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천 간방동 삼층석탑(경북 188호/높이 4m/800년대 중반)
그리고 그 다음, 800년대 중반 중앙집권이 완전히 와해되고 이전 시기보다 훨씬 사치스럽지만 문약하고, 화려하면서 난숙한 통일신라의 문화가 마지막 꽃을 피울 즈음 봉암사탑과 비슷한 시기 예천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한 탑이 간방동 삼층석탑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천 간방동 삼층석탑... 군더더기가 없고, 단정하면서도 차분한 미감의 삼층탑이다...>
800년대 중반이 되면서 기단부가 넓이에 비해 점점 높아지고, 역으로 하층기단부는 좁아지면서 이전의 석탑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 공예화 되어 간다는 흐름을 찾을 수 있는데, 그럼에도 단아한 크기에 균형 잡힌 비례가 강조된 삼층석탑들이 각지에서 조형되었고, 간방동탑은 그런 유형의 석탑에서 빠지지 않을 우수한 석탑이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간방동탑... 스레트 지붕집 안마당에 오롯이 보존된 간방동탑... 주변의 번잡스러움에서 폐사 된 사찰의 규모를 추정할 수도 있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격식에 매여 생동감을 살리지 못하고, 디테일에서는 경쾌함을 살리지 못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적절한 규모로 축소되어 거부감 없이 친근하고 차분함을 주는 미덕을 갖췄다. 경산 불굴사나 군위 인각사, 그리고 수덕사 대웅전앞 삼층석탑과 비슷하거나 이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인각사탑을 비롯 대흥사 응진전앞탑이나 월성 남사리사지탑 등과 거의 같은 규모로 생각되는데, 이들이 경쾌한 반전에 세련된 미감을 가졌다면, 간방동탑은 밋밋한 경사에 평박한 낙수면으로 이들보다 차분하게 보여, 봉서리탑을 계승한 것처럼 엄정함이 살아있다...>
6. 예천 한천사 삼층석탑(경북 5호/높이 3.6m/800년대 후반)
그리고 약간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게 한천사 삼층석탑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일지 모르지만 간방동탑보다 높아진 기단부와 좁고 낮아진 탑신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 규격과 비례가 완전히 해체된 후기의 모습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거 같다.
<한천사 삼층석탑... 간방동탑의 탑신보다 기단부가 훨씬 높아졌다... 지붕돌 낙수면서 평박함을 잃어 엄정한 기운도 많이 퇴색하고... 그러나 균형과 비례는 잘 유지하고 있는 간방동탑 이후의 석탑으로 생각한다...>
사실 한천사는 800년대 중반 조형되기 시작한 통일신라의 철불들 가운데, 규모나 완성도, 그리고 원만하고 자애로운 상호로 어느 철불에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뛰어난 철조 비로자나불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전통사찰 중 한 곳이다. 또한 장보고 선단의 등장 이후 확산되기 시작한 선종과 지방호족의 토착화 속에서 시작한 철불 발원 유행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에도, 소백산맥 안쪽은 완전히 소외되어 결국 영남지방에는 영천 선원동의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두기의 철불 밖에 조형되지 않았지만(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조선초기 작품이다), 그 두기만으로도 우리나라 철불을 대표한다고 자부해도 지나치지 않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수준 높은 영남지방의 금속공예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한동안 수인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비로자나불로 확인되면서 제모습을 찾았고, 머리가 두건을 쓴 것처럼 밋밋한데, 진흙으로 만들어 붙였던 나발이 망실됐기 때문이다... 서산 보원사지를 비롯, 보림사, 도피안사, 선원동 철불과 함께 통일신라 철불을 대표한다 해도 부족함이 없는 규모와 완성도를 갖췄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철불이다...>
그런 위명과 수준에 비하면 부족할 수 있는 석탑이지만, 전통 양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각각의 부재에 들인 정성만큼은 충분히 느낄만한 탑이어선지, 작은 규모임에도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느낌도 살아있다. 개인적으로는 석탑보다 철불이 먼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한천사탑은 철불과 동시대에 만들어졌을까?...>
7.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426호/높이 4m/800년대 중후반)
문경을 포함해 상주와 예천지역의 석탑들을 모아보면서 꼭 시대순으로 이를 나열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데, 그래도 연대별로 살펴보면 지역의 변천도 추적할 수 있고, 역사의 흐름과 시대정신의 변화도 상상할 수 있겠다 싶어 시도해봤는데, 생각만큼 원활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지방 일대에서 통일신라 석탑의 대미를 장식하는 게 한천사탑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동본동 삼층석탑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본리 삼층석탑... 간방동탑과 동본리탑의 선후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지만, 괴임과 층급받침 등을 고려해 동본리탑이 조금 더 늦은 것으로 추정했다...>
석조여래입상과 같은 위치에 있는 동본동탑은 언듯보면 이형기단부에 약화된 괴임 등 고려시대 석탑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 상태에서 몸돌과 지붕돌의 비례와 체감을 생각하면 상당히 뛰어난 비례를 갖춘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기단부 면석에 2구씩 있던 팔부중상 자리에 1구씩의 사천왕상만 새겨져 낯설게 보이고, 기단부 아래 좁아진 하층기단부와 두꺼운 갑석으로 비례가 깨뜨러진 상태로 보일 수 있지만, 노출된 지대석을 가리고 단층기단부 삼층석탑으로 재해석하면 훨씬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연화대좌 위로 높이 3.4m가 넘는 하나의 바위를 통으로 가공한 입상으로 만만치 않은 공력과 정성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린아이와 비슷한 4등신에 자연스럽지 못한 수인과 평면적 가공으로 고졸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단순한 선처리와 거대한 규모의 괴체감에서 중량감과 힘이 넘치는 석불이다...>
또한 기단부 위 탑신 구성은 규모가 작아졌음에도 전성기의 탄탄한 구성과 비례를 보여 통일신라 석탑의 정연함과 안정감, 그리고 상승감까지 제대로 살린 매우 우수한 석탑으로 평가할 수 있다(기단부가 좁은 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통일신라가 해체돼 가는 말기까지 이만한 구성과 비례를 계승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억해야할 석탑이 아닐 수 없다.
<동본리탑의 복원(?)... 현재 석탑의 기단부 면석 아래 두꺼운 갑석을 보면, 애초부터 이삼층탑은 단층기단부로 조성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기준으로 주위에 계단식 판석들이 깔려 있었다고 가정해 사진을 수정해보면 훨씬 자연스럽고 좋은 비례의 삼층탑이 된다... 다른 탑들은 매몰된 부위가 문제 되는데, 동본리탑은 불필요한 부분까지 지나치게 노출돼 균형이 깨져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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