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𝐈. 論
1. 시작하는 말
1) 좋아하는 이미지를 나의 일에 구현해본다.
얼마 전 건축 답사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그러고 보니 도자기 굽는 사람, 서각을 선물해준 후배, 글씨와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과 짧은 만남이 있었고, 가끔 답사지에 동행한 이들과 이야기도 나눠봤다. 아~ 설치미술 하는 후배도 있어 기웃거려보고...
석굴암의 보현보살 탁본은 액자로 걸어놓고, 찰흙으로 석가탑도 만들어보고... 또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비례로 디자인한 등(燈, 둘레만 7m다)을 만들어 건물 로비에도 걸어보고, 사천왕사지를 염두에 두고 주상복합 건물을 배치하고, 아파트단지에 매화도 심어보고, 세한도를 차용한 조경도 해봤다.
시간과 공간이란 길을 걸으며 많은 배움이 있었다. 건축에서 시작해 탑으로, 다시 공간으로 간 내 호기심은 역사문화 답사여행이 되었고, 이제 그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져 내가 참여하는 건축과 공간구성에 스토리도 더해보고 직접 적용도 해보는 지금, 나는 지금까지 경험과 인연과 여행으로 무엇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범위를 더 넓혀 우리들은 어떤 길을 만들어야할지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방향은 잃지 않았고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지 돌이켜보고도 싶었고...
2) 한국적인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
10여 년 전 내가 좋아하는, 추천하고 싶은 답사 공간들을 골라본 적이 있다. 역사와 사상과 예술이 함께하는 -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한국적인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적이란 무엇일까? 가족구성원이면서 시민이고, 한국인이며 세계인이고, 지구에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인간은 인류는 어떻게 문명과 문화를 만들었을까의 고민은 결국, 나는 -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접근이었을 것이다. 또 내가 좋아한다는 느낌과 미학적 관점은 역사와 사회라는 배경과 경험, 그리고 관계 속에서 형성했을 것이고...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져 이제는 내가 만든 결과물로 타인과 만나는 지금, 내 생각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방향을 잃거나 현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까지의 답사여행과 박물관 기행,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에서 한국적인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해, 국보와 보물에서부터 미지정 유물들까지... 그 유물들을 하나하나의 구슬로 본다면, 나는 이제 몇 개의 목걸이로 나눠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눠 놓으면 보기 편하고, 장식으로도 좋고 선물로도 괜찮을 거 같고.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고, 과정에서 나의 인간적 성장과 관계의 확대도 생각해 보고, 그리고 그 영역에 밀도도 채워야 유의미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을 어떻게 고를까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왜 그렇게 선택했는가에 대해서도 계속 묻고 답했다.
① 다양한 미감과 풍부한 감성
고르면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구려의 장대함, 백제의 우아함, 신라의 화려함, 통일신라의 정연함, 고려의 세련됨, 그리고 조선의 질박함 또는 소박함(?), 각 시대별로 꽃피웠던 다양(多樣)한 미감(美感)들이 있어 좋았다. 다양하다는 말은 줏대가 없거나 중심이 없어 유지-지속시킬 힘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각각의 미감은 시대를 관통하는 충분한 시간(기본이 4~500년이다) 속에서 숙성되었기 때문에 힘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단순한 규격으로 고착-정착되지 않고 또 다른 미감으로 전환될 유연성(수동적으로 말하면 적응력이 되겠지)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감성은 원심력이 아닌 구심력과 방향성을 가지고 풍부해졌을까? 그렇다면 근대와 현대의 미감은 무엇일까?
② 작은 규모, 자기만족, 현실 안주의 한계
그리고 못 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계가 무엇인지도 많이 생각했다.
다리와 길, 항구와 역참 등 소위 사회간접자본으로 남을 토목시설이 약했다. 잉여재화의 부족, 부의 편중, 절제의 강요, 하나 또는 전부가 요인인지 모르겠지만 상업과 유희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또 과시적이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으며 규모가 크지도 않았다. 목가구조(木架構造)의 건축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 전래된 이후의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고, 실용성 - 우리의 미감에 맞췄을지는 모르지만 질적인 발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위대한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나 자족적이었고, 대포를 배에 처음으로 설치했지만 방어용에 불과했다. 한지(韓紙)처럼 끊임없이 적응(適應)하고 응용(應用)하고 개선(改善)했지만, 선도(先導)하고 주도(主導)하고 창조(創造)하지 못했다. 넘친 적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또 종이나 화약을 비롯해 인쇄와 도자기 등 세계사적 문명을 바꾼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유산들이 있으나, 그 당시에 그만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음도 분명하다. 앞선 적도 없고, 유일하지 않으며, 크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움직여 본 적이 없다는 분명한 한계(限界)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영역을 강조했지만 개념적 완결성에 매몰되지 않았고(우리 스스로 만든 명사(名辭)는 거의 없다), 자기만족적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용성과 개선에 탁월해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밀도는 뛰어났고, 철저히 현실에 천착한 현실안주에 머물렀다(신라의 불국토 건설은 신정일치나 국가의 종교화와 명백한 차이가 있고, 내세나 이상향이 아닌 현재와 이승의 영역을 중시했다. 그만큼 당장의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빨리빨리가 정착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 한계와 장점의 논리적 갈등과 긴장관계는 적응을 위한 인내와 보편지향이 주는 빛과 그림자 –양면성- 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적 각성과 주체적 선택, 그리고 장기적 안목이 하나의 방향으로 집약될 때는 비교불가의 역동성으로 발휘되기도 했다.
③ 문화 DNA가 주는 잠재력 : 풍부한 다양성, 젊은 감각, 그리고 집단지성의 역동성
또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집단지성과 잠재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원시에서부터, 고대, 중세,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는 인류가 거쳐온 발자취 - 전시대에 걸친 문명과 문화유산이 우리가 소화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전세계 절반의 고인돌(거석문화)이 한반도에 있고, 샤머니즘-토테미즘-애니미즘의 토속신앙이 현존하며, 고조선의 홍익(弘益)사상과 유불선(儒彿禪) 통합의 경험에, 북학과 서학을 동학으로 묶어낸(세계에 유례없는 – 종교라면 응당 정립되어야만 하는...) 내세 없이 현세의 보편적 인류애를 지향한 대종교도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인지 유교와 도교라는 정신사적 시스템에 불교와 기독교, 카톨릭과 개신교 등의 종교문화가 적대적 배타성을 드러내지 않고 공존하는 유일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철학-종교-사상적인 인문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들을 사회시스템으로 구축한 정치-법률-의료 및 과학적 산물과, 이를 공동체의 실생활에 구현한 건축과 토목에서부터, 사찰과 향교 및 서원, 그리고 기록문화와 도자기와 회화와 조각에 이르기까지 소위 인류의 역사문화유산이라 부를 수 있는 카테고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모방과 답습을 넘어선 개선의지와 완성형을 지향한 기준과 완결태를...
고립된 적은 있지만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았고, 휩쓸린 적은 있지만 포기하거나 스스로 버리지 않았으며, 필요한 때 - 끈질긴 자생력과 폭발적인 복원력을 하나로 뭉칠 줄 알았다. 우리의 문화 DNA가 주는 다양함과 밀도와 깊이는 넓은 스펙트럼과 깊은 공감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 집단지성으로 발현될 수 있는 잠재력(潛在力)으로 저장되었다. 복된 거다.
우리 스스로 자랑하지 못했을 뿐 우리의 자산이 절대 빈약하지 않다. 크지 않을 뿐 모든 걸 갖추었고, 타이밍을 놓쳐 고통도 적지 않았으나 방향을 잃은 적이 없다. 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집약되고 집중된 밀도의 엄청난 격통(조선의 해체부터 시작한 국권의 피침탈과 피식민지 경험,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 산업화와 근대화, 민주화, 외환/금융 위기, 팬데믹 등까지 100여년)을 겪어 본데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민족이며,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하기에 젊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완성형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꿈을 꾸고 있어 젊을 수 있다.
한계에 순응하면 숙명이 되고 좌절이 되지만, 깨뜨리고 나가려는 의지가 집약되고 공동체의 각성이 뒷받침되면 폭발적 성장의 동력이 된다(지난 50여년 동안 이룬 대한민국의 변화와 발전은 인류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거의 유일무이한 경험이었다). 다양하고 풍부한 감성에 빠른 성과에 집착하는 젊은 체력, 다이나믹 코리아의 역동성은 이런 집단지성과 잠재력 때문에 발휘되는 거 아닐까? 일관성을 뒤돌아보는데 인색하지 않고, 보편성에 미래지향적 방향을 더하고, 부족했던 열린 시스템이 받쳐준다면 생기발랄한 영향력을 갖추지 않을까? 우리의 역사문화유산들을 모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3) 답사여행에서 길을 생각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나의 느낌과 그 느낌으로 나눈 목걸이(분류(分類))는 유의미할까? 내가 아는 것, 한국적인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잠재력과 한계를 따져보는 것은 결국 나는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어떻게 길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우리들에게 가장 취약하고 결핍된 유산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고, 그 중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 점을 집이라 하고 선을 길이라 치자. 길은 집과 집, 사람과 사람, 도시와 국가를 연결하는 선이다. 들판을, 강을, 산을 건넌다. ❶이동하는 선(線)은 토목(土木)이다. 벽을 만나고 문을 지나고 건물에 도시에 ❷머무른다. 점(點)은 건축(建築)이다. 그리고 토목과 건축이 만나, 경계를 만들고 마음의 벽과 소통하며, 그걸 ❸넘나드는 길은 인문(人文)이 되었다. 그래서 길은 효율적이어야 하며, 이동을 위한 많은 수단을 필요로 하고, 무엇보다 목적의식적이어야 한다.
4) 시간 단축과 관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공간적 중층화와 인문학적 길
근대 이후 한반도는 고조선에서부터 조선까지 ❶사람과 우마가 다니는 길에 4번의 변화가 있었다. ❷일제강점기 철도가 놓이고(기계), ❸한국전쟁으로 군사도로가 깔리고(효율), ❹군부독재시절 고속도로가 열리고(물량), 다시 ❺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든 고속철도가 깔렸다(속도). 그리고 3가지를 추가한다면 비행기로 하늘길이, 대형선박이 만든 바다길, 그리고 인공위성에 의한 우주의 길이 그것이다. - 공간적 중층화
여기에 인문학적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 그리고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우르과이 라운드나 FTA도 길이며, 광통신망과 인공위성이 열어주는 정보통신과 네트워크, 심지어 플랫폼과 AI라는 새로운 범주의 길도 우리의 인식을 넓혀줬다. - 인문학적 길... 지금은 어떤 길이 필요할까? 나는 어떤 길을 생각하는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
길은 교류다. 충돌과 소통이 있는. 그래서 득도 있고 실도 있다. 변화를 받아들인 준비가 되어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길은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설 수도 있다. 모든 길이 앞으로의 전진만을 의미할 수는 없다. 또 길은 하나일 수도, 여러 개일 수도, 심지어 가보지 못한 길도, 갈 수 없는 길도, 가서는 안 되는 길도 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을 나는 인연(因緣)이라 부르고, 과정(過程)이라 사람들은 이야기하면서, 목표(目標)를 상정한다.
그 길에 효율적(效率的)으로 도달(到達)하기 위해 우리는 ❶나무(木)처럼 카테고리를 만들거나, ❷지도(地圖)를 그려 최적(最適)의 길을 찾기도 하고, ❸뇌(腦)의 뉴런을 닮은 신세계의 길, 초연결의 시대를 상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가속화되는 현대의 길은 밀도(密度)와 속도(速度)와 방향(方向)을 더더욱 중요시한다.
5) 역사문화 유산의 분류 기준 : 답게... 잘~~, 희망을 주는 길을 찾는다.
무엇보다 나는 “답게, 잘, 그리고 희망을 주는” 방향의 길인지 늘 되물으려 한다. 사회적 제관계에서 ***다울 수 있다면 과거와 전통을 충분히 계승(繼承)한 것일 게다. 잘하고 있다면 현재의 환경과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對應)한다는 것일 것이고, 무엇보다 미래에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축적(蓄積)되고 있는지 우리가 선택하려는 길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이 기운생동(氣運生動)하여 평상심(平常心)으로 이어지면서 선량한 영향력(影響力)으로 남으면 좋겠다.
역사문화유산들을 정리해 본다. 인간과 문명, 그리고 건축 및 공예라는 관점을 가지고, 분류하고 나의 기호(嗜好)로 또 나누고, 우리다울 수 있는, 잘할 수 있는, 그리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원칙을 가지고 선별한 유산들을 목걸이처럼 목록으로 정리해봤다.
10여년 만의 정리다. 또 10여년 후에 나는 이글을 어떻게 볼까?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나 우리 사회는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잣대를 그려본다.
'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𝐈. 論 2. 문명과 문화 4)종교적 인간 : 왕과 신, 국가와 종교 (2) | 2023.08.27 |
---|---|
𝐈. 論 2. 인류가 만든 문명과 문화 1)정치적, 2)경제적, 3)상업적 인간 (2) | 2023.08.23 |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25) 정갈하고 차분한... (0) | 2023.08.08 |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24) 곱고 깜찍한... (0) | 2023.08.06 |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23) 의연하고 준수함... (2) | 2023.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