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3 남도여행 ; 선암사, 가야산, 영암사지...
1. 광주박물관
광주 장운동 오층석탑
신안 해저유물
중흥사지 쌍사자 석등
2. 조계산 송광사
3. 조계산 선암사
승 선 교
두기의 탑비
고3 일기장
4. 대 각 암
대각국사부도와 대선루
5. 금전산 금둔사
남해로...
6. 금산 보리암
7. 남해대교와 금문교
8. 월광사지
9. 매화산 청량사
청량사 석등
가 야 산
10. 가야산 해인사
대장경판전
팔만대장경과 인쇄술
11. 황매산 영암사지
폐사지...
12. 대관령에서
용평 일을 마무리하면서 어딘가에 가고 싶었다.
바람을 쐬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
아니면 생긴 기회가 아까워?
서울에 올라갔다가 부리나케 광주로 내려간다.
그래도 하루 밤이라도 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발왕산에서 바라본 용평, 대관령...>
도망치듯 다시 나선다.
어디로 갈까?
대관령까지 그냥가기엔 너무 멀리 내려왔다.
시간도 ...
선암사엔 꼭 가보고 싶다.
왜 고3때를 돌아보고 싶지?
일단 광주박물관으로 간다.
다시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박물관...
광주 장운동 오층석탑
휑한 주차장에 차만 몇 대 덩그러니 놓여있고, 전경들의 구렁소리만 우렁차다.
넓은 마당, 군데군데 흩어진 몇몇 유적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오층석탑이다.
광주 장운동 폐사지의 석탑으로 고려시대 초기유물이라고 설명되어있다.
늘씬하면서도 약간 세련된 느낌?
가늘기는 하지만 안정감이 있다.
선운사의 파격적이며 불안정한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정사 구층탑처럼 장후하면서도 준수한 미감이 있는것도 아니다.
고려 초기...
신라시대의 여운이 남아있는 정성스러움과
변화의 몸짓을 오층에 담았을까?
백제 지방에는 그래도 오층탑이 많다.
급격히 줄어든 몸돌들도 이시기의 한 흐름일까?
지방색인가?
기름기가 흐르는 나운리 오층탑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정반대의 느낌이다.
<월정사 구층탑 ; 같은 고려시대... 중후하면서 장대한... 준수한 맛의 탑이다
크다고 하기엔 길고, 길다고 하기엔 든든하다...>
이정도면 준수한데?
알고 보니 옥개석을 제외한 다른 몸돌들은 복원된거란다.
그래서 새것(?)처럼 보였나?
1. 광주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전라도지방...
거석문화의 연관성에 이르기까지 그 해석의 다양함은 아직 우리에겐 미개척분야다.
이렇게 돌 3개로 그 모든 문화의 포괄성을 담을 수 있을까?
독자적 전통으로 계승발전된 남도지방의 회화.
하긴 이렇게 독자적인 계보를 가지고 발전된 지역도 없으니...
그 뿌리로서 공재 윤두서와 김정희의 제자인 소치 허련등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갑자기 변관식의 그림이 보고 싶다.
그 활달하고 빠른 붓놀림에 숨은 유머가 보고 싶다.
이렇게 뚜렷한 소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시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다른게 있다면 신안의 해저유물들...
신안해저유물...
김석철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처음 중국갈 때 겁이 났다고 한다.
우리문화가 중국의 아류로 보이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말이다.
물론 결론은 우리의 고유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성숙된 우리문화...
나도 김석철씨처럼
신안해저 유물들을 보고 안심해야 되나?
독자적인 특수성이 있다고?
도자의 선진기술들...
그리고 우리네 도자기들...
어디 도자기뿐인가?
<중국 주장에서 ; 왜 이사진을 골랐을까? 져가는 황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이 새로운지...>
사실 나의 역사관은 한반도로 만족되지 못한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라는 삼국의 제반 상황이 검토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역사는
늘 절름발이의 왜곡된 인식밖에 남지 못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일단은 이 땅에 핀 문화와 그 문명에 대해 충분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신안의 송, 원대 중국유물들에 관심이 가는 건 그런 의미에서 이다.
그리고 독자성, 고유성, 혹은 특수성의 확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한 일반성, 타당성, 그리고 보편성을 얼마나 갖추었는가가 수준의 척도라는
주장에 충분히 동의하지 못한다.
오히려 수용된 문화를 어떻게 얼마나 더 발전시키는가?
또 그를 통해 새로운 변화의 장을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변화와 발전의 성과물로 인류문화 성숙에 무엇을
기여 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닌가?
<일본 동대사 ; 왜 골랐냐고?^^ 비슷한 시기 그들에게도 규모가 있고 문화가 있고 사회가 있었다.
우리가 준것만 있을까? 우리는 일본에게서 무엇을 받았을까?>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전수하고,
또 그를 통해 우리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한 뿌리라고 생각되면서도 너무나 다른 세 나라...
우리 모습은 무엇일까?
중흥사지 쌍사자 석등
이층 계단을 내려오면서 갑자기 눈에 번쩍 들어오는 석물...
아하! 저게 중흥사지 쌍사자 석등이구나...
그래, 언젠가 시간나면 광주박물관에 다시 오려고 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지...
왜 아까는 보이질 않았지?
<중흥사지 쌍사자 석등 ; 법주사의 석등에 비해 안정적이고 영암사에 비해 마모가 덜하다...>
답사여행의 길잡이에서는
우리나라에 쌍사자 석등은 세 개라고 기록하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 영암사지, 그리고 중흥사지.
엄밀히 신라시대의 서있는 쌍사자 석등이라 해야 되지 않나? ㅎ ㅎ
<선림원터 석등 ; 아담하고 정연한 모습으로... 화려함과 단순함을 적절히 통일시켰다...>
고달사지 석등이나
회암사지에도 보기 좋은 쌍사자 석등이 있다(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석탑과 더불어 우리의 고유 양식이 되어버린 석등
숱한 불교 유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석등이 남아있는 우리나라...
<고달사지 석등 ; 용산박물관에 앉아있는 쌍사자... 경복궁에서는 햇빛을 잘 받았었는데...^^>
내 생각에 우리나라 석등은 몇 가지로 구별된다.
8각 간주석의 정형인 부석사 석등,
선림원터 석등같은 장고 모형의 보복형,
또 특이한 형태로 쌍사자 석등과 신륵사지 석등 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왕릉이나
회암사지 등에서 보이는 고려-조선시대의 방형 석등이 별도 양식일까?
<불국사의 석가탑과 석등 ; 부석사의 석등과 거의 똑 같다...>
처음에 법주사 석등을 보고 왜 이게 국보5호(?)일까?
한동안 고민했었다.
이제 치밀함과 파격을 넘어선 법주사 석등의 깊이는 충분히 인정한다.
석굴암의 금강역사처럼 아와 함의 대비까지 고려된 그 깊고 깊은 의미를...
중흥사지 석등은?
<법주사의 쌍사자는 아와 흠이 더 잘 표현되어 있다...>
광주박물관이 국립으로서의 위상을 갖기 위해
이 석등은 경복궁에서 다시 이곳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그만큼 사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인정을 받고 있음을 인정한다.
통일신라 석조미술의 원숙함을 대표하며.
그러나 대접은 신경 썼지만 왜 하필 실내에 놓여 있어야만 했을까?
주변과 어울리지 못해선지 그 맛을 모르겠다.
<회암사지 쌍사자 석등 ;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단아하고 차분한 석등...>
아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인가?
한참을 뜯어보면서 느끼는 생각 ;
화엄사 석등의 장중함...
그 웅대하고 힘찬 카리스마가 좋고,
선림원터 석등의 정교하고 단아함...
그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단정함이 더 좋은 건가?
<용암사지 석등 ; 화엄사보다 조금 작지만 웅대한 크기와 정성스러운 솜씨...
석등으로서는 가장 규모있고 안정적이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석등이다...>
계획 없이 떠난 길이라 아무런 준비가 없다.
어디로 갈까?
일반 지도책을 펼쳐 놓고 계획을 짠다.
일단 송광사를 들르자.
그리고 선암사도 들르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영암사지 석등 ; 작고 앙증맞은... 석등의 세련미보다는 주변의 풍광에 어우러진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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