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송 광 사
오늘날 조계종은 우리나라 불교계의 최대 종파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화엄종이나 법상종 같은 종교적 개념에서 붙여진 게 아니다(?)
조계산이란 공간적 개념에서 시작한다.
구산선문을 통폐합한 시기인 고려조,
수선결사를 이룬 보조국사가 자리한 곳이 이곳 송광사이며
지눌은 송광산이란 이름마저 조계산으로 바꾸었다.
-물론 중국의 조계산에서 빌려왔지만-
그럼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인가?
송광사에 다시 들른 이유는?
삼보사찰인 송광사에 대한 변변한 사진이 없다가 첫째 이유인가?
16국사와 그 정신세계에 대해 논해보고자 하는가?
오늘은 건물들을 보기 위해서가 우선적인 이유다.
국보급 건물들이 있다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다.
수많은 사진에서 확인한 우화각과 침계류...
임경당(임교당인가)은 수리 중으로 모두 해체되었고
가물어서인지 물이 없다.
제 맛이 나질 않는다.
역시 선입감에 지배되는가?
지식과 이론은 선입감을 강요하고, 고정된 감은 확인을 강요한다.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하늘은 파래야하고, 사진은 초점이 맞아야 한다?
<대웅보전 ; 신축이지만 잘 지어진 건물이다... 넓은 안마당에 굳건히, 그리고 당당히...>
대웅보전 앞의 넓은 안마당...
맛이 없다.
흐트러진 기분들...
뭔가의 통일감과 일체감, 긴장감이 없다.
2:3의 비율이 깨져서일까?
석등과 탑이 없어서일까?
(해방 전의 초기 사진에도 현재의 유적으로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친절하다는 느낌도 없다.
포근한 맛이 없다.
시선을 일관되게 잡을 수 있는 집요한 공간경영이 없다 !!!
<겹겹의 처마속에 찬찬히 뜯어볼만한 건물들이 많다...>
그나마 대웅보전에서 돌아다본 약사전과 영산전 방향...
그리고 우화각 쪽은 겹겹이 펼쳐진 처마들이
과거 99개동이 노래했을 송광사의 위용을 보여준다.
국보인 목조삼존불감도 보고,
정교하게 조각된 경패들은 놓치기 싫은 눈요기다.
그러나 일단의 목표가 정해지면 대부분의 대상들은 인사치레로 만족한다.
열심히 둘러보지만 국보급 건물이 보이질 않는다.
어지간하면 눈에 띌텐데...
게다가 안내도서도 없으니...
할 수 없이 보살님들을 찾는다.
여자 분이 더 부드럽다?
다행히 친절한 여자보살의 안내로 출입 금지선을 조금 넘어서서
국사전(진영당이 진짜인가?)을 본다.
음! 역시 건물은 빙글빙글 돌면서 느껴보고,
내부에 들어가서 이렇게 저렇게 가구를 얹어봐야 제 맛인데...
쩝...
하사당은 너무 가까워 오히려 맛을 느끼지 못하겠고...
빽을 만들든지, 시주를 많이 하든지, 그도 아니면 때를 맞추든지
이게 아니면 길이 없나?
<맛배지붕이 주는... 한참을 음미해도 질리지 않는...>
“ 무위사 극락보전과 같은 맛인가요? ”
멋없는 보살님 ; “ 송광사밖에 모르는데요... ”
역시 맛배지붕이 주는 엄정 단정한 맛은 근엄하다.
그 단순함에 배어있는 강직함과
그 엄정함속에서도 답답함과 무거움은 배제되어있다.
왜 4칸이지?
혹시 잘못본 건 아닌가?
딜을 제안해볼까?
kohnihyang의 보살님께 답사 후기를 쓰면 보내주겠다는 제안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보살님. ㅎㅎ
성의가 괘씸해선지 보살님이 한가지 요령을 내놓는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조금 있다가 주한미대사가 오는데 그때 따라가란다.
시원하게 생긴 중국통역 가이드도 소개해준다.
총무스님 일행이 기다리고
이런저런 경비들이 깔리기 시작하고 시간은 간다.
고민!
이정도 절에서 총무직 하고 주지스님 되려면 웬만한 영어와 외국어는 해야 되네?
또 대사 정도 되면 한나라 문화의 정수는 이런저런 이유로 깊이 있게 안내받겠네!
일주문까지 걸어내려 오면서 약간의 추측...
뜻 모를 선문답이 오가고 녹차의 향기 속에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겠지?
서로 수준 있는 대화라고 만족해하면서 한바퀴를 돌겠지?
이런저런 호위를 받으며 대사가 오고 전경차 몇 대가 진을 친다.
다음에 떳떳한 만남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 시간에 선운사로 가는게 남는게 많다는 판단 때문.
미대사와 만나서 할 이야기도 없고...
오노와 올림픽정신에 대해서라도
이야길 해봐야 하나? ㅎㅎ
쩝...
3. 선 암 사
차는 선암사로 향한다.
고인돌 유적에 대한 이정표를 무시하고 곧장 선암사로...
옛날엔 조계산을 넘어갔었는데...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림이다.
한 종파의 총림으로서 선암사는 있을 건 다 있는 절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일본인들이 좋아한다는 선암사의 분위기...
맑고 고즈넉하고,
당당하며 단아한 맛...
<수없이 많은 공간이 딱 이만한 규모로 얽혀있는 곳이 선암사다...
그래서 이야기도 많고, 아기자기하고, 생각할 것도 많아지고... 산사이면서도 작은 나무들만...>
승 선 교
선암사는 승선교 때문에 더 유명한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이 셔터를 눌렀을 승선교 이전에도 홍예교는 하나 더 있다.
물론 송광사에 올라가는 길에도 청량각에 홍예교는 있고.
앞쪽 홍예교가 조금 둔탁하게 느껴진다면
강선루가 밑에서도 보이는 승선교는 불필요한 요소들이 제거된 늘씬한 형태다.
<너무 많이 찍힌 곳... 너무 늦은 시간이었을까? 아치... 그것만으로 충분한 재미가 있다...>
그리스-로마의 건축은 이슬람의 아치를 받아들이면서
질적(구조적인 측면에서 시작하지만)으로 변한다.
아치...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중세이전에 만들어진 다리들 중 남아있는 건 아치형태가 많다.
또 그 다리들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된 형태니까 천년을 버티고 있고,
구조적인 형태만으로 장식성을 배제했으니 유행에도 무관하고,
그 안정됨에 힘이 넘친다.
가장 단순한 구조에 가장 안정된 미감이 가미된다.
역시 미와 곡선은 불가분인가?
가장 단순하고 안정된 것은 완벽함의 지름길인가?
다리만을 생각한다면 이 원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된다.
대웅전을 보수한다고 어수선하다.
역시 중심은 중심이다.
도대체 감흥이 나질 않으니...
<대웅전 ; 인터넷에서 빌려옴... 한참 공사중에 도무지 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대웅전 앞에는 쌍탑이 있다.
작지 않은 삼층석탑.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전성기의 정연함이 남아있는 모습이다.
1층 몸돌과 2,3층의 비례가 깨지고 옥개석들이 작아진 듯하다
상승감이나 체감률이 약간 흐트러진 느낌이다.
그래도 하나하나 완숙한 장인의 손끝에 묻은 정성스러움이 남아있는
잘 생긴 탑이다.
<몸돌의 높이를 지붕돌의 넓이가 감당하지 못하면...
무시하기에는 정성스럽지만, 품에 안기에는 너무 다부지고 맛이 없다...>
선암사는 역시 꽃과 연못들의 절집이다.
눈높이 이하의 오밀조밀한 돌-기와 담장들과 어우러진 과실수들...
매화향 그윽한 꽃길도 있고,
여기저기 연못들이 마음의 정화를 강요한다.
해인사처럼 인자가 들어간 삼인당.
시간과 인연과 생사를 떠나 무념과 무상과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三印.
옛날엔 거기에 외나무다리가 있었는데...
다리를 건너면서 속세를 접고 근심을 잊고, 욕심도 버리고...
지금은 청매화의 진한 향기에 묻히고만 싶다.
아쉬운 건 햇빛이 없다는 점...
사진이 제대로 찍힐리 없다.
내가 너무 늦었나?
두기의 탑비
매화향기를 맡으며 역시 두기의 탑비(이름도 메모를 못했으니...)을 보러간다.
귀부 비신 이수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주둥이가 몽땅해 호탕한 맛은 떨어지지만
호락호락한 솜씨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나하나가 굳건하고 다부진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귀부...
<잘 생긴 두개의 탑비... 충분히 볼만한...>
한문에 자신이 없어서 비신은 보다 말고
귀부와 이수로 눈은 돌아간다.
사자와 용과 물고기를 적당히 섞어 놓으면 저 모습일까? ㅎㅎ
게다가 다른 귀부와 달리 길게 조각된 다리는
잔뜩 웅크린, 다부진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비신을 받친 비좌가 낮아서인지 어깨가 잔뜩 힘이 들어있고
절대 움직이지 않을 굳건함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서쪽이 훨씬 힘차다.
선암사에 언제 와봤을까?
고3때니 꽤 오래전이지?
그럼 지금의 여행은 무엇인가?
과거로의 여행?
교복입고 책가방 싸서 땡땡이를 친답시고 온 곳이
조계산이었다.
선암사의 늦은 오후 종소리가 좋다는 누나의 말을 따라
먼저 송광사에 갔다가 선암사로 넘어왔다.
그리고 독서실에 가서 열심히 일기를 썼다.
고3 일기장
‘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자
... ... ...
나 같은 인간은 어찌하여 바다를 보고 깊은 줄 모르고,
하늘을 보며 높은 줄 모르며,
대지를 보고 넓은 줄 모르는가
... ... ...
지금의 내 나이는 오랜 숙고 끝에 이루어진 결실이 아닌
순간에 기민하고, 한번에 치우치며, 하나에 집착하고,
넓게 보지 않고, 깊게 들지 않으며,
앞서가는 시야에 내 행동이,
멀리 있는 사고에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한 거야.
감정에 너무 치우치며 이성에 너무 약해.
스스로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며,
현실에서 내 꿈은 너무 허황된 거야.
<밝은 웃음인지, 즐거운 웃음인지... 아무튼 나를 생각하게 한다면...>
... ... ...
과거 없이 현재가 없듯이
현재의 보람 없이 미래의 꿈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거야
... ... ...
나의 꿈을 헛되지 않게,
내 꿈을 말할 때 부끄럽지 않게
내가 죽음에 이르러서 외롭지 않고 그리고 웃는 낯으로...
... ... ...
준비된 자만이 일어설 수 있는 시대에
버티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는 시대에
... 더 크게 더 높게 더 빠르게 달려야해.
이루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돼.
... 내가 사회가 되어 나를 쳐다본다면...
.....................................................
’
<그때도 이길을 이렇게 걸었을까?>
그때 일기다.
2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달라졌나...
그때의 일기가 지금의 일기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럼 나는 20년 동안 무엇을 했지?
거참~~~
4. 대 각 암
대각암 이정표가 보인다.
대각, 대각...
크게 깨달음...
이름이 크다.
아하,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송광사에 보조국사 지눌이 있다면 선암사엔 대각국사 의천이 있다.
우리에게는 한 시대를 풍미한 쌍벽들이 많다.
원효대사가 있어 의상대사가 있다.
참으로 다이나믹하지 않는가?
<한번쯤은 거닐어 볼만한 곳... 의천과 지눌... 그만한 큰 깨달음을...>
100여년의 시차는 있지만 의천과 지눌도 그런 관계다.
먼저 원효와 의상이 불교를 체계화시켰다면,
500여년이 지나 의천과 지눌은
이땅에 흩어진 불교를 통합시키고 개혁하고자 했다.
한사람이 당대의 사상을 총합하고 법제화시켰고,
한사람은 마음을 열고 수도의 길을 텄다.
두사람 모두 불교를 통일하고자 했다.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중심으로...
만약 이 두양반이 동시대의 사람이었다면
의상과 원효처럼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의상의 체계를 우리는 화엄종이라 부르지만,
원효의 체계는 한마디로 규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본다면 누구의 판정승일까?
아무튼 의천은 천태종을, 지눌은 조계종을 개창했다.
대각암에 이르는 황량한 길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대각국사 부도와 대선루
누각하나와 전각하나 그리고 부도탑이 대각암의 전부...
황량한 느낌, 손이 가지 않은 주변이 너무 단촐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깊이와 향기가 작지 않다.
대각암 부도...
팔각원당형의 다부진 모습.
작지만 육중한 느낌.
너무 정형화되어 다른 느낌이 배제된다.
<굴산사지 범일국사 부도 ; 빌려옴>
잘짜여졌지만 퍼즐처럼 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 더 큰가?
운문, 연꽃, 귀솟음 등 빠진 것도 없지만 미감으로까지 발전되지는 못한 듯...
특히 기단부 중대석 괴임의 곡선과 상대석 탑신부의 직선이 조금 이질적이다.
한가지...
굴산사지의 중대석 괴임의 모양이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습이 원형인가?
아무튼 미감을 배제하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한체
균형 잡힌, 다부진 모습으로 부도는 서있었다.
기억에 나지 않지만 전각이 하나있고 그 앞에 대선루가 있다.
역시 대선루 앞엔 연지가 하나있고...
한층 높이지만 역시 올라서 바라보면 전망이 생긴다.
잡스러운 가까운 사물들이 배제되어서일까?
대부분의 누각들이 팔작지붕인데 대선루는 맛배지붕이다.
스님들의 놀이방인 듯한데 왜 맛배지붕일까?
대선...
신선을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신선이 되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도 아니면 선의 경지에 서서 사물을 바라보고자 함일까?
경쾌하고 호방한 전망보다는 좀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
맛배지붕이 주는 호기심이다.
폐사지는 아니면서도 스산한 느낌의 대각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과 방치된 곳의 차이다.
중심과 주변의 차이인가?
참 한가지를 빼먹었다.
선암사에 대한 대부분의 소개에서 빠지지 않는게 뒤깐이다. ㅎㅎ
송광사와 비슷한 규모와 형태이지만 한가지에서 차이?
송광사는 내용물이 보이고, 선암사는 가려지나?
아무튼 앉아 있으면 시원할 듯한 뒤깐에서 잠깐 생각...
여기서는 굳이 1갑자의 내공이 아니어도 편안할 것 같다.
중국의 공중화장실들이 이런 문화에서 보편화된 걸까?
<뒤깐 ; 인터넷에서 빌려옴... 워낙 유명해서...^^>
<선암사는 뭔가를 가라앉히는 힘이 있나보다...
미래와 꿈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차분하고 정적이고 낮게 깔려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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