 탄탄한 구성에 응결된 힘을 담아 튼실한 삼층석탑을 세웠다. 잔뜩 웅크리고 있지만, 한번 날개를 펴면 구만리를 날아갈 수도 있었던 염원을 담아서.

 

<저 암반을 하층기단부로 생각한다면, 훨씬 장대한 꿈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800년대 전후 어느 때쯤, 작지만 어느 하나 부족함도 없고 위축됨도 없었던 당당했던 기운을 그대로 새긴 봉서리 삼층석탑, 차분하면서도 굽힘이 없고, 진지하면서도 긴장감이 살아있는 탑이다. 지나가는 길목이라면 놓치지 말고 친견하길 권한다. 생각보다 길게 머물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느껴지는 곳이다.

 

<원없이 세상을 누려보고 세상에서 한 발 비껴 서 관조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아직 펼쳐보지 못한 꿈을 다지며 세상을 응시한다는 느낌... 아직은 충분히 여물지 않은 미완의 꿈 같은 게 느껴지던 석탑... 대지를 가득 채울 햇빛을 받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석탑에 스민 기운을 찾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은 충분히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