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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부록 – 메모 ▣ 배례석 15-1. 인도와 한반도 역사 비교 -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분열과 통합에 관한...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5-1. 인도와 한반도 역사 비교 -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분열과 통합에 관한... ○ 지정학적 위치와 흐름을 생각한다면, 한반도 역시 인도의 역사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에서 홍산(紅山)문화와 유목문화의 교합, 그 전통을 이어받은 고조선은 한반도 역사의 기반이자 출발점이다. 끊임없는 신진(新進)문물의 자극이 황하문명과 유목민을 통해 유입됐고, 그 통로는 인도처럼 한반도의 북쪽/중국이었으며, 중국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한반도 왕조는 바뀐다(한 침략/고조선 멸망, 한 멸망/삼국시대, 수당 통일기/고구려백제 멸망, 당송/신라고려 교체기, 원명/고려조선 교체기, 명청 교체기/임진왜란, 청 통일..
Ⅲ. 부록 – 메모 ▣ 배례석 - 15. 인도의 역사와 지역별 분류...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5. 인도의 역사와 지역별 분류...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분열과 통합 인도 사원과 불전의 탄생 3 – 인더스 문명과 인도 역사 ○ 그러면 드라비다계가 주축이라 추정되는 인더스문명의 토착원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했고, 변해갔을까? 면적만으로는 오늘날의 영국/프랑스/스페인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에 존재했던 인더스문명 중 상류 하라파와 중하류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기원전 2600~기원전 1900년대 유적(문자가 있어 선사(先史)시대가 아니고, 해석할 수 없어 역사(歷史)시대도 아닌, 그래서 원사(原史)시대라는 모호한 영역에 포함)은 그들이 가진 도시 하드웨어의 높은 수준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 바둑판..
Ⅲ. 부록 ▣ 배례석 - 14. 베다시대와 카스트제도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4. 베다시대와 카스트제도 인도 사원과 불전의 탄생 2 – 베다시대와 카스트제도 ○ 그러면 왜 베다시대가 시작(기원전 1500년경)된 이후 1000년이 지나도록 브라만교(후 힌두교)의 사원은 없었을까? 한마디로 “계속 이동/정복전쟁 중인 유목민의 문화적 특성과 신전이 없는 토착민들의 전통”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 유목민이던 아리아인(‘고귀한’, ‘훌륭한’이란 뜻으로 인도유럽계통의 인도이란인, 아리아인의 정통성을 주장한 이가 둘이 있다, 히틀러와 이란-아리아가가 어원-이다)들이 한쪽은 이란으로(기원전 2000년경), 또 한쪽은 인도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1500년경) 인더스문..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배례석 13. 문명의 이동과 축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3. 세계 4대문명, 종교, 문명의 이동 - 앞 글의 배례석 12. (부록)에 해당하는 메모다... - 앞 글에서는 세계 4대 종교의 건축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고... - 이 글에서는 세계 4대 종교의 교리적 완성과 포교의 체계화 및 - 세계 4대 종교의 창시와 변화/발전 과정과 문명의 충돌 및 문명간 교류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해 메모해 본다... - 이뿐만 아니라 종교의 교리적 완성과 포교의 체계화를 포함해 종교건축의 완성까지 불교가 인도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사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교리적 완성과 포교의 체계화는 세계 4대 종교(①기독교, ②이슬람교, ③힌두교, ④불교)의 ..
Ⅲ. 부록 ▣ 배례석... 12. 인도 사원의 탄생 1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12. 인도 사원의 탄생 1 인도 사원의 탄생 - 주거 공간 → 죽음의 공간 → 신의 공간 → 종교의 공간 ○ 이를 위해 인류문명의 공통 상징이며, 불교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탑(塔)/스투파의 구조와 양식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인도의 스투파 중 초기형태를 유지하면서 시간대별 변화가 누적된 과정이 추적된 유일한 형태인 산치대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치대탑에 대한 조금더 넓은 이해를 위해 스투파가 어떻게 사원에 안착했는지, 또 인도의 사원들은 어떻게 변화했는지부터 출발한다. - 스투파는 언제부터 사원에 있게 된 것일까? 그리고 절의 기원은 무엇일까? 명칭의 유래는? 절 ←사찰(寺刹) ←사원(寺..
Ⅲ. 부록 ▣ 배례석... 11 불탑과 왕릉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11 불탑과 왕릉 인도 스투파의 양식적 분화 – 불탑과 왕릉 ○ 배례석에서 출발한 생각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나다녔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배례석에서 배례(拜禮)의 모든것으로 개념이 확대되다 보니 다뤄야 할 영역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역사문화적 모태에서부터 양식적 기원, 그리고 변화를 추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석등과 승탑, 그리고 능묘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건너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배례와 관련된 심리적 거리와, 그 거리 유지를 위한 다양한 장치들... 예를 들면 능묘에서 ① 난간석이나 ② 박석이라 불리는 지대면석, 그리고 ③호석 및 수호석의 변천, ④ 이와 관련한 우리 ..
Ⅲ. 부록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10 승탑의 변화와 혼유석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10 승탑의 변화와 혼유석 부도전이 절집 맨 앞으로 온 이유... 승탑의 위치변화 ○ 고려 300여년의 공백기를 살펴보면서, 왕릉구조와 양식의 변화에서 상석을, 기록과 관련된 비와 비각에서는 지석을 같이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보조적 도구이면서, 죽음의 공간을 장엄하는 상징이며, 심리적 경계의 표식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 승탑-부도(浮屠, 浮圖)를 하나로 묶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교에서 가장 신성한 경외의 대상인 부처의 사리를 탑(塔)에 안치했다면, 인간세계의 최고 권력자인 왕은 왕릉(王陵)에 묻었다. 마찬가지로 선종의 득세와 함께 깨달은 자 – 부처와 동격으로 격상한 고승들의 사리는 부도-..
Ⅲ. 부록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9 호석-상석-지석-비석-사리봉안기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9 호석-상석-지석-비석-사리봉안기 사족 ; 호석 - 상석 - 지석 – 비석 – 그리고 사리봉안기 ○ 사실 신라왕릉이나 사찰에서 상석과 배례석은 눈에 확 띄는 물건이 아니다. 목적물이 아닌 보조도구이기 때문이다. 능이나 탑, 그리고 불상과 불전 등 목적물을 보조하는 도구가 더 장엄하면 주객이 전도될 수도 있다. 비(碑)도 그렇다. 비 자체가 존숭배례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碑閣)이 만들어지니 하나의 위계가 추가되면서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용이 형식을 낳고, 형식이 내용을 구속하는 내부순환 사이클을 벗어나, 형식이 잉태한 파편이 또 다른 ..
Ⅲ. 부록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8 배례석의 시원과 신라왕릉 상석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8 배례석의 시원과 신라왕릉 상석 신라왕릉의 상석(床石) - 배례석 양식의 시원 ○ 호류지에서 백제의 배례석 흔적을 상상하는 것으로, 백제에 그런 전통이나 관습이 있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다만 호류지에서 백제 평지가람의 원형과 7당가람제, 그리고 건축적 연원까지 추정하는 입장에서 배례석의 존재를 무시할 필요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이를 근거로 현재 확인되지 않은 백제 배례석의 존재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 다만, 이와 비슷한 개념에 접근하는 유적을 찾아보는 것과, 동시기 한반도의 또다른 유적에서 배례석의 시원에 접근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다. 먼저 신라에서 그 흔적..
Ⅲ. 부록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7 배례석의 시원과 호류지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7 배례석의 시원과 호류지 배례석의 시원 ○ 한때는 석등의 디딤돌이었다. 연화문을 받아들이면서 석등에서 벗어나고, 범위는 넓어졌지만 보조재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배례석은 탑에도, 불상에도, 승탑에도, 불전에도, 무덤에도 필요하지만 각각의 법식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신, 성인, 성경, 성전, 성역... 등 개념을 확장시켜 생각하면, 권위와 전통이 있는 곳에는 법이 있고 식이 있다. -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대로 권위는 단(段)을 필요로 하고, 단은 격(格)을, 격은 식(式)을 필요로 한다. 그 중 배례석은 가장 낮은 단을 갖추고 있으며, 가장 단순한 격을 갖췄지만, 결국 고유의 식을 만들지..
Ⅲ. 부록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6 배례석의 용도와 보편화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6 배례석의 용도와 보편화 통일신라 배례석의 용도 ○ 그렇다면 배례석의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700년대 중반 불국사에서 만든 배례석은 석등 앞에 놓기 위해 만든 것이고, 그 용도는 석등에 불을 밝힐 때 사용하기 위한 디딤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등신보다 조금 더 높은 크기의 석등, 그리고 손이 닿을 수 있는 높이의 화사창 – 화사석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디딤돌... 그런 이유로 불국사의 배례석은 발을 딛고 서는 상부 표면에 굳이 연화문을 만들 이유가 없었고, 석등에 바짝 붙여야 했으며 그만한 높이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 석등은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의미부여에 따라 변해갔지만, 양식과 규모와..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배례석... 5, 불교와 등, 석등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문양(안상/연화문)을 중심으로... 5 불교와 등, 석등 - 배례석과 관련하여 석등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해 첨부한다. - 여기에서는 석등의 탄생과 한-중-일의 등에 대한 접근과 간단한 비교, - 가람배치에서의 석등의 위치와 양식적 흐름과 크기의 변화에 집중하고자 한다. - 개인적 의견이겠지만, 장명등도 우리나라 석등의 큰 흐름에 포함했다. - 다음 기회에 석등의 구조와 양식적 변화에 대해 추가로 정리할 예정이다. ○ 불교에서 불을 밝힌다는 말을 연등(燃燈)이라 하는데, 여기서 연등이란 연꽃처럼 생긴 등이 아니라(우리나라는 발음이 같아선지, 연등(燃燈)을 연등(蓮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
Ⅲ. 부록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4 석탑과 석등앞 배례석 의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문양(안상/연화문)을 중심으로... 4 석탑과 배례석 ○ 지금까지를 종합하면 배례석은 처음부터 금당, 불상, 승탑, 탑비를 비롯해 석탑 등을 위한 배례도구가 아니라, 석등을 위해 - 석등의 보조적 기물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사례는 석등보다 석탑 앞 배례석이 훨씬 많지만, 이는 후대에 관리의 편의, 의미의 재해석을 통해 변경된 것이고,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초기의 배례석은 석탑이 아닌 석등 앞에만 놓였다고 생각한다. 석탑 및 석등과 관련된 배례석의 사례를 더 살펴보면 ; - 먼저 700년대 중반 불국사의 배례석은 석가탑과 다보탑 - 쌍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3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문양(안상/연화문)을 중심으로... 3 배례석의 명칭과 용도의 불일치 ○ 배례석이 격식을 갖추고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700년대 중반부터 1000년대 중반까지다. 또 이 300년 간이 우리 역사에서 당간지주를 포함해 석등, 석탑, 석불(좌상), 승탑, 탑비 등이 가장 많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던 시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 한반도의 석조예술이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운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배례석도 엄연한 하나의 영역을 가지고 발전했음에도 배례석의 명칭과 용도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 내가 이렇게 설을 길게 푸는 이유다. - 먼저 우리는 금당, 석탑, 석등 등 앞에 놓인 석재를..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2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문양(안상/연화문)을 중심으로... 2 배례석의 문양 : 괴임, 안상, 연화문 등 ○ 그러면 배례석은 어떤 격식과 유형을 갖추고 있을까? 배례석의 문양과 형태를 모아본다. ○ 배례석 중 가장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과 극락전 석등 앞에 놓인 2기의 배례석이다. 연화문은 보이지 않고 전면과 좌우 측면에 각각 2개와 1개씩의 안상(眼象)이 조식 되어있고, 안상의 양식은 각기 다르다. 800년 이전에는 안상만 조식한 것이 아닐까 추정되는데 불국사에서는 안상의 초기문양을 눈여겨 볼만하다. - 안상은 대부분 측면의 긴쪽에 3~2개, 좌우 짧은면에 1~2개씩 음각되었고, 영..