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여행과 사진
옛날 산수화를 보고 자신의 기억을 유지시켰던 선인들처럼
저는 사진을 찍고, 또 보고, 또 찍고 보고...
가만... 말하다보니 맑스가 그리던
베토벤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는 낚시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했나요?
아니, 맑스는 혼자서의 즐김을 이야기했다면,
저는 그런 개체의 완성 속에서 나눌 꺼리를 이야기하는 거죠.
물구나무선 세상을 바로세운 다음 필요한 것은
함께 바라보고 걸어야할 세상을 위한 소통(혹은 네트워크)의 매개...
여행에서는 사진만큼 훌륭한 매개체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이제 제가 생각하는 사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여행을 통해서 사진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기록이었고, 여행의 여백을 채우고-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까-
(같이 가지 않은 타인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매개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사진이 일상이 아닌 특별한 활동/특별한 기록으로 제게는 남아있습니다.
인위와 인공에 대한 이유 있는(?) 불신은-중, 고등학교 시절-
자연에 대한 외경과 신비와 찬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바다의 넓음, 산의 높음과 함께 폭포의 청량함은 제게 즐거운 안식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선인들이 산수화를 그렸듯이,
저도 좋은 그림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건축을 배우고 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외국여행’과 몇몇 여행기 들은 참으로 소중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건물들을 다시 보고, 탑을 감상하고,
이제는 자연과 함께 있는 인간들의 심미안을 해석하는 재미를 즐겨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그 맛을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장승을 찾아서 한여름에 길을 나서고,
폭포를 찍으려고 가문 다음날 나서고,
산을 찍으려고 정상에 오르는 우를 범합니다.
민속박물관의 팔상전을 보면서 주변(자연)과 인공(목적)의 분리 됐을 때의 가벼움을 비웃고,
청와대의 지붕을 바라보면서 연경당의 단아함을 떠올리며,
정림사지탑과 감은사탑과 석가탑 등 몇 개만이
아름다운 탑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박스러움도 숨기지 않고 싶습니다.
맛과 아름다움과 생동감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보는 눈을 잃어버리면서,
생명과 활기와 앞을 보는 안목도 갖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어쩌면 꼭 이만큼이 저의 사진 수준일지 모릅니다.
3-2. 사진에 대한 단상...
사진이라는 하나의 틀로 저는 세계의 모든 것을 해석해보고 규정지어 본적은 없습니다.
즉 아직까지 저에게 사진은 여행과 시간,
그리고 저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가는 부분으로 존재하지,
사진을 위해서 아름다움이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사진에 대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며,
목적의식적으로 교육받아보지 못한 저로서는
사진을 보는 눈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함을 스스로 알고 있구요.
사진은 눈이며, 부분이며,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분위기까지 담고 싶고,
전체를 담고 싶고, 영원을 담고 싶은 게 저의 허황된 욕심임도 부정하지 않는답니다.
단지 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그런 것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동안 사진을 가까이한다면, 그 결과들이 모여서
순간과 부분을 영원과 전체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하고 있습니다.
사물은 구도이고, 분위기는 빛이며, 주제는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에는 전망, 규모, 구도가 있어야 하고,
인공에는 맛과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찍는 사람은 꽉 차지만 보는 이에게는 시원한 허허실실이 있어야 하고,
결국 사진의 맛은 밀도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구도를 잡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망원과 광각 즉 렌즈에 의존한답니다.
시간의 흐름과 빛의 변화를 기다리는 여유와 집요함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 한 거죠.
그리고 이런 이유들로 인해
저만의 의도를 만족시키지 못한 미완성만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단, 배움이 있고 노력이 있다면 앞으로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도 가지고 있구요.
3-3. 사진과 미적기준
아직까지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들에 쌓여있던 저는
제가 찍은 사진 감상을 즐겨합니다.
분황사탑을 모방이라고 한다면 그 앞의 돌사자는 기품과 위엄을 갖춘 예술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규모가 가질 수 없는 위엄과 절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석가탑에는
미의 완벽함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하늘아래 두 개뿐인 감은사탑에는 생동과 기세가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고 헤매던 저의 불안한 마음은
미륵반가사유상의 사진 한 장을 보고서야 안심하게 됩니다.
비너스의 조각을 보면서 꺄우뚱해지는 제 마음과 달리,
석굴암에서 사온 문수보살의 우아함은 탁본이나마 수많은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베드로 성당 돔에서 느끼는 화려함과 규모보다는
김대성이 만든 석굴암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의 기준인 평형, 대칭, 변화, 정돈, 대소, 질서, 곡선... ...
그 모든 개념들보다도 최순우 선생의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는 말 한마디가
저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몇 번의 해외여행에서 느낀 점들을 기준으로 한 비교입니다.
단, 무작정 우리의 것에 대한 찬탄과 이국과 서양문화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교를 위해 특화시킨 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지금 이런 비교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한 생각도 전무했지만,
우리의 미와 멋과 감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최소한의 정립을 위해서 간단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아무튼, 얼마동안 저는 제가 가지는 이런 미감을 쫓아서 사진을 찍을 것 같습니다.
‘이게 석가탑이야’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기술도 익히고 눈도 씻고 마음도 열고 싶습니다.
저는 정선의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정선의 그림을 우리는 흔히 진경산수라고 합니다.
단, 절대 실경산수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 그의 그림을 오늘날의 사진이나 전경과 비교한다면 금방 차이를 알 수 있지요.
정선노인(?)은 산수화를 그릴 때 실경에 준하되,
자신의 느낌과 감상의 포인트를 충분히 살려서 사실을 왜곡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느낌이 있고,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웬 정선이야기?
저도 저만의 느낌이 나타나는 사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그만큼 큽니다.
물론 그림의 다초점과 사진의 단촛점,
그림이란 재구성 혹은 재생과 사진의 투사란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멋진 그림이나 사진이 주는 미감은 차이가 없겠죠...
인간이 있고, 이성이 있고, 세계란 공간이 있음을 르네상스이후의 인간들은 알았습니다.
법칙이 있고, 본질이 있고, 목적의식이 있음을 산업혁명이후의 19세기는 알았고.
이제는 시간과 관계와 정보의 흐름이 우리시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중의 하나의 방법으로 저는 여행과 사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답니다.
특히 사진을 통해 저는 제자신의 미학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ggg 문화와 건축과 사진을 함께 묶는다는 게 쉽지는 않네요...
단지 여행의 과정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세 분야를 묶었으니...
오래된 생각과 메모들이 묶여서 매끄럽지는 않지만
다시 읽어보는 오늘에도 여전히 저의 틀을 규정하고 있나 봅니다.
늘 글을 끝낼 때마다 생각합니다.
언제나 단순해지나...
진리는 단순하다는데...
언제쯤 짧아지나...
진실을 명쾌하다는데...
언제쯤 욕심을 버리나...
비우면 내게 편하고, 남에게 편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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