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답사여행...

여행(2) ; 건축여행 이야기...

 

2-1. 건축 여행의 얼개


다시 여행이야기로 돌아가서

제 직업인 건축과 관련하여 저의 얼개를 소개해 볼께요.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와 문명을 일단 건축 쪽에서 접근하면 ;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은 죽음의 공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으로 피라미드...

기원전 3000년 경이니 가장 오래된 건축이자, 최대의 건축이기도 하죠.

또 우리를 봐도 가장 고대의 유물은

고인돌, 고분군들을 비롯해 진시황릉 등이 바로 죽음의 공간이며,

그 공간의 규모화는

인류의 건축, 인류문명의 시작 일거에요.

문명과 문화란 ‘지금 이 순간’과 ‘이 조건’이란

시간,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신화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만들어지는 것은 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파르테논 신전, 판테온, 로마대성당, 시스틴, 노틀담, 그리고 불국사, 호오류사 등등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는 가장 적극적인 사고는

신의 공간으로 현재화됐습니다.


거기에서 인간의 공간은 곧바로 생활로 나아가지 않고

당대의 권력에 의한 건축들이 우리들의 유산이 되고,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었구요.

베르사이유 궁전, 창덕궁을 비롯해 oo성, oo관 등은 바로 권력의 상징이자,

문명의 척도로 남게 됩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신,

신의 영역을 넓히는 인간,

신은 권력을 필요로 하고,

인간은 신에게 의지하면서 정신적인 틀을 완성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완성을 이루면서 인간은 지구상에 인간만의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더 이상 현재에, 지구상에, 그리고 이 사회에는

신도 마녀도 귀신도 도깨비도

실재하지 않음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제는 인간적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의 건축이 이제야 시작됐다고 봅니다.

에펠탑, 맨하튼,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베니스 등등


권위와 의미를 넘어서서 삶의 공간들이 재해석되고,

好不好를 넘어서서 삶의 가치 속에서 문화와 문명은 재평가되었습니다.

인간들은 이제서야 삶의 공간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관점을 가지게 됐습니다.

주체(18세기말)와 자아(20세기초)를 해석하게 되고,

자유, 평등, 민주, 복지 등의 무수한 개념들을 정식화하면서 삶의 공간은 재편됩니다.

이 기준은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척도로(다분히 자본주의적인 계량화이지만) 재분류되고,

이제는 지침이 되고 모범이 되고, 방향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과 지금부터 1-200여년 안팎의 시간일 뿐입니다.


즉 위와 같은 구조에서 저는 가보고 싶은 곳과, 가봐야 할 곳을 찾고 계획하게 됩니다.

또 그때의 문화와 문명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의 건축에 대한 얼개는

인류문명과 삶의 질이란 개념으로 다시 생각은 전환되지요.

그리고 다시 그런 관점에서 정보를 찾게 되고,

또 이런저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단지 우려하는 것은

비약이 없어야 되고,

절충이 없어야 되고,

구체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의 말이 생각나는데 ;

교육이란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이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인이란 이야기...

그런 점에서 저는 너무 많은 답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확인하려 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한다면

시공간의 영원성을 현재에 기필코 구현시키고자 하는 애처러움(?)에서 저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의 관점에서 고급을 지향할 거고,

또 저의 얼개에 맞춰서 하나씩 하나씩 배치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 ... 그리고 나서 ... ...



2-2. 저는 탑을 좋아합니다.


저의 여행은 몇 번의 내용변화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먼저는 가보지 않은 곳이 우선의 대상이었고,

다음에는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풍광이 지기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때는 폭포가 유난히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새롭게 해석되면서는 소위 답사가 여행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답사여행에서는 탑을 하나의 잣대로 심미안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선배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작년인가 선배와 동해안을 잠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둘다 말 그대로 일과 가정을 팽개치고(?) 잠깐 떠난 여행이었죠.


왜 탑을 좋아하냐는 선배의 질문에 저는 주섬주섬 말이 돼든 안 되든 마구 지껄였죠.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몇 번의 해외여행에서(운 좋게) 인간의 생활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더욱이 내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처음엔 도시를, 고장을, 자연을 찾았고...

건물을 찾고, 문화재를 찾고, 예술품들을 찾고,

얼굴을 쫓아다니고, 박물관을 쫓아다니고... ...


제가 바라본

사람이나, 건물이나, 그림이나, 조각이나,

우리들이 보는 대부분은 사실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사실을 뛰어 넘으려 합니다.


사실을 각인하지 못한 원시의 단순성이

가장 완벽한 대상의 재현을 목말라 했다면,

법칙과 권위에 묶인 실제의 복제는,

자유와 창조의 이름으로 추상을 묵인하게 되는 셈이죠.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추상을) 거짓이라고 말했어도,

오늘날의 추상화나 구상들이 대중을 속일지라도,

추상적인 도형으로 사람에게 자유로움을 줄만하게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우리의 탑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추상, 구성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죠.


탑은 이미 사실을 뛰어 넘어

권위와 감동과, 예술과 종교, 그리고 과학을 아우르며 서있죠.


세모, 네모, 원...

가장 단순한 도형을 가지고

천년을 넘어 오늘날의 현재의 나에게

감동을, 고귀함을, 아름다움을 선사해 줍니다.

그중 석가탑, 감은사탑, 정림사지탑, 지광국사현묘국탑, 충주중원탑, 다보탑,

제가 꼽는 탑들이랍니다.



2-3. 문화역량과 안목


세중박물관에서 수없이 많은 돌조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죠.

너무 많아서 볼게 하나도 없는 박물관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명의 돌들은 남아서 백년 이백년을 살고 있고,

그렇게 무명의 돌들이 모아져서 뛰어난 하나의 돌들을 남겼고,

그것을 우리는 작품으로 인정하죠. 보물로, 그리고 국보로.

우리들이 만드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일백년 이백년을 남는 걸 남길 수 있을까?


사람들의 물질적 풍요를 더 윤택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삶을 이야기하고, 이웃을 이야기하고, 타인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무엇이 필요할까?

문화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누적된 문명이 아닐까?


그런 문명을 만들 수 있는 힘!

그건 분명 문화고,

그 문화 속에 우리는 많은 정치, 경제, 과학적 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절대 미적 기준을 만족시켜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미적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문화...

그것은 사회적인 수준이 될 것이며,

역사적인 연속이 될 것이며,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목이 되겠죠.

그 안목이 그립고,

그 그리움만큼 나는 탑을 좋아한답니다.

 

 

* 여행3에서 계속 ; 여행과 사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