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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11) 중후장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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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건축공간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미감들...

 

(11) 중후장대함 - ① 석탑, 석등

중후장대함, 장중함... 그런 느낌의 역사문화유산들... 수정>개선사지 석등은 탄탄함으로 옮긴다...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보물 459 8~9세기 경
통일신라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국보 6 8세기 후반 원성왕/중앙탑 통일신라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국보 130 800년 전후 구미 선산읍 통일신라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185호 970년 경 외산면 문수산 고려
출토 금동불상 일괄(보물2060호, 1구 고려/3구 조선)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보물 459호, 8세기경, 통일신라... 중국 전탑의 기름진 미감이 남아있지만, 감실과 문비가 있는 1층 - 기단부 모서리는 화강암으로 구조적으로 보강한 점은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과 차이가 난다. 또 1층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과도 큰 차이가 있어 두탑 사이에 조성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울러 석탑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의 가사 양식을 고려한다면, 670년대 나당전쟁이 끝나고, 776년경 일본의 완전한 전쟁종식이 선언되기 전후, 안동지방 중심의 당나라 출신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 중국전탑의 미감과 제천이란 지역의 연결성, 그리고 8세기 중반의 시점을 그렇게 묶어 봤다... 이런 이유로 장락동석탑의 중후장대함은 의도된 결과라기보다, 규모로 인한 해석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국보 6호, 785년경, 통일신라...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안동 법흥사지 전탑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석탑이기도 하다... 훼손과 보수과정에서 기단부의 탱주가 패턴을 잃어버렸고, 2단의 노반이 설치된 점, 그리고 1층 탑신 괴임의 호각형 2단 + 1단의 괴임석, 하층 기단부 갑석의 낙수면과 우동처리  등으로 인해 조성시점에 이견이 많을 수 있지만, 상층 기단부 갑석의 명확한 부연과 전층에 일정하게 남은 5단 층급받침, 낮아진 상하층 기단부의 호각형 2단 괴임, 직선에 가까운 지붕돌 낙수면 등으로 보면 700년대 후반을 넘지 않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남한경변에 높게 조성된 토단과 원성왕(785년 전후) 대에 만들어진 중앙탑이란 이명까지 풍수지리적 스토리가 있어 아직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고... 칠층이 만들어주는 체감에 하층기단부 갑석의 돌출은 (내 생각이지만) 상승감을 살리는 신의 한수가 되었고, 몸돌의 넓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빠진 지붕돌 폭과 낮은 몸돌의 높이로 인해 자칫 탑을 기름진 미감으로 고착시킬 수도 있었지만, 고집스럽게 통일한 5단의 층급받침과 1층 몸돌에 추가된 괴임돌 등으로 인해 정연함을 잃지 않았고, 2단 노반설치도 탑의 상승감에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 넉넉한 기단부에 좁은 몸돌이 주는 안정감에 기단부의 3배가 넘는 탑신으로 인한 상승감과 세부 디테일에서 놓치지 않은 정연함이 어우러져 장중하면서도 중후한 맛에 세련미까지 모두 살린 뛰어난 석탑이라고 생각된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국보 130호, 800년 전후, 통일신라... 10m... 규모가 주는 압도적인 스케일이 살아있다... 전형화 되지 않은, 그래서 정연하게 보이지 않는 파격들이 많은 말을 만들어내지만, 여전히 규모와 안정된 비례가 만들어내는 미감이 모든 것을 덮어 준다... 장대함이 주는 장중함... 충분하다...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무량사탑은 스스로 완결적이어서 돋보인다기보다, 상큼하고 우아한 극락전, 그리고 담백한 석등과 함께 있어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물론 극락전이 후대에 중건되 이전의 미감이 어땠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기름지고 둔중한 느낌에 무거워질 수 있었던 석탑은 이렇게 앞 뒤의 건축적 배치와 미감으로 인해 스스로 가치를 참 기막히게 중화시키고, 또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미 규모만으로 기념비적 스케일인데다, 안팎으로 상당한 공력이 투입된 걸 느낄 수밖에 없는 완성도를 가져, 장대한 규모에 어울리는 중후하 기운으로 갈무리됐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극락전을 만든 대목수가 진정한 주인공이 되겠지만...^^

 

 

 

 

 

(11) 중후장대함 - ② 건축

압도적인 스케일은 중후장대함의 충분조건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필요조건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울 문묘 동서무에서는 강직함이, 나주 금성관은 현판의 스케일이, 법주사와 금산사 천왕문에서는 당당함이, 몽땅한 신흥사 대광전에서는 내부의 시원함이, 기림사 대적광전에서는 두툼한 지붕이, 김제향교와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에서는 공간 지배력이, 송림사 대웅전은 전탑과의 어우러짐이 중후함 혹은 장대함, 중후장대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외관만으로 순수하게 이 미감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은 금산사 대적광전이, 내부의 장엄함으로 건축물의 장중함을 살린 것은 통도사 영산전이  아닐까 싶다... 
서울 문묘 동서무 보물 141 1604 문묘 대성전 조선
나주 금성관 보물 2037 1617년 중수
1775년 중수
나주목관아 객사 조선
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1624 속리산 조선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보물 833 1629 문무대왕면함월산 조선
소조 비로자나 삼불 좌상(보물 958, 16세기초)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보물 476, 화재로 해제, 1636, 1990년 재건, 모악산 금산사  
김제향교 대성전   1635년 중건 교동 조선
칠곡 송림사 대웅전 보물 2131 1649년 재건
1850년 중수
팔공산/칠봉산 조선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보물1605, 1657)
양산 신흥사 대광전 보물 1120 1657 영축산 조선
대광전 벽화(보물 1757),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1657)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 보물 2099 1689 고서면 교천리 조선
양산 통도사 영산전 보물1826 1704년 중건 지산리 영축산 조선
영산회상탱(보물1353, 1734),
벽화(보물1711, 1715), 팔상도(보물1041, 1775)
김제 금산사 천왕문     모악산 금산면  
김제 금산사 미륵전
석고미륵여래입상
  1939 김복진 작  

 

서울 문묘 동서무

서울 문묘 동무, 서무, 보물 141호, 1604년, 조선... 폭 45m 길이의 스케일이 장대함을 준다... 투박하고 거칠게 보일 수도 있는 소박, 담백한 물익공-홑처마 구조임에도 두툼한 부재들의 탄탄한 짜임새와 적절한 높이의 석단과 전퇴가 어우러지면서 강렬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자아낸다... 

 

나주 금성관

나주 금성관, 보물 2037호, 1617년, 1775년 중수, 조선... 현판부터 좌우익랑의 규모 하나하나가 시원시원하다...

 

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1624년, 조선... 팔상전과 대웅보전, 그리고 금동미륵대불까지 굵직한 건축물들과 사방을 둘러싼 소백준봉들 속에서 담장없는 법주사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천왕문이다... 보면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부족함이 없는 멋진 건축물이다...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보물 833호, 1629년, 조선... 낮은 벽체에 두배가 넘는 높이의 지붕구조물... 자칫 가분수처럼 둔중해질 수있는 상부의 무게와 비례를 정면 5칸, 건축물의 넓이로 한번 풀고, 맛배지붕의 엄정함은 외3출목의 화려한 다포작으로 풀어내, 중심법당으로서의 위엄과 장엄함을 놓치지 않았다... 엄정하고 차분하다...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1636년 재건되어 보물 476호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고 다시 1990년 복원 했다... 장중한 기운에 기념비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례와 균형,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건축물이다... 금산사의 주법당인 만큼 규모로도 미륵전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면 7칸으로 법주사 대웅보전과 같다. 물론 이쪽이 더 넓다... 

 

김제향교 대성전

김제향교 대성전, 1635년 중건, 조선... 김제향교와 담양 창평향교의 대성전은 중후장대함의 충분조건은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엄정하고 강직한 위엄이 있어 중후함의 필요조건은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석단의 높이, 기둥부재의 두께, 그리고 전퇴의 품격과 익공계와 주심포 양식이 묘하게 절충되어 있지만 두터운 기둥에 살포시 얹혀진 세련된 첨차와 살미로 구성된 포작과 돌출된 출목(장혀와 굴도리)의 조화가 건축물의 위엄을 높이고 있다... 탄탄하고 당당함을 넘어선 중후한 맛을 잘 살렸다...

 

칠곡 송림사 대웅전

칠곡 송림사 대웅전, 보물 2131호, 1649년, 1850년 중수, 조선... 건물의 높이와 규모에 비해 풍판쪽, 좌우 측면 돌출이 짧아 약간 몽땅한 느낌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중후한 맛을 잃지 않았다...  물론 1600년대 재건 된 이후 1850년 중수하면서 팔작지붕 건축물이 맛배지붕으로 바뀐 영향으로 추정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고 맛은 맛대로 남았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아무튼, 높고 큰 규모에 맞는 주두가 듬직하지만, 첨차가 단순하고, 쇠서가 없는 살미(교두형 양식으로 불린다)로 인해 유약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2출목의 격식이 살아있어 상당한 공력이 투입되었음을 짐작케 하며, 특히안정감 위주의 전탑과 낮게 위치한 명부전에 조응하면서 전체적 가람배치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어 위상을 놓치 않았다... 멋진 건축물이다... 

 

양산 신흥사 대광전

양산 신흥사 대광전, 보물 1120호, 1657년, 조선... 송림사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좌우측면으로 종도리가 더 나갔으면(1.5자 정도) 어땠을까 생각되지만 정면 3칸 건축물임에도 상당한 무게와 위엄을 갖추고 있다... 먼저 정면 3칸 중 어칸이란 불릴 수 있는 가운데 칸이 넓고, 기준 벽체의 높이보다 높은 지붕구조를 받치는 포작의 시원시원한 구성이 눈에 띈다... 여기에 지붕의 처마를 늘리기 위한 3출목 구성이 두드러져, 낙수면과 벽체에 이은 3단 구성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그만큼 내부 공간의 개방감이 의외로 크다... 4단 내출목으로 높아진 내부 층고와 애초부터 넓었던 가운데칸의 시원한 채광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내부를 장식한 것이 보물 1757호로 지정된 6점의 벽화다... 구조가 만들어낸 내부의 공간과 여기에 살아있는 단청채색과 벽화가 중후한 느낌으로 남는 건축물이다...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 보물 2099호, 1689년, 조선...  50년의 시차가 있지만, 김제향교 대성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건축물... 기단부가 다르고, 판벽과 회벽이 다르며, 첨차가 다르며, 결정적으로 기둥부재의 두께가 다르다... 그만큼 경쾌하고 시원한 느낌이지만, 동서무가 없어 좁아진 제향공간에 비해 견고한 느낌을 잘살려 중심건축물로서의 위엄을 놓치지 않았다... 높지 않은 지붕과 낮은 낙수면, 3칸 규모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고 견고한 구성으로 좁은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 영산전

양산 통도사 영산전, 보물 1826호, 1704년 중건, 조선... 중후장대함으로 분류하기에 고민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정면 3칸, 측면 3칸... 게다가 좁아진 측면으로 인해 지붕의 높이가 충분치 않고, 상대적으로 치밀해진 다포작이 잇몸이 노출된 것처럼 벽체와 지붕을 완전히 구분하고 있어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3출목 구성으로 처마는 충분히 앞뒤로 빠져있는 만큼, 지붕이 낮거나 좁은 것이 아니라 건축물 자체의 폭이 좁다. 다만 이런 구성의 의도는 내부 고주를 설치하지 않고 통으로 개방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의도에서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법당보다 내부 공간이 가장 화려하고 장엄하게 구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각각 보물로 지정된 영산회상탱, 벽화, 팔상도가 내부공간을 화려하고 밀도있게 채우고 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내부의 공포구조와 정성스럽게 치장된 천장(반자)는 이 건축물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내부 기둥 - 고주가 없고, 그래서 판벽이 없으며, 그래서 모든 공간의 하나하나의 면들이 빛에 순응하고 빛을 발해야만 살아나는 건축공간이다... 그 하나하나를 꽉 채운 정성... 장엄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래서 통도사 영산전은 밖에서 보고, 안에서 느껴야 온전히 살아난다... 장엄한 건축물이다...  

 

김제 금산사 천왕문

김제 금산사 천왕문... 법주사만큼 굵고 장대한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룬 곳이 금산사다. 여기에 가람 중심공간의 넓은 마당을 구획하고 있고 최근의 보제루까지 굵은 선으로 배치된 금산사... 그 경계를 이루는 문이 금강문과 천왕문이며, 그 장대한 기운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완충시키거나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획구조물이 이들 문이다... 법주사, 금산사, 불국사, 흥국사 등등등... 명산에 명찰이 있고, 명찰에 명당이 있으며, 그 명당들 앞에서는 이런 멋진 건축물들이 함께 있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석고미륵여래입상

1939년 좌익계열 독립운동가이며 조각가인 김복진이 만든 석고입상이다... 그리고 현재 청동대불로 바뀐 법주사의 미륵대불을 콘크리트로 조성한 이 역시 김복진이다... 처음 소조불상으로 알았으나 석고상이란 점에 놀랐는데, 김복진은 조선미술전 등에서 수차례 석고상으로 입선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배제고, 경성학교, 기독교청년회 등에서 조각을 지도하며 조각계를 태동시켰고, KAPF 참여로 6년 옥살이를 하고, 조선중앙일보사 학예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면서 그가 남긴 장대한 규모의 작품... 꿈일지 완성일지 모를 작품에 무엇을 담았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