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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상보기...

시사> 911테러... 0109

 

* 벌써 5년이 지났다...

   사건이 발생한지도, 이글을 쓴지도...

   물론 이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블로그를 꾸미는 과정중 하나다...

   세계의 정치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입장을 다시 점검하고자 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사이 아프칸의 침고이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또다시 이란과 북한이 들먹거려지고 있다.

   물론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미국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자들로 모든 권력구조가 이동하였지만

   역으로 부시정권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역설적이다. 외부의 국제관계와 혼란을 통해 국내의 기반을 다졌는데

   내부에서는 모든 부분에서 파열음이 가중되고 있다.

   때문에 이시점에서 다시 강권과 일방주의의 외교는 힘을 잃은듯 하다.

 

 

   다시 고민하고 생각할점들이 많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20010911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에게는 수많은 정보와 해석의 틀이 제공된다.

그러나 그 분석과 틀은 그 사회의 지적 역사적 총체를 반영하며,

그 사회가 담보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와 틀만을 공유한다.

때문에 그 수준은 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선입감에 의해 왜곡되거나 심지어 정보를 독점하는 이에 의해 조작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진행에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우리들은 먼저 사건의 개요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개요의 정리는 문제해결의 수순을 결정한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생각할 것이고,

원인의 분석을 통해 문제해결의 강도를 결정한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선택하며,

그 결과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질서는 우리가 의도하든 계획하지 못했든, 모두에게 기회가 될 것이며,

그 기회는 문제에 대처하는 주체들에게 누가 주도하는가와

무엇을 얻었는가를 통해 평가받게 된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들의 수준과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진실에 대해서 그리고 이 사전의 파급력에 대해서 광범위한 정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911사건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911 뉴스속보

 2. 테러리즘

 3. 각국의 반응과 이해득실

 4. 이슬람과 코란

 5. 사건의 배후

 6. 납득되지 않는 문제들.

 7. 함정 혹은 음모론

 8. 보다 큰 작전?

 9. 원인과 결과

10. 이스라엘과 문명의 충돌

11. 새로운 세계질서와 부시의 외교정책

12. 새로운 세계질서와 중국

13. 그리고 변화들

14. 미국이 원하는 것은?

15. 몇 가지 메모

 

 

 

 

 

 


1. 911 뉴스속보

 


뉴스속보가 계속되고 나는 한동안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10층 쌍둥이 건물에 민간항공기가 수십명의 승객을 태우고 충돌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면서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창밖에 매달린 사람들, 떨어지는 사람들...

곧이어 펜타곤에 대한 또 다른 민간항공기의 충돌,

그리고 미공군에 요격된 민항기...

긴박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TV를 나는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이게 뭔가???

믿어야 할지 사실인지에 대한 생각마저 마비시켜버린 이 일은 과연 뭔가?

계속되는 비행기 충돌장면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무엇을 보는가 자문하고 또 자문한다.

테러란다! 비행기 테러!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지금 건물이 무너지고 있다고...

110층 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도 아니고 둘 모두가 무너졌다.

거기에 부속건물까지 무너지고...


동귀어진?

현재 인류사상 최대, 최첨단의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군사력과

전세계 모든 E-MAIL을 검색하고 있다는 에셜런의 정보력이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이며 야만적인 방법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

세계경제 지배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타와 세계최강 군사력의 상징인 펜타곤이 불타고 있다.

50여 년에 걸친 팍스 아메리카가 공격을 당했다.

뉴욕이 불타고 있다.

20세기 마천루 맨하튼이 무너지고 있다.


10여 일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서야 컴 앞에 앉아 9월 11일을 다시 기억한다.


 

 

 

 

 


2. 테러리즘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테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18,19세기 시민혁명을 통한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에서 프랑스 등을 통해 확립된 테러란 용어는

이제 새로운 문명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개인과 정적에 대한 공격의 범주를 뛰어넘는 인류사회의 악으로 규정되고 있다.


6,70년대 소위 폭탄공격, 항공기 납치, 그리고 인질 납치를 하나로 묶었다는 이번 테러는

21세기 테러리즘의 새로운 유형을 확인시켜 주었다.

90년대 냉전이 해체되고 걸프전을 통해 국지전마저 통제되는 21세기,

많은 이들은 새로운 전쟁의 개념으로 테러리즘을 확대 해석하게 되었다.

즉 냉전이 긴장 속의 평화였다면 이번 테러는 보이지 않는 적을 특징으로 하며,

광역성과 장기성, 그리고 불명확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새로운 성격도 규명했다.

미네르바 부엉이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울었는가?


그러나 테러라는 개념 정의가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미국은 2,390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6,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그 손실은 국가간의 전쟁을 넘어서는 규모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 혹은 한 조직에 의해 벌어진 일치고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이며, 우리 같은 범인들의 사고체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3. 각국의 반응과 이해득실

 


각국 정상들의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CNN을 통해 가장 먼저 기자회견을 한 나라들은 어디인가?

러시아, 영국, 그리고 일본이다.

물론 프랑스나 독일 등등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미국민에 대한 위로와

테러리즘에 대한 경고, 그리고 문명과 이성에 대한 신뢰란 일반론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영국, 그리고 일본은 여기에 한가지를 더 첨부했다.

바로 군사적 대처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했으며,

자신들은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임을 부시에게 약속했다.

이렇게 직접적이고 당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500여명이 넘는 피해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영국은 미국의 쌍생아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또한 영연방의 맹주, 미국과 EU의 가교란 속성상

가장 보수적이고 호전적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

기독교의 성지도, 로마의 직계도 아니면서

서양문명의 주도자로 남고자 하는 그들의 안간힘은 항상 선봉을 자임해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의 태동지와 19세기말의 서양문명의 영광을 유지하는 힘일까?


영국은 여론을 주도할 수 없지만,

여론을 타진하고 선택의 수많은 경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이 판단할 시간을 벌어줄 가장 중요한 친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항상 실체는 없고 주장만 있는 행동대원이거나,

영원한 미국의 2중대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러시아는 왜 나서는가?

과거 KGB출신이라는 푸틴의 개인적 성격일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지금의 러시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긴장이다.

그러나 그 긴장은 더 이상 냉전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소위 강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면서 실제적으로 군사적 질서를 재편하려면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푸틴은 절대 미국에 협조할 것이며,

자신들은 국제사회에서 군사적, 외교적인 방면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재차 확보하려 할 것이다.

파키스탄이 움직이기 전 그들은

이미 우즈베키스탄 등 중동 이슬람지역의 공화국들을 미국에 열어주었다.


일본은?

이미 일본의 평화헌법의 문제와 자위대의 재편을 통한 군국주의화 움직임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역사인식의 문제에서 아시아에서의 소원해진 상태에서,

경제력 외에 외교적인 측면에서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가지지 못한 일본으로서는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리 없다.


자연스레 군사적인 측면을 공인 받으려 할 것이며,

130억불이 넘는 돈을 걸프전에 쏟아 부으면서도

외교적, 경제적으로 실익을 얻어내지 못한 자신들의 역할을

새롭게 부각시키려 절치부심 하고 있다.

또한 고이즈미의 인기도 자국내의 문제에만 한정시켜서는 지속성에 한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외부의 돌파구 없이 스스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그들을 이미 했을 것이다.


 

 

 

 

 


4. 이슬람과 코란

 


그 외에도 무시할 수 없는 성명들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슬람 국가들,

그리고 테러 지원국이라는 리비아, 쿠바, 이란, 이라크까지도 이번 테러를 비난하고 나섰다.

면피용 일까?

심지어는 이번 테러의 배후자로 지목 받은 빈라덴 마저

이번 테러에 대해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와 종교적으로 대립하며,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에게

미국에 대한 반감이나 증오만큼이나 그들은 이번 사건에 통쾌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리만족을 얻는다는 점만으로

이번 사건의 배후로 그들을 지목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너무 심한 비약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한번은 이슬람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와 비교해본다면 이슬람의 코란은

구약과 신약성서 전체를 자신들의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지 그들에게 차이란 유대교가 모세를 유일한 선지자로 본다면,

기독교는 모세-예수까지를,

그리고 이슬람은 모세-예수-무하마드까지를 선지자로 본다는 점이다.

삼위일체!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는 현재의 기독교에 대해,

이슬람은 현재까지의 마지막 선지자를 무하마드로 보며,

최후의 선지자를 여전히 기다린다는 점의 차이다.


또한 과거의 교과서와 영화 등을 통해 형성된 십자군 전쟁에 왜곡된 이미지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미 그 명칭자체가 국제적인 용어가 아니며,

우리나라의 교과서에서도 그 명칭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이슬람의 폭력성에 대한 선입감에 대해서도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코란의 ‘종교에는 강제가 없을지니 권유로써 믿음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에도

이슬람은 철저하다.


역사상 단 한번, 이슬람이 포교된 지역이 타종교로 개종된 곳은 스페인의 일부이며,

그들도 북아프리카로의 이주가 근본 이유였다.

과연 코란의 칼과 폭력 때문에 이슬람 종교가 유지되고 있을까?

이슬람의 진정한 기적은 ‘한번 이슬람은 영원한 이슬람’이라는 그들의 생명력에 있다.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우려했는지 그들은 서둘러 이번 테러를 비난했다.

이슬람 종교의 속성상 그들의 반문명적 행동에 대한 비난성명은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실제 이슬람 13억 인구 중 아랍권의 인구는 3억에 불과하다는 점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석유를 자원으로 자본으로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이슬람 중동문화권이

이번 테러의 수혜자인가는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5. 사건의 배후

 


이제 우리는 사건의 배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봐야 한다.


사실 이번 사건은 개인이 주도하기엔 너무 규모가 크며,

국가가 직접 지휘하기엔 쉽게 노출된다는 한계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몇몇 조직과 지하드 등 테러조직들의 리스트가 작성되고

결국 이미 세상에 회자되는 빈라덴이란 알카에다 지도자가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명되었다.


물론 과정상 몇몇 조직의 연대와 국가의 지원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부시는 끝내 개인을 표적으로 삼았고,

연이어 발표되는 사건의 수사과정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아랍인들을 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98년의 아프리카의 한 미대사관 테러와,

몇 개월 전에 상상을 넘어서는 사건이 벌어질 거란 경고 메시지를 발표했다는 것이

그를 배후로 지목하는 이유이다.


결국 그들은 이만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을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딜레마는

과거의 여느 테러사건과 달리 이번의 테러에 즉각적으로

자신이 배후임을 자임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6. 납득되지 않는 문제들

 


그리고 나에게는 몇 가지 납득되지 않는 문제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과연 과도나 칼로 비행기를 제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십여 년 전 유럽여행 중이던 나는 동료들과 같이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었다.

스위스에서 산 다용도 칼 (맥가이버 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다.

미국민에 대한 테러 경고와 여행자제가 통보되는 시점에서

나보다 훨씬 험상궂게(?) 생긴 아랍사람들이

칼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쉽게 반입할 수 있었을까?


수사과정에서 렌트카에서 발견된 비행조정 매뉴얼 북이 중요한 단서로 제공되었다.

비행 조정사 한 명을 양성 하는데는 상당기간의 시간과 엄격한 선별과정,

그리고 10억이 넘는 돈이 든다는 데

과연 책에만 의지해서 시계비행(수동조정)이 가능했을까?


게다가 충돌직전 피해를 최대화하기 위해 45도 각도로 비행기를 틀 수 있을까?

더군다나 비행기의 속도는 시속 900 키로미터 이상이다.

아무리 국내선의 단시간 운행이라 할지라도 상당한 속도였을 텐데

건물의 3/4지점에, 또한 이미 충돌한 건물을 피해 2/3지점에 정확하게 충돌이 가능했을까?


그들간의 상호 연락은 없었으며, 실패를 대비한 또 다른 시도들은 없었을까?

과연 얼마만한 훈련과 정확한 네트워크가 필요했을까?


거기에 이번 사건이 발생한 날은 너무나 드라마틱하다.

세계무역센타 건물 준공 20주년 기념일,

부시는 출장 중이었고, 보안은 낮아진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통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내선을 택했으며,

항공유를 최대한 실은 동부출발 서부행 민항기들이 피납 대상이었다.

게다가 출근전후 시간이어서 비행기 승객은 적어 비행기 내부를 장악하기에도 훨씬 수월했었고.

항로이탈에 대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성을 무시한 관제당국도 한몫을 했고.


또한 비행기는 피납 된지 한 시간여 만에 맨하탄에 도착했다.

그사이에 상호간에 아무런 교신이 없었을까?

거기에 이미 비행기 운항이 전면 금지되고 통제되는 시점에 펜타곤은 공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비행금지구역을 상당시간을 날면서도 미군의 제재를 전혀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미군은 무엇을 하였을까?

최첨단의 무기와 군사력, 그리고 완벽함에 가까운 정보망을 뛰어넘어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비행기 4대를 동원한 테러가 가능할까?


시나리오가 너무 완벽한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런 문제들의 지적만으로 충족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7. 함정 혹은 음모론?

 


나는 분명 아랍인들이 가담했다고 본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으며,

빈라덴에게는 반미 테러에는 충분한 이유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많은 동기들이 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점을 부정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수명의 아랍인이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이라는 사실이

빈라덴이 이번 사건의 배후란 유일한 증거가 될 것이며,

나머지의 수사 궤적들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동원될 것이라는 점이다.


견강부회? 

빈라덴이 자신이 결백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고,

또 방법도 없고, 아무도 이를 뒷받침할 수 없다면 우리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함정!

거기에 이들의 활동을 유도하고 오히려 방법과 길을 열어

완벽에 가까운 주변환경을 조장해 주었다면 우리들이 생각해야할 것들은 훨씬 복잡해진다.

음모?

음모는 나에게 여전히 유효한 유혹이다.

나는 인간의 이성을 과도하게 평가하는가? 아니면 X-파일을 너무 좋아하는가!


모든 일의 결과에는 반드시 하나의 동기와 하나의 이유만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또한 그 결과마저도 최초의 발단과 전혀 동떨어진 결과를 야기 시킬 수도 있다.

또한 행위자의 의도와 이를 사주한 자의 의도가 항상 일치하지도 않는 법이다.

때문에 정작 나의 주요 관심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누가 이득을 보는가?

누가 피해의 당사자가 될 것인가가 오히려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과 전쟁의 연관성,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을 같이 검토해 봐야 한다.

그것이 내가 제기하는 음모론의 내용이기도 하다.


 

 

 

 

 


8. 보다 큰 작전?

 


나는 앞에서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는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와 대처,

그리고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

전쟁은 항상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이들에 의해 동원된

가장 반인륜적이고 반문명적이며, 야만적인 수단이었음도 아울러 지적하고자 한다.


현재의 세계질서는 자본과 군사력이 주도하고 있으며,

자본과 군사력은 폭력적인 방법을 통한 소비와

탐욕스럽고 불균등하며 무자비한 경쟁을 자기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인간과 이성,

그리고 지구적 관점을 선택의 중심에 놓고 있지 못하며,

자본과 군사력은 우리들의 선택의 폭을 통제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과 군사력을 통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당연히 미국이다.

때문에 나의 검토는 미국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미국의 경제와 관련해서부터 검토해보자.

스테그플레이션과 자본주의의 경기순환론은

소위 IT의 특수에 이론을 수정해야 할 듯 영원한 동력을 얻은 듯 했지만

클린턴 행정부 말기부터 미국의 경기침체는 시작됐다.

그리고 부시가 취임한 이후 미국경제의 침체는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린스펀의 금리인하를 통한 통화정책도 약발을 받지 못한 체

V자냐 L자의 경기침체이냐의 판단만이 남아 있었다.


MD는 명분상으로나 외교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IT와 전기전자, 그리고 수송 등 현재의 산업전반을 아우르는 첨단무기 산업이었다.

사실 MD라는 명분 외에 그만한 규모의 자본을 동원하고

새로운 소비처를 가질 수 있는 모티브도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남은 분야가 있다면 생명공학?

그러나 생명공학은 당장의 수요창출과 대량구매처를 쉽게 확보할 수 있을까?

만약 스타워즈에 이어 MD가 자본과 수요처를 동원하지 못하고,

생명공학이 도덕적 장벽을 돌파하지 못하고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한다면

자본은 다시 새로운 수요를 찾아내야만 한다.

게다가 강한 달러정책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10여 년간의 장기호황은 특급처방을 필요로 하는 시기였다.


이제 미국과 전쟁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개괄적이나마 살펴봐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구상의 전쟁은 항상 미국과 연관을 가져야만 했다.


50년대의 한국전은 냉전구도의 정착과정에서의 국제전 대리전의 성격이 강하고,

60년대의 쿠바혁명과 봉쇄와 제3세계에서 대한 경찰국가의 자임과 무차별적인 개입,

70년대의 베트남 전쟁,

80년대의 이란혁명과 포클랜드 전쟁에 이은 전 세계적인 내전과 국지전의 확산.


60년대는 사회주의 반군들이 승리했다면,

80년대에는 모두 자본주의 정권으로 전복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런데 80년대 말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은 무너져버린다.

미국과 영국은 90년대 걸프전에서 국지전마저 세계화시키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2차 세계대전은 의도적으로 확전 되었다는 평가는 이미 존재했었다.

60~70년대 베트남 전쟁도 미국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는 것도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한정시킬 수는 없지만,

여전히 경제는 모든 구조의 근간이며,

미국의 경기순환에는 항상 전쟁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


대리전이나 국지전에서, 때로는 미군이 직접 개입한 전쟁에서는

국제적인 명분과 미국적인 정의를 내걸고 그들의 신화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그 신화는 항상 미국 경제의 활황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걸프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이다.

미국의 이상 경기팽창이 하강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미국에게는 또 다른 전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할 점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강온의 갈등을 취임 초기부터 끊임없이 나돌았고,

강한 미국은 미국만의 방위만도,

세계의 경찰국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관성을 잃고 있었다.


냉전이 와해된 이후 윈윈 전략은 수정되고, 미국의 판단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그 미국의 내부는 아직 의견통일을 보지 못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사건의 자신의 의도대로 몰고 가려할 것이며,

처리 결과를 통해 한쪽에 무게가 더 실릴 것은 분명하다.

물론 한가지의 가능성은 더 있다.

부시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미국에는 강온 양극단을 조합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또 하나는 사건이 발발하기 이틀전인 9월9일

탈레반의 반군세력인 북부동맹의 실질적이며 전설적인(?) 지도자가 암살되었다.

그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이슬람의 지도자였으며,

소련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독립성을 강하게 피력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해서도 빈라덴을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었다.

사건이 발발하기 전,

세상에 탈레반 반군으로서 북부동맹이 부각되기 전,

탈레반 정권의 전복과 친미정권의 등장을 옹호하기 전,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탈레반의 반군 지도자가 암살되었다.


이번 사건은 오래 전부터 훨씬 광범위하게

그리고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었는지도 모른다.

 

 

 

 

 


 


9. 원인과 결과

 


지금까지 나의 의심과 추적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정보의 한계가 첫 번째 일 것이며-용평에서 볼 수 있는 거라곤 신문과 뉴스가 전부이다-

또한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적절함을 이미 놓쳐버린 시기에 나는 이제서야 컴 앞에 앉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문제다.

그래도 여기서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이야기는 이제부터일 수도 있으므로.


세상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우리는 그걸 법칙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결정론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결과는 또 다른 일들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수없이 많으며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복잡계 이론을 인정한다.


때문에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결과가 치유되는 건 아니며,

법칙의 존재유무가 세상사를 단순화  시키거나 객체화시킬 수 없기에

나는 결정론의 한계를 생각하고,

법칙의 불가지론을 외치며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뒤로한 체

현상만을 바라보는 복잡계의 한계를 생각한다.


이런 사고 틀의 유용성과 그 한계를 적절히 사용하여 우리들의 분석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을 빈라덴이라고 치자.

빈라덴이 제거된다고 해서 이번 일은 끝이 나는가?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한 영향은 새로운 세기의 가장 큰 충격으로 영원히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절대 군사적인 측면에 한정되거나 분풀이의 수준으로 전락될 수도 없다.


이미 사건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 과실을 따는 자는 원인과는 별개이다.

때문에 여전히 우리들에게 주요한 고민의 방법은

‘이번 테러를 통해서 득을 본 이는 누구일까?’에서 출발하여 그 해법에서 정리될 수밖에 없다.


수시로 바뀌어지는 상황에 따라가다가는 꼭두각시놀음에 빠지거나

중계방송의 아나운서 수준으로 우리 스스로를 전락시킬 것이며,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점치기 식의 찍기 놀음도 우리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내가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일들의 경향성이며,

몇 가지 틀에 대한 얼개일 뿐이다.

이제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10. 이스라엘과 문명의 충돌?

 


먼저 나는 이슬람과 중동의 분쟁과 이번 사건이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때문에 문명의 충돌이란 용어가 이번 사건의 수사로 더 이상 쓰여지는 걸 반대한다.

그러려면 이제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먼저 정리하고

앞으로 전개될 중동지역의 분쟁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주변 국가들의 충돌은 사실 인류역사상 그렇게 긴 역사가 아니다.

또한 세기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한가지, 2000년 전 고조선의 영토였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의 국경을 만주까지 넓혀져야 한다고 전쟁을 벌리면

국제사회는 이성의 이름으로 공인할 수 있을까?

물론 만주족이란 이름으로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30년대의 과거도 있었으니,

이런 유형은 단지 이스라엘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일본이 만주에 세운 나라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영국과 미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이스라엘은

오늘날에도 군사적 정신적 강국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차이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문화 종교적 지원을 받고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았으며,

유대인들의 자본이란 떨어지지 않는 실탄이 있고,

더욱이 굴뚝 산업의 동력인 석유가 나오는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산유국이란 중요성은

1950년대까지 이라크의 영토였던 쿠웨이트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자본주의 세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치렀던

걸프전의 경험에서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의 예언가로 지목 받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본질을 벗어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즉 미국과 유럽, 인도와 러시아가 한 블록이 되고,

이슬람과 중국 일본 등이 한 블록이 되어서 치러야 한다는 세기의 문명충돌 시발점에

이스라엘이 위치하고는 있지만

그들만의 분쟁으로 문명의 충돌로까지 강요하기에

우리들이 부려야할 억지는 너무나 많아야 한다.

새뮤엘 헌팅턴의 예언은 종교를 문명으로 대치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슬람 문명을 적으로 상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이슬람 문명에 대한 선전포고라면 미국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카드를 써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을 격화시키고,

이스라엘을 통해 동쪽에서 대리전을 치르면서

서쪽에서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공략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내세워서는 미국의 입지는 더욱 좁혀질 것이고,

이는 유엔은 물론 G7의 동의도 얻어낼 수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는 더더욱 얻기 어려울 것이고.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절대 확전 될 수 없다.

오히려 여론의 표적에서 빗겨나갈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건 둘만의 선택이 아닌 주변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13억이란 세계최대의 이슬람 문화권을 반미에 묶어두면서 미국은 전쟁을 주도할 수 없다.

그리고 굴뚝산업과 전자전기산업의 마지막 시장이 될지 모르는 아시아의 시장을

미국은 포기할 수도 없다.

석유와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쥐고 있는 이슬람 문화권과 아시아를 적대시하면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손해보다 훨씬 적다.

 

 

 

 

 


 


11. 새로운 세계질서와 부시의 외교정책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실제적인 원인으로 미국의 정치외교 정책을 거론하고 있다.

부시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에 몇 가지의 우려들이 제기되었다.

물론 보수와 강한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속성이 근저에 깔리겠지만,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강경 노선,

중동에서의 친 이스라엘 정책, 

교토의정서에서 보여준 자국이기주의와,

인종차별회의에서의 철수 등은 세계의 지성으로부터 많은 반감을 사고 있으며,

국제정치관계에서 미국의 위상을 충분히 협소화 시켰고,

반미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결국 부시집권 이전부터 강력하게 추진되어온 비현실적인 MD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UN 혹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에 대해

미국이 전략적인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의사타진으로도 인식할 수 있듯이,

새로운 세계질서의 확립을 미국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시행정부내의 세계정책은

분명한 전술적 방법을 수립하거나 동의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파월의 중도노선과 럼스펠트의 강경 노선이 매번 이견을 드러내는 것이 그 이유이며, 

이제는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통해 미국이 요구받고 있다는

글로벌리즘의 대외팽창주의에 대한 속도조절,

일방적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완화,

그리고 다른 문화에 관용 등은,

미국이 정작 추진하고자 하는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내부의 권력투쟁의 향방에 의해 조절될 것이며,

이번 사건에 대한 문제해결 방법을 결정할 것이다.


결국 미국중심 세계의 부작용,

세계화의 부작용이란 보다 큰 틀과 미국 내의 힘의 조절,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이란 복합적인 관계를 통해

이번 사건의 결과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12. 새로운 세계질서와 중국

 


그 새로운 틀을 논의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을

이번에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중국과 인도가 나설 구조가 없으며

한동안 이들이 나설만한 자리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받을 나라는 어쩌면 중국일지도 모른다.


미국과 견줄 마지막 세력인 중국은 이미 세계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 되었고,

석유는 절대적인 산업의 동맥이다.

물론 자체적인 산유국이지만

자신의 정치외교 블록을 가지지 못한 중국으로서

아시아와 중동으로의 진출은 상당한 비중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중 중국의 서쪽 국경지역은

최소한 미국이나 러시아와 힘의 균형 상태로까지 성장해야만 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그러나 중국은 중동의 어떠한 분쟁에도

또 그 해결을 위한 테이블에도 끼어 들 여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역사적 배경이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못한 중국이

그러한 여지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문제는 국경 인접지역이란 지리적 요건밖에 없다.


이미 베트남에서도 경험했지만

외교적 영향력은 분쟁과 권력의 변화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서만 개입될 수 있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외교적 영향력도

사상적 정치적, 군사적인 측면만으로 동맹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즉 산업과 무역의 연관성이 오히려 중요함을 우리 모두는 경험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정상외교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지만,

그 이후 일본과의 역사인식의 문제, 부시행정부와의 마찰 등으로 견제를 당한데다,

이번 사건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만들 주변여건이 너무 악화된 것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더욱이 소련의 국제무대의 재등장과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그들의 국경과 인접한 곳에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새로운 친미정권을 만든다면

미국의 새로운 계획은 훨씬 더 안정적인 근거지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빈라덴 개인이 아니라,

빈라덴이 은거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의 땅과 정권을 일수 있으며,

미국은 중국의 서쪽 국경지역인 파키스탄을 비롯한 인도, 카자흐스탄 등

중국과 중동의 경계지역으로 한정시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테러리즘의 네트워크 파괴라는 실체 없는 전쟁을 통해

이번 사건을 최대한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미 빈라덴이 제거되고,

탈레반도 제거되고,

그리고 북부동맹 지도자도 제거된 상태에서

아프카니스탄에 들어설 정부의 윤곽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 이 목표는 분명 들어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미국이 바라는 전략적 포석은 중국의 견제와 고립일 수 있다는 점이다.


 

 

 

 

 


13. 그리고 변화들...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침공과 빈라덴 색출작업,

당장에 미사일이 날아갈듯 한 긴장이 하루 이틀 지연되더니

갑자기 파키스탄이 전술적 요충지로 떠올랐다.

파키스탄 정권의 도박에 가까운 거래와 협상이 시작되고,

이번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게 파키스탄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러나 전쟁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성동격서, 

미영 특수부대는 이미 우즈베키스탄을 통해 침입했고,

탈레반 정권의 정적인 북부동맹을 통해 대리전이 전개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지역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이슬람 문화권 쪽에서 문명의 전쟁을 들고 나온다.

미국이 절대 원하지 않은 결과다.

중동지역을 벗어나 동남아 지역에서까지 반미정서는 확산되고 집회와 시위가 이어진다.

영원한 형제국 이슬람이 새롭게 연대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백인에 의한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라들에서는

이슬람 종교와 아랍인에 대한 역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보수우익과 백인과 기독교에 대한 우월감을 숨기지 못하는 나라들은

서서히 자기색깔을 노출시켜야만 될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


미국에서의 절대적인 군사적 보복에 대한 지지와 함께

서서히 반세계화와 반전의 분위기는 고조될 것이다.

종교계와 NGO, 그리고 국제적인 민간 환경, 복지 재단들도

어떻게든 새로운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UN이 놓치는 부분들과 애써 외면된 문제들에 대한

이러한 국제연대는 조금 더 강한 결속과 조직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 그리고 우리 나라의 경제에 대한 우려들이 쏟아지고 주가는 폭락했다.

동아시아발, 일본발, 중국발 세계경제 공황에 대한 공포가 한풀 꺾이더니

이제는 미국발 세계경제의 불황이 경기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의 경기는 투자의 침제가 아니라 소비심리의 위축 등

자산가치의 하락이 보다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자국내 소비가 85% 전후인 나라에서는 매우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며,

역으로 수출이 50%를 넘는 우리 같은 나라에서는 또 다른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강한 달러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면서 유로화, 금 등의 가치가 급등했다.

금 등의 현물가치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나,

마지막 피난처로서의 달러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유로화나 엔화는 지속적으로 저울질 받을 것이며 세계경제 흐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험과 항공기 산업과 여행업계의 몰락과 재편이 이어질 것이다.

산업구조내의 이런 변화는 또 다른 영향으로 자본의 이동과 이합집산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또한 자본가 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보호 장치에 대한 대책을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역시 그들은 발 빠르며 자신들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는 기민성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더 이상 MS의 반독점 논쟁이 부각되지 못한다.

또한 국내에서도 그간 진행된 재벌에 대한 규제들이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자본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가로막을 명분을

우리들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이 국가의 실체이며,

국가경쟁력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가 앞장서서 자본에 대한 그간의 규제들을 앞장서서 해제시킬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정작 무장해제가 되는 것은 빈라덴과 아프카니스탄 만이 아니다.


주식 외에 선물과 현물시장도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을 것이다.

풋옵션과 콜옵션에 인생을 건 많은 펀드들은 과연 이번 사건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헤지펀드의 역량은 이미 파운드화의 직접적인 공격과 영국의 굴복에서도 나타나듯이

한두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맞이할 헤지가 정말 커진다면 그들이 선택할 카드가 항상 시장 내에서만 존재할까?

물론 소로스처럼 냉정하면서도 양심과 도덕에 가치를 둔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기도 하지만...

 

 

 

 

 


 


14. 미국이 원하는 것은?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자문해 봐야 할 점들이 있다.

미국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핵공격이 발생했을 때의 프로그램대로 움직였다는 부시는

10시간이 지나서야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겁쟁이란 비난도 받았지만,

절대적인 미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민의 증오를 풀어주면서,

현재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경제적, 정치적 실익을 어떻게 얻어갈 수 있을까?

미국은 이번 사건을 확대시키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문제해결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문제해결이란 무엇일까?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어떤 문제든 미국은 한가지의 관점에서 움직일 것이다. 미국중심주의.


한번 뽑아든 칼은 무라도 베어야만 칼집에 집어넣는 게 군인과 권력의 속성일까?

그렇다면 미국이 뽑고자 하는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부시는 아직까지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 가야 될 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안심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테러의 네트워크라는 모호한 목표를 내세웠다.

네트워크는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가?

혹시 문명을 파괴하자는 것은 아닌가?


부시는 또한 새로운 기준으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의 편이냐 테러의 편이냐는 편 가르기다.

미국의 존재와 위치가 과연 반테러리즘과 동격 동치가 될 수 있는가?


이번 테러를 우리는 과거 걸프전처럼 생중계를 받았다.

나는 십여 년 전 야릇한 미소를 짓던 한 미군장교를 잊을 수 없다.

그는 카메라가 장착된 미사일을 자랑하면서 이렇게 생중계 했다.

‘ 자 보십시오. 날아갑니다. 가까워집니다. 저 건물입니다. 자 이제... 와우... ’

한 가지만 바뀌었다.

와우가 OH MY GOD!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술적인 목표만을 제거한다는

위생전이란 새로운 개념 앞에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신기술을 칭송하고 우리들은 그 공격을 불꽃놀이 차원으로 낭만화 시켰다.

전시와 평시, 군인과 민간인, 그리고 중계하는 자가 있는 것과 없다는 것은 너무 큰 차이다.


우리는 걸프전에서 몇 명의 인명이 희생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폭파된 그 건물들이 군사시설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사람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비행기 테러로 6천여 명이 죽는 것과

아프칸의 봉쇄로 30만 명이 굶어 죽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큰 테러인지도 우리는 답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전쟁은 얼마동안 진행될 것인가?

사실 전쟁도 돈이다.

걸프전에서 소요된 경비는 총 700억불이라고 한다.

그중 미국은 300억불을 부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많은 경비가 소요될 것이라는 견적이 제출되고 있다.

그럼 이번 경비는 어디에서 조달해야 하는가?


만약 지원 받는 액수가 적어서 미국이 스스로 재원을 조달해야만 한다면

통화증발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채권발행에 따른 재무구조의 악화,

그리고 소비심리의 위축에 이은 경기침체 등

새로운 스테그플레이션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실질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결국 신빙성 있는 증거의 제출과 국제사회의 동의에 의해 국제사회의 지원규모가 결정될 것이며, 국제사회 역시 자신들에게 돌아올 경제적 이익과 이해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자신들의 카드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결국 소요경비의 조달이 이번 전쟁의 강도와 기간을 결정할 것이다.


이번 전쟁은 명백히 미국이 치러야 할 전쟁이며 미국이 부담해야할 전쟁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절대 그렇게 만족할 수 없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금의 문제를 확대시킬 수 있다.

어쩌면 제2, 제3의 테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번 전쟁에 수많은 이름을 붙였으며, 수차례 변경했다.

숭고한 전쟁에서 무한정의,

그리고 지금은 또 어떻게 붙였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들 스스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내부의 입장을 통일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또한 대외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여러 가지 변수들에 대한 고려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명백히 할 때에만 그 명칭은 변하지 않고 유지될 것이다.

미국이 만족시키려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원하는 결과란 과연 무엇일까?


더 이상 제재할 것이 없다는 럼스펠트 국방장관의 발언에 과연 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있는가?

미국의 가치와 영혼을 들먹이는 부시에게 과연 미국은 자신의 정체성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과연 미국적 가치의 실체는 있는가?

그리고 과연 증오를 또 다른 증오로, 전쟁을 또 다른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이제 가장 비열한 방법의 전쟁들이 무한정의란 이름하에 자행될 것이다.


이제 한가지만이 남아있다.

앞으로 벌이질 일에서 누구 가장 많은 과일을 담을 것인가?

그것만이 판단되고, 그것만이 평가될 것이다.

 

 

 

 

 



15. 몇 가지 메모

 


우리들의 일상에서 정치와 언론과, 문화 그리고 건축은 매우 친밀한 관심사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언론부터?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축구경기 중계방송 수준을 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언론을 생각해본다.

앵무새라는 과거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한가? 한때는 정권의 지금은 CNN의, 그리고 미국의...

과거에는 시키는데로 읊어서 앵무새였고,

지금은 아는 게 없어서 자율적으로 봉사하는 통역사처럼 보인다.

저 아까운 시간과 인력과 돈을 투자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또 그것만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들의 수준도 마찬가지고...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또한 정부의 대처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교민의 안전 한가지뿐이었다.

우리들의 정치에는 국제관계도,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

군사적 전략 전술에도,

건축에 대한 이해도,

경제에 대한 분석도 아무 것도 제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국가의 논의 수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준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상황을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할 말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몇 가지, 유가의 문제나 미국의 경기동향 등 경제적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대책이 나왔지만, 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별로 없음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고,

특히 국제관계에 대해서 우리들이 할 말이 너무 없음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에 신화를 짓고 이야기하는 이들을 나는 이야기꾼이라고 표현한다.

그 이야기꾼들은 오늘날 기업에도 있고, 정부에도 있고, 외교부처에도 있겠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꾼들이 있는 곳은 아마 문화계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너무 많은 예비 연습을 했다. 소위 영화를 통해서.

미국의 재난구조와 대 테러전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

그리고 이미 에어포스 원에서 그들은 한계를 드러냈다.


왜냐하면 미국 대통령이 직접 테러범을 상대해야 했으므로.

마지막 카드처럼 보인 것은 인디펜던스데이처럼 외계인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늘 주인공이 살아남고 미국의 신화가 승리한 영화 외에,

우리들이 미처 그 결과를 보지 못한 영화들도 있다.

민항기를 몰고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일본인... 비행기를 폭탄 삼아 도시에 돌진하는 테러범...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가장 최근의 테러에 대한 영화였고,

우리의 현실은 그 다음 상황일 것이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한다.


아무튼 나는 우리의 언론, 정치, 문화계에는 더 많은 이야기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화가 많은 나라가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신화는 다양성이며, 또한 총체적인 해석의 틀이며

미래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담론들과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보다 풍부한 이야기들을 접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전공인 건축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자 한다.

바로 무너진 건물에 대한 진단이다.

어떻게 비행기에 충돌했다고 110층 건물이 무너질 수 있는가는 정말 충격이었다.

물론 15톤 덤프트럭 100대가 시속 100KM의 속도로 동시에 부딪힌 충격이며,

최소한 강력한 허리케인이 두 번 동시에 가한 충격과 맞먹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을까?


그리고 연이어 드는 생각은 폭파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겠느냐가 조심스럽게 검토되었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계획된 폭파는 없었다.

항공유 9만 톤을 실은 보잉747시리즈 비행기는 충돌 시 2,000도의 열을 냈으며,

1,300도에서 녹기 시작한 철강구조는 결국 힘을 발하지 못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지진강도 5이상에서도 버틴다는 첨단공학이 무너지고 말았다.


2차 대전 당시 엠파이어 스페이트 빌딩에 B-52폭격기가 충돌한 적이 있다.

물론 보잉기보다 규모나 속도 모든 면에서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건물에는 2개 층에만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문제는 구조에 있었다.

튜브인 튜브구조는 휨모멘트에는 강해도 자중을 이기지 못했다.

외부 철강과 내부 코아가 손상을 되고,

거기에 폭발로 인한 열로 철골이 손상되고 나면,

자체무게를 이기지 못한 체 꼭 철거시의 폭파처럼 제자리로 가라앉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구조방법은 30층을 넘지 못한다.

즉 사다리차의 높이에 한정되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헬기나 옆 건물에 밧줄로 생명줄을 만들지도 못했고,

건물에서 낙하산을 펴고 내려오지도 못했다.

높이 세울 건물에는 같이 높아져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 모든 것을 고려했다는 것은 우리들의 자만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의 이성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에는 항상 한계가 있다.

우리들의 조건,

사회적 합의수준,

그리고 우리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우리들을 이성을 과시하고 영원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만든 마천루는 또한 인간들에 의해서 파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