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금전산 금둔사
어디로 갈까?
낙안읍성을 들러보자...
카페 답사회원들도 지리산 산수유를 보고 이곳을 거친다던데...
읍성으로 향하는데 난데없이 고개가 나온다.
<낙안읍성 ; 결국 밤에 별만보다 돌아섰다...^^>
답사여행에서 책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는 습관이 생겼다.
목적지 근처에서는 지도를 보지 않고 주변의 산세를 관찰하는 습관이다.
대개의 명산에는 항상 명찰이 있게 마련...
그다음엔 향과 약간의 풍수적 지식을 동원하면 절의 위치를 찾는데 어렵지는 않다.
최순우 선생 말처럼 점지의 묘에 대한 훈련이며,
의상대사에 대한 존경의 표현인가? ㅎ ㅎ
야! 이만한 산이면 분명 이름있는 절이 있었을텐데... ...
<나올때는 이미 어두워져서... 산에서 바라본 낙안벌판의 시원함이 좋았다...>
고개를 넘으면서 앞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
경주 석굴암에 오르는 길에서나 느껴지는 탁 틔인 시계다.
그리고... 금둔사란 이정표와 석탑 안내표지를 보곤 당장 차를 꺾었다.
이정도의 산과 이런 조망에 절터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시간은 한참 늦어 후레쉬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물 946, 945호...
900번대를 넘었으면 비교적 최근에 보물로 지정됐을 것 같은데...
매화와 벚꽃 등이 피어있는 대웅전을 외면하고 곧바로 석탑으로 달려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4m와 3m 크기의 삼층석탑과 석불입상이 있다.
조금 좁지?
하지만 석불입상에 보관은 아니지만 처마형의 두겁돌이 있는 걸로 보면
그게 하나의 불당이 되나?
<허튼 솜씨가 아니다... 시대적 양식과 지방의 특성이 정성스럽게 조화된...>
기단부의 각판석에 팔부신장이 양각되어 있고,
그 수법 등이 절대 조잡하지 않다.
몸돌에 비해 옥개석이 크며,
추녀의 반전이 심해 매우 장식적으로 보인다.
온전한 상륜부가 있었다면 또 다른 맛이었겠지만
아무튼 기단부에 비해 몸돌이 작다.
9세기 신라탑이지만 추녀의 반전과 곡선처리,
몸돌에 비해 넓은 옥개석은 백제탑 같은 분위기도 준다.
녹녹치 않은 정성이 배인 좋은 탑이다.
이에 비해 석불입상은 정형화된 양식에 의해 양각된 배례불이다.
석굴암의 10대 제자상 같은 형태랄까?
전법인이라는 수인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인상은 근엄함보다는
시골 아낙네가 모델이 된 어머니상 같은 느낌이다.
<시나브로 해는 지고... 매화가 인상적이었다...>
금둔사는 이래저래 홍매화가 이름 있는 곳인 듯싶다.
아무도 없는 기도처에서 후레쉬를 터뜨리기가 죄송?
하지만 석양빛을 받았다면 화사한 정취가 괜찮았을 성 싶다.
산중턱에서 급하게 꺽여 들어가는 절..
갑자기 금곡사가 생각나지?
참 잘생기고 당당한 탑이 있는데...
<금곡사 삼층탑 ; 당당한 크기에 잘생긴 탑이었다는 기억이...>
남해로...
어둠이 짙게 깔린 낙안벌로 차는 내려가고
낙안읍성의 형태만 바라본다.
그냥 가기 역시 서운하지?
칼국수 하나를 먹고... 저벅 저벅 걷는다.
금전산과 낙안벌 사이로 별빛이 총총하다.
나는 어느 순간에야 저 별빛들을 고흐처럼 바라볼 수 있을까?
그렇게 크게, 그렇게 꽉 차게, 그렇게 아름답게
그리고 그렇게 힘차게...
하루에 돌기엔 너무 벅찼지?
힘도 들고 다리도 아프고...
게다가 담배만 연신 피웠으니...
차가 고생이 많다...
음~~~ 이젠 어디로 갈까?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니 영암사지는 꼭 가야겠고...
남부지방까지 왔으니 보리암도 놓쳐서는 안 되고...
좋다. 남해로 가자.
<동해의 푸르름과 서해의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동해보다 덜 깊고 서해보다 빠른물살...>
상도도 봐야 되는데!?
부지런히 차는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로 향한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다.
역시 버릇중의 하나...
꼭 저녁에 다음날 아침에 갈 행선지를 사전에 답사해보는 것...
보리암 이정표를 찾고 묶을 곳을 찾지만 바다를 보고 싶다.
바다가 보이는 모텔에서 창을 연다...
동해나 서해와 무슨 차이지?
서해에 비해 바다가 푸른색이지만,
동해와 달리 파도가 없다?
우선 상도를 보고...
준비한 자료가 없으니 내일의 행선지에 대해서 체크할게 없다...
고3때 일기장을 들춰본다...
일기장 표지는 르노와르의 ‘이렌느카엔당베르양의 초상’이다.
그땐 참 좋아했는데...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샤워하고 다리에 파스만 잔뜩 뿌리고 눕는다.
<일출이아니라 석양...^^ 미황사의 석양을 보면 오래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일출을 보려는 시도...
계절에 맞는 방향이 정확해야 하는데
왜 하필 나침반도 없지?
한여름이었으면 가능했을텐데...
새벽에 보았던 반짝이는 불빛 ; 이제 보니 태양이 아니라 가로등이었다.
미조리에 들렀다가 보리암으로 향한다.
6. 금산 보리암
<이미 충분히 넓혀진 길이지만 걸어도 기분이 좋았다... 햇살도, 산도, 보리암에 대한 기대도...>
보리암 주차장...
아직 시간이 안 되었는데 엄청난 주차비만 내고...
한참을 올라간다.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도량, 기도처로 꼽히는 곳...
수 년전 대동산수의 오종은 선생이 추천했던 곳이다.
<바다와 산과 문화유적을 함께 보고싶다면... 풍광이 좋다는 말이...^^>
보리암이 위치한 곳은 낙산사처럼 바닷가의 절벽 위가 아니다.
보문사처럼 배를 타고 건너는 곳도 아니고...
680m 높이의 금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해있다.
그런데도 해수관음이라 해야 하나?
하긴 금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미조리쪽과 바다는 시원한 조망을 보장한다.
육지였다면 악산이라 불렸을 금산은 여기저기 솟은 바위로 많은 변화를 가지고 있다.
융기였나?
김수로왕의 전설과 원효대사 창건설화, 그리고 이성계의 백일기도가 들려온다.
시대를 넘나들며 엮어진 전설은 그만한 풍광이 있기 때문일까?
<잘 생겼다... 관음들은 대부분 중성적 이미지다... 내 생각일까?^^>
잘생긴 관음상이 적당한 크기로 서있다.
물론 최근의 것이지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얼굴...
어쩌면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얼굴이 아닐까 싶게 맘에 든다.
약간의 복스러움과 화려한 법의, 그리고 산뜻한 불륨감...
중성적 이미지의 얼굴과 기품 있는 자태,
그리고 단정하면서도 살며시 머금은 미소도 생기를 돌게 만든다.
단지 얼굴에 비해 어깨가 좁아지면서
여성적으로 보인다는 게 흠이 아닐지...
약간 관능적으로 보인 이유가 그 때문인가?
그래도 참 잘 만들었지?
게다가 이음새가 없는 걸로 보면 한 개의 돌로 만들었고
손과 법의의 입체감을 충분히 살리고 있으니
상당한 공력이 들었음도 느껴지고...
<낙산사 해수관음과 비교 ; 크기만큼 부재가 낙산사쪽이 많아서일까? 보리암쪽이 여성적이다...>
아쉽다면 지금의 시간대가 바다 쪽의 하늘을 찍기엔 역광이다.
또 청명하지 못한 하늘에 수평선을 보지 못했다.
대관령에 있으면서 수평선을 본건 손으로 꼽힌다.
수평선이란 항상 눈높이여서 산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수평선의 호방한 맛은
정말 일품인데...
보리암에서 수평선이 보였다면???
너무나 환상적이었겠지만 아쉽게도 하늘이 돕지 않는다.
높은 고기압이었으면...
그래도 구비 구비 보이는 능선들 너머
수평선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호쾌하다.
7. 남해대교와 금문교
나머지는 모두 생략하고
다시 청량사로 향한다.
잠깐... 밥을 먹어야 하는데...
기왕이면 남해대교를 보면서...
수년전 보았던 금문교가 생각난다.
그리고 서해대교도...
서해대교를 다녀와서 썼던 글이 생각난다.
‘
어디나 한 지역을 상징하는 구조물들을 지니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보이는 게 자유의 여신상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의 바다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금문교다.
태평양의 긴 항해를 건너간 아시아인들에게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을 상징하는 금문교는 그 크기만큼의 위상을 지녔을 거고.
<금문교 ; 꽤 오래됐다... 밑에서 올려본 것보다는 내려보는게 편해서 빌려왔다...>
그러나 금문교는 미국 자체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고 보인다.
골든게이트란 이름이 멕시코와의 전쟁시 군사적 승리에서 파생되었고,
60m가 넘는 바다의 수심과 거센 물쌀을 피하기 위한 고민은
현수교란 구조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가장 높은 배였던 타이타닉호가 통과할 수 있는 높이로 설계된다.
당시의 공학과 토목기술은 금문교로 집대성 된다.
즉 자연을 이겨나가는 인간의 의지의 과시였고,
그것은 곧바로 미국의 기술적 자부심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100% 인력에 의존해야만 했던 당시
2,000m가 넘는 거리를 노동자들은 철선을 순전히 손으로 이어나갔고,
요즘 같은 기계적 장치가 없음으로 인해 철선은 적당하게 처졌을 것이고,
꼭 우리네 기와집 용마루 같이 일정한 곡선을 그리면서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조화까지 이뤄
지금 보아도 금문교는 질리지 않는 미감을 갖추게 되었고,
압축과 인장의 교묘한 통일이 주는 미학으로 금문교는 기억에 남아있다.
<서해대교 ; 행담도에서... 물론 교각과 교각의 공법이 다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포인트는...>
어렸을 적 남해대교는 늘 금문교와 비교됐다.
육지와 섬을 잇는 공학구조물?
현수교란 곡선이 주는 미감?
그도 아니면 우리도 만들었다는 자부심?
우리에게는 어떤 역사적 건축기술적, 인문적 의미가 있을까?
내가 너무 사대적인가 아니면 비판적인가?
<남해대교 ; 금문교의 건설초기 교각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남해대교는 그대로지만...>
남해대교는 주탑이 너무 직선에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장교 형식의 서해대교 인장철선처럼 직선이 아니어서 날카롭지 않고
자정식 현수교형식의 영종대교처럼 교각간의 거리가 짧지 않아서 좋다.
현수교의 장점중 하나는 최소한의 교각으로 자연을 덜 파괴한다는 점일 것이다.
된장찌개하나 먹으면서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나?
또 한가지
1930년대 금문교는 6차선이었지만
1970년대 남해대교는 왕복2차선에 40ton제한이 붙어있다.
너무 아쉽지?
8. 월광사지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해인사 지도를 얻었다.
청량사의 위치를 감 잡지 못해서...
가다가 보이는 푯말, 월광사지...
보물 129호란 안내판에 차를 불법으로 유턴한다.
늘 이렇다니까...
비교적 평지에 그렇다고 넓은 평원이 있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 답답한 곳에 자리한 월광사지.
대가야의 마지막 도설지왕의 월광태자 설화가 숨어있는 곳이다.
월광사 삼층석탑은 동서 쌍탑이다.
서탑의 옥개석 모서리가 깨져서 아쉽지만 상륜부가 없는 걸 제외하면
오롯하게 서있다.
5.5m의 높이에 삼층석탑으로는 비교적 크며
잘 만들어진 탑들이다.
참 정연하다.
상승감, 체감률, 어디에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쌍탑...
웅장하지는 않지만 절대 작지 않은 멋진 탑...
서탑의 옥개석이 깨져서 약간 몽땅한 느낌이 들고
동탑의 옥개석 끝에 살아있는 반전은 탑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단정하지만 너무 교과서적인가?
불국사의 완전히 이질적인 쌍탑, 감은사지의 쌍둥이 쌍탑...
월광사지는 쌍탑이 거의 차이가 없으면서도
약간의 마무리에서의 차이가 주는 변화가 즐거운 쌍탑이다.
상륜부가 온전했다면 어떤 맛일까?
언젠가 상륜부가 없는 복원되기 전의 석가탑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아아아...
석가탑의 상륜부가 지금도 없다면...
여기 쌍탑도 석가탑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상륜부가 온전했다면 나의 미감은 훨씬 달랐을 것이다.
직지사나 보림사의 석탑보다도 어쩌면 훨씬 많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즐거운 상상하나가 생긴다.
나는 어떻게 상륜부를 만들어 올려볼까?
<석가탑을 보는 요령 - 그냥 본다... 보고 또 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석가탑을 최고의 탑중 하나로 꼽고 있으며
지금도 문화유적으로 처음 바라보았을 적 흥분을 즐긴다.
답사여행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쁨중 하나...
그런 흥분이다...
<요령 하나 더? ; 한없이 바라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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