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학동기이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갑자기 학과장을 그만두었답니다.
꽤 오랜 기간 지속된 연구와 강의를 정리하더니 외국으로 가겠다네요...
지금은 동생치료차 중국에 가있는 친구와의 토론을 올려볼까 합니다.
이글은 어느 한분야에 국한되어 있다기 보다
제가 보는 현재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이 담겨있어 올립니다.
사회를 보는 제 눈이라고 할까요?
이야기를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게 나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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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받은지 꽤 오래다...
이미 많은 이야기로 서로의 의견은 충분히 확인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편 너와의 이야기에서 뭔가를 정리해둘 필요도 느끼고...
한참을 생각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1.
먼저 윤xx 교수의 의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이미 너의 고민에 대해서 요약한 윤교수는
근대에 대해서 <균형적이지 않은 구조화>의 문제점과
<국가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논의의 출발은 <과도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고...
(또한 윤교수의 지적은 참 많은 이야기를 전제해야만 하고
그 전제들은 보다 풍부한 텍스트가 요구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사학 전공자인 윤교수와 사회복지 전공자인 너와의 사이에
일단은 <근대성에 대한 접근>과 <서구적 근대의 맹점>은 교감을 이룬듯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근대란 함정의 인식>과 <해체된 중심으로부터 탈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너의 중압감(?)을 상당부분 해소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문제는 이지점이 논의의 출발점이지 결승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너의 주요한 고민인 ;
<구조화되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도입된 우리근대의 특수성>과
그런 연유로 인한 <예측가능한 구조화가 우리사회에서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이제야 출발점에 선 질문인 셈이다.
결국 윤교수와의 토론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역사적 접근>에 한정되어 있으며,
<서구를 통해 도입된 국가의 제도와 서비스가 과연 우리에게 효율적인가?>의 논의는
여전히 별개의 접근과 대답을 만들어야 한다.
2.
왜냐하면 현재 진행되는 역사학계나 철학계, 또는 인문사회학계 모두
<기존의 학문적 권위를 부정했지만,
아무도 새로운 권위의 단초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인문사회학계 내에서 일어났던 논쟁인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도
결국 동전의 양면임을 벗어나지 못했고,
작게는 역사학계 내에서도 수정주의(냉전을 전제로 한 미국중심주의),
세계체제론(월런스타인의 중심부-주변부-반주변부)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목적론적 구조주의 모두가 편향된 시각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학계 내에서도 미국식, 유럽식 논의
혹은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 논의 등
어느 한분야도 칼자루를 쥔 권위는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복잡계이론과 카오스,
<파편화된 주체의 외로운 선택>만 남아있다.
<모두가 중심이면서 아무도 중심이 아닌> 그런 상황이 아닌가 한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특수한 스펙트럼이 이런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데,
하나는 <일제강점기와 압축성장으로 인한 전통과의 단절 혹은 외면>
둘째는 <분단으로 인한 사상적 편협성과 편향>,
그리고 <역사적 기억을 달리하는 세대,지역,계층 간의 갈등>이란 <특수성>이 그것이다.
조금더 극단적으로 우리의 현황(사회 시스템...)을 명시해보면 ;
미국식 제도가
일본식 입장에서 재해석되고
유럽식 비판에 직면해 보완 혹은 땜질된 내용들이
한국적이란 특수성으로 유지되었는데
막상 처방의 메스를 들이대려니 시스템은 국적불명이고
그나마의 특수성마져 폐기되어야하는 상황이 아닐까?
3.
우리의 현황에 대한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여전히 우리 혹은 너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근현대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와
선택해야할 미래에 대한 든든한 밑그림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현재에 대한 명확하고 솔직한 이해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확신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보다 능동적이고 발전적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우리는 세 개의 방향중 하나를 선택하려 할 것 같다.
하나는 <보다 큰 이야기를 전개하여 방향과 입장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
둘은 <보다 우세한 경험적 지표와 통계에 의존하는 실증적 혹은 정책적 움직임
>,
그리고 셋은 <현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한 통계적 접근과 해부>...
물론 상호간 분절적이거나 고립적이지 않겠지만 이 세 흐름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각각의 문제점을 지적해야만 하는데,
첫 번째의 움직임이 갖는 <고립적이고 개별적인, 혹은 형이상학적 성과>와
두 번째 움직임 갖는 <잘못된 선택에 대한 사회적 비용과 기회의 손실에 대한 반성>,
그리고 세 번째 움직임이 갖는 <지루하고 즉각적이지 않은 효과에 대한 의문>
등등이 지적될 수 있는데,
<각각의 한계를 과연 인정하고 있느냐(내부적으로 움직임 간에)>의 문제와
또한 <그러한 성과를 통합하고 재조정할 수 있는 머리 혹은 집단이
우리 사회에, 혹은 나에게 있느냐>의 문제가 우리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나 복잡함과 무관하게 해법을 강요하는게 현실이니
이상의 문제들에서 너나 나나 자유롭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이지점이 너나 내가 머뭇거리는 시점일지도 모르고...
사실 근대성에 대한 검토는 서구근대에 대한 사상사의 분류,
또한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동양사상 혹은 학국철학과의 교점을 정리해야만 하고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국가론과 사회복지시스템이 논의되어야겠지?
우선은 윤교수와 논의에서 오고간 몇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시작한다.
늘 꺼려지던 문제들인데다, 막상 이야기를 뜯어보면 범위설정이 쉽지가 않아
<이제 논의의 시작>이란 점만을 지적하고 싶다.
또한 너무 광범위한 주제로 오히려 주제를 희석시키지 않는가란 자문을 해보지만
네말대로 TJ 혹은 TP에 가까운 나로서는 우선 전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너의 고민과 선택을 존중하는 내 접근의 한계일 수도 있고...
아무튼 이런 전제에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출처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 2
메모 : 2003년 겨울... 마흔살을 준비하면서 썼던 글... 복사도 되지 않고 해서 이렇게 스크랩을...^^ 일단 임시보관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